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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엠씨더맥스 [717139]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8-01-24 21:11:56
조회수 15,550

재수 준비생의 긴 한탄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5709493

안녕하세요 막 수능을 보고 20대의 처음에 들어선 99입니다
제 가슴속에 쌓여있는 응어리들이 많은데 풀어놓을 곳이 여기밖에 없네요.

아마 N수를 하신 분들은 재수 전의 싱숭생숭한 마음을 이해하실거에요..
대부분의 친구들은 올해 입시판을 뜨기 때문에 어짜피 입시 사이트인 오르비에 올린 이 글을 못 볼거같아서 조심스레 여기에 써 봅니다.

제가 정말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라 친구들 대부분은 제가 이런 어두운 생각에 빠져 사는지 절대 모를거에요..
딱히 맥락이 있는 말은 아닌데 그냥 속에 쌓여있던 생각들을 여기서라도 토해내고싶어서 그냥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저는 정말 불우하게 사는것 같아요
그냥 제 자체가 고장나버린거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제 주변인들은 제가 정말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줄 아는데
저는 사실 형을 먼저 보낸후에 전혀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중이에요.
그저 속으로 행복하지 못하니 겉으로 행복한 척 하는거 같아요.

저희 가족은 4명인데 4명 다 따로 삽니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사이가 심각하게 안 좋으셔서 몇 년째 얼굴 한 번 못 보시며 따로 분가 하셔 따로따로 사시고
형은 어떤 뭐같은 택시기사 때문에 억울하게 죽어서 하늘나라에서 삽니다
또 저는 이제 독재하느라 혼자 서울에서 살게됐네요
오늘 잠 잘 원룸이랑 신촌 오르비랑 계약하고 광주 내려가는 중입니다 (여러 이유때문에 상의 후 혼자 상경하게 됐어요)

자랑은 절대 아니지만 전 고1까지는 공부의 ㄱ자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대학교를 포함한 미래 걱정은 생각도 안 해봤죠.
그런 저를 보며 부모님과 형은 정말 속 썩으셨을거에요
그렇게 하루하루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고1 후반 급작스럽게 저희 형이 교통사고로 억울하게 제 곁을 떠났어요. 그 때가 제 짧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거 같네요.

부모님의 좋지 않은 사이에 저와 형은 정말 형제 이상으로 서로에게 기댔고 그런 형은 정말 제 정신적 지주 역할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충격이 컸죠. 2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안치실에서 본 부자연스럽게 무표정이었던 형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안치실에서의 풍경과 제 손으로 하나뿐인 형을 좁아터진 관에 입관시키고 나무뚜껑에 싸인펜으로 형 이름을 쓸 때, 그리고 막 한 줌의 재가 된 형이 있는 유골함을 받아들었을때의 온기를 느꼈던 경험들은 무거운 돌이 되어 2년이 지난 지금도 제 가슴속에 깊숙히 박혀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일 이후 나름 정말 정신을 차려서 선생님인 아버지와 사범대생이였던 형을 따라 저도 선생님 (학원 or 인강 강사) 의 꿈을 이루고싶어서 하루하루 나름 열심히 살았어요. 어떤 과목은 7등급부터 1등급까지 모든 등급을 맞아본거 같네요.

그러나 제가 가고싶은 곳의 객관적인 정시 문턱은 너무나도 높더라고요 :(
사실 연대를 제 눈으로 너무 보고 싶어서 3시간 반 동안 지방에서 몇 번 올라와서 아름다운 연대 정문이랑 언더우드 본관,스팀슨관,아펜젤러관들을 보면서 감탄도하고 사진도 찍고 혼자 학식도 먹어보고 밤 새 아무도 없는 야외 노천극장에 누워보기도 하고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민폐이지만 제가 가고싶은 과의 수업도 낑겨서 몰래 도강해보고.. 제가 학교밴드랑 보컬 동아리 메인 보컬로 서서 공연 몇 번 다녔는데 더 나아가 학교 합격해서 연고전 응원단장도 해보고 싶어서 힘들 때 연고전 응원같은거 보며 힘내고..정신 나간 놈 처럼 여러모로 열심히 덕질도 해봤네요ㅋㅋㅋ

전 올해 독재하면서 남은 300일 정말 치열하게 살아서 가고싶은 학교에 꼭 입학하고싶어요.


절 성적으로 완전히 무시하던 고2담임쌤과 오늘 저랑 같이 학원 등록하러 멀리 같이오신 아버지께 당당히 합격증을 보여드리고싶네요.

한 분한테는 비웃으면서 그리고 다른 한 분에게는 웃으면서요.

그리고 아버지처럼, 그리고 형이 되려던 것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어서 우리나라 교육계에 종사하며 과거의 저처럼 학업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없는 아이들에게 밝은 등불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정말 아무 맥락 없는 긴 푸념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긴 글을 다 읽어주신 분이 있을지나 모르겠네요
행복한 저녁을 제가 괜히 우울한 글로 방해하지 않았나 싶어 조심스럽네요.

말 못했던 응어리들을 풀어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네요
이 글 보시는 2019 수능 수험생 분들 원하는 학교,학과에 꼭 진학하시길 빕니다.

N수생 분들도 저랑 같이 힘내요 :) 저도 정말 악착같이 살게요


옛날에 페북 연대숲에서 보고 공유한 장문의 글 첫 문장이 생각나네요.


늦은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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