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격투기와 문-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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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대전제부터 밝힙니다.
저는 역사학 전공자입니다. 대학원에서는 고고학을 전공했고. 속칭 문돌이지이요.
학번은... 음 그냥 80년대 학번이라고만 얘기하겠습니다.
문돌이 출신이지만, 미래 사회는 수학과 물리학의 발전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기실 이는 물리학자 호킹이 그의 저서(사실은 공저) 'grand design'의 서문에서 지적했듯이, 근대 이후의 역사를 통관했다고 저는 봅니다.
1. 1990년대 후반까지, 아니 2000년대 초반까지 술자리에서 그런 논쟁이 종종 있었습니다.
"어느 격투기가 가장 센가?"
사내들의 관심 거리, 대개 비슷하지요. '비릿한 육체적 욕망'이거나 '누가 센가'이거나...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권력욕 역시 '내가 세다'는 것을 표현하고픈 욕망이라고 저는 봅니다.
다양한 최고 종목이 나왔지요.
권투, 태권도, 텍견, 레슬링, 유도 쿵푸. 합기도..(당시 주지스를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이 토론, 혹은 논쟁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왜? 증명할 방법이 사실 없었으니까요.
대개, 자신의 경험담을 일반화하는 정도였습니다.
2. 한데, 이 논쟁이 2000년대 초반 이후, 점차 사라지더군요.
케이블 방송을 통해 일본의 '프라이드'나 'K-1' 같은 격투 스포츠가 방송되면서였지요.
당시는 이 경연을 '이종 격투기'라고 불렀습니다. '서로 다른 종'(=이종)의 격투가들이 싸운다는 의미에서... 지금은 종합 격투기(mixed martial arts)라고 부르지만
그리고, 일본보다 앞서 미국에서는 이미 90년대 초반 'KING OF THE CAGE'라는 격투 대회를 통해 서로 다른 격투가들이 싸우고 있다는 점도 알려졌습니다. 이 격투 대회는 결국 오늘날 'UFC'로 발전합니다.
사실 입식 타격가들이 멋지기는 합니다. 화려한 발차기와 주먹 기술은 보는 이를 가슴 뛰게 하지요.
한데, 초기 프라이드나 초창기 ufc를 제패한 사람은 대개의 경우, '붙잡고 싸우는 기술'을 알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일단 붙잡히면 주먹이나 발기술의 원천인 허리가 제압되기에, 입식 타격가는 힘을 쓸 수 없는 것이지요.
그 기술이 레슬링이 됐든, 유도가 됐든, 주짓스가 됐든 어찌됐든 붙잡고 싸우는 기술, 즉 그래플링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종합격투기를 제패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실제로 증명이 된 겁니다.
초창기 ufc 대회에서 1, 2, 4회 대회 우승자는 주지스 플레이어였던 호이스 그레이시였습니다.(3회 때 그레이시는 대회 도중 부상으로 경기에 승리한 뒤 기권해서 결승에 못 올라갔음.)
이후, 종합 격투기에서 특정 격투기 종목에 대한 다양한 '파해법'이 나오게 됐지요. 해서 요즘 종합격투가들은 '복슬러'가 돼야 한다고 합니다. 복싱과 레슬러를 합친 용어인데, 주먹과 발기술도 중요하고(이를 복싱으로 일반화시킨 것), 붙잡고 싸우는 기술(이를 레슬링으로 일반화시킨 것)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3. 도대체 문과와 이과를 이야기하면서 왜 종합 격투기를 먼저 얘기했느냐고요?
어찌됐든 수험생 최상위 사이트인 이 곳에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낼 세금으로 노후에 먹고 살게 될 확률이 높은 자'로서 미리 감사한 마음을 담아 조언까지는 아니고, 그냥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요즘 회사들, 문과생 잘 안 뽑지요? 예, 이는 분명 인재 등용에서의 '편식'일 수 있습니다.
한데... 어찌됐든 회사 입장에서는 똑똑한 사람을 뽑고 싶어할 겁니다.
물론 수능 점수 몇 점 더 받은 게 똑똑한 것은 아니다, 협동을 하면서 일을 잘 하는 것은 수능 점수 몇 점 더 맞은 것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님들이 회사 ceo가 됐을 때 어떤 사람을 뽑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시면, 이해는 빠를 겁니다.
여기서 문제.
예를 들어, 수능 백분위에서 1%를 한 문과와 이과생 중 누가 똑똑한 것일까요?
서로 1%를 했으니, 똑같은 것일까요? 둘 중 누가 나은지를 가를 방법은 없을까요?
이 장면에서 종합 격투기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예, 숱한 술자리 논쟁이 있었지요.
태권도의 발차기에 걸리면 바로 황천길이다.
복서에게 주먹으로 걸리면 옥수수 다 나간다!
웃기는 소리! 레슬러나 유도 선수에게 잡히면 네 몸 박살난다!
합기도의 관절기, 너 당해본 적 없지? ....
한데 종합 격투기 대회가 생기면서 이 논쟁이 사라졌지요.
종합 격투기의 원칙은 간단합니다.
"모든 격투기의 기술을 다 받아들인다" 입니다.
복싱에서, 발 쓰면 바로 실격이죠? 팔꿈치를 써도 실격입니다.
태권도에서 훅 쓰면 실격입니다.
유도에서 상대 선수의 얼굴을 가격하면 실격입니다.
한데 종합 격투기는 이를 모두 용인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격투기의 강자를 가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예, 문-이과에서 누가 강한가를 가리는 방법은 있습니다. 물론 현실성, 즉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문과생에게 국 영 사탐, 그리고 수학 가 형과 과탐 2과목 치게 합니다.
이과생에게 국 영 과탐, 그리고 수학 나 형과 사탐 2과목 치르게 합니다.
그리고 점수를 비교해 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상위 1%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상위 5%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중위권(예를 들어 백분위 40%, 혹은 50% 혹은 60%)과 하위권(백분위 70% 혹은 80% 등)에서도 마찬가지 실험을 합니다.
자, 과연 결과는 어떨까요?(물론 우리 교육부가 이런 실험을 할 리가 없습니다. 서열화를 일절 금지하는 교육부이니까요...)
4. 해묵은 문-이과 논쟁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하지만 제 전제에서 이미 결론을 읽으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문과 출신이어서 더더욱 이런 말을 하고픈지도 모릅니다.
문과생분들, 특히 어찌됐든 이 땅에서 객관적 기준으로는 ‘엘리트’로 살아갈 문과생님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는, 제발 물리학이나 화학 등 기초 과학 공부는 ‘기본 이상’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18학년도 고 1부터는 문-이과 통합이므로,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고 말씀하실 분도 있으시겠지만, 내신 따는 것 정도에서 그 지식이 그치지는 말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1990년대 후반 한 때 우리 지식 사회를 풍미했던 포스트 모더니즘이 과연 물리학에서의 ‘불확정성의 원리’ 혹은 양자역학의 발전이 없었으면 가능했을까요?
1940년대까지 고고학에서 유물의 시대 구분은 토층의 층위와 유물의 형식으로만 분류했습니다.
한데 리비가 ‘반감기’를 발견하면서 절대 연대 구분이 가능해졌지요.
그 결과, ‘모든 빛은 동방으로부터’라는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영국의 스톤헨지 같은 거석문화는 이집트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던 통념이 바로 깨졌지요. 반감기를 통해 스톤헨지의 축조 시기는 초기 피라미드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으니까요. 물리, 혹은 화학의 발전 덕이었습니다.
뭐, 의학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물리의 발전으로 촉진된 것이고요.
사회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면서, 저 역시 문과 출신이지만, 문과 출신들에게 종종 느꼈던 논리적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행정고시라는, 이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된 분야의 시험 과목이 여전히 문과 과목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저를 안타깝게 합니다. 그러니 그 유능하고 똑똑한 관료들이 현대 사회의 '기술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혹 문과생님들의 마음이 상하셨다면 다시 한 번 정중히 사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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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 관점에 국한되지 않는게 중요하네요.. 이제야 문이과가 폐지되니 50년뒤 우리나란 조금 달라지겠죠?
문-이과 통합론에서 과연 수학이 어찌 될지요...
요즘 기하와 벡터를 빼네 마네 논쟁을 보면...
수학과 물리에 기반한 엘리트가 되려는 사람은 고교시절 저는 더욱 강하게 수학 공부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건강한 시민, 건강한 직업인으로 성장할 사람은 수학 공부 그리 어렵게 할 필요는 없고요.
한데 우리 사회가 이런 '차이'를 과연 인정하는 사회인지요...
특목고나 외고 폐지론이 대세를 이루는 사회에서요.
답답합니다.
맞아요. 문과도 수학 좀 더 어렵게 내고 예전처럼 과탐도 봤으면 좋겠어요. 반대로 이과도 사회과목 공부해야 하구요....
이준구 교수님이나 류근관 교수님께서도 수학 좀 어렵게 내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시던데ㅠㅠ
그리고 요즘 대중들의 지적수준이 정말 수준급이죠. 그래서 그런가 시험 어렵게 내는 것의 효용성도 다들 아시던데 개정 제도를 보면 이건 포퓰리즘조차 아닌데 무얼 하고 싶은 걸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특히 경제학과는 제발 미적분2좀 보게해야....)
수 가 형에서 기하가 빠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했습니다. 제 아해도 한숨을 쉬더군요.
뭐가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요...
그리고...
문과의 꽃인 경제학과는 반드시 미적분 어렵게 공부해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경제학과는 가지 말아야지요.
경제학이란 학문은, 수학은 물론 대중의 심리, 그리고 역사적 배경까지도 두루 알아야 하는 학문이니까요... 학교 다니면서 경제학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어려운 학문인지 알게 됐지요. 1980년대 그 시절에...
이렇다가 언젠가 또 바로잡히리라 생각...합니다ㅠㅠ
+ 전 행렬도 공부했던 세대인데 행렬도 왜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ㅠㅠ 경제, 수학, 공대 교수님들이 한숨을 퍽퍽....
예, 바로 잡혀야지요. 그래야지요...
한데 언제가 될지...
예전글이시군요. 저는 사실 문과에서 이과로 전향한 사람입니다. 심히 공감되는 말이고 저역시도 수학이 앞으로의 연봉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반되는 두공부이긴 하지만 물리를 제외하면 그래도 할만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세상을 이해하는 틀은 더 넓어지는것 같습니다 물론 고생은 두배는 더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