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원로원 [373318] · 쪽지

2011-03-23 15:10:43
조회수 3,711

종지부를 찍다 (고등학교시절)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443943

장수생분들 늦게 도전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잘것 없는 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편하게 쓰기위해 존칭어는 생략합니다.

양해부탁드려요

고 3이전

2004년 2학년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는 독서실에 등록했다

고3이 된다는 두려움이나 열심히 해야 대학을 가겠구나라는 생각보다

기말고사 끝났는데 여기서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독서실에서 잠을 자거나 딴 생각을 했던게 아직도 생각난다.

중학교때는 지역내에서 수준이 낮은 축에 끼는 중학교를 다녔고

정원또한 적어 벼락치기를 약간 해도 전교 순위권에 들어서

그때 생각만 하다가 고등학교에 와서는 캐발림의 연속 이었다

그 결과 점점 학교 수업에 충실하지 않게 되었고

인생은 수능한방이다 라는 사고로 고2때부터 내신을 버리다 시피했다

그렇다고 해서 수능모의 성적이 잘나온것도 아니었다


2004년 고2 6월 전국 연합평가에서는 총점 300점을 넘지 못하는 기염을 토하고

어떻게 500점 만점에 300점을 넘지 못하는가에 대해 심히 고뇌했으나

이틀만에 정상으로 돌아왔고 여전히 공부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고2여름방학은 어둠의 경로로 유명 강사의 강의를 보는걸로 만족했다

참고로 이때 김기훈강의를 주로 들었는데

영어실력보다는 허세만 늘어서

교실 뒷자리에 앉아서 맨날 수업 안듣고 딴걸 했었는데

어느날 담임샘이

담임: 넌 왜 맨날 뒤에 앉아 ?

나: 전 수업칠판 전체를 조감(BIRD EYE VIEW)를 하기 위함 입니다

라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지껄였던건 지금도 부끄럽다.

몇달후 9월모의에서 외국어가 30점정도 올라 76점을 맞았는데

이걸로 담임선생님이 그래도 외국어 공부 좀 했구나 라는 말을 들었다

(올랐다는 걸로 만족했는데 지금생각해보면 qt[금지어네요 ;;->한글로 바꿔서 보시길 ㅎㅎ]점수)

어쨌든 고3 이전 나는 무엇을 하겠다라는 생각도 없이

단지 좋은대학에 가고싶은 생각만으로

뜬구름 잡듯이 하는 둥 마는 둥 막연한 공부를 했다.


그런태도는 겨울방학까지 이어졌다.

겨울방학때는 나름 수학을 해보고자(고등학교 내신 통틀어 수가 없음-수포반이나 마찬가지였음)

그때 메가에 새로 영입되고 대세를 타게된 박승동사마강의를 들었다

강의 보고 있으면 뭔가 신기하고 대단한것 같은데

정작 수포반이나 마찬가지인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것 같다

이때 하루에 수학을 8시간정도 공부했는데

도대체 무슨 공부를 8시간을 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3월 모의점수가 69점인가 나옴 개인적으로 qt이었다고 생각)

이 점수로는 안되겠단 생각에 수학문제집을 주구장창 풀어댔으나

그 당시 박승동을 듣던 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승동사마가 교과서만 보면 된다는데

이비에스랑 기타 문제집 볼필요 없는거 아님?하고 계속 교과서만 봤는데

정말 미쳤었던것 같다

계속 교과서에 나오는 계산문제 또는 간단한문제만 보는게

수학공부의 전부였으니 말이다.(적어도 승동선생 공부법을 할만한 사람은 최상위권이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삽질을 하루에 공부시간의 전부를 쏟고 외국어는 샤기강사의 강의를 듣는걸로 영어공부는 끝-_-;;

강의 듣는것으로만 점수를 올려줄것 같았다 왜냐하면 강사 자신감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당시 김기훈강사는 내강의를 듣고 성적이 안오르면 나랑 안맞는것이니 떠나라

그리고 쳐 복습을 안할꺼면 듣지말라고 강조했었는데

영어 성적이 안올라도 언젠간 오를꺼야 난 김기훈을 들으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영어공부를 안했다.

사탐은 흥미가 있어서 열심히 했고 지금생각해보면 사탐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던것 같다.

고3~수능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고

내신이 안습이었던 필자는 자습실에 들어갈 자격이 안돼 교실에서 자습을 하게되었는데

이때 멤버들은 거의 개호구들의 집합이었다 ㅋㅋ

야자시간에

어떤놈은 자기 여자친구랑 200일이라고 자습시간에 방송반에서 비디오카메라 빌려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않나, 뒤에서 축구하는 애들도 있었다;;

담임은 강제로 야자를 하라고 해놓고 감독은 전혀하지 않아서

이건 뭐 개판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러면 안되지만 아직도 고3 담임에 대해 악감정을 갖고 있다)

이때 나는 자습실도 못들어가서 짜증나는 판에

야자 땐 개판이라서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아예 못하게 되서

담임하고 대립각을 세우고

독서실로 가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6월모의 평가가 다가왔다.

나름 긴장해서 쳤는데

이때 총점 400점은 당연히 못넘었고

등급이 아마 언/수/외/탐/ 4/3/4 /2234/ 이정도 나왔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내자신에 엄청나게 관대해서 9월가면 오를 꺼야라는 근거없는 초긍정으로

또한 반에서 6등정도한다는 반석차자신감으로 ㅋㅋㅋ(반석차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시해야된다고 생각)

또 다시 공부를 하긴하는데 성적은 안오르는 생활을 반복했다

여름방학이 오자 조금 위기감이 들어 학교에서 하는 방학보충수업을 빠지지 않고 들었다.



수능 원서를 쓰고 약간 떨리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때까지도 근거없이 나는 명문대에 갈꺼야 라는 말도안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야말로 개념없는 현역의 대표주자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어영부영하니 9월 모의가 다가왔고

흔히 말하는 뽀록으로 4등급이던 언어가 87점인가로 2등급을 맞아서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성적은 언어2등급 수학3등급 외국어4등급

이때도 원점합이 400점이 안됐었던걸로 기억한다.


이제 10월.., 나는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으로 10월을 보냈다)

마지막이 되니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잡히는 대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이때 또 잘못생각했던것이 하나 있는데

개념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문제풀이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때 나의 모토는 개념정리만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있다는 생각이었다

(개ㅋ병ㅋ신짓이니 따라하지 말길 바란다.--이론상으론 가능한데 실제로는 장수하고 장수가 안끝날지도 모름)

안 풀리는 문제를 보면 평가원에서는 이딴 문제를 안내니까 패스;; 이런식으로 해서

이비에서 파이널만 한 80퍼센트 정도 푼게 전부고 기출문제 약간 깔짝댄게 전부다

이글을 읽는 사람은 부디 부디 제발 그런일이 없길 바란다.

대망의 11월 수능을 3일 앞두고 친구들하고 학교 앞 닭꼬치 집가서

매운거 잘먹는다고 허세부리다가 핵폭탄 꼬치?라는걸 먹고 쥐쥐치고

다음날 병원갔다 (부디 이런일이 없길 바란다.)

수능 3일전엔 정말 생활면에서 조심해야되는데

개념이 없어서 그런것 같다.

수능결과는

GG였다

언/수/외/탐/ 5/4/4/1234/ 라는 전화번호 등급(그것도 골드번호 -_-;;)이 나왔다.

내 성적으로 서울권에 있는 학교도 쓸수 없는 성적이나와

난 빵꾸를 노리기로했다

수능이 망하더라도 원서는 꼭 쓰길 바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스나이핑이라는 말은 없었고

스나이핑은 무모한 짓이라고 qt짓 하지 말라고 했었다.

나는 스나이핑을 해서 예상치 못하게 서성한 사범대 예비 8번을 받았다

오오오 붙는것인가 했지만 최종 4번으로 끝났다

원래 기대도 안했고 내실력이니만큼 아쉽지만 인정하고

재수를 시작하게 된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