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현 [240141] · MS 2008 · 쪽지

2010-03-09 22:48:33
조회수 6,319

한 외고생의 대입 수기 - 에필로그: 그리고 남은 말들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443003

(원래 쿨하게 타다닥 올리고 끝낼라 그랬는데 이렇게 끝이 좀 구질구질해져서 죄송하다.

이 부분은 원래 쓴 수기엔 있었는데 좀 잔소리 하는 느낌이 들어서 올릴까 말까 하다가 내용을 좀 다듬어서 올린다.

내가 오르비 또 언제 오겠어 ㅋㅋ 할 말 다 하고 가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orbi.kr 시절부터 오르비에 있는 수기들을 참 많이 읽었다. (아직 오르비에 전화 인증이 있었던 그 때)

아마 웬만큼 이름 있는 수기들은 다 읽어 봤을 거다.

기억에 남는 수기들도 많다. 구리미의 외고일기, Pine tree님의 5수해서 한의대 갔던 수기, 마나번 님의 외고 꼴찌 대학가기, 08석이 님의 설수의 합격 수기 등등.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기는 evergray님의 "서울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다.

그 수기는 다른 수기들이 갖고 있지 못한 큰 장점을 하나 갖고 있었다.

그건 수능 공부와 대학 합격에만 매몰되지 않았다는 거다.

다른 수기들도 감동이 있었고, 드라마가 있었고, 피나는 노력이 있었지만 뭐랄까 너무 대입에 자신을 너무 쏟아 부어 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하긴 수험생 커뮤니티인 오르비니까, 올라오는 수기들이 그런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어주는 수험생 여러분들께 비록 몸은 수능 공부를 하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만은 수능, 대입 너머를 보고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딱히 꿈을 크게 가져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 같은 거창하고 모호한 이유가 아니다.

그렇게 수능만으로, 대입만으로 목표를 설정해버리면 나중에 너무 비참한 맛을 보기 쉽기 때문이다.

내 수기를 읽어 본, 기억력이 초롱초롱한 사람이라면 내가 중3때 내용도 수기에 쓴 걸 기억할 것이다.

그 때 나는 모든 것을 외고 입시에 걸었었다. 심지어 특별 전형에서 떨어졌을때, 일반도 떨어지면 자살할까? 하는 이런 미친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어쨌든 난 붙었다. 붙어서 뭘 얻었는가? 글쎄...

물론, 외고가 일반고보다 자습 분위기가 좋고, 교우 관계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는 메리트는 인정한다.

그러나 솔직히 언론에서 가끔 보이는 외고를 무슨 완벽하고 엄청난 수재들만 모여있는 학교인 양 묘사하는 건 너무 지나치다.

한 마디로 외고는 뻥튀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외고 1학년 1학기 때 너무 허무했었다. 허탈감과 무력감만 느껴졌다.

금메달을 딴 줄 알았는데, 내가 한 건 예선 통과 뿐이었고 더욱 격렬한 경쟁만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외고에 모든 것을 걸었던 나는 그냥 ㅂㅅ짓을 한 거다.

대학도 크게 이와 다르지 않다.

죽지 않는 이상 끝은 없다. 계속 고생하고 경쟁할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명문대에 가면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출발할 수 있단 것 정도?

수능 시험이, 대학이 목적이 되버리면 당신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대학 자체가 해 줄 수 있단 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이다.

굳이 평생 쫓을 꿈까지 필요하다고는 하지 않겠다.

다만 수능 시험이, 대학 입시가 끝난다 해도 엄밀히 말하면 아무 것도 끝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외고에 들어가서 제대로 배운게 있다면 단 두 개다.

첫째는 SKY 나와도 실력도 인성도 참 거지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건 교사들을 보고 배운 것이다.)

둘째는 학교 자체에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가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것. (이건 학교 하는 꼬라지를 보고 배운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 당신들 중에서도 몇몇은 성공하고 몇몇은 실패할 것이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묻어버리고 빠르게 다시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출발할 수 있기를 빈다.

긴 글 읽어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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