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고생의 대입 수기 - 3. 수능 당일부터 합격자 발표일 까지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442997
4. 수능 날~최종 결과 발표일까지
수능 당일,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시험장으로 나섰다. 나는 집과 학교 사이 거리가 먼 편이
었는데 수능 시험장은 학교 기준으로 배정받았기에 일찍 나서야 했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내
가 3착이었다. 비교적 텅 빈 시험장을 거닐다가 8시 쯤 자리에 앉아서 9월 언어를 펴봤다.
역시 부분 문제가 어려웠다. 이렇게 다시 나오면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이 들었다.
그리고 수능 시험이 시작되었다…. 처음의 언어 듣기가 가장 긴장됐다. 4번이 헷갈렸다. 그
러나 다른 4개가 확실히 맞았기에 나머지 보기 하나를 답으로 체크했다. 맞았다고 확신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침착하게 계속 문제를 풀었다.
언어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9월에 비해서 훨씬 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렵길 바
랬는데 아쉬웠다. 시 파트에서 3점짜리 문제에서 매우 고민한 느낌이 난다. 시 에서 [
흐르는 빛]이 하강적 이미지인가 상승적 이미지인가 고민했다. 결국 하강적 이미지라 생각하
고 답을 체크했다. 흐른다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는 어감이었기에….
수리는 어렵게 나올지 궁금해서, 시작하자마자 뒤에 28, 29, 30번을 풀어봤다. 그런데 세 개
다 너무 쉬웠다 -_- …. 맨 뒤의 킬러 3인방이 이렇게 쉽다니 올해는 개 물수리를 보여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착하게 다시 앞 장부터 풀어나갔다. 물수리라는 느낌이 들어서
실수하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무한급수 문제가 나름 어렵게 나왔지만 어차피 무한급수는
a/(1-r)에 처넣기만 하면 되는 문제 아니었던가…무난하게 풀었다. 15번이었던가? 로그함수
ㄱㄴㄷ에서 막혔다. 로그함수 그래프 보고 참 거짓을 판별하는 문제는 내가 좀 약한 파트였
다. ㄱ, ㄴ은 식을 이리저리 굴려보니 나왔는데 ㄷ을 확신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음 문
제로 넘어가서 식 첫 줄을 전개하는 찰나, ㄷ의 판별법이 갑자기 생각났다. 급 앞으로 돌아
와 그 부분을 풀었다.
그런데 25번에서 막혀버렸다…. 아마 올해 6, 9, 수능 통틀어서 제일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일단 체크하고 끝까지 풀었다. 그리고 문제 속으로 다이빙하는 기분으로 (해본적은 없
지만 -_-) 25번을 다시 바라봤다. 2*2 정사각형 안 쪽에 1*1 정사각형이 고정되어 있고, 그
사이에 한 변이 1/n짜리인 작은 정사각형들을 채우는데 여기서 수열의 극한을 구하고 100을
곱하는 문제였다. 그냥 A(n)의 극한을 구하는게 아니라 A(2n)과 A(2n-1)로 나뉘에서 식이 적
혀있는 걸 보니 n이 홀수일 때와 짝수일 때를 나눠서 풀어야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n
이 짝수일 때는 그림에 딱 맞아서 쉽게 풀었지만 n이 홀수일 때가 문제였다. 자꾸 푸니까 답
이 음수로 나왔다. 그 때 일단 2*2 사각형을 다 채운담에 1*1 사각형에 겹치는 부분부터 빼
주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렇게 푸니 답이 50이 나왔다. 100% 확신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선의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제를 검토했다. 틀린 곳은 없었다. 하지만 계속 불안했다. 한 번 더 검토했다. 그래
도 불안했다.
그렇게 종이 울리기 2분 전이었다. 갑자기 4점짜리 로그 문제 하나가 답이 틀리지 않았나 하
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감은 물에 잉크를 탄 듯이 확산됐다. 결국 감독관에게 요청해 답안지
에 수정 테이프를 칠했다. 그리고…그냥 원래대로 답을 다시 체크했다. 정말 수능 날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었다. 그걸 고쳐버렸다면 난 지금쯤 대학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어지러움을 약간 느끼는 가운데 수리 영역이 끝났다. 주변에서 쉽다고 속닥대는 소리가 들렸
다. 25번에서 캐 고전한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 니네가 나보다 수리 잘하냐…난
어려웠는데…하고 마음속으로 궁시렁댔다. 사실 어찌 보면 그들로선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
다. 이번에 2~3문제 빼고는 매우 쉬웠으니까…걔네는 어차피 2~3문제야 매양 못 푸는 거였고
나머지 문제 가지고 난이도를 판단했을테니까….
점심으로 싸 가지고 온 볶음밥을 먹었는데 잘 먹히지 않았다. 반 쯤 먹다 물 좀 마시고 화장
실에 갔다. 손 씻다 거울을 봤다. 지금까진 잘 했어…조금만 더 하면 되는거야…하고 마음속
으로 중얼거렸다.
곧 외국어 영역 시간이 시작되었다. 듣기 안내 방송 시간에 시험지를 조금 넘겨가면서 살펴
보니 뭔가 이상했다. 문법에 3점짜리가 없었고 독해 문제에 3점짜리가 있었다. 순간 뭔가 이
번 외국어 영역은 다를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듣기가 시작됐다…. 무난하게 잘 들었으나 3점
짜리 듣기 문제에서 당황해버렸다. 다행히 당황해서 놓친 부분은 쓸모 없는 부분이었고, 정
답을 내는 데 필요한 정보는 다 얻을 수 있었다.
문법을 넘고 독해를 넘어 쭉쭉 나가다 독해 3점짜리에서 막혔다. 일단 체크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또 다음 3점짜리에서 막혔다. 좀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된 게 3점짜리는 지문들이
TEPS 수준에 근접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풀고 문제의 3점짜리 두 개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첫 번째 문제
는 좀 선지에 비유적 표현이 쓰인 것 같았다. 내용 상 빈 칸에 같은 단어가 들
어가야 할 것 같은데 같은 단어들은 선지에 안 보였다. 아닌 것 같은 4개를 지우니
란 선택지만 남았다. ? 해석에 따라서는 그게
모습>이란 뜻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걸로 답을 정했다. 두 번째 3점짜리는 좀 언어
지문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연극 감상론에 대한 지문이었는데 결국 관객과 연기자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건지, 아니면 가깝게 느껴지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갔다. 근데 선지중에 가깝게 느껴지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2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 1개였다. 그래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내용을 선택했다.
외국어 영역이 끝나고 약간의 휴식기가 주어졌는데 별로 뭘 하진 못했다. 화장실에 갔다 오
고 물이나 좀 마셨다. 사회탐구 영역은 시작 시간부터 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감독관이
음…좀 학생들 갈구는 걸 낙으로 삼는 성질 사나운 노처녀 교사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내가 가장 자신 없는 국사를 받아 펴 보았다.
첫 장 4번부터 막혔다. 아 이거 고사부가 말해준 내용인데…외워둘 걸…그래도 나머지 4개를
지우니 대강 감이 잡혔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니 아주 교과서 안에서 밑바닥까지 싹싹 후
벼 판 듯한 문제들이 보였다. 특히 향약구급방 그 문제랑 공조판서 문제…기가 막혔다. 거의
울상이 되어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풀어갔다. 19번도 너무 어려웠다. 지역을 중심으로 통사적
접근이 요구되는 문제…아주 나한테 쥐약이었다.
제발 찍은 문제들이 잘 맞아주길 빌며, 근현대사 시간으로 넘어갔다. 그냥 많이 보던 유형의
문제들이 출제됐는데, 난이도는 6, 9월보다 살짝 쉬운 수준으로 느껴졌다. 역시 항상 쪼잔하
게 나오는 문화사 파트가 좀 어려웠다. 1번 문제가 계속 헷갈렸다. 동학농민운동 당시 구호
를 고르는 거였는데 철도 부설권 문제가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났다. 결국 안 고치고 넘어갔
다. 정말 잘한 일이었다. 고쳤으면 난 근현대사 47점으로 미칠듯한 백분위 폭격을 맞았을거
다. 정말 이번 근현대사도 그렇게 쉽지 않았는데 1등급 컷이 48이고 47이면 백분위 92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리고 내 세번째 사탐 정치 시간이 시작됐다. 일단 시작하자마자 4페이지 전부 훑어봤는데
선거 그래프가 없었다. 역시 침착한 제시문 독해에서 승부가 갈릴거라고 예감했다. 그냥 문
제를 잘 읽고 찬찬히 풀어갔다. 무슨 xy좌표축 그리고 점들 간의 거리 구하는 문제도 있었다
. 그런데 사회 계약설 문제에서 이지선다하다 하나 찍었다. 자연법이 실정법의 기초가 되는
지 내가 어떻게 안다고….
드디어 마지막 네번째 사탐인 경제를 풀 시간이 되었다. 경제…1, 2페이지는 좀 어렵네 하면
서 풀었는데 3, 4페이지는 아니 평가원 형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하는 심경이었다. 비교
우위 문제가 정말 어렵게 나왔고 로렌츠곡선 네 개 가지고 노는 문제도 너무 어려웠다. 내가
경제에서 시간 모자란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수능 때만큼은 아슬아슬하게 검토도 못하고 딱
맞춰 풀었다. 그런데 시험 종료 1분 전쯤에 갑자기 16번 문제 답을 잘못 쓴 것 같았다. 그
때는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성적으로 이래서는 안된다고 자각하고 있는데 손이 알아서
수정테이프를 칠하고 다른 답에 마킹을 해버렸다…. 손머리하고 있는 시간 되서 다시 보니
역시 원래 답이 맞는 거였다. 아쉽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완전 헬파이어 경제였으니
저거 하나 정도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빌었다.
사탐 시간이 끝나자 거의 시험장은 파장 분위기였다. 나는 적어도 설대에서는 제2외국어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장은 풀지 않고 제2외국어 시간을 맞이했다. 실수하면 끝장
인 감이 강한 과목이었기 때문에 실수를 줄이자는 마인드로 풀었다. 뭐 어차피 시간이야 펑
펑 남아도는 과목이어서 검토를 3번쯤 하고 엎어져 잤다.
그리고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때 너무 긴장이 풀렸는지 도시
락을 그 학교에 놓고 와 버렸다-_-. 빨리 집에 가서 채점해보고 싶었다. 잘 봤다 못 봤다 이
전에 수능 공부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켰다. 메가스터디 홈페이지가
그렇게 렉 걸린 날은 처음 봤다. 언수외탐 답 다 입력하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제꺽제꺽 나오
지가 않았다. 좀 오래 기다려서 결과를 봤다. 결과는
언어 98
수리 100
외국어 98
국사 44
근현대사 50
정치 47
경제 45
만족스런 결과였다. 적어도 재수는 피하겠구나 생각했다. 다만 국사 44가 아쉬웠다. 발해 문
제에 낚이지만 않았으면 한 문제 더 맞는 건데. 어렵긴 했지만 국사 1등급 컷이 44까지 떨어
져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날은 계속 오르비질을 했다. 전체적으로 물수능이었단 평이 지배적이었다. 뭐 원래 잉여
짓은 아무리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 법이니, 바로 수능 성적 발표날로 넘
어가겠다. 아, 수능 날 바로 다음 날에 설대 특기자 1차 발표를 했다. 나는 광ㅋ탈ㅋ했다.
스펙은 꽤나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내신의 벽은 강했다.
수능 성적 발표날엔 많이 떨렸다. 수능 날보다 더 떨렸던 것 같다. 제발 가채점대로만 나와
다오라고 생각하며 학교로 갔다. 받은 성적표를 확인해보니 국사가 1등급이었다. 백분위가
95였지만 만족스러웠다. 언어 백분위가 100이어서 좀 놀랐다. 분명 100점만 백분위 100이었
던 것 같은데…알고보니 언어 한 문제 가채점 실수해서 더 맞은 것이었다. 올해 꼭 대학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수외 표점을 보니 물수능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6, 9월 140점대였던 언어 표점은 130점대
로 내려갔고, 150점대였던 수리 표점은 140점 초반에서 기고 있었다. 09처럼만 내주지…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어쨌든 언수외 298은 대단한 거니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수능 전후로 언론들이 참 개드립을 많이 쳤다. 특히 언수외 만점자가 1500명이네 600명이네
하는 드립이 심각해서 평가원이 결국 언수외 만점자가 68명(맞나?)이라고 공식 발표를 해야
됐다. 1500명 드립은 전국진학지도협의회인가? 하는 교사들 모임에서 말한 것을 언론이 그대
로 받아썼는데 참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기자들이 얼마나 입시에 무지한지를 단편적으로 본
것 같았다.
원서 접수 시즌에 진학사를 많이 들락날락했다. 합격 예측 서비스도 한 번 사보고…내 수능
점수와 내신을 고려해볼때(외고 발내신이라 참 설대 입시에 크나큰 지장이 있었다) 논술 평
타로도 프리패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회대를 쓸까 자유전공을 쓸까 오랫동안 고민하다
가 자유전공을 썼다. 사회대는 1학년 때 학점 경쟁이 싫었고, 자유전공이 좀 더 진로의 폭이
넓은 것 같아서였다. 가군에는 연경제를 썼다. 다군엔 그냥 적당히 교차지원 넣어두고 잊어
버렸다.
익클에 설대 컷 추정 배치표가 올라오면서 점점 설포도 혼돈에 빠져갔다. 익클 1차는 부처컷
이라고 할 만큼 관대했는데 2차는 상당히 점수가 짜졌다. 뭐 김영일 컷이나 이런데보다는 나
았다. 설포에 돌아다니는 말로 3대 악컷은 담임 컷, 신문 컷, 김영일 컷이다 하는 말이 있었
는데 맞는 말 같았다. 정말 담임 컷과 신문 컷은 단순 표점 합산으로 학생 성적을 판별하는
경우가 많아서 믿을 게 못 됐고 장학금 컷으로 흔히 불리는 김영일 컷도 마찬가지였다. 그나
마 이번에 김영일 컷은 살짝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
설대 실시간 정시 경쟁률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오르비 설포는 계속 활성화되어 갔다. 설레발
과 패러디 문학 작품들이 난무했다. 경영대 빵구설, 사회대 빵구설, 사회대 폭발설, 자전 빵
구설, 자전 폭발설, 인문 폭발설, 농경제 폭발설, 소아 폭발설, 사범대 폭발설…여러 썰들이
난무했다. 논술 공부 하면서 잉여롭게 보내는 가운데 어느덧 설대 1차 발표일이 다가왔다.
그 가까운 때 연대 우선선발 발표도 있었는데 어차피 우선선발 될 걸 알고 있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다만 독수리 장학금 못 받은건 아쉬웠다.
서울대 정시 1차 발표날은 공식적으로 12/31이었지만 아마 하루정도 일찍 났던걸로 기억한다
. 설포에는 4시설, 2pm설, 10:04(천사)p.m설 등등 각종 도참설과 비기가 돌아다녔다. 1차 발
표가 난 순간 무지막지한 렉이 설포를 엄습했다. 나는 1차는 당연히 통과라고 생각했기 때문
에 입학처 홈페이지 가서 주민번호 쳐보고 1차 합격을 통보받았다.
2010년 설대 입시는 완전 카오스였다. 최상위 라인으로 인식된 세 학과는 경영-사회-자전이
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농경-소아-자전이 상위 컷을 형성하고 인문, 사범이 중간 정도, 경
영, 사회는 완전 개 빵꾸가 뚫렸다. 특히 사회대가 1.12% 정도(설대식 점수 601점)까지 뚫렸
다는 소리는 설포인들이 다 반신반의 했는데 무려 실명을 직접 깐 인증이 등장하면서 기정사
실이 되었다. 아마 이과쪽도 생명, 수통 같은 과들이 많이 뚫렸던 것 같다.
오르비 표본들을 잘 살펴보니 자전이 1차 컷이 높게 잡히긴 했지만 반대로 1차 통과자들간의
서울대식 수능 점수 편차(최고점-최저점)가 크게 벌어지지 않아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었다. 설대는 내 때 1차 합격자들 간 수능점수 편차가 벌어지면 2단계 수능 반영 비율이 줄
고, 반대로 편차가 작아지면 반영 비율이 비교적 커지도록 전형을 설계했다. 만일 사회대를
썼다면 거의 30점에 가까운 편차로 내 수능 점수의 위력은 반 토막났을 것이다. 남은 논술만
평타정도 치면 합격을 바라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입시의 마지막 관문 설대 논술 날짜가 다가왔다. 몇 일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시
험장엔 1착이었다. 시험 시작할 때 주위를 둘러보니 완전 남자 천지더라…. 뭐 그건 부차적
인 얘기고 설대 논술은 크게 1, 2, 3번으로 나뉘어있고 오전 10시에서 정오까지 1번, 점심먹
고 2시에서 5시까지 2, 3번을 푸는 형식이었다. 물론 각 문제들은 세부 문항들로 나뉘어 있
었다.
오전에 푼 1번은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역시 쉽지도 않았다. 과학사에서 창의적 사고의 사
례를 주고 다른 제시문들을 함께 이용해 창의적 사고를 정의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 사
고의 사례들을 드는 문제였을거다. 그냥 무난하게 썼다고 생각한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고 학교를 조금 거닐었다. 시설이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뭐 설대니
까 여기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 3번을 받고 풀 시간이 되었다. 아마 2번이 경제 성장 문제였고 3번이 노비제 시행
/폐지에 관한 문제였단 정도가 기억난다. 2번 너무 어려웠다…. 그래프/도표 해석 능력을 우
선 상당히 많이 요구했고 현재 우리나라가 충분히 부강한 나라인지에 대해서도 논거를 들어
써야 했다. 2번을 다 풀지도 못했는데 1시간 반이 지나버렸다. 결국 대강이나마 2번을 마무
리하니 시간이 1시간 20분 정도 남았었다. 3번이 통짜로 1800자 정도 쓰는 문제여서 좀 압박
감이 심했다. 그래도 문제 자체는 2번보다 쉬운 편이라서 그럭저럭 써내려갔다. 시간이 부족
하지는 않았고 검토도 한 번 끝냈다. 평타정도는 친 것 같았다. 감독관이 시험지를 걷어가자
안도감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오르비부터 켰다 -_-. 3번 문항에서 부국강병이라는 실학자들의 입장
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썼단 것을 깨닫고 헉 소리가 났다. 그래도 평타에서 많이 떨어지진
않았을거야…라고 생각했다.
논술고사 끝나고부터 최종결과 발표일까지는 이도저도 아닌 채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잉여
력만 충만해갔다. 설포 챗에 가끔씩 참가하고 뭐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그리고 대망의 발표일.
설대는 참 도도하게도 하루 전에 발표하겠지라는 설포인 모두의 예상을 엿 먹이듯 정시 발표
를 했다. 뭐 정확히 정시 발표는 아니고 한 15분 정도? 빨랐다. 발표 순간이 가까워오면서
설포에 낚시글들과 기원글들이 넘쳐났다. 설포 글들의 rating이 그렇게 빨리 오르락내리락
하고, 조회수가 매 글마다 3~4자리수까지 폭주하는 건 처음 봤다. 설포챗에 들어가서 노닥거
리고 있는데 발표 났다!고 누가 외쳤고 순간 챗방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정적의 상태가
찾아왔다. 모두들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러 간 것이다.
나도 떨리는 마음으로 ipsi.snu.ac.kr에 들어가 최종 합격자 발표 탭을 클릭했다. 1차 합격
자 발표 때 익숙해진 푸르고 흰 화면이 떴고 나는 주민번호를 입력했다. 약 2초의 렉이 걸렸
고 결과 화면이 나타났다.
내 3년간의 노력이 고작 여기에서 판정받는가…하는 상념도 잠시. 내 의식은 [합 격]이라는
두 글자가 합불여부에 써있음을 깨닫고 환희했다. 컴퓨터 앞 의자에서 일어나 가족들에게 합
격했다고 외쳤다. 기쁨은 강렬했지만 짧았다. 1분 정도 흐르고 나는 다시 평온해지기만 한
마음으로 다시 컴터 앞에 앉아서 오르비질을 했다 -_-….
Bonus-언수외 280대에서 290대로 올리는 방법
아 제가 본문 중에 쓸라고 했던 부분인데 깜빡했다가 쪽지로 요청이 들어와서 씁니다.
간략히 얘기하면 "좋은 문제로 양치기"입니다.
물론 다른 언수외 290분들도 많으시니(특히 외궈 빼고 물 수능이었던 올해는)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일단 써 봅니다.
우선 모의고사에서 언수외 290대를 만들려면, 290대를 맞아봐야 합니다.
말장난 하는게 아닙니다. 기출문제를 풀든 파이널문제집을 풀든 언수외 한 세트를 만들어서 많이 풀다보면
280점대 안정인 분들은 적어도 두세번 이상은 언수외 290점대를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느낌이 중요합니다. 나도 290대 충분히 맞을 실력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마인드가 딱 머릿속에 새겨져야 합니다.
언수외 290점대를 찍으려면 우선 "내가 언수외 290점 대 찍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내 실력이니까!"이런 생각을 가져야 하고
그냥 이런 생각을 하면 망상에 불과하며, 이성적인 사람들의 머릿속에선 쉽게 허물어지게 되니, 그것을 뒷받침해 줄 근거로
290점대를 넘겨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양치기를 통해 이런 경험을 몇 번 쌓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수외 200을 맞고 언어는 1등급은 찍겠다는 마음으로 하는게 좋습니다.
사실 1등급 맞기라면 모를까, 100점 맞기는 언어가 제일 어렵고 수학과 외국어는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한 문제 한 문제씩은 쉬워도 50개나 모아 놓으면 그 중 하나는 문제 풀다 거의 반드시 에러가 나거든요.
정해진 하나의 논리만 찾아 따라가면 되는 수학과 본문 내용 자체는 언어보다 쉬운 외국어를 반드시 100점 맞고,
언어는 90점 정도는 넘기겠다는 식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은 못 될 거 같으니 그냥 참고 정도로만 활용하세요. 290의 벽...정말 넘기 어렵더군요.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본인은 문재인 대통령님 덕분에 요즘 건강 좋아지는걸 느낌 최저임금 올라서 물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학 실력 비결이 뭐세요?ㅜㅜ 정말 존경스럽네요..
와... 정말 존경스럽네요.. 아- 정말 전... 고1,2 때 뭐하고 이제와서... 공부하겠다는건지.. ㅠㅠ 제가 남들 3년간 노력한걸 제 1년간의 노력으로 이기려고 든다는건, 잘못된 생각일까요.. 에휴
와.......정말대박.............................
재수대박 !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