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ful World [153197] · MS 2006 · 쪽지

2009-04-13 20: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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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의 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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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의 일기 (2)















총점 410점대.

여름방학 전보다 30점 정도 오른 성적이었다. 사설 모의고사라서 점수를 기록해 놓지 않아 자세한 점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국사가 30점대였다는 것만 기억한다.

여름방학때 일기에 적어 놓은 것처럼, 내심 440점 이상을 기대하고 있던 나로선 점수가 올라도 오른 것 같지 않았고, 도리어 본래 받아야 할 440점에서 점수가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ㅠ 친구들은 그래도 올랐다고 축하해 주었다. 학교에서 공부했던 아이들은 방학동안 신나게 놀았다는 평으로 방학에 대한 감상을 일축했다.

이미 끝난 시험은 빨리 잊고, 다시 최대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감을 잡으려 애썼다. 학교에선 2학기 수시모집 지원 준비가 한창이었지만 난 내신이 모의고사 점수에 비해 부족한 케이스였고, 논술은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수시모집보다는 정시모집에 올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수시모집에 응시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서울대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신이 안 좋아 지역균형선발은 3명 안에 들지 못해 지원할 수 없었다. 특기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ㅋㅋ 내신도 ㅂㅅ 토익 토플은 쳐본 적도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지원할 대학의 마지노선을 서강대로 잡자고 하셨다. 최소 서강대 이상은 갔으면 하신 것이다. 난 내심 성균관대도 괜찮지 않나.. -_-;; 하고 마음 약하지기도 했지만 계속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목표로 꾸준히 공부했다.

2학기 때에는 학교 전산실에서 몰래 컴퓨터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 밤 11시가 넘어 하교하는 길에 매일 군것질을 하는 등 오히려 좀더 풀어진 나날이었다. 고3 2학기 내신은 중요하지 않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돌아서 아이들은 내신 기간에도 마음이 편한 듯 했다. 하지만 2학기 내신도 당연히 중요하다. 특히 정시모집을 노리지만 고 1, 2때의 내신이 안 좋다면 걱정할 시간에 고3 내신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하길 바란다.

여름 방학때 미처 끝내지 못한 국사 문화사 부분을 계속 정리하면서, 방학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근현대사와 사회 문화의 복습도 다시 시작했다. 이 두 과목은 인강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EBS 수능특강과 교과서를 기본으로, 여러 권의 부교재들을 가져다 놓고 한 권에 단권화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다. 07년도 수능특강 국사, 근 현대사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책이어서 교과서와 병행하면 큰 도움이 되었다.

언어는 기본편 인강이나 문제집을 듣는 것은 지금 와서 지나친 여유란 생각에, 자이스토리를 풀면서 곧바로 기출 문제 분석에 들어갔다. 한때 오르비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기출 문제 분석. 나도 한번 해 볼까 하고 관련글들을 읽었다가 언어영역 공부를 위해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영역 분석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느낌이어서 때려치웠던 적이 있다...

나의 언어 기출 분석이란 단지 지문을 꼼꼼히 읽고, 지문을 잘 읽었는지 문제를 풀면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지문을 꼼꼼히 읽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잘못된 언어 공부는 공부의 포인트가 문제 풀이에 맞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를 나누고 유형별로 정리하는 등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문을 읽는 일이란 걸 분명히 해야 한다. 비문학은 문단 끝에 반드시 문단의 중심문장을 정리해서 적는 연습을 했는데, 이는 내용 일치 문제를 풀이할 때 도움이 되었던 방법이었다.

수학은 아직도 80점대였는데, 그 동안 주로 문제 풀이에 의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능 공부 1년만에 원리를 깨달았다면 어불성설이겠지만, 수능에서 요구하는 공부 방식이 이런 양치기식 공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9월 달에도 계속 정석 개념을 위주로 공부를 했고, 개념에서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많다는 부분에 놀라기도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는 와중에 다시 찾아온 9월 모의평가.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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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96 수리 83 외국어 90 / 윤리 42 국사 32 근현대사 40 사회문화 50 / 총점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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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점은 올랐는데, 수리가 3등급, 외국어가 2등급이었다. 국사 32점 ㅠ.ㅠ 생각보다 여전히 저조한 성적에 힘이 빠졌다. 자신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정말 해도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때에 일기장에는 차마 이 글에 옮기기도 부끄러운 글들이 적혀 있다. 이 즈음 내 일기장은 완전히 격정의 덩어리였다.

- 다른 자들은 피눈물 흘려가면서 얻으려는 것을 나는 날로 먹으려 했으니 ...
- 나는 패배로 향하는 열차 위에 서 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지금 보면 매우 낯뜨겁다 -_-;; 혹시 일기 쓰실 분들은 유념하시길 바란다. 나중에 자신의 일기를 보면 상당히 부끄러워하게 될 수도 있으니.. ㅎㅎ

그 뒤에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그냥 하루에 어느 정도 꾸준히 공부를 했다. 10월쯤까지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부모님이나 선생님 눈을 피해서 게임을 하기도 했었다. 언어는 하루에 한 시간씩 자이스토리로 계속 공부했고, 비문학을 위주로 공부했다. (문학은 시간 없어서 결국 다 못 풀었다.) 수학도 계속 정석책의 개념을 위주로 공부하고,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로 문제 풀이 연습을 했다.

외국어는 매일 듣기를 한 강씩 들었고, 교재에 딸린 딕테이션을 했다. 수능이 100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단어가 모자라다는 생각에 친구의 단어장을 5천원에 사서 단어도 외우기 시작했다. (...) 지금 생각해보면 조언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내 생각대로 공부를 하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부를 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자기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를 떠나서, 수험생활과 불안감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10월이 넘어가는 시점에선, 틀리는 문제 하나하나가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들곤 한다. 공부 방법이 잘못된 것일까? 난 개념도 충분히 공부한 것 같은데 왜 문제가 안 풀릴까? 이러다 수능까지 망해버리는 것 아닌가?

결론을 말하자면, 무얼 하든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공부에 있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방법은 존재하지만, 펜을 들고 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실패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에 있어서 시행착오가 없을 수는 없다. 본인의 상황과 현재 남은 기간, 목표들을, 또 주위의 도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공부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또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수험 기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면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모의고사를 본 후 점수 상승 내지 하락에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의고사 점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그 점수에 지나치게 높은 비중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 부족한 점수에 대한 생각이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되면 흔히 말하는 슬럼프가 오게 마련이었다. 자포자기, 내지 막막함.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감정이지만 절대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떨어진 점수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충의 기회로, 높아진 점수는 열심히 공부한 부분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점수로부터 feedback을 얻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면 보통 아이들은 파이널 문제집을 풀기 시작한다. 학교에서도 EBS 파이널을 중심으로 넘기는 문제집들이 대세였는데 나중에는 학교 수업도 EBS 파이널을 풀이해 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난 아직 문제풀이 연습보다는 개념을 충실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자연히 학교 수업은 더 잘 안 듣게 되었다. 수업중에 교실 뒤쪽으로 가서 자습하는 일이 많았고, 때문인지 선생님들께 지적받는 일도 많아졌다. 물론 10월달에도 개념 정리를 하는 게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탐 공부를 늦게 시작한데다 수학 개념이 부족해서 개념 정리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언어는 자이스토리를 한 시간씩 계속 풀었고, 외국어도 듣기를 매일 하면서 단어를 외우고, 하루에 몇 지문정도 EBS 문제집으로 독해 연습을 했다. EBS 영어 문제집의 지문이 수능에 그대로 출제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영어 문제집은 반드시 EBS로 하길 권한다. 수능특강, 10주완성, 인터넷 수능 시리즈 등 가짓수도 꽤 많다.. (물론 난 다 못풀었다)

사탐은 여름방학 때 만들어 놓은 인강 정리 노트를 베껴 쓰면서 복습을 계속했고, 특히 국사는 인강을 다 들은 후 복습을 바로 시작했는데도 마치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ㅠ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오전 시간은 언어와 국사 공부만으로 보내는 날이 많아졌고, 오후 시간에는 수학과 나머지 사탐을 공부했다.

수학은 개념 정리도 중요하지만 문제 풀이도 매우 중요하다. 개념을 문제에 적용하는 충분한 연습이 필요할뿐더러,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직접 많은 계산을 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EBS 수능특강과 정석으로 한 단원씩 개념을 정리하고, 난이도가 악명 높았던 EBS 수리 나형 파이널로 문제풀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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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일 - 날짜를 적어 놓지 않았다.

시간의 급류 속에서 무엇을 건져낼 것인가?

황금 항아리, 고기 몇 마리, 빈 그물,
혹은 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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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난 뒤 쓰는 글이라, 당시의 힘들었던 시간은 많은 부분 기억 속에서 미화되어 이제는 순수한 노력만이 존재했던 시기처럼 떠오르지만 일기를 보며 다시 생각해보니 참 힘들고 고민 많은 시기였다. 고3이 된 후 급격히 불어난 체중, 여전히 어려운 집안 형편, 미래의 진로에 대한 생각으로 매일 밤을 힘겹게 보내곤 했고, 적지 않은 나날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이 안 오는 밤 어두운 잠자리에 누워, 머리 뒤쪽 창문으로 보이는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날이 새곤 했다. 그렇게 밤을 샌 날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가 꼭 졸았는데, 그 때문에 작은 사고가 몇 번이나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몸이 안 다친 게 참 다행이 아닌가.

나는 드럼통과 같았다. 한정된 체력과 정신력은 점점 새어나가고 있었고, 다시 채워 넣기엔 남은 시간이 넉넉치 않았다. 최대한 고심해서 남은 한 달 간의 기간동안 잘 배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점점 심신이 지쳐 갔기에, 나는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어떤 계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모의고사였다.

나는 아직도 모의고사 날을 잊지 못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치러야 하는 모의고사, 반나절의 기력을 모두 쏟아부은 답안지를 들고 실장이 가져오는 정답이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정답지와 가채점표를 받아들고 나면 심호흡을 한 뒤 언어부터 차례로 채점하기 시작한다. 맞은 문제는 체크하지 않는다. 틀린 문제에만 사선을 긋는다. 한 문제 틀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마지막 장, 다 맞으면 90점이 넘는다. 두근두근....

10월의 교육청 모의고사에서는 그 두근거림이 평소보다 더했다. 언어, 외국어, 수리.. 매겨 나가는 동안 틀린 것이 평소보다 적은 것이 느껴졌다. 문제가 쉬웠지만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전 과목의 채점을 마치고, 한 과목씩 가채점표에 점수를 적어 나갔다. 옆에서 친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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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88 수리 89 외국어 96 / 윤리 50 국사 44 근현 50 사문 45 / 총점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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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460점을 넘겼다. 물론 쉬운 시험이었고, 사탐을 잘 본 점수였다. 하지만 이전에 430점 대를 겨우 맞았던 것을 생각하면 한 걸음을 크게 내딛은 느낌이었다. 내심 1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옆 반에서 들리는 환호성이 그 기대를 이내 무위로 돌렸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 유일하게 400점이 넘었던 그 아이는 아직 한 번도 전교 1등을 내 준 적이 없었다. 10월 교육청에서 그 친구는 470을 넘겼고, 당연히 전교 1등을 차지했다.

1등을 못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경쟁심이 딱히 강하지 않은 내게, 라이벌 의식 같은 건 별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왜 자꾸 지냐고 나를 부추기곤 했다.;; 그래도 난 여전히 별 생각 없었다. 내 자신과의 싸움만으로도 벅찬 시간이었다.

시험을 잘 보고 나서, 얼마간 마음을 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 했던 양 만큼도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오락실 노래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고, 선생님에게 쫒겨 뛰어들어온 교실에서 책상 앞에 앉아 봐야 땀이 마를 때까진 공부가 잘 될리 없었다.

공부하는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언어는 슬쩍 계산해 보니 수능 칠 때까지도 자이스토리를 다 못 풀것 같았고, 영어도 단어장 하나를 다 외운다는 건 이미 시간상 무리였다. 사탐도 계속 정리해야 했고, 수학 또한 아직도 80점 대에 머물러 있었다. 안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난 왠지 마음을 푹 쉬고 있었고, 10월 성적표에 찍힌 여러 개의 '1' 자에 그런 마음은 한결 더해갔다. 이런 생활이 11월 첫 모의고사까지 계속되었다.



11월 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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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90 수리 63 외국어 92 / 윤리 48 국사 42 근현 45 사문 47 / 총점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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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63점....;; 문제를 하나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문제지를 받아들고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경험을 수리 시간에 처음 경험했다. 수리를 이렇게 망친 것은 1학년 때 친구가 고대 수시에 붙은 소식을 쉬는시간에 들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11월, 이제 시험이 이 주일도 안 남은 시기에 이 점수를 받아 놓았으니 그 기분은 여러 말 할 것도 없었다. 수능을 망칠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울 것만은 표정을 숨기지도 못한 채 교실에 앉아 우울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친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나에게 와서 대뜸 너 한심하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하여 친구를 쳐다보자 그 친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모의고사 한 번 실수로 못 본것 가지고 왜 세상의 똥은 다 처먹은 양 뚱해 있냐고 나를 마구 꾸지람 하는 것이었다. 모의고사는 수능이 아니니까 정신차리고 다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 친구는 먼저 집으로 가버렸다.

생뚱맞게 욕을 먹었지만 기분이 왠지 좋았다. 10월 모의고사를 잘 쳐서 붕 떠 있던 기분, 11월 달에 시험을 망쳐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 둘 다 별로 바람직한 기분은 아니었다. 일희일비란 말이 내 상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중요한 것은 수능이지. 나도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수능이지. 못 친 것은 잊어버리자. 오늘 외국어는 좀 잘 본 것 같아...

그 뒤로는 매우 드라마틱하게 공부가 잘 되는 등의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나 예전의 페이스를 어느 정도 되찾고 비교적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실력이 오른다는 것이 조금씩 느껴졌고, 공식적으로 치른 마지막 모의고사였던 11월 8일의 모의고사에선 454점으로 다시 성적 향상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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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92 수리 93 외국어 96 / 윤리 41 국사 41 근현 47 사문 44 / 총점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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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전교 1등이었던 친구와 동점이었다.

수리 점수가 일주일만에 90점대로 올랐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90점대였다. 기뻤지만, 이젠 기쁨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자제할 줄 알아야 했다. 남은 일주일은 하루 하루가 황금같았다. 한때 더 공부할 게 없다고까지 생각했는데 할 것이 왜 이리도 많은지..

다만 공부할 때 전제하는 마음가짐은 이러했다. 내가 보고 있는 부분은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공부했던 것들이라고, 지금은 다시 확인하면서 확실한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구석탱이에 처박힌 지명 하나하나 외우면서 스트레스 받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내가 공부했던 노트들을 훑어보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느끼는 것에 주력했다. 시간이 흘러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추워졌고, 수능날은 가까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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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4일

내일은 수능이고, 나는 지금 잠을 설치고 있다.
12시 전에만 잠들면 잠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내일 진짜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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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켜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수능 전날이라고 오버해서 7시에 잠자리에 들었다.잠이 든 것까진 좋았는데 30분만에 친구의 전화에 잠이 깬 것이었다. 한번 달아난 잠은 쉽사리 다시 오지 않았고, 한 시간이 흘러갈 때마다 불안감만 더해 갔다. 그에 따라서 잠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점점 더 시달리게 되었다.

혹시 공부를 하면 잠이 올까.. 책을 읽으면 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에 스탠드를 켰다. 그리곤 일기장을 열어 위와 같이 짧은 일기를 썼다. 책을 펴는 와중에 잠이 조금씩 오는 것이 느껴졌다. 잠들기 전에 잠을 깨운 친구에게 문자로 욕을 보냈더니 잠이 너무 잘 와서 지금 잘거라는 답문이 돌아왔다.. ㅅㅂ 다시 스탠드를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겨우 잠이 드는 것이 느껴졌다.. 수능 당일 새벽 2시쯤 나는 잠이 들었다.





수능날 아침은 예년과 다르게 포근했다.

어린 시절 매스컴에서 보아 온 혹한의 수능에 익숙해 있던 내게, 어제 사 놓았던 손난로를 쓸 일이 없을 거란 건 약간 아쉬운 일이었다.

시험장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이 중요한 등교길에서 사고가 나서 시험장에 오지도 못하는 학생이 한 명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왠지 들었다. 시험장 앞에는 우리 학교의 선생님께서 응원을 와 계셨고, 악수를 한 뒤 부모님을 한번 돌아본 후 교문을 지나 시험장으로 향했다.

수능시험장의 광경.

아는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가고, 뒤를 돌아보면 꽹가리를 치며 응원하는 각양각색의 교복들과 눈물을 흘리는 어머님들, 시험장으로 가는 오르막길은 약간 숨이 찰 정도로 험했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들고 온 도시락통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사인펜은 챙겼나? 문득 불안한 마음에 가방을 열고 뒤지다가, 시험장에서 샤프와 사인펜을 나누어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부랴부랴 가방을 닫는데 왠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시험장인 교실에 들어서서 내 자리를 찾고, 어제 프린트해 온 9월 모의평가 언어 지문을 읽고 있는데 점점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누런 종이에 싸인 시험지와 답안지가 교실로 들어오고, 시험관들이 가방을 앞으로 내고 핸드폰 들고 있지 말고 등등의 주의사항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도 심장 박동소리는 내 귀에 들릴 정도로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언어 시험지를 받아 들자 재빨리 뒤를 펴야 한다.. 라고 생각했지만 시험관의 제재를 받았다. 뒤집힌 시험지를 대충 읽는 동안 언어 듣기 방송이 시작되었다. 집중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순간 긴장된 몸이 조금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정신없어 언어를 풀고, 부랴부랴 수험표 뒤쪽에 답을 적어넣는 순간 시험이 끝났다. 집중해서 그런지 정신없어서 그런지 순식간에 끝난 시험이었다. 두어 문제를 제대로 못 푼 것 같았지만 괜찮은 느낌. 수리 영역 시험이 곧 시작될 거였다.

90점을 단 한번밖에 넘지 못했던 수리영역... 느낌은 괜찮았다. 시험 시작 전에 눈으로 4번까지를 풀었고, 시작하자마자 답을 적어넣었다. 그리고 주관식 부분을 펴서 쉬운 몇 문제를 풀어놓은 뒤 앞으로 돌아가서 풀이를 시작했다.

아... 마지막 남은 10분. 두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15번과 16번.. 한 문제는 증명에 관련된 빈칸 채우기 문제였고, 한 문제는 사각형과 함수의 그래프가 등장하는 문제였다. 내 실력으로 풀 수 있는 문제라고 계속해서 생각했지만 긴장감에 문제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 두 문제를 찍은 채 수리 영역이 끝났다.

잘 쳤다고 애써 자위하며 수리영역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같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외국어 시험을 준비했다. 외국어 시험을 치른다.. 어려웠다. 듣기 한 문제를 제대로 못 들었다.. 제길 빨리 넘기고 다른 문제에 집중했다. 항상 외국어는 시간이 부족했었지. 풀고.. 풀고.. 정신없이 다음 장으로 넘기고..

또 계속되는 윤리.. 국사.. 근 현대사.. 사회문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시험들이 끝나고, 독일어는 공부를 제대로 못 했기에 태반을 찍어 버렸다.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모든 시험이 끝난 다음의 고요함이 수능 시험장을 지배했다. 다들 침묵 속에서 시험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나오기를 기다렸고, 군데군데서 친구들끼리 나누는 잡담이 들려왔다. 이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친구들을 기다리지 않고 거의 처음으로 시험장 밖으로 나온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느때처럼 한산한 하교길을 상상하고 있던 나는, 시험장부터 교문까지 일렬로 늘어선 엄청난 인파와 그 인파들 사이로 교문까지 직선으로 뚫린 길의 모습에 압도되고 말았다. 나와 같이 시험장을 나선 학생들도 약간 어리벙벙한 가운데서 자신들의 가족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쉬. 어느 방송국에서 촬영을 온 것일까? 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주치는 모르는 얼굴들. 그러다 마침내 보이는 익숙한 아버지의 얼굴. 아버지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아버지와 말 없이 악수를 한 채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아버지가 건넨 내 핸드폰에는 친구들의 문자와 함께 메가스터디에서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

[수능 모바일 채점 서비스]

조용히 수험표를 꺼내 들며, '접속' 버튼을 눌렀다.

언어영역... 행여 틀릴세라 조심스럽게 버튼을 눌렀다. 1..2..5..4.. 답을 다 입력하고 심호흡을 한 뒤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정적. 이윽고 핸드폰 화면에 나타나는 나의 점수. 96점이었다.

안심할 틈도 없이, 문제의 수리영역. 두 문제나 찍었는데, 푼 문제들을 다 맞춘다고 해도 92점이었다. 그나마 90점을 넘으면 다행인 상황.. 또 결과가 나오는 길디 긴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화면에 점수가 나왔다. 다행히 92점이었다. 찍은 한 문제를 맞춘 대신 푼 문제 중에서 한 문제 실수를 한 것 같았다.

외국어 영역 역시 듣기에서 한 문제, 문법에서 하나를 더 틀려 96점.

사탐은 느낌이 좋았다. 난이도가 극악이었던 윤리에서 47점, 국사에서 47점. 근 현대사는 만점이었고 사회 문화는 아직 모바일 서비스에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 채점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확인해 본 결과 42점. 여름방학 때 처음 시작한 윤리와 국사 모두 47점이었다. 1년만에, 사탐 모두 1등급을 받을 만한 점수를 얻었다.

총점 470점.... 가족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갔다ㅋㅋ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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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96 수리 92 외국어 96 / 윤리 47 국사 47 근현 50 사문 42 / 독일어 30

총점 470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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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나의 첫 번째 수능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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