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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준수♡ [249268] · 쪽지

2009-02-13 03: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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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재수생활 뒤 빛을 보다-2(6월 평가원 이후의 여름~ 10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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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재수생활 뒤 빛을 보다-2 (6월 평가원 이후의 여름~10월 말)

6월 평가원을 치르고 난 이후 나는 당연히 전보다 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친해진 학사 친구들도 있었지만, 2~3등급씩 오른 언수외와 삼지리의 만점의 기적은 나를 풀어놓기에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언어를 풀거나, 졸지않고 공부를 하는 것은 그대로였지만, 문제는 학원에서 친해져버린 친구들과의 잡담에 수업을 놓친다는 것이였다.

6월이 되자, 짝꿍 뿐만 아니라 앞뒤의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쉬는시간에는 놀기 일쑤였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나가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1~2주 정도 지내자, 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재수고 뭐고 다 망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이 거의 모두 그런다 하지만 1/3정도만 성공하는 재수에서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재수실패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를 잡으려고 더욱더 수업에 몰두하려 노력했고, 더 이상 공부할게 없어보이는 삼지리도 더 심화해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보인 과목이 있었으니 바로 국사였다. 고1때 나름 국사 1등은 맡아논 것도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 성격과 전혀 맞지 않던 사문을 버릴까라는 생각도 했다. 수번의 고민 끝에 나는 결국 6월 말, 사문을 국사로 바꾸게 되었다. 친구들은 서울대를 갈꺼냐며 몇 번을 물어보았지만 그런 건 아니였다. 솔직히 아예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를 가기위해 국사를 한 것은 아니고 사문보다는 외우는 국사가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사문, 윤리보다는 어느 정도의 상식이 있고 외우는 국사가 훨씬 나에게는 좋았다.
일단 국사를 선택하고 나자 학원에서는 국사수업을 못 받는다는 것이 흠이였다.(애초에 반을 만들 때 사탐 선택에 따라서 반을 가른다) 그래서 결국 나는 노량진 메가에서 고종훈 선생님의 심화강의를 현강으로 듣기로 마음먹었다. 국사 교과서를 고1 이후로 처음봐서 교과서를 다 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고종훈 선생님의 개념강의를 인강으로 듣고 그 주에 현강으로 심화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양도 많고 어려웠다. 간간히 고1때 외웠던게 떠오르기도 했지만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이었기에 불평하지도 못하고 묵묵히 해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국사가 아니였다. 바로 국사를 함으로써 생기는 시간부족으로 언수외를 많이 못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잠자는 시간, 빨래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등을 줄여가면서 스파르타식으로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부모님은 괜한 선택한게 아니냐고 전화로 걱정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화를 냈다. 그렇게 걱정할꺼면 동생입시나 걱정하라고 말이다. 나는 아주 잘 하고 있다면서.(사실 많이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08년의 여름(7,8월)은 언외 1등급을 향한 기출분석과 EBS 고난도 눈물의 문제풀이, 수업의 예습복습, 문제집 풀기를 하면서 국사를 미친듯이 외웠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학원 여름방학 때 땀을 미친듯이 흘리며 남산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10시에 내려오며 뿌듯함에 미소짓던 나와, 잠들며 눈을 감는 순간, 그 몽롱한 상태에서도 국사강의음성을 들으면서 교과서내용을 외우며 잠이 들었던 내 모습을 잊지 못한다.

슬럼프는 이 때 찾아왔다. 8월초~중순쯤.
너무나도 많은 국사의 양과 수리 100점을 향한 욕심. 언외 1등급을 향한 욕심. 삼지리 만점 지켜내기가 맞물려서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루에 빠지는 머리가 정말 한움큼은 됐었고, 밤에는 9월평가원 걱정으로 4시가 넘어서야 잠이 왔었다. 금방 외웠던 영어단어를 까먹으면 정말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내가 원망스러웠고, 국사에서 시기에 따른 정세는 왜 이리 어려운지.. 또한 하루에 1회씩 푸는 수리 특작 파이널은 왜 100점을 못 찍는지 한스러웠다.(이과였다라는 자존심 때문에..) 그리고 EBS 고난도 언어를 푸는데 문제는 왜 한지문당 2개씩은 기본으로 틀리는 건지. EBS 외국어 고난도는 말도 못했다. 4문제중에서 2문제이상맞으면 잘한편에 속할 정도였다. 정말 죽고 싶을 정도였다. 혼자 창문도 없는 학사 조그만 방에 갇혀서 새벽에 고민을 하고 있노라면 삼수가 코앞에 온 것 같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당연히 공부의 효율성도 많이 떨어졌다. 지방에서 친구들이 올라와 한강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를 달래주어도 그때만 안심될 뿐 학사로 돌아오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새벽에 문득 보인게 내 MP3였다.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문득 보인 기능이 녹음 기능이였다. 그 때 나는 좀 많이 유치한 방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바로 내 자신에게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녹음한 뒤에 듣는 다는 것이였다. 친구들이 힘내라는 문자나 전화보다, 엄마의 전화보다 훨씬 효과가 있었다. 센티멘탈해지는 새벽이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후,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아셨는지 엄마가 서울로 올라오셔서 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사주시면서 힘내라는 소리를 계속 해주셨다. 6월평가원을 보니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그 이후, 나는 점차 컨디션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수리 파이널을 풀 때도 점수가 상승세를 탔으며, 국사도 잘 외워지는 듯 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고종훈 쌤이 내 책을 보더니 국사 잘 한다면서 칭찬을 해주셨다ㅠㅠ수업태도도 칭찬을 해주셨었다. 완전 감동이였었다.

그렇게 9월 평가원이 다가왔다. 점차 날씨도 선선해졌고, 에어컨 트는 수도 줄어들어 갔다. 그토록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9월 평가원의 결과는 내가 고생했던 것과는 달리 좋지 않았다. 수리는 96점이였지만, 언어는 2등급이였고(백분위93%정도였던듯) 외국어는 81점으로 3등급이였다. 한지세지는 넉넉히 1등급을 찍었지만 그동안 소홀히 했던 경지가 3등급을 찍으면서 나를 좌절의 길로 빠뜨렸다. 국사는 3등급이였던걸로 기억한다.

9월 평가원 이후 난 많이 울었다. 수리가 올랐어도 언어는 백분위까지 그대로였고 외국어는 81점으로 고3때와 똑같은 점수로 되돌아 갔다. 특히 그렇게 열심히 했던 국사가 8월말까지 2등급을 찍었지만 평가원은 그보다 더 못 나왔다. 나는 좌절의 늪으로 빠지게 됐다. 하지만 8월 슬럼프처럼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곧 10월이였고 그 다음달이 수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단 언수외에 매진하기로 했다. 국사는 둘째치고 50점을 찍었던 경지부터 수정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국사는 매일하되, 밤에 잘 때 1시간씩 하기로 하고, 언수외를 3월초기의 비중처럼 잡았다. 특히 외국어를 신경썼다. 학원 문법교재의 순서까지 외울정도로 공부하기로 결심했었다. 단어는 핸드메이드 단어장을 중심으로 해서 나갔다. 예를 들어서 include라는 단어가 나오면 헷갈리기 쉬운 conclude, seclude, exclude등을 모두 찾아서 다시 외웠다. 문법도 어느 문제집을 해석하다가 모르는 문법이 나오면 그 문제가 주제찾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몰랐던 문법을 핸드메이드 단어장에 써서 몇 번이고 다시 봤다. 외국어를 3월의 공부모드로 다시 들어간 것이다.
9월 평가원이 끝나자, 학사 친구들이 많이 헤이해 졌다는 것을 느꼈다. 옆방에서 새벽 1~2까지 잡담하며 웃을 때는 정말 짜증이 나서 소리지른 적도 많았었다. 내가 예민한 것도 있었지만 60일정도 남은 기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난 9월 중순 이후, 정리하는 공부모드로 들어가게 됐다.
언어는 외워지도록 봤던 자이스토리 기출분석을 다시 차례차례 보며 사고과정을 되짚었고, EBS파이널교재를 병행하면서 새로운 문제 접하는 것을 적응 하는 것을 시작했다. 물론 1학기 학원교재와 그동안 봤던 EBS 고난도 문제집도 다시 되짚었다. 특히 언어시험에 나오는 여러용어들을 다시 되짚어서 외웠다.
수리는 파이널 1회씩을 매일매일 풀어나갔다. 특작,EBS,두배,피드백 등등 여섯~일곱권을 차례로 풀어나갔으며, 1학기 학원 교재를 틀린문제를 중심으로 다시 훑어갔다. 물론 보충교재도 빼먹지 않았다.
외국어는 하루에 4시간정도를 공부했다. 파이널은 풀지 않고, 일단 정말 매번 2문제는 꼭 틀리는 문법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문법공부에 열중했다. 하지만 문법은 공부를 아무리 해도 틀렸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여쭈어보니(담임선생님이 영어선생님이셨다), 문법문제는 발견의 미학이라고 하셨다. 누가 to부정사를 모르고 병렬구조를 몰라서 틀리겠냐며, 다량의 문제를 풀어봄으로써 출제자가 물어보는 문법을 문장에서 찾으려는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이 조언은 내 재수생활에 있어서 가장 좋은 조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나는 당장 서점에 가서 문법문제만 있는 교재를 골랐다. 쎄듀에서 나온 어휘,어법 모의고사라는 책이였는데 아이보리+보라색의 표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에 2회씩 매일 풀어 나갔는데 푸는 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모든 문제에 나온 문법과 단어를 모두 체크하고 넘어갔다. 이렇게 수능전까지 매일했었다. 그리고 10월중순이 되어서야 외국어 파이널을 풀 여유가 생겼었다. 외국어 어휘,어법 모의고사를 풀면서 나는 스스로도 내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10월말 쯤에는 딱 보기만 해도 틀린 문법이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탐은 경지에 신경썼다. 국사는 결국 뒷전이 되었지만, 문제는 자신있는 과목부터 전략으로 내세우는게 필요했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말이다. 경지는 이기상 선생님의 강의를 이용해 처음부터 복습해 나갔다. 강의를 듣는데 몰랐던 개념이 많이 나와서 난 정말 놀랐다. 이걸 수능전에 알게 됐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며 다시 경지 점수 올리기에 몰입했다.



10월 중순이 되어가자 학원 분위기는 점점 안 좋아졌다. 우리 학원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수업을 빼먹는 학생 수가 많아졌고 자습실로 향하는 학생 수 역시 많아졌다. 수업 분위기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학원에서 야자를 안하고 수업만 듣는 나에게는 수업 분위기도 이상해져가니 정말 최악이였다. 결국 나는 10월 중순쯤, 학원을 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원을 끊고나자 제일 힘든 것은 패턴 조절이였다. 6시에 기상을 한다지만 예전같지 않은 체력으로 인해 7시쯤 졸리기 일쑤였고, 아침에 커피먹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텨냈다.(학원에 간 친구의 창문이 있는 방을 빌려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찬바람을 쐬며 공부했었다.) 6시에 기상해서 평소와 같이 보내고 아침 8시에 영어듣기를 하고, 수업이 시작하는 8시 40분, 나는 언어 파이널을 풀었다. 그리고 수능패턴으로 10시에 수리를 풀었고, 점심을 먹고 1시쯤에 다시 외국어 파이널을 풀었다. 그리고 3시쯤부터 채점을 하고 사탐을 공부했다.(사탐은 파이널이 의미가 없었다. 그냥 개념을 되짚어보는 용으로 이용했다.)
학원을 끊으면 시간이 많아진다. 그 많아진 만큼 나는 외국어에 치중했다. 10월말부터는 하루에 6~7시간을 외국어만 공부했다. 특히 문법 문제를 많이 풀어봄으로써 그 ‘발견의 미학’이라는 것을 느끼려고 많이 노력했다. 핸드메이드 단어장도 2권이 넘어가고 있었고 단어 실력도 향상되고 있었다. 어떤 한 단어만 봐도 그 단어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단어, 동의어, 반의어는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10월달은 지나가고 있었다.
학원을 끊자 시간의 여유가 약간 생겨서 밤 10시쯤에 30분씩 뒷 공원에 가서 주민들과 걷기운동을 하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밤하늘과 야경들을 보면서 다짐했었다. 꼭 이번 수능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그리고 난 웃는 얼굴로 3월, 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울교대의 새내기가 될 거라고.


11월이 되자 나는 자신감이 하늘을 치솟았다.
언어 파이널, 봉투모의를 풀면 90점은 항상 넘었고, 수리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어는 90점대 초중반을 달리고 있었다. 사탐은 어떤 문제를 봐도 다 아는 듯 했으며 인강교재 어디를 펴도 개념을 줄줄 다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11월 10일정도에 집에 가려고 한 계획을 11월 2일로 수정했다.

11월 2일. 나는 긴긴 재수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재수를 하러 처음 올라갔던 2월 13일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처음 반에 들어갔을 때의 외고아이들과의 괴리감, 4월 월례고사에서의 성적향상, 4월 첫 외출이였던, 서울시청에서의 우주선 발사 카운트 센 거, 6월 평가원의 성적향상, 여름이 다가오던 6월 중순경의 잠깐의 방황, 장마철에 친구들과 장보러 갔다가 비 다 맞은 기억, 찌는 듯한 여름의 국사의 추억. 응원하러 와줬던 친구들과 한강에서 맥주를 먹으며 힘을 받았던 기억, 8월의 정말 힘들었던 슬럼프, 9월 평가원의 충격과 공포와 수시의 추억, 10월 내 생일을 축하해주던 같은 반 친구들과 언니들, 외국어 올리기 등등.
그리고 11월 3일 새벽, 나는 2월에 떠나기 전의 방의 모습과 같은 방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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