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7-12-10 06:02:12
조회수 6,561

(썰) '카프카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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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등학생 당시 나는 국어란 과목에 대해서


양면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재미있는데 재미없는 과목"



이 모순과도 같은 말은 그야말로


이면적인 진실을 담고있는 말이었다.



초등학생이었을 당시


국어 교과서를 먼저 수령받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펼친 교과서는


읽기 교과서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읽기 교과서에 있었던 수많은 문학작품들,


특히 '소설'은 정말 매력적인 존재였다.



그러다보니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던


수많은 소설작품들은


스토리 플롯이 파악될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재미있었으니까 말이다.



대신 시 계열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읽어주거나


동영상으로 틀어주는 정도를 빼면


거의 쳐다보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래서였는지 나중에 


국어 공부와 관련하여


제일 고생했던 부분이


시 공부 쪽이 되었긴 했지만 말이다.



------------------------------------------주석----------------------------------

고1에서 고2로 올라갈 무렵,


본인이 국어 2~3등급에서 1등급권으로 안착하는데 성공한 시점이


본인이 운문문학 쪽 공부에 시간적인 투자를 꽤나 한 시점과 비슷하다.


어찌보면 현대시와 고전시가 쪽이 국어 1등급을 받는데 가장 큰 장애였다고


말할 수 있는 정황이기도 하다.

----------------------------------------------------------------------------



그리고 글씨체 관련 지식이나


문법 파트와 같이


국어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문제는



그냥 공부 안 했다.



그러다보니 국어 성적은 그야말로


복불복이면서 전체적으로



못나왔다.


그냥 못나왔다.



뭐...


국어 때문에 맞아본 기억도 있을 정도로


초등학교 당시 국어성적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선생님이


"얘가 다른건 뭐 그래도 국어만 좀... 제발 국어만.... 좀...."


라는 호소로 부모님께


부탁아닌 부탁을 했었을까




2.



한편 학교 공부 외에도


그 당시 내가 병행하던 학습지가 하나 있었다.


구몬 학습지 말이다.



평소 워낙에 게으른 천성 탓이었는지


구몬 숙제를 몇주치 밀려가면서


걸핏하면 컴퓨터나 TV나 보던


본인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던 과목은 있었다.



국어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비문학 지문과 소설 지문들


산문 위주로 구성된 플롯은



그야말로 초등학생의 나에겐


매력적인 플롯이었다.



왜냐?



읽기 좋은 산문들은 잔뜩 있는데


국어적인 지식이나


도저히 왜 있는지도 모를 시들은


보이지가 않았으니까




그러다보니 초4에서 초5 사이에


고1 단계까지 모두 끝마쳤을 정도로


나름 성실하게 구몬 국어 만큼은


진도를 나갔었던 기억이다.





3.


카프카의 '변신'



그 작품을 내가 처음 마주한 계기도


그 구몬 학습지에서였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가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나는


구몬 학습지를 펼치고


어떤 작품이 있을지 기대하면서


종이를 받아들고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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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잠자는 “‘한숨 더 자서 이 모든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잊어버리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으나 전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무수한 다리를 지닌 채 납작한 몸체를 한 해충의 몸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자세를 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카프카의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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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어내려가니


갑자기 웬 한 잉여인간이


작품 속에 등장을 했다.



그런데 그 잉여인간이


더 잉여스러운 벌레가 되었다!



이 작품을 읽을수록


"음... 이 작품은 뭐지?"


하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벌레가 되어버린 사나이.



지금의 내가 처음 읽어도


상황파악이 썩 바로 되었을 것 같지 않을


내용이었는데



초등학생 때의 내가 읽어봤자


뭐 얼마나 상황파악을 잘 하겠는가



뭐...그래도 괴상한 소설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줄줄이 읽어내려갔다.



아마 당시에 내가 읽었던 부분은


제2장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레고리의 아버지가 그레고리한테 사과를 던지는 장면까지로 기억한다.)



제2장까지 읽고나서 들었던 생각이라면


"그레고리는 참 불쌍하다..."라는 생각이었던 기억이다.



작품 속에서 그는 한 순간에 


벌레가 되어버린 채로 


사회에서 고립이 되는 것도 모자라


가족으로부터 '벌레' 취급을 받게 되는 모습이었다.



뭐... 그 때 들었던 생각을


짧은 글로나마 요약해보자면



'필요가 없어졌다는 이유만으로


한순간에 사람 취급을 못 받게 되었던


그레고리의 비참한 처지에 주목하여


사회에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


마치 소모품과도 같은 취급을 받는


사회적인 풍토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용성의 잣대'로 인간을 바라보는 현상


현대사회가 유발하는 인간성의 상실을


작가가 비판하고 있구나.'



이게 그 당시에 내가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들었던 생각이었다.




4. 


카프카의 변신을 


또 한번 마주하게 된 시점은



초등학교 4학년 그 첫만남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


2015년, 21살 때였다.



"이 수업이 사고와 표현능력을 향상시키는 수업인 만큼 제가 책 후보들을 선정하면 그 중에 1권씩 여러분들이 선택하셔서 총 4권을 읽으시면 됩니다."



첫번째 새내기 시절


'사고와 표현'이라는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총 4권의 책을 읽고 각 조의 발표를 듣고 그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쓰는 활동을 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총 네 분야로 나누신 다음


각 분야마다 책을 세네 권 정도 선정하셨다.



그 중 첫번째 문학 분야에서


익숙한 책 이름이 하나 보였다.



카프카의 '변신' 이었다.



교수님은 책 후보들을 선정하신 다음


그 중에서 각각 한 권씩 선정하도록


다수결에 따라 책을 정하기로 하고 


거수투표를 진행하셨다.



동기들은 고민 끝에 각자 생각한 책들에 손을 들었다.


첫번째 책으로 카프카의 '변신'이 선정되었다.




5.



"벌써 오늘이 너네 조 발표라고? 그럼 다음주까지 이걸 다 읽고 토론하라는 소리인데..."


"야야. 그냥 소설이니까 발표 듣고 줄거리 대강 파악되면 그걸로 토론하면 그만이지."


"좋은 생각인데?"



이제 막 새내기가 되었다고 자유를 누리기도 바빠죽겠는데


언제 그 책을 다 읽겠나...



어차피 소설이니까 요약본 듣는 겸 친다고 생각하고선


책을 안 읽고 조 발표를 먼저 들었다.



1조 발표를 들으면서


제2장까지는 어차피 대충 아는 내용이었으니


들으면서 고개를 그저 끄덕끄덕거렸다.



이어서 내가 안 읽은 부분이었던


제3장 내용이 나오는 순간


나름 각잡고서 발표 내용을 귀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작품의 사회적 배경과 작가의 일생


각 조원들의 평가까지 모두 듣고나서


토론 시간이 되었다. (토론보다는 토의에 가깝겠지만)



그 조에서 선정한 토론 주제는 3가지였는데


그 중 마지막 주제가 눈에 띄었다.



"그레고리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원인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주제가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라면


정말 간단한 이유에서였다.



책 안 읽은 인간이 발표만 듣고서도


입을 어느 정도 털 수 있는 주제였으니까.



그 수업 평가기준에 의하면


토론에 열성적으로 참여를 해야 


점수를 잘 주는 시스템이었기에


'참여를 위한 참여'를 하기 위하여


나는 수첩을 들고서 키워드를 곰곰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메모한 키워드를 가지고 


"어떻게 이 키워드로 말을 만들어볼까..."


하던 중에


'이 소설의 사회적 배경과 연결해서 내재적 관점이 아닌 외재적 관점으로 접근해보자.'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그 주제에 관하여


주장 플롯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주제 차례가 되었다.


사회자가 그 주제를 언급하고 발표자를 찾을 때


손을 들고서 발언권을 얻었다.



"이 작품에서 그레고리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원인은..."


나는 수첩에 짜놓은 플롯을 참고하여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본성 그 자체가 그레고리를 죽음으로 몰고갔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많이 엉뚱한 소리처럼 들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그레고리가 벌레가 되는 순간 사회적으로 그는 일종의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벌레가 되었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사고능력이나 판단능력 또한 달라졌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면 단연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의 겉모습은 비록 벌레이지만, 그의 본질 자체는 벌레가 되기 전이나 벌레가 된 후나 동일한 그레고리 본인이라는 한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레고리의 상사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까지도 그의 겉모습이 달라졌다는 것만으로 그레고리를 그 이전과 같이 인간으로서가 아닌 벌레처럼 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길어서 요약하자면


그 당시 나는 뱀허물 설화를 예시로 들면서 외모지상주의적 경향을 가진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부양가족을 책임졌음에도 부양능력이 상실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전 가족에 했던 기여가 깡그리 무시당했다는 점을 들면서


"유용성과 외모지상주의라는 잣대 만으로 인간의 본질을 무시하고선 그 사람의 전부를 평가하려 하는 그 인간 스스로가 가진 본성, 그 본성이 그레고리를 죽음으로 몰고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악함이 그레고리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라는 것


다시 말하면 그레고리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이


세번째 주제와 관련된 내 주장이었다.



뭐... 당시 내가 성악설을 강력하게 지지하던 상태였기도 했고


소설작품을 인물과 인물 간의 갈등으로 보기보단


사회와 인물 간의 갈등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기에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첫번째 독서토론은 끝이 났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턴이 넘어가면서


카프카의 '변신'은 한동안 볼 일이 없어졌다.





6.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떠올릴 수 있던 것은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뒤인


2017년 가을이었다.



그동안 나는 두번째 새내기를 거치고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했던 변화들을 거친 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그저 반복되는 일상 속에


적응해가기만 하는 모습이 되었다.



매주마다 학원조교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아 힘들다... 돈이나 벌어야지..."하고


스스로를 겨우겨우 달래고선


근무를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고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근무시간이 끝나면


지친 몸과 마음을 겨우 추스려


그저 주변에서 간식이나 끼적거리면서


다음날의 오전수업을 걱정하고



수업을 들으면서는 다음 해의 일과


등록금 등 금전적인 문제


성적 등 학업적인 문제 등에 시달리면서


남들에게는 속 편하게 말할 수 없는


문제들을 혼자 씨름해가는 나날을 보내는 등



지루하다면 지루하다고 할 수 있는


따분하고도 매일 반복되는 그 일상을


나 스스로가 만들고 


그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옥죄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고역이라 할 수 있는


통계와 화학 구조식들의 향연들은


공부적인 내용 부분에서도


나에게 그리 썩 활력을 넣을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렇게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마치 카프카의 '변신' 속 등장하는


그레고리의 그 이전 일상과도 같이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똑같이 반복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가을날


의료인문학이라는 수업에서


나는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마주할 기회를 얻었다.




7.



의료인문학이라는 수업은


평가기준 상으로는 그나마


마음의 부담을 모두 덜고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수업이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중간과제나 퀴즈 등


적어도 학기 중에 시험이나 점수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수업이었기에


(물론 레포트 하나는 제출해야 한다. 시험 다 끝나면 써야한다.)


그나마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께서는


(정신과 교수님이다. 다음에 프로이트와 관련하여 썰을 풀 때 이 교수님도 등장하실 것 같다.)



"인문학을 통해 여러분들의 소양을 키워야 하는데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듣는 것이 인문학이다."



라고 매시간마다 하시는 말에서처럼



다른 교수들이나 전문가들


심지어는 예술쪽 종사자까지


매 수업시간마다 다른 분들을 초빙하셔서


그 분들이 강연이나 활동 등 수업을 하도록 하는


커리큘럼을 진행하셨다.



(여담으로 이 정신과 교수님과 저 위에 첫번째 새내기 시절 사고와 표현 교수님의 공통점은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동기들이 싫어했다는 점이다.)


(이거보면 동기가 뭐라고 하겠지... 근데 괜찮던데 나는... 과제없고 시험없으면 일단 개꿀 -ㅅ-)




하루는 기업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분을


교수님께서 초빙하셔서


의료인문학 때 그 분의 활동을 같이 하게 되었다.



맨 처음에 성격유형 파악 테스트를 하고


(뭐가 떴는지는 글에서는 안 말한다.)


(여담으로 MBTI랑 반대로 나온 점이 하나 있었다.)



성격유형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격이 맞는지


점검을 한 다음


각 성격유형별 경향에 대해서 논하던 중


그 분이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내셨다.



"그런데 테스트 결과(성격유형)랑 내가 생각했던 성격이 다르신 분들 있었나요?"



당연하다. 테스트 결과들끼리도 다르게 나오는 판에


테스트 속 성격유형과 실제 성격이 어떻게 동일할까.



그 말이 나온 뒤


슬라이드에는 가면 사진과 함께


'페르소나'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물론, 각 영역별로 겹치는 경우는 성격유형이 중첩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느정도 선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는 살면서 성격이 바뀐다는 말들을 많이 하잖아요?"


(정신과 교수님은 몇주뒤 프로이트에 관해 언급하면서 "기질"과 "성격"의 차이로 언급하신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남들로부터 다치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사회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겉보기 성격을 만들게 됩니다. 이 겉보기 성격은 마치 가면무도회에서 자신의 정체를 가면의 숨기는 것과도 같다고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 성격들은 마치 가면과도 같다고 해서 '페르소나'라고 지칭합니다."




===================배경 지식을 위한 간단 주석=====================


고대에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쓰는 사회적 가면 또는 사회적 얼굴을 의미한다. 페르조나는 성 정체성이나 자아 정체 성 또는 직업 같이 사회가 규정하는 나에 대한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개인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기 성격의 한 측면을 페르조나로 강조하기도 하고, 전 생애 동안 많은 페르조나들을 사용하는데,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융은 페르조나를 원형의 하나로 생각했으며,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어떤 사회에서든 관계와 교류를 촉진시키는 수단이 필요한데, 부분적이기는 하나 페르조나가 이 기능을 담당한다. 페르조나는 본래 병리적이거나 거짓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이 자신의 페르조나와 지나치게 동일시하게 되면 병리적으로 될 위험이 있다. 이것은 사회적 역할(예를 들어, 변호사, 분석가, 노동자)을 초월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 주며, 성 역할 개념이 너무 경직되어 있거나, 다양한 발달 단계에 따라 변화하는 요구사항들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융의 심리 구조 모델에서 페르조나는 자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해주는 중재자이다. 마찬가지로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자아와 내부 세계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재 기능을 수행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르조나 [Persona] (정신분석용어사전, 2002. 8. 10., 서울대상관계정신분석연구소[한국심리치료연구소])


=====================================================




페르소나라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저


"어! 외워서 써먹어봐야지."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가



바로 다시 곰곰이 되새겨보니


나 자신도 페르소나를 쓰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한창 가면 사진을 보면서


그 생각에 잠기던 중



"때로는 페르소나를 완벽하게 장착하다보니 주변사람들을 떠나 자기 자신마저도 원래의 성격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경우들도 많지요."


"아무튼 이런 페르소나의 대표적 사례로 실존인물을 꼽는자면...."



하는 말과 함께 넘어간 슬라이드에서


나는 그 익숙한 존재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카프카.


'변신'이라는 작품을 집필한 작가 말이다.




8.



카프카.


그는 '변신'이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10년 가까이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현대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색채와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비관



그리고 카프카 본인을 취재했을 때


본인의 일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말하면서


"나는 그저 글을 쓰기 위해 '밥벌이'를 할 뿐이다."


라는 인터뷰들은



어느 잡지사의 한 기자에게


구미를 당기는 취재거리 하나를


제공하였다.



그는 수소문 끝에 카프카가 일하던


보험회사를 찾아냈고


카프카 본인 몰래 주변사람들로부터


그의 평을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작품에서와 같이


현실 속에서도 이단아로서의 모습을


기대했던 기자가 취재에 들어가자마자


주변 회사 동기들과 상사로부터 들었던 말들은 하나같이



"카프카요? 그 친구 정말 성실하죠... 10년 넘게 회사 단 하루도 빠진적이 없다니깐요."



라는 대답 뿐이었다.




9.



각박한 현대사회와


반복되는 일상을


그리고 '유용성'과 '겉모습' 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적 풍토 속에서



우리 자신들은 


진짜 모습인 '주 인격'을 숨긴 채로


살아남기 위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들 각자의 사연을 위하여


'페르소나'라는 인격적인 가면을 쓴다.



마치 '오페라의 유령'에서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핍박하는 야만적인 사회적 풍토 속에서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팬텀'처럼 말이다.




물론 적당한 페르소나는


원할한 사회관계와 타인의 배려를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 페르소나가 너무 커진 나머지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망각하고


마치 페르소나, 즉 가면이


자신의 진짜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고서


'주 인격'을 상실하게 되어버리는 일도 벌어진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이 


야만적인 사회적 풍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가면을 쓰고 


가짜 인격으로 살아가는 과정서



본래의 선한 '주 인격'을 잃어버리고


살인과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가면 인격'에 잠식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작중에서 그레고리가 벌레가 되어버린 이유는


'가짜 인격'이 점점 커져가다가


마침내 '진짜 인격'을 잠식해버리는 순간


그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카프카는 


그레고리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원인이자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그레고리를


진정한 자아를 찾도록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을 말하기 위해



막무가내인 그레고리의 직장상사를 등장시키고


그레고리를 그레고리 자체로 대하지 않고


겉모습과 유용성 만으로 판단하는 가족을


소설적 장치로 등장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소설적 장치를 통해서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가면이 내면을 잠식해버리게 만드는


'유용성과 겉모습 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적 풍토'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 또한 


그레고리와 다른 점이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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