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7-12-10 22: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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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 해석에 대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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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외모지상주의를 논하는 글'로 읽으셨다는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다.


2015년 당시의 나 자신이 외모지상주의 관련되어서 이 소설을 논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 부분과 관련되어서 글에서의 설명이 많이 부족했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결론 및 마무리에 해당하는 후반부 파트를 보면


외모와 관련된 언급은 오페라의 유령 예시를 제외하고는 찾을 수 없었고



내용에 있는 '겉모습' 또한 '겉보기 인격'이라는 의미가 적합하지


외모지상주의를 논하기 위한 필수소재인 '외모'라고 해석될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 소재인 '페르소나' 자체가 외모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개념이다.)




과거의 나 자신이 부족한 식견으로 그 책을 대했다는 것은


그 사실을 언급한 다음에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로


현재 나 자신의 식견과 선을 긋는 표현이 있다는 점을 통해 아실 수 있지 않으셨을까 싶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의 제 불충분한 설명이 그 글의 결론을 외모지상주의의 폐단을 논하는 내용으로


오해할 수 있게 만드는 여지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하기에


이 점에 대해서는 제가 반성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2. 


페르소나같은 레토릭이 아니라 자기혐오에 대한 심판에서 이어지는 자아 분열에 가깝다고 언급하셨는데


이전 글에 있었어도 페르소나에 대한 언급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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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기 성격의 한 측면을 페르조나로 강조하기도 하고, 전 생애 동안 많은 페르조나들을 사용하는데,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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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에 대한 설명을 보더라도 여러 개의 페르조나를 사용하는 상태, 즉 자아분열 상태의 측면이 개념적인 부분에서 이미 포함되어 있다.


또한 '페르소나'와 '자아 분열'이라는 두 개념을 따로 동떨어진 개념으로 봐야하는지도 의문의 든다. 자아가 분열된 상태는 곧 여러 개의 페르소나들이 병립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실제 용례는 다음 용례들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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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림자 자아의 존재는 심리학적 지혜의 많은 측면과 함께 오랜 기간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심리학 발달 이전에, 이것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방법은 은유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신화와 전설은 이런 그림자 자아에 얇은 베일을 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장 명백한 예로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들 수 있습니다.

지킬과 하이드 이야기는 어떻게 그림자 가방의 내용물이 숨겨지길 거부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선량한 의사의 분열된 페르소나(split-persona)를 이용합니다. 세련되고 교양 있는 의사는 아주 ......(생략)


- 비르기트 볼츠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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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병사는 성안의 일반인에게 있어 자기극복의 표본이자 선망의 대 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인류의 페르소나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남자아이에게 있어 외 부세계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존재인 아버지가 남성으로서의 페르소나인 것과 같은 기능을 한다. 의식의 중심인 자아는 무의식을 포함한 내적 세계와 현실의 외적세계에 대한 동시적 적응을 필요로 하는데, 내적세계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내적 태도가 ‘마음 (Seele)’, 외적세계에 적응하며 생기는 여러 행동양식이 ‘페르소나(persona)’다. 즉 페르소나는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하여 개인과 사회가 타협하여 얻은 결과인 것이 다. 페르소나는 외적 세계에 대한 적응에서 편의상 생기는 기능콤플렉스이며 외부세계와 자아를 연결하는 관계기능51)이다.


- 김정경, 만화 에 나타난 상징분석 : 융의 분석심리학 관점으로 , 한국애니메이션학회, 애니메이션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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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같은 레토릭이 아니라 자기혐오에 대한 심판에서 이어지는 자아 분열에 가깝다는 언급에 대해서는


"A가 아니라 A이다."같은 말처럼 느껴진다.




3.


카프카는 그의 작품에서 분열된 자아를 가감없이 그렸으므로 자기 자신을 가면 속에 숨긴 적이 없다는 설명을 하셨는데


이전 글에서 카프카가 가면을 쓴 장소는 '일상생활'에서였지 그의 활동무대였던 '문학작품'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에서 그 자신에 대한 생각을 그렸다는 언급이 있었으면 있었지 그의 생각을 숨겼다는 언급은 전무한데


왜 일상생활에서의 카프카의 모습이 아닌 문학작품에서의 카프카의 모습으로 반박을 하셨는지는 의문이다.



여담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카프카의 모습을 나타낸 다음 자료를 보면 위에 있는 페르소나의 설명과 동일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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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had another role in his relationship with Felice, to whom he was engaged on and off for five years, and then the final role was when everything quieted down in Prague and he sat down and wrote. So you have five or six different Kafkas, a person who had broken himself into all these little pieces.


- 뉴욕타임즈, The Essence of 'Kafkaesque', 1991년 12월 29일 기사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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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레고리에 대해서 작가가 과연 독자들이 인간으로 여기길 바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소설 군데군데를 보면 그레고리는 끊임없이 자신이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인간성'을 표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나 좌절당하는 모습들이 많다.


해고를 두려워하고, 직장 상사에게 변명을 하고자 하고,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리고, 끊임없이 방안에서 나오려 하는 등 그레고리는 스스로를 '인간'이란 존재로 인식하고, 완전한 회복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부분들은 적어도 작가가 독자들이 그레고리를 인간으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장치였으면 장치였지, 벌레로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수많은 문헌들이나 평론가들 또한 그레고리의 인간성에 대한 언급을 지속하는 등 수많은 독자들 또한 그레고리의 인간성에 대해 끊임없는 주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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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Gregor’s humanity never disappears entirely, and he feels conflicted as a result. This conflict reaches its climax when Grete and the mother move the furniture out of Gregor’s room. Gregor initially approves of the idea because it will make his room more comfortable for him physically.


- Sparknotes : The Metamorphosis → Themes, Motifs & Symbols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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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상 서술 등에서 보이는 수많은 단서들과 다수의 해석을 참고했을 때 그의 인간으로서의 본질이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지 근거가 된다.




5.


얄팍한 깊이로 해석을 했기에 지적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얄팍한 깊이라는 것부터가 어떤 기준으로 정의를 할지부터 의문이 든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적어도 모든 사람들이 언급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다음 두 교수들의 해석들을 한번 살펴봐도 독자마다의 해석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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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nother stroke of research luck, Mr. Karl discovered that 32 previously unseen letters from Kafka to his parents, written when he was dying, had recently surfaced in a bookshop in Prague.

"They don't change our view of him," Mr. Karl said. "Kafka was already Kafka, and nothing was going to change that -- but it was still a real find. Not one of those dry research trips I'm accustomed to."

Mr. Karl, a professor of literature at New York University and the author of biographies of Joseph Conrad and William Faulkner and several works of literary criticism, said that Kafka's multifarious complexities presented the ultimate biographical challege. Only when he turned 62 three and a half years ago, he said, did he think he was ready to take up a subject that he had been thinking about for at least a quarter-century.

"What I really waited for was to be much more mature," Mr. Karl said. 'I felt I had to be tremendously mature and to know an awful lot -- the whole cultural context of Middle Europe, which I did push into the book very heavily.

"I had to be very familiar with the psychological and psychoanalytic doctrines so that I could apply them. Kafka without a psychological approach is not Kafka. And I had to be mature enough not to get completely entangled in Kafka, who can seduce you and suck you in, and you're trapped. In other words, not to see everything only through Kafka's eyes."


- 뉴욕타임즈, The Essence of 'Kafkaesque', 1991년 12월 29일 기사 중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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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은 우리 시대의 가장 폐쇄적인 작품이다. 그의 문학의 수수께끼 같은 특성은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싶은 진실이 수수께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불가피하게 표현한 것이다.  때문에 카프카는 해명하는 설명을 포기한다. 오히려 그의 설명은 새로운 모호성을 초래한다. 대신 카프카는 전통적 역설인 ‘顚覆’과 통속적인 사고로부터의 이탈을 뜻하는 ‘轉向’을 결합한 ‘미끄러지는 역설’이라는 사고의 법칙을 사용해서 이미 확립된 개념들을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만들고 독자가 경직된 사고의 습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 관계를 시험하도록 하기29 때문에 독자는 카프카의 작품에 충격을 받고 카프카의 작품 앞에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권위 있는’ 해석도 ‘명확한’ 해석도 허용하지 않는다. 사실 카프카 문학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현실의 수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카프카의 비유의 형식의 개방성이 독자에게 독자 자신의 딜레마를 프란츠 카프카의 입장에 완전히 투영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현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독자는 카프카 문학에 매혹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독자가 카프카 문학에 매혹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독자가 카프카 문학의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불안에서 자신의 불안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프카에게 특징적인 것은 자신에게 강요되는 지옥의 마이너스 부호를 지닌 이 세계에서 머무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전력을 다해서 이 세계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쓴다는 사실이다. 카프카가 걷는 방향을 카프카 자신의 말로 표현하면 카프카는 “여기에 나는 닻을 내리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여기-에서-떠나는 것(weg-von-hier)’이다. 출발의 장소인 ‘여기’는 ‘허위의 세계’다. ‘여기’에서 떠나려는 카프카 문학의 주인공들(그레고르 잠자, 요제프 K, K)의 시도는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포기되지 않는다.

카프카는 자신의 문학을 통해 독자에게 그들이 권력관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한다. 카프카는 독자를 자극해서 권력에 저항하고 권력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감행하게 한다. 카프카는 독자에게 혁명적인 투쟁을 직접 호소하지 않지만 소외 의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현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일깨운다
. ‘현실’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카프카 문학은 긍정적일 수도 있다.

- 문화의 안과 밖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_ 제33강 편영수 전주대 명예교수의 「카프카와 현대인의 초상」, 교수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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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비즘을 논하기 이전에 스노비즘을 논할 수 있는 기준부터 정확히 정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해석의 다양성만이 존재할 뿐 어느 누구의 해석이 더 그르고 어느 누구의 해석이 더 옳은가는


작가 스스로 조차도 정할 수 없는 것이 문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내일부터 시험기간이라 이정도 씁니다.


(이번주에 저 시험 8개입니다...)


이 글의 어투 또한 원글 어투와 다른 분의 해석글의 어투와 일치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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