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식

Nadir [115620] · 쪽지

2007-01-30 19:00:59
조회수 4,658

아쉬움을 남길지라도 후회는 남기지 말라 - 중학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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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약이 붙은 후에 한 번 써볼까... 하던 참에 난데 없이 경희대학교 한의예과를 붙은 터라... 한번 써보도록 하렵니다.

이후는 경어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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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까지의 나는 그저 여기저기 흔히 굴러다니는 학생에 불과했다. 디아블로에 빠져 하루 4시간씩 카우를 돌고, 학원 시간에 늦어 아차 하면서도 학원차 놓쳐서 늦었다고 구실을 만들며, 한달에 한번씩은 아프다는 핑계로(생리도 아니고...) 풀타임으로 노는, 중간고사는 25등 내외, 기말고사만 봤다 하면 120등 까지 떨어지는 보통의 학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꿈이라고 하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주로 말하듯이 막연히 과학자였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필요로 한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디아블로에서 워크래프트로 옮겨다니며 3년을 지냈다.

적당히 전과목을 가르치는 종합학원에서 적당히 수업을 들었지만, 3학년 말까지 나는 영어의 have+p.p에서 \"도대체 뭘 가진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지낸, 말 그대로 시험에 나올 것만 적당히 외우고 줄치는 적당주의자였다.

확신도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것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소모하고 있었던 기분이 든다.

낯간지러운 이야기지만, 여자에 대해선 초등학교 5학년 때 포크댄스 이후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나에게, 나름 짝사랑이라는 것이 있었다. 핑크색 점퍼가 유난히 어울려 요즘도 손톱으 분홍색부분을 보면 떠오르는 그런 아이였다. 말 한마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지만 나는 그저 그 아이와 같은 학원의 같은 반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저 적당하게, 멀리서 바라보는 정도로만 지냈다.

그러던 중, 도대체 멸종되어 사라졌는지 어쨌는지도 모를 작은 프라이드를 유지시켜주던, 그래도 그 조그만 시골동네의 학원에서 \"제일 높은 반에 있으니 괜찮다.\"라는 나의 적당주의를 철저히 깨부수는 일이 있었으니, 1학년 10월의 반편성고사에서, 간단히 말해 반편성고사에서 떨어졌다.

다음 시험을 잘 보면 되지 뭐, 라는 식으로 주변에는 말했지만, 다음시험이라는 것은 4월에나 있다. 이후로 6개월... 그 어떤 것보다 내게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아이와 같은 반이 아니라는 것. 나의 그런 사소한 즐거움을 앗아간 반편성고사... 그것만은 적당히 넘어갈 수 없었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은가. 겨우 반편성고사 가지고 남한테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대범한 내가 아니었다. 그런걸 물어봤다간 뭘 그런걸 가지고 고민하느냐며 피식 웃고 넘어갈 것이 뻔했다. 그저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틀에 박힌 충고. 도대체 열심히 한다는게 뭔지,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해야하는지, 이 충청도 산골짜기의 그나마 번성한 이 아파트촌에는 이에 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것인가? 그건 아니었다. 당시 포기라는 단어는 생각에도 없었다. 그저 조각난 프라이드를 주워 담으려는 마음으로 혈안이 되어 있던 내게 방법론이라는 건 대체로 무의미했다.

그래, 그냥 하면 된다. 해 주겠다. 얼마든지 해줄테니까. 쌍시옷소리를 입에 담아가며, 4시에 하교, 6시까지 학원 갈 준비를 하고 10시면 집에 돌아온다. 이후는 그저 할 뿐이었다. 1시까지 공부하면 될까? 2시? 아니다. 3시정도로 하자. 그리고 그렇게 했다.

그건 실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럴 체력을 갖춘 채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닌지라, 초기에는 학교에서 세네시간은 그냥 쓰러졌다. 차츰 적응은 되었지만 학교에서 자지 않으면 내 공부가 흐트러진다. 그러니까 그냥 잤다. 방학동안은 3시쯤에 학원에서 돌아가면 이후로 7시까지, 밥을 먹고 3시까지.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학교에선 완전 문제아 취급을 받았지만. 중간고사를 얼마 앞두고도, 나는 학교에서 잤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1학기 전교 33등, 2학기 전교 27등에서, 단박에 전교 11등으로 올랐다. 학원 역시 다시 상위반으로 올라갔다. 그 때 느낀 성취감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잡설이지만, 그 즈음에 그 아이가 학원을 그만 두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씁쓸했지만...

원하는 성과를 이룬 나는 다시 나태해졌다. 거기에 더해져서, 학교에서 자는 버릇까지 생겼다. 물론 새벽공부는 하지 않았다. 기말고사에서 다시 90등까지 떨어지는 대참사를 일으키고, 2학기 중간고사에서도 19등 정도였다. 상관 없었다. 그 이후로 다시 그런 의지를 태우도록 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연히 잘 본 3학년 중간고사에서 전교9등을 하고 기말고사에서 120등을 때리는 걸출한 기록을 남기며 내 중학시절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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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길어져서 끊어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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