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 [143] · MS 2002 · 쪽지

2003-07-28 01:18:54
조회수 7,507

제가 정시모집 심층면접을 끝내고 서둘러 남겼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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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16일 오전에 면접을 끝낸 후, 오후에 씌어진 글입니다. 이 글을 보니 그때가 떠오르기도 하구 그래서 좀 뻘쭘하기도 하네요...^^; 수시에서 실패하고 나서 (비록 그때 간절히 원하지는 못했지만...) 정시에 도전할 때는 나름대로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정시모집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옮기면서 보니,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문제를 쩔쩔맨 흔적도 보이는군요. 사뭇 부끄럽습니다)





오전 7시 10분에 집을 출발해서 설대로 향했다.
사회과학관 110호가 대기실이었다. 수험번호는 11번. 2조 첫번째로 씌어 있었다.
당연히 면접 제일 처음 보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_-;;;;;;;;;;;;; 6번째였다. (206)
대학이 훼이크를 한번 더 썼다. 2시간 기다렸다. 지겨웠다-_-
수시때는 3번째로 봐서 마구 긴장했었는데, 2시간 동안 주변인-_-들과 담소를 나누니 즐거웠다-_-

[마스크 클랜에 계시던 제 뒷번호 (207) 분, 언제 같이 밥이나 한끼-_-쿨럭]



(이 분도 저와 함께 합격하셔서 지금은 경제학부C/始반 소속입니다. 사회대 ROCK 밴드 "FY"의 보컬로도 활동하는 적극적인 친구죠^^)



아무튼 여차저차하여... 내 면접 순서가 되었다.
면접 담당관이 데려다 줬는데, 그 동네는 사방이 지리연구소였다-_- 뭔가 예감이 왔다.

'지 리 학 과 교 수 구 나'

-_-

잘된건지 잘안된건지...



나중에 알아본 결과, 가운데 계셨던 분 (교수1)은 마르크스 연구로 유명하신 김수행 선생님 (경제)이셨고, 양쪽에는 (교수2 & 교수3) 각각 허우긍 선생님 (지리)와 송호근 선생님 (사회)께서 각각 자리하시고 계셨습니다. 각기 마르크스경제학, 교통지리학, 노동-경제사회학의 권위자들이시죠. ^^;;; (생각해 보면 제가 꽤 radical한 발언을 하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 김수행 선생님 덕이 아닐까 합니다--;;)



면접할 방 명패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국토문제연구소 소장실'
GG였다-_-

문제를 받았다. 처음엔 약간 긴장해서 영어 해석이 빨리 안 됐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수시때 오전 문제가 대비되던 것처럼, 이것도 2개의 지문이 대비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다.
받은 백지를 하나하나 채워나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질문지를 받았을 때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립니다. 떨릴 때 수학문제가 안 풀리고 외국어 지문이 안 읽히듯이, 면접제시문 또한 눈에 안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직접 연필을 움직여 가면서 자신의 요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논술 쓰듯이 말할 내용의 체계를 글로 씀으로써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 들어갔다가는 밀려오는 긴장감에 낭패를 볼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필기를 통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반복해서 그것을 읽음으로써 논지를 강화한다면, 긴장감도 덜하고 무엇보다도 말할 내용에 있어서 자신과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앞타임 5번이 끝난 다음에는 교수들이 쉬는 시간이었다. 10분의 여유 후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희곡체-_-


자리배치는 이랬다.



              교수 1

교수 2      탁자       교수 3

                 나


교수1은 오야붕교수-_-같았는데 면접 내내 나를 응시했다. 정면이라 눈도 가장 많이 마주침.
교수2는 약간 날카로운 인상이었는데 의외로 차분했다. 기본소양을 주로 물어봤다.
교수3은 면접 내내 서류를 뒤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사람이 의외의 태클을 걸어왔다. 당황-_-;



나 : (꾸벅) 안녕하십니까?
교수 1,2,3 : 어, 들어와서 앉아요.
교수 1 : 그래, 1번문제에 대해서 답해 보겠나.
나 : 예, 1번 제시문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행복의 요건 등을 설명했다]



(제가 받았던 면접용 지문을 분석해 보면, (가) 지문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와 관련된 영어 지문이었습니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수의 불이익도 감소할 수 있다는 논지였지요. (나)는 박지원이 쓴 글이었는데 양반들이 부를 축적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권리의 제약을 가해서는 안 된다... 이런 류의 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논리지요. 문제는 "지문 (가)와 (나)의 요지를 각각 말하시오 (1번)"과 "지문 (가)와 (나)의 입장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는가를 밝히고, 그것을 타당한 근거를 들어 설명하시오 (2번)" 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서울대학교 인문계열 심층면접 영어지문의 난이도에 관해서 궁금해하시는데, 제가 겪었던 16일 오전의 이 지문은 수능 외국어 정도로 비교적 평이했던 반면에 16일 오후의 지문은 꽤나 어려웠고, 17일 오전은 16일의 두 지문의 중간 난이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수능 외국어 정도의 해석능력만 철저히 기르시면 그다지 큰 어려움을 없을 듯 합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반박이 안들어왔다. 맞았나 보군.



(일반적으로 학생이 정답에 가깝고 체계적으로 답변을 내놓을수록, 면접관 선생님들은 태클을 안 거시는 편입니다. 굳이 맞은 답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할 정도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반박을 많이 당할수록 답변이 미진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보통 불합격하는 사람들은 반박을 당했을 때 이를 수월하게 극복하지 못하고 갈수록 당황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교수와 대판 싸우고서도 붙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런 선생님들의 반박에 대해 나름의 올바른 논리와 주관을 가지고 끝까지 버틴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지론에 대한 옹고집도 인문계열에서는 중요한 학문적 잠재능력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정말 학생의 대답이 너무나 완벽해서 교수님들이 기뻐하시면서 심화된 토론 - 질문이 아닌 토론 - 을 통해 학생과 교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연계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강의실에서 보자"라거나 "들어오면 열심히 해야 되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경우 80% 정도는 합격이라는 확신을 가지셔도 됩니다)



교수 2 : 좋아요, 그럼 2번은?
나 : 예? 아 예, 2번 제시문은... (2번 제시문-_-에 대해서 설명했다)
교수 2 : 어? 아아.. 내가 말을 확실히 안했군. 2번 문제를 설명해 보란 뜻이었어요.
나 : 아 예 -_-;;;;;;;;

[2번에 대해서는 대략 이렇게 말했다. (가)는 공리주의적 입장이므로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는 것이고, (나)는 다수를 위해 소수의 이익을 부정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즉 (가)와 (나)가 대비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가)는 복지를 긍정하는 입장이고, (나)는 그러한 일련의 분배정책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리고 (다)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다.
복지정책 (예를 들어) 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부자들은 단기간의 재산적 이익을 통한 행복은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 빈자들에 의해 촉발되는 사회적 불안과 대립은 결국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사회적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만든다. 즉, 복지 정책, (가)의 입장은 결코 소수에게 침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단기적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이익을 주는 입장이다.]


교수 3 : 그렇군요. (가)와 (나)의 예를 한번 들어 보겠어요?


[가의 예로는 서구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누진세 제도의 예를 들었는데, 나의 예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 지문의 예가 되는 논리로는 대기업의 규제 완화 정책이나 자유무역협상 등이  있겠지요)



나 : (잠시 머뭇머뭇) 생각할 시간을 조금 주십시오.
교수 1,2,3 : (흔쾌히) 어 그래.

시간이 조금 흐르고.

교수 3 : 어, 그럼 약간 다른 문제를 물어보겠네. 학생은 (가)를 지지하는 거지 결국?
나 : 예. (이하 방금 전의 논리를 강조해서 반복)
교수 3 : (웃으며) 허허, 자네는 벌써 (나)의 예를 든 셈이네. 허허허.

[생각해 보니 나의 예가 결국 부익부 빈익빈의 이 현실이었다-_-]


나 : (뻘쭘히) 예;;;;
교수 2 : 학생, 내가 좀 황당한 거 하나 물어봐도 될까?
나 : 예.
교수 2 : 사회적 행복을 증진시키는 제도로 대표적인 것이 공산주의인데, 이는 어찌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공산주의는 이론적으로 사회적 행복을 증진시킬 수는 있어도 개인의 능력발휘와 성취의 만족에서 오는 개인적 행복은 거의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나타난 공산주의는 엄연한 계급차와 하향 평준화로 사회적 행복마저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공산주의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교수 2 : 음... 그럼 공산주의도 안되고, 자본주의도 안 되는 건가...@#(*&@ (말꼬리 흐림-_-)

[여기서는 나의 요지를 다시한번 강조했다. 행복은 두 가지가 조화롭게 갖춰져야 하며,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나 강경한 공산주의는 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 그러므로 두 가지의 조화가 이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가)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나)의 포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나중에 대학에서 경제학을 수강하면서 배운 바에 의하면, 생산-소비이론과 거래이론에 비하여 분배이론은 경제학적으로 깔끔한 설명이 힘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이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마다 이 부분에 대한 의견들도 다 다르시고, 뭐랄까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면접에서는 이런 것이 나온다는 전형적인 형태이지요...)



교수 3 : 어, 그래요. 저기 (다) 말이야. 누가 쓴 건지 혹시 알겠나?


최초의 황당성-_-태클이었다.


나 : 아 예... 실학자 같은데...;;;
교수 2 : 맞아요. 실학자야.
나 : 예. 정약용 선생님?
교수 3 : 허허허
교수 1 : 아니라네. 실학자 중에서도 유명한 사람이야.
나 : (당황) 성호 이익 선생님인가....;;
교수 일동 : 허허허허
교수 1 : 연암 박지원 선생님이라네.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다-_- 내가 왜 그 순간에 그생각을 못했을까-_-


교수 3 : 그럼, (다)에서 땅값이 오른다고 했지? 왜 땅값이 오르는지 경제학적으로 짧게 설명할 수 있겠나.


[여기서 약간 답변을 잘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과수요가 가격의 상승을 불러오는 것이 뻔한데, 나는 부자와 빈자의 입장차이에서 오는 가격격차로 해석해 버렸다-_-]

교수 2 : 아, 하하하, 좀더 간단한 것이 있는데...
나 : (약간 당황) 예, 국사 시간에 이렇게 배웠던 기억이 나서....;;;
교수 일동 : 허허허허.


교수 1 : 여기 나와 있는 한자들 쭉 읽어 봐요.
나 : 예. [한자를 다 읽었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틀리게 읽은 것은 없었다]



(한자에 대한 물음 여부는 교수님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단 물음이 나올 경우, 학생들의 면접점수에 일정 정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교수 3 : 좋아요. 좋아. 학생이 사회대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말해 주겠나?

[준비해 간 대로 썰을 풀었다]

교수 3 : 잠깐... 여기 얘기가 약간 다른 게 있구먼...  생활기록부에는 2학년 때 법대로 되어 있는데...


허거덩-_-


나 : 아 예.

[여기서 설명을 했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수시 때에도 법대를 썼다는 얘길 했고, 마지막까지 부모님과 갈등한 것도 다 말씀드렸다-_- 나의 신념을 강조했다-_-]



(면접관 선생님들께는 지원자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추천서가 제공됩니다. 물론 학교, 담임, 가족사항 등 조금이라도 개인적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신상정보들은 철저히 가려지고 사진 또한 눈 부분이 지워집니다. 선생님들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3분 중 1분 정도는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추천서를 열심히 읽으시는 역할을 맡으십니다. 따라서 "큰 꼬투리"가 잡힐 만한 사항은 적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는 항목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만 철저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희 반 합격 동기 중에는 "왜 2학년 때 영어 내신이 우가 나왔느냐" 고 면접관 선생님이 물어보신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교수 1 : 응. 그럼 법대 쓸 점수는 됐단 말인가?
나 : 아 예. 됐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_-;;;
교수 3 : 허허, 그렇군... 그럼 현재 국제관계의 쟁점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해 봐요.
교수 1 : 현재 쟁점이라면 북한과 이라크 미국과의 관계겠지?

[제네바 협정과 미국의 일방주의의 예를 들었다. 미국의 일방주의와 북한의 무력주의 모두 불가하며, 제3의 길로 나아가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평화적인 방법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는 도중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20분이 다 되었다는 신호였다]

교수 3 : 그래. 좀 짧게 마무리를 지어 주게.

[마무리를 지었다-_-]

교수 1 : 수고했어요.
나 : 제가 긴장해서 말이 좀 빨라서... 죄송합니다 (_ _)
교수 일동 : 아니, 아니야. 허허허허.
나 : (꾸벅)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교수 일동 : 그래요, 나가 봐요, 허허허허.



(실제로 대학을 겪은 반수생들은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 현역이나 재수생들의 경우는 교수님들을 지나치게 높은 존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교수님들의 학문적 업적은 고등학교 3학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그러나 그 분들도 교수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인간이고, 또 무엇보다도 고3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기에 지나치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예의는 깍듯이 지켜야 합니다. 예의를 지키지 않는 수험생은 굉장히 불리해집니다)




생각해보니 앞에서 펼쳤던 논리가 뒤에서는 교수3의 태클에 빛이 약간 바랬다-_-

수시때보단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



2주일동안 ㅊ ㅕ놀아야지-_- (← 여러분도 면접이 끝나면 마음껏 노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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