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 [143] · MS 2002 · 쪽지

2003-06-20 12:12:01
조회수 6,031

* 2002년의 이야기 #0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431759





* 2002년의 이야기

0. 2002년의 이야기 (intro)
1. 방향 찾기
2. 공부 (1)
3. 공부 (2)
4. 여름방학
5. 수능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6. 20021106 동북고에서
7. 20021117 서울대에서, 20021230 고려대에서, 20030116 그리고 다시 서울대에서
8. 2003년의 이야기 (1)
9. 2003년의 이야기 (2)
10. 꿈 (outro)






0. 2002년의 이야기

2002년 초의 겨울, 정확히 말하면 2001년의 12월, 나는 한 명의 '수험생'이 되어 있었다. 생활은 훨씬 더 단조로워졌고 마음 한 구석에 쌓인 부담은 커져만 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가 수험생이 되었다는 것이 그리 실감나지도 않았고, 나에게 고3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 놀고 싶었고, 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이대로 누가 나를 대학에 들여 보내 주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수능 공부, 아니 공부 자체에 진절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나에게 수험생이기를 강요했다. 당시에 (공짜로) 다니던 학원에서는 으레 하루에 8~9시간씩 수업을 했고 나는 - 반 강제적으로 - 수업을 들어야 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과목 (사탐이라든가 언어)은 열심히 했지만 재미없는 과목 (수학, 과학)은 제껴버리거나, 수업을 듣더라도 한쪽 귀로 흘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말의 과학탐구 강의는 내가 좋아하는 화학을 빼고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인터넷의 모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대학생 이상의 성인이 대부분인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배웠다. 성인, 그 중에서도 대학생들의 삶은 너무나도 자유로와 보였다. 나는 그것이 부러웠다. 그리고 답답한 현실을 잊고 싶었다. (돌이켜 보건대 자유로운 대학생들의 생활보다는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심리가 더 크게 작용했으리라) 하루가 멀다 하고 대학로, 명동, 신촌으로 놀러 나갔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얘기나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홍대의 클럽이나 대학로의 공연장도 드나들었고, 형 누나들의 자취방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지금도 당시의 일들이 종종 기억나곤 한다. 크리스마스라고 다같이 모여서 고기를 굽던 일, 망년회 셈 치고 좁은 오피스텔에서 20명 가량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밤새워 음악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를 했던 기억,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좀 괴짜(?)인 여학생과 일일 데이트를 했던 기억 (별 건 아니고 그냥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누구는 이걸 두고 계약연애라고 했지만...) 등등. 정말 그때까지 교실에서 보냈던 나의 삶은 모두가 허구인 듯, 몰가치한 듯 느껴졌다.

'이렇게 새로운 세상이 있고 이렇게 자유로운 삶이 있구나'

공부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남들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 겨울방학 내내 문제집 한 권 풀지 않았고, 수험생으로써의 생활은 나에게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집에 붙어 있을 때도 늘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언제나 공부한다고 말한 후에 놀러 나갔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믿는 것이 있다면 고2 시절의 모의고사 성적이었다. 당시에 그래도 꾸역꾸역 해 두었던 다소의 공부 덕분에 대부분의 모의고사 성적과 그 뒷면의 배치표 (라기보다는 학과서열표라는 개념이 옳겠지만) 를 대조해 보면 항상 <서울> 법학부에 시선이 갔고, 그 점수를 넘곤 했다. 나중에 이것이 얼마나 허무하며 재수없는 일인가를 깨달았지만, 그래도 그 때는 그것을 믿었다. 아니 믿었다기보다는 태만한 생활의 유일한 심리적 안전판이 그것뿐이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퍽이나 건방진 일이었다. 2학년 11월의 마지막 모의고사에서는 급간이 조금 떨어져서 바로 아래쪽의 <서울> 언론정보, 경제 가 나왔지만 그러려니 했다. 남들 말하듯이 고3때 '빡세게 굴러주면' 다 되는 줄 알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듯 나의 겨울방학은 '한심하게' 지나갔다. 그랬다. 예비고3이라는 수험생의 시각으로 보면 이는 매우 한심한 행각이었다. 그렇지만 막 새로운 성인의 삶을 준비하는 단계로써, 그리고 고3 1학기 때의 괴로움을 견디기 위한 준비 단계로써 '한 인간인' 나에게 이 시기의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lacri님의 수기에 이런 말이 잇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은 기간 동안 개길 힘을 비축해 둔 것이었다"

나는 결과적으로 그분처럼 여러 굴곡을 거치지 않은 채 올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겨울방학의 즐거움"은 20년 동안의 내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기의 맨 처음에 이렇듯 공부와 거의 관계없는, 어찌 보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내 생각을 세우고 방향을 찾을 '나침반'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기억, 2001년의 12월과 2002년의 1월은 나에게 그런 존재로 남아 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