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7-11-06 00:35:34
조회수 7,567

(썰) '플라톤의 동굴'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13707026


(했다체로 서술합니다.)




1.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처음 알게된 때는


2015년, 내가 '첫번째' 새내기 생활을


한창 즐기고 있었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새내기 두 번 했다.)



당시 내가 들었던 수업 중에는


'사고와 표현'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이 강의는 신입생 대상 필수였기 때문에


당시 과 동기들은 거의 전부가 들었던 강의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사고와 표현 우리 분반을 담당하시는 교수님은


철학과 교수님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그 교수님은


다른 교수님들과는 달리 '스스로 배우는 수업'을 지향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수업 중


가장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수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교수님의 커리큘럼 중에는


자유로운 주제를 택해서


그 주제를 바탕으로 소논문을 작성하고


그 소논문을 바탕으로 발표자료를 만들어


동기들 앞에서 자신이 쓴 내용을 발표하는 활동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커리큘럼에서 발표가 가장 고역이긴 했었다.


발표를 예상하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 겸 어려운 주제를 택했다가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 때 혼신을 다해서 내 논리를 방어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버리긴 했었으니 말이다.



(결국 A+을 받긴 했었다. 그리고 이 학점은 못 써먹었다.) 



아무튼 이 커리큘럼에 따라


각 시간마다 두세명씩 자신의 글에 관해서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그 중 한 동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과연 진리인가라는 주제로


발표를 시작했었다.



사실 교수님께서 발표의 편리성을 위해


글 전체의 내용 중 일부만을 발췌해서


발표하는 것 또한 허용하시고 때론 권장하셨기 때문에


(물론 바보같은 누군가는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발표했다가 수많은 질의응답을 했어야만 했다. 나라고는 못 말하겠다.)



실제 발표내용은


대중매체(미디어)에 의한 진실의 왜곡 쪽이 발췌된


PPT 내용이긴 했다.


(대표적으로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 언론의 프로파간다 등)



동기의 열띤 발표가 진행되던 중


동굴과 그 동굴에 갇혀있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슬라이드 화면에 나타났다.



나는 그 당시 순수철학과 관련된 지식은


전무한 수준이었기에


(필자가 문과쪽에 관심이 많았다지만, 어디까지나 사회과학 같은 실용계열 쪽이었다.)


"웬 갑자기 동굴이지?"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슬라이드를 바라봤다.


(여담으로 그 동기는 책을 읽고서 이미 그 비유를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동기는 그 그림을 가리키면서


"이 그림을 보면 동굴 속에 사람이 갇혀있는 채로 바깥을 바라보지요?"


라는 화두를 꺼내기 시작했다.



뒤이어 동기는 플라톤의 동굴 비유가 무엇인지


간략한 설명을 하고서


"대중매체, 즉 미디어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는 현상은 이 플라톤의 동굴 비유에서와 같은 상황인데요..." 


라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었다.



=============배경지식을 위한 간단 주석=======================


플라톤은 『국가론』 제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대비해 놓았다. 동굴의 비유를 통해 플라톤은 두 세계의 관계뿐 아니라 이데아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철학자들이 직면하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다. 동굴에는 많은 수의 죄수들이 벽면을 향해 묶인 채 앉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실재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는 것도 사실은 그림자들이다.


이 죄수들 중에서 한 명의 철학자가 족쇄에서 풀려나 뒤로 돌아 동굴을 벗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최초로 그림자를 만드는 진짜 사물들과 그러한 그림자를 가능하게 하는 밝은 태양빛을 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여태까지 실재라고 여겼던 벽에 비친 그림자들이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사물들에 비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이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이데아에 비해 얼마나 불완전하고 혼동된 것인가를 깨달은 철학자는 다시 동굴로 돌아가 죄수들에게 그들의 세계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말한다. 그러나 죄수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여기고 그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그림자가 상징하는 것은? (Q&A 과학사, 2010. 2. 18., ㈜살림출판사)


=====================================================



이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인 인상으로


나에게 남았었던 기억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우화이기도 했지만


그림과 당시 설명이 워낙 인상적이었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기억 너머


마치 프로이트의 이론에서의 전의식에 박힌 것처럼


기억이 날락말락한 정도로만 남았지만 말이다.



여기서 그 플라톤의 동굴 비유가 끝났다면


나는 아마 그 비유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어느 순간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생물학 시험지에서 말이었다.





2.



당시 일반생물학은 총 3차에 걸쳐서


시험을 보는 형식이었다.



여기에 대해서 살짝 배경설명을 통해


상황 이해를 돕도록 해보겠다.



나는 1차시험에서


동기들이 스터디까지 만들어서 공부하는 동안


게임질이나 하면서 "나는 생2를 했으니 괜찮아!"


라는 식으로 자만을 했다가


(전날이 되어서야 책을 처음 피기 시작했다.)



1차시험이 유래없이 쉽게 나오는 상황에서


다른 동기들이 90점대나 100점을 맞는 동안


80점대를 받아버렸었다.



상대평가 기준으로 B권도 아슬아슬해진 상황이었는데


당시 그 과목이 일반화학에 비하면


이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라 예상했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렇다. 시험을 말아먹은 것이었다.



그 당시 잠정적 진로 후보들이


학점이 망하는 순간


완전히 꼬여버리는 상황이었으니


나로서는 적색불도 보통 적색불이 아니었다.



그 이후부터 지하철 통학길에서


일반생물학 책 (그 당시에는 캠벨을 썼다.)



그 책을 붙잡고서 매일매일 형광펜과 함께


책을 철저하게 예습복습 하면서까지


2차시험에서의 반전만을 기다렸었다.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에는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했으니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



2차시험 결과는 대성공적이었다.



1차시험이 객관식형 시험이었다면


2차시험은 객관식+단답형+서술형이 섞인 복합형이었는데



1차시험에서의 변별력 조절 실패가


2차시험에서 불벼락으로 다가왔다.



그 시험에서 독보적으로 97.5점을 맞았던 기억이다.


(2차시험 기준 1등)



1차시험에서 까먹은 점수를


2차시험에서 모조리 만회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나름 전설아닌 전설로 남았던 기억이다.)



나는 3차시험에서 그 기세를 이어가고자 했었다.


3차시험에서도 1등을 차지해서


완전한 A+을 받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서 말이었다.


(사실 일반생물학 최종 1등을 목표로 했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3등이었다.)




3.


3차에 걸쳐서 시험을 보는 만큼


일반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님 또한 3분이 계셨는데



첫번째 교수님은 사관학교 출신에 병리학 전문 교수님이었고 담당 파트는 생명체의 특성 ~ 생화학계열 ~ 엽록체


(이 교수님의 단점은 진화생물학을 수업 과정에서 생략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생략한다.)



두번째 교수님은 그 수업에 관해서 총괄하는 교수님이었고 담당 파트는 세포분열 ~ 핵산 ~ 유전자 발현


(그 교수님의 연구실이 생명과학대학에 있었다는 정도랑 머리카락...은 그럴 수 있지...) 



그리고 세번째 교수님이 바로 그 3차시험을 담당하는 


마치 한석원 닮은 (그냥 대놓고 한석원 닮은) 교수님이었다. 



이 교수님의 전공은 동물행동학(진화생물학의 하위분야)으로 기억하는데


담당 파트는 병원체 ~ 시스템생물학 ~ 진화생물학 (그 대분화 소분화 생2러들 마지막 부분 기억하시죠? 그 쉬운거)


그러다보니 그 교수님 수업은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다.


(인상깊게 남은 것이라면 자연선택에 관해서 교수님 스스로의 번쩍거림을 희생하면서 자학개그 같은 설명을...)



그 교수님에 관해서는 사실 시작 전부터


엄청난 긴장을 한 상태였다.



동기 "쿠클루 보는데 이 교수님... 논술형으로 출제하고 시험 엄청 어렵게 낸다더라."



그 교수님이 전년도에 엄청난 불을 지르신 분으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신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수업 가운데 서서히 3차시험이 다가오고 


시험에 관한 공지를 교수님이 하시기 시작했었다.



"논술형이라고 긴장하시는데... 그냥 아는대로 쓰시면 그만큼 점수 나옵니다. 긴장할 필요 없어요. 난이도는 저번보다 쉬워요."



그럴리가.



교수님이 쉽다고 하시는 것은


교수님 기준이다.




3차시험 날


일반생물학 시험지를 받아든 나는 경악했다.




"...저기요? 제가 일반생물학 시험지를 받아든 것 맞지요?"



아마도 교수님이 원하던 것은


융합형 인재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 중에 한 문제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그 문제가 바로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통해


미스센스 돌연변이 등 DNA 차원에서의 돌연변이와 형질발현, 진화에 대해 설명하는 문제로 기억한다.



그 때 나는 그 문제를 보고서


한 10초 동안 머리속이 멍했던 기억이다.



그러던 중


"동굴... 동굴? 그 때 내가 들었던 그건가?"


하고 사고와 표현 때 들었던 내용이


갑자기 어렴풋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비슷한 경험을 15수능 생2 그 곰팡이 문제에서 하긴 했었다. 이래서 평소에 놀더라도 수업은 들으면서 놀아야...)



그 행운을 놓치지 않고


나는 그 문제에 관해 답을 서술해나가기 시작했던 기억이다.



그 덕분이었는지 나는 그 3차시험에서 2등을 했고


(1등은 그 학기 과탑이었다.)


최종적으로는 학과 전체서 일반생물학 3등을 하긴 했던 기억이다.


(A+을 받았고, 역시나 못 써먹었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나에게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한동안


일반생물학 시험지의 그 악독함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례로 내게 인상을 깊게 남겼다.





4.


세월은 흐르고 흘러


2017년 11월이 되었다.



어느 날


여느때와 같이


이것저것 잡담이나 떠들다가


문득 과학 만능주의를 나타내는 발언의 예시로



"철학, 미학, 문학은 세계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지만 과학은 세계가 무엇인지를 다룬다"



라고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어느 누군가 언급한 대사가 나왔다.



그 대사에 대해서


나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철학, 미학, 문학이든 과학이든 결국 세계에 대한 해석인건 마찬가지인데..."


라고 말을 이어가던 중



'세계에 대한 해석이라면 결국 해석하는 주체는 인간인데?'


라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데...'라는 생각과 맞물리면서


기억 저 너머에 잠재우고 있었던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다시 내 의식 속으로 끌어냈다.




5.



학문을


내 나름의 생각으로 말한다면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이 하나의 코끼리라고 가정할 때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결국 어떤 학문이더라도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보는 형국이 될 수 밖에 없고


이는 학문 간에 우열을 나누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학문들 간의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지


어느 학문이 코끼리의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가고 그런 것은


그 역시 측정하는 대상이 인간인 이상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전자를 관찰하려고 광자를 쏘는 순간


그 광자에 의해 전자의 상태가 변하면서


그 위치는 더 이상 진짜가 아닌 불확정성과 같이 말이다.




어쩌면


플라톤의 동굴 비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라면



'동굴 안'에서 우리들이


이데아, 즉 세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방법인


학문들은 본질적으로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인간인 우리가


임의대로 학문간 우열을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이데아(본질)에 대해서 잘 안다는 


자만심과 오만에서 비롯된


잘못된 행동이라는 메세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학문 간 우열을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인 이상


쓸데없는 짓이고 불가능한 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굴 안에서 세상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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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쁘나연⭐ · 685881 · 17/11/06 00:39 · MS 2016

    퍄 띵글이네여ㄷㄷ 근데 설마 진화 생물학 안 가르친 교수님이 창조과학러인가여....?

  • 쩝쩝접 · 591036 · 17/11/06 00:40 · MS 2015

    우호적이셨던 편...으로 답변을 마무리합니다.

  • ⭐이쁘나연⭐ · 685881 · 17/11/06 00:41 · MS 2016

    아........

  • □□□□□□□ · 734834 · 17/11/06 00:43 · MS 2017

    잘읽고갑니다. 플라톤 국가 제가 제일 자주 읽은 책 중 하나..ㅎㅎ

  • 쩝쩝접 · 591036 · 17/11/06 01:07 · MS 2015

    플라톤 국가 나중에 시간되면 한번 직접 풀로 읽어봐야겠네요. 지금도 자꾸 철학 쪽보다는 사회과학 자연과학 쪽으로 독서 편식이...

  • 앙기무띵 · 756013 · 17/11/06 07:33 · MS 2017

    플라톤... 어찌보면 허무맹랑한데, 어찌보면 진짜 세상의 본질에 제일 다가선 사람일 수 있죠ㅇㅇ

  • 동물원의 오후 · 603581 · 17/11/06 12:56 · MS 2015

    잘 읽고 갑니다
    글을 읽다보니 영화 아이 오리진스에 나오는 내용이 생각나는데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지렁이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은 후각과 촉각 뿐인데 그것이 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듯이 인간이라고 해서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 세계의 전부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네의 감각에 매몰되어서 과학만을 맹신하거나 종교적인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과학적으로 맞지 않거나 터무니 없게 들리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어쩌면 우리에게 없는 감각을 하나 더 지닌 존재일 수 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도 잘 연결되는 것 같네요

  • 청춘어람 · 689533 · 17/11/06 15:37 · MS 2016

    쌍윤 하는 수험생으로서 신선한 충격 받고 갑니다 ㄷ...

  • 연두욘두 · 756663 · 17/11/06 19:15 · MS 2017

    잘읽고갑니다

  • 공자(孔子) · 517004 · 17/11/06 20:12 · MS 2014

    와....글 잘읽었습니다

  • 신승범1호팬 · 724678 · 17/11/06 20:23 · MS 2017

    우오 잘읽고갑니다..

  • 선생님 · 662035 · 17/11/06 20:34 · MS 2016

    켐밸 10판 ㄹㅇ 흉기임

  • 우주의 감정 · 735446 · 17/11/06 20:36 · MS 2017

    와 공부잘하면 이런글 쓸수 있나보다..나도 공부 잘하면 좋겠다..

  • 비밀의 화원 · 743476 · 17/11/06 20:52 · MS 2017

    자연과학도 철학의 기초 위에서 비로소 단단해져요. 훗날 인연이 닿는다면 소은 박홍규의 플라톤 해석을 꼭 접해보시길..

  • Oh Be A Fine Girl, · 730926 · 17/11/06 21:33 · MS 2017

    이런 논리대로면 결국 우리가 (적어도 우리세대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도 없으니 결국 과학이(혹은 다른 학문들 모두가) '유용하냐 유용하지 못하냐' 라던가 '우리가 아는 사실은 전부 틀린게 아닌가'의 문제에까지 빠져버려요.
    다만 우리의 여태까지의 경험과, 우리 자체의 직관에 의존해 어느정도 판단하는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덧붙이자면(편의상 요 는 빼서 썼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같이 우리가 한 좋은행위(혹은 안좋은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우리가 공부해서,혹은 돈을 많이 벌어서 그게 꼭 득이 될 수는 없다. 세상일이란 너무 복잡해서 미래에는 어떤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정확한 기댓값을 구하기란 불가능하며, 설령 구했다고 해도 그게 틀리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가 고려하지 못한 변수들이 매우 많고 시시각각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스스로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우리는 공부하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학문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수학이라는 학문이 방구석에서 인터넷질을 하는것보다 가치있음을 안다. 물론 증명은 불가능하다.'

  • 쩝쩝접 · 591036 · 17/11/06 22:40 · MS 2015

    '본질에 대해서 전부가 아닌 일부분만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없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분만을 파악한다는 것은 물론 부정적으로 본다면 본질 그 자체를 파악한 행위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다르게 본다면 적어도 본질에 관해서 완전히 모르는 '무지의 상태'보다는 더 가까이 다가간 상태인 것은 분명하니까요.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없다'는 것은 본질을 향해 한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말이랑 마찬가지이니 (개별 하나하나의 사실이 본질을 구성하는 하위집합의 개념이라 볼 경우)

    적어도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간 상태가 그 행위조차 하지 않은 상태보다 나은 것은 분명하고 (뭐 쉽게 말하면 '해본 것이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겠죠.)

    또한 확률적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관찰한 사실들이 모두 틀렸을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볼 수 있으니

    학문무용론이나 극단적인 회의주의까지 연결되기에는 추론 과정에서 많은 도약을 요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의주의적 관점에서도 논리적 도약을 비효율적으로 많이 요하는 논리회로는 되도록이면 지양하는 것으로 압니다.)


    다만 과학의 본질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는 '합리적 의심'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사실이 틀렸을 가능성은 항상 배제해선 안된다는 것 또한 분명하긴 합니다.
    과학자에게 필요한 자세로 '기존의 사실에 대한 존중정신'보다는 '끝없는 비판의식' (논문 하나를 내보낼 때도 스스로 자신의 연구에 대해 끝없는 회의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말입니다.)이 더 중요한 자세라고 지목되니까요.

    (물론 여기서 사이비 과학의 정당성을 미리 논박하자면, 사이비 과학이 'Normal Science'와 비교했을 때 명백한 논리적 허점이 보이는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회의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 사이비 과학 쪽을 더 회의주의적, 즉 비판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 쩝쩝접 · 591036 · 17/11/06 22:43 · MS 2015

    뭐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자면

    경험과 직관에 의해 합리적 논리회로를 거쳐서 비록 완전히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본질에 다가가고자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누가 더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를 서로 비교하고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학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단지 학문 간 우열 비교는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이 정도로 정리가 될 것 같습니다.

  • Oh Be A Fine Girl, · 730926 · 17/11/06 23:59 · MS 2017

    생각해보니 언어 정리를 하는게 먼저여야 할것 같네요.

    학문에 대한 우열비교는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일까요?

    1.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함
    2. 진리추구
    3. 허무주의에 따름
    4. 순전한 개개인의 가치관
    5. 기타

    (이중 2번을 고르신거로 알겠습니다.)
    2-1. 인간 사회내에서
    2-2. 우주론적 관점에서
    (이중 2번을 고르신거로 알겠습니다.)


    +
    하신 말씀을 요약한다면
    1. 본질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우리가 하는 행위들간의 상대속도는 비교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전체를 관망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2. 따라서 우리는 어떤 행위가 다른행위보다 낫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정도 인거 같습니다.
    다만 제 입장은 위의1,2에서 본다면 '방구석에서 인터넷하기'가 '학문' 보다 유용하지 못함을 밝히기 위해선 상대속도가 몇인지는 비교할 수 없으므로 아예 속도가 0임을 밝혀야 하는데, 이걸 밝힐 수 있냐는 겁니다.

  • 쩝쩝접 · 591036 · 17/11/07 00:53 · MS 2015

    일단 속도가 0인지는 역시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속도가 0인지를 증명하려면 아웃풋이 0이라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 하는데
    (진리라는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선 적어도 뭔가 움직여야 가능한데, 아웃풋이 0이라는건 전혀 움직이지를 않았다는 것이니...)

    '방구석에서 인터넷하기'의 아웃풋이 전무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아니 어쩌면 0이 아닐 확률이 오히려 높을테니 말이죠.

    다만 그 둘을 그래도 굳이 비교하고자 한다면 진리추구라는 목적성을 공유하는 '학문들' 간의 비교와는 다르게
    '방구석에서 인터넷하기'는 적어도 진리를 추구한다는 목적성을 띠고 있는 행위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명확한 목적성을 띠고 있는 '학문'이 적어도 진리추구라는 면에서는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Oh Be A Fine Girl, · 730926 · 17/11/07 01:57 · MS 2017

    음.. 저 예시가 극단적으로 이해를 위해 썼던 예시인지라,
    그렇다면 단순히 진리추구라는 목적성이 있다면 모든행위의 가치는 비교불가일까요?



    (이건 여담이지만 제 지론은 극단적허무주의에 가까운데요,
    우리가 이렇게 진리추구를 위해 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안락한 삶을 살기위해 돈을 많이 버는것,게임이나 마약에 빠져사는 것, 단순히 개•돼지마냥 먹고자고 사는 것보다 가치있는 행위가 맞긴 할까요?
    사회적 관점을 넘어 이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의 앎에 대한 본능과 단순한 생물의 생존,번식본능과 다른게 뭘까요?)

  • 쩝쩝접 · 591036 · 17/11/08 00:44 · MS 2015

    1. 진리추구의 목적성을 공유한다는 가정하에 비교의 주체인 인간부터가 이미 한계가 어느 정도 정해졌다 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인간이 어느 진리추구가 더 좋은 진리추구인지 판단하는 것 또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예시를 들자면 각 시대마다 진리에 다가가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던 학문들이 각각 있었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그 대상은 매번 바뀌어왔죠. 가령 윤리학->물리학->생물학->... 식의)



    2. 욕구의 5단계 이론을 일부 인용해보자면 단순한 생물의 생존, 번식 본능은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생명이나 유전체 단위에서의) 결핍이나 상실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앎에 대한 본능은 기본적인 생명활동보다는 스스로의 만족감이나 이성적 추론능력의 성장을 위한 것이고 (지적 능력에서의) 결핍을 회피하기보다는 확장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적어도 앎에 대한 본능은 생존 및 번식 본능에 비해선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점에 있어서 점수를 높게 측정할 여지는 있는 것 같습니다.

  • Oh Be A Fine Girl, · 730926 · 17/11/12 13:56 · MS 2017

    알림을 지금봤네요 죄송합니다
    1.인간은 여태까지 무언가를 적어도 '탐색'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과거에 택한 우리의 선호보다 현재의 우리가 중시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설령 표본이 부족하다고 해도 확률적으로는 더 그럴 듯하다 라는겁니다. 물론 확률적으로 '그럴 듯'한 것이기에 확신은 금물이긴 하지만요.

    2. 단순히 생물의 입장에서 본 것이기에 생물의 번영 쪽에 중심을 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말씀하신대로면 우리는 진리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만약 매슬로이론에 맞출 수 있다면 생물이 진리를 목적으로한, 알기위해 태어난 특별한 무언가라는 생각밖에는 못하겠습니다.

  • 레미언 · 608792 · 17/11/06 21:45 · MS 2017

    와우.. 긴글이지만 읽어보니 저도 작성자님의 생각에 동감합니다.
    그리고 글에 있는 여러 단서들을 조합해 본 결과 1차 새내기 고대 다니셧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xxxtentacion · 756422 · 17/11/06 21:46 · MS 2017

    산통깨긴싫은데 솔직ㅎ 이런글.얘기들
    너무많이보고들음..

  • 죽빵친다진짜 · 723643 · 17/11/06 21:51 · MS 2017

    좋네요

  • 갓효신 · 617316 · 17/11/06 22:43 · MS 2015

    오우 진짜로 소름 돋았네요. 역시 의대를 가야...

  • 무너진자존심 · 618447 · 17/11/07 00:01 · MS 2015

    ㅋㅋ...그냥 회의주의적 사고방식에 정도가 있는 것이라고 봐야겟죠
    길어서 대충 훑었는데..글에서 단정적인 어조가 여러번 보이네요...
    플라톤의 동굴을 예시로 들면서 주장에는 단정적인 단어가 어떻게 나타날수 있는지 의문이긴한데...
    오늘 더럽게 공부안되네...

  • 쩝쩝접 · 591036 · 17/11/07 01:02 · MS 2015

    아마 개인적 경험(경험은 말 그대로 본인이 체험한 느낌을 서술하는 행위니까요...)을 서술한 부분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라는 주장(몇 안되는 '공리'가 있다면 저는 이 주장을 그 중 하나로 꼽을 것 같습니다.)과 관련해서 제가 글을 쓰는 과정서 단정적인 어조를 사용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부족한 필력으로 글을 쓰다보니 단정적인 어조가 불필요한 부분에서도 사용되었던 듯 합니다.

    회의주의적 사고방식에 정도가 있다는 말씀에는 동감합니다.

  • 갓시경 · 602248 · 17/11/08 09:21 · MS 2015

    좋네요..
    혹시 사고와 표현 교수님이 ㄱㄱㄷ..?

  • 쩝쩝접 · 591036 · 17/11/08 17:32 · MS 2015

    ㅈㅁㅈ 교수님이었네요

  • 대안고정시 · 749119 · 17/11/08 22:01 · MS 2017

    재밋엇당

  • 부삽 · 471209 · 17/11/19 11:15 · MS 2013

    플라톤의 동굴은 꽤나 폭넓은 영역에서 인용되곤하는 개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