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A조C [449010] · MS 2013 (수정됨) · 쪽지

2017-09-05 01:44:54
조회수 814

긴 글 주의! (생각대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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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기 위해 이번만 높임체를 뺄게용... 양해 부탁드려요...


난생 처음 서울에서 본 수능.(물론 수능을 처음 치는 친구들도 많을 것이다.) 현역인 친구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능을 치긴 싫었다. 그들끼리 아는 척을 할 것임이 뻔할 것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 2외국어를 응시했었다. 아는 단어라고는 Guten Tag 밖에 없는 독일어로. 정말 즉흥적이었다. 제 2외국어는 다른 교실을 배정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원서 접수할 때 가장 위에 있었던 독일어로 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제로 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과탐을 치고 난 뒤엔 생각이 뒤바뀌었다. 국어에는 4444544... 수학은 한 문제를 풀지 못했고(30번), 과탐은 총 5 문항을 찍었었다.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엔 많은 수험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하철에서 수험생들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번에 수능 망했어..."

"헐, 대박! 4444544가 진짜 답이야??"(물론 시험장에 있을 땐 알지 못했다)

그렇게 고시원에 가기 싫었다. 아니, 엄밀하게는 집에서 올 전화가 두려웠다. 

'이미 여러번 망친 수능을, 또다시 망쳤다는 소리를 부모님께서 듣게 된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조금이나마 도피를 하고자, 독일어를 치기로 했다. 물론 아는 단어는 Guten Tag. 수능은 그걸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찍긴 싫었다. 발음을 속으로 해보고, 나름 영어랑 발음이 비슷한 것을 골랐다. 그것도 20번까지만. 나머지 10문제를 풀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휴대폰을 받은 뒤의 풍경은 정말 묘했다. 시험을 치러 온 새벽(그 때는 시험장에 적응할 것이라고 7시 20분에 시험장에 갔었다)보다 훨씬 어두웠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중에 밝힌 핸드폰. 가장 먼저 국어의 정답을 찾아봤다.

"4444544..."

'됐다! 첫 시작에서 오답이 없다!'

그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곧장 집으로 전화했다. 어머니께서 받으셨다. 그때의 첫 마디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이구, 우리 아들~! 수능 친다고 고생 많았어~"

사실 "시험 잘봤어?"라고 묻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그런데 저 말을 듣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잊어버렸었다. 1초의 침묵 뒤 꺼낸 말은

"그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그 말 뒤 시험 이야기를 했다. 국어가 4444544가 나왔다고. 수학 한 문제를 찍었는데, 그 문제 때문에 2등급이 나올 것 같다고. 과탐을 너무 많이 찍었다고.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 후회없는 성적이 나올 거라고. 고시원에 도착하니 어느 덧 7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메뉴는 칼국수였다. 나머지는 속이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수험표는 잊지 않고 챙겨갔다. 영어 답이 나올 시간이 다 되었기때문이다. 기다리는 중 답이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틀렸다. 27번.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문제는 옳은 것/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였다.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칼국수가 나왔다. 입맛이 없어졌다. 난생 처음으로 틀린 문제. 하필 그게 수능이었다.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문제를 열람해봤다. 보자마자 멍해졌다. 난 옳은 문장을 고르란 줄 알고 당당히 5번을 골랐었다.(선지를 거꾸로 읽었기 때문이다) 확인차 4번을 읽었는데, 4번은 옳지 않은 문장이었다. 그렇게 넘어간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시 예상 1등급 컷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었다. 국수가 넘어가기 시작했었다. 희망은 과탐 뿐이었다. 그것도 5개나 찍은(화학1 2개, 생명2 3개). 과탐 답이 나왔다. 채점 결과는 정말 기가 찼다. 화학1에서 찍은 것 중 1개를 맞췃고, 푼 것에서 하나를 틀렸었다. 생명2는 찍은 것에서 1개를, 푼 것에서 2개를 틀렸었다. 선방이었다. 화학1은 안정된 1등급으로 예상되었지만 생2는 2등급이 예상되었다. 다시 집에 전화를 드렸다.

"논술까지만 보고 갈게요"

조금은 가능성이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그날만큼은 술이 마시고 싶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치킨 반마리와 맥주 2캔을 사들고 방으로 왔었다. 긴장이 풀렸었는지, 술이 아주 잘 넘어갔었다. 2모금을 마셨다고 생각했는데 500mL가 사라졌으니. 그렇게 쿰척쿰척을 하곤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다시 이렇게 살라고 하면, 절대로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계속되는 떠돌이 생활이 너무나 싫었다. 그 누구와도 마음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날 숨기기에 급급했다. 자존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그러한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삶면서 한번쯤은 겪어 볼만한. 하지만 다른 사람이 굳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그래서 종종 오르비를 한다. 누군가에게는 나름의 조언을 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공부하다 한번씩 보고 웃어줬으면 하는 글도 써보고.

이 글이 너무 길어, 읽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이 글에 들어오는 사람들 만큼은, 원하는 대로 되면 좋겠다. 꿈을 이루기 위한 수능 점수와 같은 중간 과정들도 좋다. 어떻게든 이 글에 들어온 사람들이 덜 후회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다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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