핥짝 [669956] · MS 2016 (수정됨) · 쪽지

2017-06-06 00:44:53
조회수 1,855

'화평굴기' - 과연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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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진지충모드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중국의 화평굴기에 대해 공격적 현실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1. 공격적 현실주의란?


 공격적 현실주의란, 미국의 정치외교학자 미어샤이머가 제창한 이론을 일컫습니다.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다섯 개의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1. 국가는 국제체제의 주된 행위자이며, 국가의 상위 체계는 없다.

   UN은 합법적인 폭력을 통해서 의사를 강요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가의 상위 체계가 되지 못합니다.


2. 모든 국가는 공격적인 군사력을 보유한다.


3. 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없다.

   한국의 사드 배치 건을 예로 들면, 한국-미국이 주장하는 '의도'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 대비이지만, 중국이 받아들이는 의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국가 간의 이견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4. 국가는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5. 국가는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전략을 확립하고 수행할 능력이 있다.


 이러한 가정을 통해 도출되는 결론은, 모든 국가는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며, 궁극적으로 패권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번 가정과 4번 가정에 의해, 국가는 자신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를 침해당할 위협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3번 가정에 의해서, 타국과의 진정한 협력체계의 구축은 불가능합니다. 타국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5번 가정에 의해 상대가 합리적 행위자라고 가정하면, 상대는 그 협력이 국익에 반한다면 그 협력을 파기할 것이라고 가정해야 합니다. 1번 가정에 의해, 이러한 '협력'의 준수를 강제할 상위 체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바로 가장 강력한 세력, 즉 패권국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계적 패권의 장악은 물리적인 이유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간단히, 대양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고로 모든 국가는 자신의 지역 내에서의 패권 장악을 통해 안보 위협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 공격적 현실주의의 핵심적인 논리입니다. 더불어, 한 지역의 지역적 패권을 장악한 국가는 다른 지역에서 패권국이 출현해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이런 국가를 '역외 균형자' 라고 합니다. '균형자' 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잠재적 지역적 패권국의 세력과 그 지역의 다른 강대국들의 세력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2. 화평굴기란?


 화평굴기란, 중국의 지역적 패권 장악 과정에서 군사적인 수단이 동원되지 않을 것임을 주장하는 중국 측의 주장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러한 용어가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았음을 반증합니다. 지역적 패권의 장악이나 그 시도에는 항상 군사적 수단이 동원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의 유럽 지역의 패권 장악 시도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이, 미국의 아메리카 대륙의 패권 장악 과정에서는 미국-스페인 전쟁과 파나마 침공이, 다시 독일과 일본의 각각 유럽, 아태지역 패권 장악의 시도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습니다. 패권국으로 가는 길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발전이 역사를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이 평화적인 수단으로 패권국에 도달하는 첫 나라가 될 수도 있겠지요. 요즘 유행하는 민주평화론 - 소위 '맥도날드를 먹고 청바지를 입는 나라끼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는 문구로 대표되는 - 의 시각에서 보면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마냥 낙관적으로만 보기에는 중국의 국내적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단 중국은, 내부적 모순이 굉장히 많이 쌓여 있는 나라입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급격한 경제발전은 국력의 증가와 국가적 부의 증가를 낳았으나, 또한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같이 가져왔습니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마지노선인 0.4를 2010년에 이미 돌파했으며, 일각에서는 0.5~0.7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지니계수가 0.6에 도달하면 불평등에 의한 불만이 쌓이다 못해 폭발하여 폭동과 같은 사태로 번질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국내에서 높아지고 있는 공산당 일당독재에 관한 불만도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최근에 논란이 된 Sesame credit 과 같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불만을 일시적으로 억누르고 있습니다만, 역사적으로 반동적 정책이 사회 진보를 가로막은 적은 단 한번도 없으며, 중국이 그 예시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홍콩이라는 작은 불씨를 품 속에 안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홍콩의 우산 혁명에 중국이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러한 내부적 불만을 통제하기 위해, 중국 지도부는 고전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의 발호를 통해서, 내부의 불만을 외부의 적으로 투영시키는 수단입니다. 고전적이지만,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지요. 남중국해의 분쟁이 점점 격화되는 것과, 한국의 사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의 민족주의가 내부의 불만을 수그러들게 하는 수준에서 머물면 다행이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 수위는 이미 단순한 자부심의 선을 넘어간 듯 합니다. 중국의 문화적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 있는 중화주의가 그 이유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유보다는 현상에 대한 대응이 타국의 입장에서는 더 중요하겠지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극단적 민족주의의 발호는 전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높은 자부심은 타협과 협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중국의 화평굴기는 단순한 외교적 레토릭 그 이상이 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국의 입장은 지극히 곤란합니다. 한국은 두 개의 화살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한쪽 화살은 경제적 화살입니다. 이 화살은 중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25%를 상회하는 수준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군사적, 외교적 마찰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동반할 것입니다. 다른 화살은 안보의 화살입니다. 이 화살은 미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미국은 실질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패권에 관심이 없는, 위에서 말했던 '역외 균형자' 로써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 장악을 막는 데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국가입니다. 한국이 안보를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옵션은, 단연코 한미동맹의 강화입니다. 


 화살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지속된다면 결국 중국은 지역적 패권을 장악하려고 시도할 것이며, 이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군사적 수단을 동반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결국 미국은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 이 과정에 개입할 것입니다. 이 일이 벌어질 때,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단 두가지 뿐입니다. 미국에 협력하거나, 중국에 협력하거나. 한국은 제 3의 세력을 형성함으로써 지역적 세력균형을 달성할 만큼 국력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위 '동북아 균형자'의 꿈은 허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글의 가장 첫 부분에 말했듯이, 국가의 최고의 목적은 안보입니다. 애초에 국가가 설립된 이유는 국민의 안전 보장이며, 경제적 성장이나 행복한 삶과 같은 여타의 목적은 결국 부차적인 것입니다. 그 어떤 가치도 국민의 안전에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한국의 선택은 명확할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 즉, 중국의 지역적 패권 장악의 방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 아세안과 협력하여 거대한 대중 블록을 만든다던지, 한미일 삼각 동맹의 성립이라던지, 인도와의 협력, 러시아의 협조 등등등 - 본질적으로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화평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글 마지막 부분의 '화살'의 비유는 미어샤이머 교수가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1탄

미국식 간선제와 그 맹점에 대하여-트럼프는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가?

http://orbi.kr/00011324925


2탄

탈냉전체제의 국제정치와 9.11

http://orbi.kr/00011736475


3탄

2차대전 서부 전선에 관해

http://orbi.kr/00011737118


4탄

MD에 대해 알아보자

https://orbi.kr/00011891667



재미 업어도 비문학지문 읽는다 생각하구 끝까지 읽어주새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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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it. · 648396 · 17/06/06 00:45 · MS 2016

    역시..국어 100 클라스..

  • 맥도리아 · 715178 · 17/06/06 00:46 · MS 2016

    다읽었당

  • 핥짝 · 669956 · 17/06/06 00:47 · MS 2016

    안위적이요....

  • 맥도리아 · 715178 · 17/06/06 00:47 · MS 2016

    ?

  • 헤네시스 · 740249 · 17/06/06 00:48 · MS 2017

    개꿀잼

  • 핥짝 · 669956 · 17/06/06 00:48 · MS 2016

    솔찌좀잘쓰지아낫어요?

  • 헤네시스 · 740249 · 17/06/06 00:49 · MS 2017

    인정ㅇㅇ
    저 교양 보고서좀 대신...

  • 고른햇살 · 549535 · 17/06/06 00:49 · MS 2014

    한줄 요약하면 중국이 주장하는 화평굴기는 개소리라는 것인데 애초에 이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국내에 있나여?

  • 핥짝 · 669956 · 17/06/06 00:50 · MS 2016

    생각보다 많죠...? KBS에서 슦떠 차이나인가 하는 다큐도 했었던것같은데

  • 깨부시기 · 741880 · 17/06/06 00:51 · MS 2017

    너무 길다 ㅠ

  • 유우키 · 733546 · 17/06/06 00:54 · MS 2017

    그런 의미에서도 사드 시즈모드 박은건 너무 성급한 판단인거 같아요. 중국 국내 정치용으로 아주 요긴하게 써먹히는중

  • 핥짝 · 669956 · 17/06/06 01:18 · MS 2016

    으으으음..... 글을 끝까지... ㅠㅜ

  • 유우키 · 733546 · 17/06/06 01:26 · MS 2017

    왜용 ㅜ. 국수주의로 밀고가는 중국한테 괜히 트집 잡힐만한 행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의미인데... 사드가 군사적으로 효용성 있을지도 의문이고 안박는다고 한미동맹이 중국한테 깨지지도 않고..

  • 핥짝 · 669956 · 17/06/06 01:27 · MS 2016

    일단 중국 민족주의의 발호는 사드 하나로 촉발된 게 아니라서 그렇구, 사드 문제의 본질은 결국 한국의 '선택' 이죠. 중국과 미국의 대립에서 누구 편을 들 것인지를 암시하는 제스쳐...

  • 유우키 · 733546 · 17/06/06 01:37 · MS 2017

    아무리 일당독재 국가라지만 중국이 한국 상대로 외교적으로 강경한 자세를 취하려면 '어떤 계기'가 있어야 했다고 보는데 저는 이게 사드 배치였다는 의견이여서요. 중국 내부 여론 선동용으로 쓰일만한 계기가 아예 없었다면 일단 단기적으로는 평화가 더 지속되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사드 배치로 한미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보기도 힘든게 트읍읍이 1조원 발언 해가지고 국내 여론도 친미에서 자주독립 쪽 목서리가 높아졌고요. 갠적으론 사드는 질질 끌면서 미국과 물밑 군사 협력만 강화하는 식이 나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박음으로써 얻는 한미관계 증진 효과가 잃게 되는 한중관계 악화 효과보다 작다는 그런 의견이죠.

  • 핥짝 · 669956 · 17/06/06 01:41 · MS 2016

    음...단기적으로는 마찰이 적었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중국만 고려하면 되는 게 아니라 미국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려면 미국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한미동맹이 아직 굳건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나마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박근혜 정부때 전승절 참석하면서 친중 행보를 보였던 것 때문에도 그렇구요. 트럼프는... 솔직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라 그 당시 정책결정을 탓하긴 힘들죠 ㅜㅠ

  • 유우키 · 733546 · 17/06/06 01:52 · MS 2017

    근데 음.. 위 글의 핵심은 '중국 주도의 동아시아 평화는 언젠간 박살날 것이다' 이지만 언젠간 박살날 평화라고 해서 사드부터 박아버리고 친미외교에 치우치면 그것도 좀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음... 그냥 저는 사드 박는 행위의 의미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 포기와 한미관계의 아주 약간의 증진이 아닌가 싶어서요. 아무래도 박지 않는 것이 최선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한미관계 증진은 사드 말고도 다른 방도가 있을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했으면 되었을텐데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그냥 닭근혜 친중 외교부터 잘못된거 같네요)
    갠적으론 사드가 없는 상태에서 친중 성향이라 불리는 문통령께서 친미외교를 적극적으로 해주시는게 베스트 시나리오가 아니였을까..... 생각합니다

  • 핥짝 · 669956 · 17/06/06 12:05 · MS 2016

    글에서 화살 얘기가 나온게 그래서였어요. 중간은 없다는 것. 한국의 국력이 동북아시아에서 미중간 세력균형에 큰 역할을 끼칠 수 있다면 소위 줄타기 외교가 먹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 정시기다리는 · 702831 · 17/06/06 01:22 · MS 2016

    질문이있어요!
    중국이지역적패권을장악하는데 실질적군사행동없이
    주변국가가알아서피하면 (핀란드화 죠 말하자면)
    화평굴기의실현인가요?

  • 핥짝 · 669956 · 17/06/06 01:25 · MS 2016

    넵 그렇죵. 하지만 중국의 국내적 상황 때문에 그게 힘들 듯 하다는 얘기!

    이건 쫌 다른 얘긴데 핀란드는... 소련이랑 전쟁 두번이나 하지 않았나염 ㅋㅋ

  • 정시기다리는 · 702831 · 17/06/06 01:27 · MS 2016

    ㅋㅋㅋㅋ거슬러올라가면러시아지배도받았고ㅋㅋ
    이차대전이후의핀란드를보고핀란드화라고하는거죠뭐ㅎ
    글케따지면 중국도벌써 베트남,캄보디아,한국의 내전에개입하고 그이후로침공한거니까요!

  • 핥짝 · 669956 · 17/06/06 01:28 · MS 2016

    음음 고건마자여

  • 살바도르 · 668488 · 17/06/06 01:28 · MS 2016

    와 진짜 잘봄

  • Maverick · 680381 · 17/06/06 01:34 · MS 2016

    이런분이랑은 심도깊게 얘기해보고싶음...크...

  • 핥짝 · 669956 · 17/06/06 01:36 · MS 2016

    메버릭조와
  • Maverick · 680381 · 17/06/06 01:37 · MS 2016

    핥짝 조와!

  • 덴마꼭봐라 · 468483 · 17/06/15 18:29 · MS 2013

    수험생의 글 수준이 이정도라니..대단스

  • 파오후웁쿵쾅 · 755889 · 17/08/18 19:26 · MS 2017

    ㄹㅇ 논문들고와서 팩트로 때리늕 모습에 따봉눌러버림

  • 짹짹잭 · 569876 · 18/01/13 16:07 · MS 2015

    국정 빡세게 공부하셨나봐요 ㅋㅋㅋㅋ 멋있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