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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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30번째포효
1.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야." 쑥스러운 목소리가 마냥 색달랐다. 마주잡은 손을 타고 시선을 올리자, 네가 눈에 들어왔다. 크지 않은 키에 큰 가슴. 크지 않은 눈.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 하얀 피부에 적당히 높은 코. 색 바랜 입술.
"예쁘네. 축하한다. 근데 너, 여친 생겼다고 모르는 척하면 죽는다?"
ㅡ그리고 경계의 눈빛. 그애는 내 말에 네 눈치를 봤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너를 싫어했다.
2.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애가 손을 흔들었다. 너도 함께였다. 얼떨떨한 표정이 싫었다. 가방을 치워주자, 네가 옆에 앉았다. 마치 나와 그애는 같이 앉으면 안 된다는 듯이.
"너도 같이 듣는 줄 몰랐어. 둘이 시간표 같이 짠 거야?""아니, 아니. 나도 몰랐어. 조별 과제 같이 하면 되겠다!"
그애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같이 하면 되겠다. 가식적인 목소리. 네 시선이 내게 닿았다. 짜증 섞인 눈꼬리가 천천히 휘어진다.
그 눈웃음이 거슬려, 나는 너를 싫어했다.
3.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남자친구 없어?"
의도가 명확한 질문이었다. 그애의 웃음이 답을 대신했다. 야, 저런 애를 누가 데려가냐? / 죽는다. 그리고는 네가 웃었다. 우리를 잘 알기라도 핟다는 듯이.
"왜애. 예쁘잖아. 네가 소개 좀 시켜줘.""몇 번 소개하려고 했지. 근데 쟤가 싫대."
나는 죄인이 되어 멋쩍게 웃었다. 왜애?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니, 없어."
교수님이 들어왔다. 너는 나를 빤히 보았다. 마치 내가 네 것을 훔쳐라도 갈 것처럼. 맹세코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네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5년 우정을 한순간에 부정당한 느낌이라, 나는 너를 싫어했다.
4.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발표도 잘하잖아. 네가 조장하면 되겠다."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이 너를 지목했다. 너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그게. 이 과목 잘 알지도 못하고. 그애가 밝게 입을 열었다. 얘 엄청 똑똑해요. 잘할 거에요!
할 말을 마치지 못한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할 거지? 네 이름 적어서 낸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선배가 밝게 말했다. 결국 네가 힘 없는 짓는 웃음이 거슬려서, 나는 너를 싫어했다.
5.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열 시, 도서관에서 너를 봤다. 초조해보이는 얼굴. 여기서 뭐해? 집에 안 가? / 너, 선배 이메일 받았어?
졸업을 미룬 선배에게는 당연히 취직이 조별 과제보다 중요했을 테다. 잠수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옆자리에 앉았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제법 정갈했다.
"내일 아침 발표잖아. 어떻게 할 거야?"
너는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해야지.""남자친구가 안 도와준대?""내일 쪽지 시험이래."
그랬던가.
시간이 갈수록 너는 내게서 경계를 푼 듯했다. 아마 그애가 몇 번이나 확신을 주었겠지. 내 취향 아니야, 하고.
그리고 그만큼 그애는 내게서 멀어졌다.
"도와줄까?"
크지 않은 눈이지만 동그라질 줄은 알았다.
"도와줄게.""아냐, 괜찮아. 너도 피곤하잖아.""선배 것만 조사하면 돼?"
너는 주저했다. 망설였다. 노트북 옆의 레드불이 눈에 들어왔다. 레드불 세 캔은 마셔도 내 도움 한 조각은 받기 싫다는 거겠지.
굳이 네가 좋은 일만 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조별 과제 점수는 내게도 중요하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럼, 여기만 요약해줄래? 고마워."
우물쭈물 힘없는 눈웃음이 애처로워, 나는 너를 싫어했다.
6.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그럭저럭 발표를 잘 했다. 그애는 무척이나 뿌듯해했다. 내 여자친구 짱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전날 완성한 것치고는 제법이었다.
네가 자리로 돌아왔다. 선배가 웃었다. 수고했어. 너는 선배를 쳐다보았다.
"진짜 미안해, 어? 근데 너희도 졸업반 되어봐. 정말 너무너무 바빴어. 이거 마셔, 후배님."
어쩜 저리 뻔뻔할까. 그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야? 왜? 너는 웃어주었다. 마치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웃었던 것처럼. 감사합니다, 하고.
비굴해.
네가 비굴해 보였다. 세 시간의 노고를 캔커피 하나로 치환하는 선배도 별로였지만, 그 치환을 받아들이는 너도 별로였다.
"어제 얘 도서관에서 밤샜어요, 선배. 캔커피로 되겠어요?"
네가 고개를 돌렸다. 어제의 그 눈. 동그라진 작은 눈. 네 얼굴마냥 동그란, 그 눈. 네가 고개를 돌려, 그 눈으로 나를 봤다.
"그랬어? 아아, 미안해라. 내가 밥 살게, 응?""아니에요. 저 혼자 한 것도 아니고.""둘 다 사줄게.""전 별로 얻어먹고 싶지 않네요. 그 돈으로 얘나 더 사주세요. 진짜 고생했는데."
네가 내 소매를 잡았다. 어우야, 왜그래. 갈고리 모양의 손가락. 네 손가락은 참 통통했다. 하얗고, 통통했다.
"성격하고는. 돈까스 사줄까?"
너는 네, 하며 활짝 웃었다. 마치 돈까스가 랍스타라도 되는 것마냥. 바보. 멍청이. 머저리. 호구. 그 눈웃음이 아까워, 나는 너를 싫어했다.
7.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심심해 ㅜ_ㅜ
그애가 오지 않은 날이었다. 그 애가 공책을 가리켰다.ㅕ 오밀조밀한 글자 옆에는 우는 이모티콘이 그려져 있었다.
풋. 나도 모르게 웃으며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입에 바람을 불어넣은 채 책상에 고개를 파묻던 너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헤 웃었다. 바보처럼.
공부해너도 안 하잖아! `O&'
그건 그렇지. 너는 다시금 웃었다. 아아, 그애를 이렇게 꼬셨구나. 왠지 5년지기 그애가 떠올라, 나는 너를 싫어했다.
8.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상당히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쓸모 없는 소리를 지껄이곤 했다.
"그래서 얘가 알바로 아르벨로아야. 잘생겼지?""모르겠는데.""왜! 완전 잘생겼잖아!""네 남친보다?""응!"
그에가 너를 쳐다보았다. 너는 헤헤 웃으며 그애를 끌어안았다. 우리 애기, 질투해? / 아 저리가.
너는 연예인도, 드라마도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축구 선수를 보여주곤 했다. 박지성은 안다는 내 말에 너는 폰을 꺼내들었다. 우리 팀 선수들 완전 잘생겼어, 하고.
"역시 얼굴로 축구 보는 거였어.""얼굴로도 보는 것뿐이야!"
얼굴만 보는 것 같은데. 네 폰에는 수많은 선수들이 있었다. 이 수많은 사진 중, 그애와 찍은 사진은 없을까. 왜? 나라면 ㅡ 어쩐지 못마땅해, 나는 너를 싫어했다.
9.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있잖아, 전 여자친구는 어땠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나는 너를 쳐다봤다. 아니, 그냥. 미트볼을 콕콕 찌르며 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 나 말구 다른 여자친구도 소개받은 적 있어?"
약간은 무심한 듯 여상한 표정. 너는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언젠가 너는 호날두가 울리고 싶은, 어쩐지 억울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말한 덕이 있었다. 너 역시 그런 얼굴을 갖고 있었다.
"걘 날씬한 여자만 좋아했지. 키 크고 날씬한 애들.""에? 내가 처음이랬는데?"
네가 고개를 들었다. 또, 또. 저 동그란 눈. 나는 짐짓 말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때도 몇 명 있었지. 인기 많았거든.""뭐야. 너무해."
쿨하던 표정은 어디 가고, 어느새 화난 표정이 어쩐지 재밌어 나는 웃고 말았다. 네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 날 봤다.
"농담이야. 여자친구 소개받은 거 네가 처음이야. 내가 알기론 네가 첫 여자친구 맞을 걸?""뭐야, 근데 왜 그런 말을 해? 진짜야?""그냥, 괜히 놀리고 싶어서? 너 질투했냐?"
아니거든?! 네가 삐이 소리를 질렀다. 옆 테이블의 손님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너는 붉어진 볼을 물컵으로 가렸다.
"그러는 너는? 걔가 몇 번째 남자친구야?""열두번째.""뭐?""흥."
너는 스파게티를 포크로 휘저었다. 어리기는. 그 어린 모습에서 진짜 감정이 느껴져, 나는 너를 싫어했다.
10.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애는 제멋대로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쭈욱. 너를 만나 잠시 달라졌을 뿐, 제자리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애와 연락이 적어진 만큼, 나와는 연락이 늘어났다. 네게 있는 유일한 친구라고는 나뿐이었으므로.
너에게는 여자친구가 많지 않았다. 당연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데다, 가슴도 컸다.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제법 반반한 수준은 됐다.
더군다나 공개연애를 한 후, 그나마 있던 남자인 친구들까지 사라졌단다. 네 하소연은 제법 귀여운 데가 있었다.
"근데 너 시간 괜찮아?"
마치 친구라곤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던 것처럼, 너는 내게 계속해서 물었다. 괜찮다니까 / 아니 그래도, 너무 자주 보니까.
"왜, 막상 얼굴 보니까 재미없냐?""아니, 그게 아니고! 난 좋은데, 너 바쁜데 억지로 불러낸 것 같아서.""내 친구가 안 놀아줘니 나라도 놀아줘야 네가 이상한 생각 안 먹지. 안 그래?"
너는 멋쩍게 웃었다. 그렇지, 뭐. 뭐가 그렇다는 것인지. 너는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뭘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애와 그렇게 안 좋은가. 어쩐지 마음에 걸려, 나는 너를 싫어했다.
11.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헤어졌어."
이별 선언에는 적합한 시간대였다. 크리스마스 종소리마냥, 어쩐지 기다렸던 소리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천천히 올려다보는 눈이 아련한 대로 젖어있었다.
"어쩌다가."
한참을 망설이다 고작 내뱉었다. 너는 힘없이 웃었다.
"그냥."
여자들은 왜 그냥이라는 말을 할까. 전혀 알아듣지 못할 단어. 너는 그 단어를 말하고는 꺾인 꽃마냥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응."
천천히 네 앞에 섰다. 네가 아기마냥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 진짜 괜찮아 / 그래.
네 머리를 쓰다듬자, 네가 내 품을 더 파고들었다. 괜찮아. 옷이 젖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네 머리카락에서는 그럭저럭 달달한 향기가 났다.
"진짜 좋아했는데."
머리를 지나쳐, 네 허리를 쓸어내렸다. 처음이었어. 잦아드는 목소리. 너는 한참이나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미안."
네가 천천히 나를 놓았다. 왜 놓았을까. 네가 고개를 떼어냈다. 왜 떼어낼까.
그리고, 네가 웃었다. 나를 처음 봤던 그때처럼.
네 표정이, 네 눈빛이, 무언가 가슴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
가지마. 너는 가방을 챙겼다.
"정말 괜찮아?"
애써 웃던 네가,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나, 진짜 괜찮은데."
네 머리를 다시금 끌어안았다. 너는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다시금 한참을 울던 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 나 진짜, 사실은 너 안 좋아했는데. 둘 사이 의심하고 그래서, 나 정말. 그래도 너랑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쉬이."
네가 나를 올려보았다.네가 나를 보았다.
나는 네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괜찮아.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머리를 넘기자 이마가 드러났다. 괜찮아, 괜찮아. 시선을 내리깐 네가 다시금 울었다.
너는 웃는 얼굴이 우는 얼굴보다 예쁘구나.
그 깨달음이 어쩐지 벅차올랐다. 하필이면 너는 웃는 얼굴이 우는 얼굴보다 예쁘구나. 하필이면 네가 그렇구나. 손을 멈추고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네가 시선을 올렸다.
나는 천천히 네 이마에 키스했다.
그 동그란 눈. 네 얼굴만큼이나 동그란 눈. 네 미소만큼이나 동그란 눈. 그 눈이 마음에 걸려, 나는 그애를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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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칭대명사를 조금 혼용하여 써서
읽기 힘든 측면이 좀 있습니다
이 글 쓴 사람이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여자이고
너= 친구의 여자친구 입니다
화자: 여자
그애: 5년지기 남사친
너: 그애의 여자친구
저도 처음에 그렇게 읽었는데 계속 내려갈수록 혼동이와서...;
내려갈수록 그애와 너를 혼용해서 써서 그래요
정확히말하면 7번
고난도지문임ㅋㅋㅋ
백합물인가여...?
ㅋㅋㅋㅋㄱㅋㅋ그런듯요...
아뇨 아닙니다
흠 제가 이마의 키스를 잘못 해석한건가요... 뭐징
여자랑 여자랑..?? (동공지진)
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