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수능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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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이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솔직히 아무 느낌 없었다.
이제야 좀 후련하더라.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
수능수능수능,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던 그 수능.
작년까지 여운이 남길래 그러려니 했다.
3년 시험 봤으니 3년동안 여운 가는 게 당연했고
작년에는 고3 과외까지 맡았으니 더더욱 그럴만 했다.
작년을 끝으로 과외를 그만두고부터는
일부러 입시판을 멀리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과거에 했던 일을 되돌아 보기 보다
현재와 미래에 해야할 일에 집중하기 원했다.
주변에 수능치는 친척도 지인도 없었기에,
수능과의 이별은 꽤나 완벽했다.
나의 일방적 통보이긴 했지만
나름 이 정도면 괜찮은 이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잊히듯이,
수능은 점점 내 의식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 오늘, 그 날 밤의 기억이
나를 4년 전으로 다시 데려갔다.
그 지긋지긋한 수능이란 놈이 다시 나를 찾아와서
기어코 또 내 등을 툭툭 쳤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가 지나가길 바랐는데.
4년 전 오늘, 딱 이 시간이었다.
나는 수능 시험 때마다
수험표 뒤에 번호를 빼곡히 적어왔다.
에이, 그거 적을 시간에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야지,
했지만
그거 적는다고 틀릴 문제 맞추고
맞출 문제 틀리는 건 아니었다.
괜히 찝찝하게 답을 기억해내려고 애쓰기 보다는
내 손으로 직접 써온 숫자를 믿는 게 더 편했다.
특히나 재수 삼수 때는 불안과 불확실함이 커서
이런 자잘한 가답안 쓰는 것으로라도
불안을 달래야했다.
어쨌든 재수와 삼수 때는 가답안 채점을 꼭 밤에 했다.
지난 수험생활을 정리하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불성실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다가올 미래에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부모님은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아들에게 고기를 푸짐하게 먹이고 일찍 들어가 주무셨다.
드디어 혼자가 됐다
적막이 흐르고 풀렸던 긴장이 다시 내 몸을 쪼여왔다.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컴퓨터 책상에 앉아 수험표 뒷장을 펼치고는 거침없이 채점해나갔다.
다 매긴 가채점표를 봤다.
저번보다 잘봤네, 설마 틀리게 매긴 건 없겠지?
또 눈알 돌리며 비교해본다.
재검토까지 완료했다.
"끝났구나. 또 끝났구나. 벌써.. 끝났구나.
이제 정말, 끝나겠구나."
그렇게 정말로, 내 수험생활은 끝이 났다.
물론 논술도 보고 정시원서도 썼지만
더 이상 입시를 위해 수능을 보는 일은 없었다.
왜 이 밤에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모르겠다.
왜 수능이란 놈은 아무 생각없이 일찍 자려고했던 나를 건드려 글을 쓰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건 확실하다.
수능이 섭섭했나보다.
느닷없이 이별을 고한 내가 미웠나보다.
수험생활을 정리했던 그 날 밤처럼
수능과의 만남을 정리해야 하는 밤인가보다.
그래야, 이 길고 질긴 인연도 끝나나보다.
언제 다시 볼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 놈을 찾을지, 이 놈이 나를 찾을지
그것도 모를 일이다.
오늘만큼은 용기내어 말해야겠다.
"너 때문에 노력을 알았노라고,
너 때문에 뭐든지 끝이 있는 법이란 걸 알았노라고,
너 때문에 나 지금 여기 서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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