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봄_ [666660] · MS 2016 · 쪽지

2016-06-21 01: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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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나무숲 글( 수험생들은 꼭 읽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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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4

2016. 6. 19 오전 5:25:51
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23년간의 고마움과 미안함을 어떻게 모두 이 종이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늦추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

어머니! 기억하십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수학여행을 간다고 동대문 시장으로 저를 데리고 가셔서 5000원짜리 곰돌이 셔츠를 사주셨습니다. 당신께서도 귀여운 옷을 좋아하셨기에 같이 사자고 떼를 쓰던 저의 모습을 보면서 한 시간을 살까 말까 고민하셨던 당신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저는 그 5000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자신하나 그 옷을 사지 않으면 그 돈으로 누나와 저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줄 수 있기에 머뭇거렸음을 저는 몰랐습니다.

어머니! 알고 계셨습니까? 제가 중학생일 때, 저는 누나의 문제집을 물려받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푸는 방식과 답이 모두 적혀있는 문제집이 싫어, 문제집 살 돈도 없냐며 소리를 지르고 집을 나갔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왔을 때 그 문제집이 모두 지워져있었고 물집 잡힌 손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마음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저는 그때 다짐을 했었습니다. “공부를 하자 공부를 하자 나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저는 왜 이렇게 철이 없었을 까요? 어머니의 마음에 멍 하나를 만들고 서야 저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이 생각납니다. “엄마가 내세울 것이 뭐가 있겠니? 너랑 누나가 공부를 잘해서 엄마는 떳떳하게 다닐 수 있단다.”

어머니! 제가 입대한지도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훨씬 지났습니다. 혹한의 추위로 얼어붙었던 이 곳 철원의 땅에도 절대 녹지 않을 것 같던 눈이 녹으면서 생명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이란 참으로 신기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군화발로 밟고 지나간 곳에서 억새풀이 자라나면서 꽃이 피었고 매일 마다 예초를 하지만 다음날에는 또 그만큼의 수풀이 우거져 있습니다. 수 많은 일개미들이 떼를 지어서 자신의 수 십배에 해당하는 풍뎅이를 옮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 생물들이 자신만의 삶을 분주히 꾸려가고 있는 곳 같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세상의 역경과 시련 속에서 그렇게 자식들을 위해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어머니! 오늘은 신병들의 수료식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전투화에 광을 내고 베레모에 각을 잡으며 멋을 내었던 1년 전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봅니다. 이등병 계급장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훈련병 시절을 이겨내고 받았던 짧은 면회는 그 어떠한 포상휴가보다도 값진 것임을 기억합니다. 오늘 신병교육대에는 쓸쓸히 플랭카드만이 걸려있습니다. 자식을 두고, 다시 떠나가야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모두 모여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바람에 펄럭이는 플랭카드가 더욱 외로워 보입니다.

어머니! 다음주에는 40km의 야간행군이 있습니다. 20kg의 군장을 들고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는 것은 제 인생에 가장 힘든 경험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언제가 제일 힘이 드셨습니까? 누나가 재수를 하고 제가 고3이 되던 해,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철의 여인이 되셨습니다. 저와 누나가 다니던 학원의 카운터에서 새벽부터 일하시고, 오후에는 선풍기하나 아니 바람들어올 구멍 하나 조차 없는 어린이집의 조리사로 일을 하셨습니다. 소금에 절여진 숨죽은 배추같이 땀에 절여진 어머니의 등에서는 쉰내가 났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당신의 노력과 사랑을 제가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을까요? 이번 40km의 행군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걷겠습니다. 어머니가 걸어오신 그 무거운 인생의 짐을 저도 함께 짊어지겠습니다. 어머니! 밤바다 홀로 비추는 외로운 등대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가시고기와 같은 삶을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23년간의 어깨에 짊어지었던 삶의 무게를 저와 저의 가족과 나누십시오. 어머니 수만 마리의 청어 떼가 무리를 지어다니며 돌고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맹금류의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철새는 함께 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이제는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저와 아름다운 선생님으로 성장한 누나와 어머니를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는 아버지가 함께 청어가 되고 철새가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여 다른 공간에서 저와 어머니는 같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살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바뀌어도, 항상 떠있는 해와 같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저의 마음도 항상 가슴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여, 다시 한 번 목놓아 외쳐봅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출처 : 서울시립대학교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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