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끝나고 뱃살 뺀 이야기: 20살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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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끝나고 뱃살 뺀 이야기: 20살의 선물
수능 끝나고 비염 치료를 하기 위해 한의원에 갔다. 그때 똥이 잘 안 나오는 것도 말씀 드렸다. 선생님이 내 배를 보시더니 확실히 똥인지 아닌지 x-ray를 찍어 보라고 하셨다. 90% 똥이라는 이모의 말과 내 스스로 확신이 있어서, “똥이겠지요~” 하며 설렁설렁 넘어갔다.
이렇게 똥배 똥배 거릴 만큼 내 뱃살은 흘러넘쳤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내 배는 귀엽고 동그랗게 많이 나왔다며 (임산부와 비슷하다며) 틈만 나면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조카야~ 이모가 기다리고 있어! 언제 나오니? 베이비~~” 저번에 이 친구가 엘리베이터에서 이 만행을 저질렀는데, 앞에서 지켜보던 모르는 아줌마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줌마 그게 아니라요. "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몇 번 한의원을 가던 중 한의사 선생님이 내가 논술까지 완벽하게 끝났다는 소식을 접하셨다. 그리고 강력하게 옆에 내과에 가서x-ray를 지금 바로 찍어 보자고 하셨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서 x-ray를 찍었고, 내과 선생님도 똥인 것 같은데 초음파는 그냥 한 번 봐 줄게요. 하면서 초음파를 봤다.
진료실 옆의 어두운 방에서 초음파를 보는데 의사쌤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에 심각심각초심각 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초음파를 보면서 물혹이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몇 개 있어요?” 라고 여쭈어 보았는데 “한 두 개가 아니에요.”라고 하셨다. 이때부터 나는 몸속에 커다란 걱정을 품게 되었다. 빨리 큰 병원으로 가서, 이 혹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당황하는 게 보였는지 의사선생님은 차분히 호흡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헐. 그럼 암 이에요?” 라고 질문했는데, “나이가 있으면 그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어리니까... ” 하시며 단순한 물혹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 전화통에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이모에게 전화해서 병원을 알아보셨다. 아빠에게 상황을 알리고, 이모가 가라는 병원으로 출발했다. 이모는 내과 의사선생님 이상하다고 어떻게 혹의 기원을 모르냐면서 산부인과에 가서 다시 한 번 초음파를 보라고 했다. 이모가 알려준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봤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초음파 화면을 보고 흥분을 하고 난리였다. 너무 커서 출발점을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난소 쪽인 것 같은데 혹이 배꼽까지 다 차서 볼 수가 없다고... 그리고 즉시 이모에게 전화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용어로 블라블라 하셨다. 그때 딱 하나 아는 단어가 나왔다. “*** cancer 인 것 같은데, 병원은 아무래도 아는 사람 있는 대학 병원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때가 내 인생에 가장 큰 정신 파괴 사건이다. 내가 암이라고? 켄서어어어? 나의 정신은 붕괴되고 있었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옆에 간호사 선생님이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괜찮다고 위로하셨다.
그리고 이모 병원으로 다시 갔다. (며칠 전까지 만해도.. 점 빼고 하하 웃던 곳이었는데) “이모 켄서라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했더니 이모가 팔을 걷으며 자기 팔에 있는 툭 튀어나온 혹을 보여주면서 “조카야 이런 것도 켄서라고 한다. 괜찮다. 별거 아니야~”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게 없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대학 병원은 다음날 가기로 하고 우선 집으로 갔다. 집에 가는 길에 외삼촌이 전화가 왔다. 엄마가 이때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데 그걸 다시 듣고 있자니 힘들었다. 그리고 외삼촌이 나를 바꾸라고 해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어디 아플 때 외삼촌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안 죽는다. 이다. (토하면 굶어라 이런 게 끝임) 근데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를 안하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말을 하는 거다.
“암도 종류가 많고 세상에 별거 아닌 암도 많다.”
“아직 확실하게 모르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라. 사실 외삼촌도 조금 놀랬다.” 등등
내 목소리가 이상해서 외삼촌이 우냐고 물어 봤을 때 울기 30초 전이야 라고 대답하며 통화를 마쳤다. 집에 가니 아빠 얼굴은 말이 아니었고 나는 소파에 침울히 앉아있었다.
이때까지 내 배를 똥배라고 놀린 이들에게 심각한 사실을 전해주며 저녁을 보냈다. 다음날 양산 부산대 병원 송용중 교수님께 갔다. 기다리고 있는데 훈훈한 레지던트 쌤이 오셔서 여러 질문을 하셨다.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팠는지, 언제부터 배가 나왔는지 등등
“사실 저는 아프지도 않았고, 수능 전날 하루 아팠고, 배는 한 5월부터 나왔던 것 같은데 그때 제가 많이 먹어서 다들 뱃살인 줄 알았죠. 하루에 4끼 이상 먹었거든요.” 라고 대답했다.
대기하다 내 이름을 불러서 방에 들어갔다. 진료는 별게 없었다. 일단 검사를 해 보는 것이었고, 의사 쌤이 배를 한 번 보고 만져 보셨다. 별 말씀 안하셨는데 표정이 딱딱한 것 같았다. 그리고 피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검사를 했다. 오후에 ct를 찍었다. 주사 바늘을 꼽고 물을 4컵 마시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시티 방으로 갔다. 찍어 주시는 의사쌤이 친절하셨다. 내가 무섭다고 하니까 자기가 안 무섭게 생겼지 않았냐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숨 참으라는 소리 들리면 숨만 잘 참으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누웠는데, 숨 쉬는 그림이랑 참는 그림이 있었다. “숨 참는 그림에 불 들어오면 숨 참을까요?” 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나보고 똑똑하다면서 그걸 말하는 사람은 100명 중에 1명이라고 하셨다. 전혀 관계없지만 그런 추세로 가다가, 100명 중에 1명 걸리는 암에 걸릴 까봐 걱정이 되었다. (보통 때라면 똑똑하다고 칭찬 받아서 실실 웃고 있었을 텐데)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모가 ct 결과가 안 나온단다. 외삼촌은 찍고 바로 보는 게 ct인데 그걸 왜 못 보냐며 어이없어했다.나는 결과를 듣는 것도 무섭고, 결과가 안 나오는 건 결말이 안 좋을 조짐일 것 같아서 이상했다. 머리로 생각하면 아무 관계없는데,하나하나 신경 쓰였다. 아빠는 외삼촌이랑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전화를 했고 엄마는 천하태평이었다. (전화만 많이 하고 있었음) ct는 병원에 전산 장애가 일어나서 못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상한 기분에 잠긴 나는 집중할 거리를 찾아 서점으로 향했고, 책 한 권과 색칠하는 걸 샀다. 서점으로 걸어가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주사 맞고 피 뽑고, 수술하고 그것도 싫은데 만약 암이면 감당하기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또 엄마랑 아빠는 슬퍼할 것이고, 나는 그 억울함을 어떻게 견딜까 싶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죽으면 엄마랑 아빠는 큰 상심에 잠긴 채 남은 세월을 사실 거고, 나는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혼란스러웠다.
또 허벌나게 아플 것도 걱정이었다. 휴 여러 가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을 실컷 했다. 내가 게을러서 할 일을 잘 미루는 성격인데... 내가 한 가지 절대 연기 못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걱정’)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늦잠을 잤다. 그리고 아빠가 나를 깨웠다. 아침에 드디어 ct가 떴단다. ct 상으로 혹이 양성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빠가 좋아서 집까지 뛰어와서 결과를 알려주셨다. 다행이다 싶었다. 살면서 이런 안도감은 또 처음이었다.
이모가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토성동 부산대병원으로 옮기자고 하셨다. 거기에 잘하는 쌤이 한 분 계시고, 양산은 한 다리 거쳐서 정보를 들어야 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요일에 입원을 하기로 했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러면 일요일 저녁에 친구랑 아이유 콘서트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마음에 밝은 기운이 살아났다.
드디어 일요일이 밝았다. 아이유 콘서트 가기 전에 엄마랑 차를 타고 어디를 갔다. 근데 내가 피 검사 결과를 묻고 걱정을 시작했는데 엄마는 나를 놀리고 있었다. “어유 암일까 봐 걱정이 되는 가봐? 암이면 어쩌려고” 이런 식이었다.
더 해서 암이면~ 뭐 별거 있나! 계속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암일까 봐 힘들어 죽겠는데, 엄마는 천하태평이고 그런 나를 비정상으로 봐서 힘들었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그렇게 하니까 눈물이 나왔다. 그만 놀려 라고 하고 이모에게 전화해서 내 배에 정확한 정보를 들으려고 했다. 근데 이모가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수술해서 배를 열고 확인해야 확실하다고 했다. =그 말은 즉, ct는 양성인 것 같아도 수술하면 암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ct결과를 듣고 느낀 안도감은 저 멀리 사라지고, 다시 불안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유 콘서트는 중요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다이어트를 한다. 그래서 콘서트 장 앞에서 감자를 함께 먹고, 입장했다. 콘서트를 제일 앞자리에서 보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예쁜 아이유를 감상했다. 난생 처음으로 제일 앞자리에서 가수와 눈을 마주치며(손도 잡음) 듣는 콘서트라 설렘이 남달랐다. 그리고 감동도 대단했고, 노래에 온 세포가 즐거웠다. 아무쪼록 일반인으로 사는 일요일 밤을 보냈다.
일요일 저녁에 집에 와서는 침울했다. 내일 병원에 가서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가 결정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사 맞는 것도 싫은 데 수술까지는 무조건 해야 하고 (ct상으로 혹이 너무 크단다. 그래서 시티에서도 혹의 기원을 못 찾았다.) 그 뒤에 더 나쁜 결과가 있을 지도 몰랐다. 이런 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월요일 아침에 입원할 것을 다 챙겨서 병원으로 갔다.
서동수 교수님께 진료 보려면 어디로 가나요? 라고 물어봤다.
직원분이 안내해 주신 곳으로 갔는데
병동 이름이 ‘암센터’였다.
속으로 식겁했다. 가족들이 짜고 나를 속이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엄마가 또 놀렸다. 그때 외삼촌이 전화 오셔서 여기 암센터라고 무섭다고 말하니까 “니가 암이라서 가는 게 아니라 교수님 일정에 맞추어서 가는 거다.” 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괜히 무서워하는 게 많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ct 찍을 때 몇 천 명에 한 명은 죽는다고 한다. 근데 그걸 들으면 몇 백 명 중 한 명은 안 찍는다고 한다고... 나보고 괜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긴장되는 마음을 붙잡고 엄마랑 이런 저런 웃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접수대에서는 4시간이나 기다리라고 했는데, 금방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들어가서 “교수님 저는 수능 날 보다 지금이 더 떨려요.” 라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초음파를 또 보았다. 화면을 보시며 ‘혹 껍데기가 균일한데 이런 경우는 양성일 가능성이 높다.’ 고 하셨다. 그러고 웃으시면서 “너가 공부하느라 혹 크기를 키운 것 밖에 없네. 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대학병원 오기 전에 만난 흥분 쟁이 선생님들보다 훨씬 차분하셨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편했다.그리고 혹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다.
혹이 커다랗게 있고, 그 가에 방들이 나누어 져 있다. 그 위에 물혹 또는 찐득이로 이루어 져 있다. 물이면 터트리면 되니까 금방 제거하는데, 찐득이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그리고 혹의 종류는 양성, 경계성, 악성으로 3개가 있다. 양성일 확률이 가장 높고, 경계성 암은 20~30% (이건 경계에서 열심히 번식하는 종류이다.), 악성(암!)일 확률은 5%다.
드디어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주어졌다. 그래서 마음을 추스르고, 아빠, 이모, 외삼촌에게 결과를 알려 주었다. 걱정이 덜 되었고, 바로 입원실로 갔다. 병원에 가서 검사할 수도 있어서 굶고 있었다. 오후 4시까지 굶었는데, 월요일에 mri 를 못 찍는다는 소식에 밥을 먹었다. 일요일 밤 6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그 때 먹은 밥이 주는 느낌은 새로웠다. 밥 먹는 걸로도 행복할 수 있음을 몸소 배웠다. 식당가서 음식 나올 때까지 못 기다리겠어서, 중간에 빵을 사서 갈 정도였다.
화요일에는 사촌오빠가 와서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친구가 매떡을 사와서 같이 먹었다. 친구가 와줘서 재밌었고, 친구 영어 숙제를 같이 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리고 간호사 쌤이 갑자기 링거를 가지고 와서 맞자고 하셨다. 내가 깜짝 놀라면서 “왜 맞는 거예요?” 라고 물었다. 저녁에 mri 찍는다고 맞아야 한다고 하셨다. 목요일 저녁에 mri 찍는다고 했는데, “안 맞으면 안 돼요?” 라고 물어보았다. (이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랬는데 생각해보니까 좀 진상인 것 같다.) 간호사 선생님이 스케줄 확인하시고(목요일이 맞음) 링거는 맞기 싫어서 안 맞는다고 했다. 그 후에 간호사 쌤이 눈만 마주치면 주사 놓아 버린다며 장난을 치셨다.
수요일에는 병원에 있어서 그런지 이유 없이 배가 아픈 것 같더라. 막 문제가 있는 것 같고, 혹이 더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이모가 일 안하는 시간이라 병원에 왔고, 샴푸를 가져다 주셔서 샤워를 했다. (이때는 몰랐지 이 이후에 언제 샤워할 수 있을지...)이모는 비싼 주스들이랑 레몬 청을 선물로 주셨다. 쪼르륵 세워두는데 뿌듯하더라.
이모가 교수님을 만나고 오셔서 피검사에 뭐가 나와서 수술 못하고 있었다는 걸 전해주었다. 어릴 때 나도 모르게 뭔 바이러스에 걸려서 그걸 확인하는 중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했다. 이날 수능 성적표는 나왔고, 같이 공부하던 언니도 병문안을 와서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적을 보니까 생각치도 못하게 잘 나왔다.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결과는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언니가 가고 나서 산책을 하며, 수능에 대해 생각을 했다. 처음보다 장족의 발전을 이루긴 했지만 내가 수능 준비를 하는 과정이 너무 아쉬웠다. 진심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만약 지금이 암이면 이렇게 대충 살아서 어떤 후회를 하며 죽을 지 몸서리치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내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다. 이게 가장 안타깝다.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데! 게다가 엄마아빠 포함 주변 사람에게 노력하며 뭔가를 하는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후회스러웠다. 터벅터벅 걸어서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이 사건이 잘 마무리 되면, 마음가짐을 바꾸어서 삶을 이끌어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였다.
수술은 금요일이었고, 내일 mri 찍고 한다고 수요일 저녁부터 이상한 밥을 먹었다. 웬 미음이었는데, 맛이 없어도 이렇게 심각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안 먹었다. 그리고 나중에 눈물 나게 배고팠다. 목요일 오전에는 외래로 가서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교수님이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알려주셨다. 복강경으로 수술하고 구멍을 3개를 뚫는다고 했다. 하다가 안 되면 배꼽 위아래로 찢는다고 하셨다. 혹을 응급조직검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술이 조금 달라질 것이라 하셨다. 응급조직검사 결과가 오류 날 확률이 10% 정도 있는데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하셨다.
양성이면 그 혹만 때낼 것이고 경계성이면 맹장이랑 어떤 것도(기억이 안남) 없앤다고 하셨다. 악성이면 난소도 제거하고 배 안에 점 같이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검사한다고 하셨다. 또 교수님이 내 나이는 난소를 무조건 살린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교수님은 양성일 확률을 아주 높게 잡으시고 악성일 확률을 낮게 잡으셨다. 수술은 로봇수술 다음으로 2번째 타임이었다. 3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라 하셨다. 교수님은 암 수술이고 큰 수술을 많이 해서 교수님에게는 작은 수술이지만 학생에게는 범위도 넓고 큰 수술이라 하셨다. 그리고 혹 무게만 1~2kg 될 거라고 수술하면 살 많이 빠질 거라는 기쁜 소식도 들었다. 링거가 들어가서 좀 찌겠지만 유지만 잘하라고 하시더라.
옆방으로 옮겨서 레지던트 선생님과 동의서를 썼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미성년자임으로 엄마가 사인하셨다. 나는 동의서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배가 고팠으므로 밥은 도대체 언제 먹을 수 있는지를 자세히 여쭈어 보았다. 보통 수술 후 2일이라는 말에 고통의 끝이 너무 멀다는 생각만 했다. (거의 4일을 굶는 것이다.)
저녁에는 mri를 찍었다. 조영제 부작용 때문에 동의서를 쓰러 오는 순간부터 mri를 찍는 게 걱정이었다. 그래서 잔뜩 긴장했는데,잘 찍었다. 몸이 뜨거워지기도 질 수도 있다던데 괜히 걱정해서 심장이 두근거린 것 말고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근데 막상 mir를 찍는 건 좀 무서웠다. 30분 정도 찍는데 소리가 다양하고 시끄럽게 들렸다. 규칙적인 기계음 같은 게 끊임없이 들린다. 딱딱딱 삐삐삐 띡익띠익 이런 종류.. 기계 소리 때문에 괜히 두렵다고 할까나.. 언제 끝나나 싶었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일이었다.
저녁에 교수님이 회진 오셨을 때 수술이 아침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알려 주셨다. 푹 자고 내일 아침에 보자는 교수님과 인사를 하며 기쁜 마음이 들었다. 수술이 몇 시간 앞 당겨졌으니까 그만큼 밥도 빨리 먹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즐거웠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수술 시간까지 공포에 떨며 기다리지 않아서 되서 다행이었다. 마취과 레지던트 쌤이 동의서를 받으러 오셨다. 마취하고 폐에 산소줄을 연결할 때 이가 빠질 수 있는 데 그게 기도로 넘어가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헐. 그래서 나보고 이 흔들리는 거 있는 지 물어봤다. 없긴 했다. 이가 빠질 정도의 충격이 있다면 마우스피스 같은 걸 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이도 안 떨어지고 부딪히는 힘도 줄어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장약을 먹었다. 물병에 4번 약을 타서 먹어야 한다. 굶은 지 꽤 된 시간으로, 물을 먹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그래서 룰루랄라 하면서 먹었는데, 그럴 게 아니라는 걸 곧 깨달았다. 물이 아니라 세제를 먹는 느낌이다. 토할 것 같이 울렁울렁 거린다. 나는 3병정도 먹다가 바지에 똥을 쌌고; 4병 끝에서는 토해버리고 말았다.
빵구 끼는 건 줄 알았는데 똥이었다. (어쩐지 심히 따뜻했다.) 나의 일화를 들으며 병실에 환자 아줌마들이 빵 터졌다. 나 말고는 전부 암환자들이었는데, 기쁨을 드릴 수 있어 감사했다. 토하고 나서는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옆에 침실에 아주머니들이 왜 관장할 때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하셨는지 알겠더라. 다행히 엄마가 옆에 계셨다. 수술 전날 불쌍한 나를 위해 병원에서 같이 주무셨다. 엄마에게 정말 감사하다. 나중에는 똥이 아니라 물이 나올 만큼 장이 깨끗해졌다.
잠을 잘 자고 싶었는데 몇 번 깼다. 그리고 아침이 왔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었다. 수술할 때 그렇게 해야 함 주사를 2방 맞았다. (분비물 억제 주사.) 도와주시는 분이 휠체어에 나를 태우고 수술방 앞으로 데려갔다. 나는 걸어가겠다고 했는데, 휠체어 타고 가는 게 규칙이라고 했다. 엄마랑 아빠가 다 와서 나를 지켜봤는데 마음이 뭐가 심숭생숭했다.
수술방 앞에서는 갑자기 똥이 마려웠다. 데려다 주신 분은 관장해서 똥 안 마려울 건데? 하며 갸우뚱 하셨지만 나는 진짜 똥마려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화장실로 갔다. 똥은 당연히 안 나왔고, 방구를 크~으게 꼈다. 수술 끝나고는 이걸 아껴서 수술 후에 꼈어야 한다며 후회했다.
수술방 안으로 침대에 누워서 들어갔다. 수술실은 추웠고, 그 이상으로 내 몸은 얼었었다. 긴장감이 온 몸을 엄습한다는 게 그런 상태일 것이다. 수술실 안에 복도에 누워있는데 뇌가 딱딱해진 것 같았다. 내 입장에서는 수술대가 최후의 심판대 같았다. 수술해 보면 암인지 단순 물혹인지가 판명날 것이고 결과에 따른 삶은 대충 짐작으로도 차이가 컸다. 역사 속 중요한 순간에 직면한 여러 인물들의 심정을 체험하며 수술방 복도에서 기다렸다.
교수님이 오셔서 긴장하지 말라고 하고 옆에 레지던트 쌤에게 이불을 더 덮어 주라고 하셨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방금 소독된 천을 덮어주셨는데 뜨뜻하니 좋더라. 그리고 이제 들어가자고 하셨고, 드라마에서 보던 온통 초록색인 수술방에 들어갔다. 팔을 묶고 맥박을 쟀다. 마취과 교수님이 오셔서 나보고 너무 긴장한다고 하셨다. 마취과 교수님이랑 이모랑 친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덜덜한 수술실에서 마취과 교수님에게 상당히 의지할 수 있었다. 그냥 심적으로 찰싹 달라붙은 것 같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대화하면서 뭐가 두렵냐고 물어보셔서 중간에 깨는 거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 일은 거의 없다고 당당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러다가 눈앞이 이상해졌다. 앞이 잘 안 보였다. 그게 마취한 건 줄 알았는데 맥박이 180까지 올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뇌에 피가 안돌아서 눈앞이 이상해지는 거. 보통 일 있을 때 사람들이 눈앞이 하애 지더라... 하는 느낌이 바로 그거다. 심장이 긴장하여 너무 빨리 뛰어서 나는 수술 못할 뻔 했었다. 근데 마취하고 나서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편안하게 나의 기억은 끊겼다. 일어났을 때 나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엄마랑 마취과 선생님이 보였고 다른 간호사 쌤도 있었다. 엄마를 보자마자 엄마 나 양성이야 악성이야? 를 물었다. 엄마가 “양성이래 양성!” 이라고 하셨고, 나는 믿을 수 없어서 “정말? 거짓말 아니지?” 라고 또 물었다. “응 진짜야” 라고 엄마가 말하셨다.
암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사실 수능 준비를 하며 내 스스로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진짜 암에 걸리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성적이 안 나오면 내 자신이 미치도록 미웠는데 그래서 암 걸렸을 까봐 걱정이었다. 그래도 양성으로 끝나서 다행이었다.
마취 깨어났을 때, 엄마는 내가 바보가 된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난동을 부려서 엄마는 호출 당해서 회복실로 오셨다. 첫 번째로 한 행동은 절대 눕지 않겠다고 때를 쓴 것이었다. 이모가 “너 수술하고 눕지 마라, 폐 기흉 온다. 무조건 침대 세우고 있어라” 라고 강조를 했었다. 이게 머리에 콱 박혀서, 수술 끝나고 난 순간부터 앉아 있어야 한다고 우겼다. 심지어 수술 끝나고 절대 눕지 않는 것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까지 했다. 엄마 말로는 의사선생님이 누워있으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말을 안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눕지 않기 위해 화장실 가야겠다고 말했다. 마취과 교수님이 오줌 봉투를 보여주시면서 이렇게 오줌 많이 쌌어! 라고 하신 장면이 기억난다.
두 번째 행위는... 말을 크게 하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두려움은 인식을 가로 막는다!! ” 이렇게 수술 전에 내가 몇 번 씩 들었던 말을 내 뱉었다. 회복실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나는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교수님 잘 생겼어요.” 도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마취과 교수님이 “나는 안 예쁘나?” 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마취과 이모도 예뻐요~” 라고 대답하고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그러면서 “제가 지금은 힘이 없어서 하트를 많이 줄 수 없어요. 그러니까 1개만 줄게요.” 라고 말했다고...
마취과 교수님이 “니 술 먹어 봤나?” 나는 방긋 웃으며 “네!”라고 대답했고 “딱 걸렸다 엄마 옆에 있다.” 고 말씀하시며 내가 술 취할 때 하는 행동과 비슷하다고 하셨다. 저 위에 말들을 혀를 꼬아가며 눈 풀린 상태로 했다고 보면 된다.
솔직히 나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런데 말을 많이 했던 것 같긴 하다. 엄마 말씀으로는 마취과 교수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고 한다. 마취할 때 심하게 긴장한 상태면 깨어날 때 나처럼 난동을 부리는데, 교수님이 내가 얼마나 긴장했을 지 생각하며 안타까워하셨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진짜 바보 되었구나.. 하며 외삼촌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외삼촌은 빵 터지면서 그거 원래 그렇다고 엄마를 안심 시켰고 지금 나는 멀쩡하다. 나는 수술 끝나고 답답해서 걷고 싶었다. 그래서 걸어 봤는데, 소변 줄이 불편해서 잘 못 걸었다. 수술한 날은 앉아 있었다. 몸이 불편했지만 특별히 아프지는 않았다. 힘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엄마가 무통 주사를 누르라고 하셨는데,절대 안 눌렀다. 마약성이라는 것도 이상했고, 옆에 아줌마가 그거 누르고 다 토했다고 해서 안 눌렀다. 간호사 선생님은 참을 수 없이 아플 때 누르라고 하셨는데, 모든 고통은 다 참을 만 했다. 엄마가 저거 10만원이나 하는데 좀 쓰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수술 끝나고 나왔을 때 같이 병실을 쓰던 아줌마들이 나보고 좀 이상하다고 발음이 센다고 그러셨다. 수술 끝나고 침대에 올라와서 내가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했는데, 그때는 말이 꼬였다고 하셨다.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술 끝나고 나서 노트북 켜서 카톡을 했는데 자꾸 오타를 내고 한국어 문법을 틀렸다. 나수술는끝나었다. 이런 식으로 평소에 안하던 실수 연발... 하루 지나니 이런 현상은 사라졌다.
그리고 수술 끝나고 오후에 손이 저렸다. 양손에 전기가 흐르른 것처럼 지잉지잉했다. 손목을 꽉 누르고 때면 피가 갑자기 통하면서 찌릿찌릿한 느낌?! 가만히 있으면 온 신경이 손으로 집중되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엄마가 이 증상을 알리셨고, 간호사 선생님은 레지던트 선생님께 연락을 하셨다. 레지던트 선생님은 나중에 교수님께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혹이 정말 컸기 때문에 몸 순환이 변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라고 하셨다. 몸이 약한 할머니들은 쇼크가 오기도 한다고 했다. 수술은 잘 되었고 내 배를 확인해보니 혹이 너무 커서 내 장기를 다 누르고 있었다고 한다. 혹은 30~40cm 의 크기였다.
그리고 양성이라는 걸 들었지만, 조직 검사 결과가 바뀔 확률이 10% 정도라는 걸 들었기 때문에 질문을 했다. "교수님 여기서 더 최악의 상황은 어떤 거에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부분을 조직 검사 한 거 말고 전부다 체크했을 때 경계성 암이 나올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럴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 하셨다. 나는 속으로 가족들과 교수님이 결탁을 해서 거짓말을 하는 게 최악의 경우겠고(암인 데 안 알려주는 건 아니겠지, 라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감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 교수님이 오실 때 마다 내 혹이나 몸 상태에 대한 말씀을 하나도 안하시고, 대학이랑 공부 이야기만 하셔서 내가 죽을 병이 아니란 걸 짐작했다.
토요일 아침에 소변 줄을 뺐고, 자유를 찾은 나는 열심히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많이 산책을 해야 방구가 빨리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방구를 잘 끼기 위해 평소에 방구를 빈번하게 끼는 친구보고 병문안을 와달라고 했다. 빵신을 영접해야 한다며.. 그 보상으로 토요일 저녁에 방구를 낄 수 있었다.
밤이라서 미음은 못 먹고 물을 먹을 수 있었다. 살면서 뭘 사도 이렇게 만족스럽긴 힘들 것이다. 한 며칠 굶다가 물을 먹는데, 그 행복감은 내가 가지고 싶은 걸 엄마 아빠를 조르고 졸라서 샀을 때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가 왔을 때 보다 기똥찼다. 앞으로 삶이 불행해 지면 한 3일 굶고 물을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우연히 쉽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했다.
다음날 미음-죽-죽-밥 순서로 먹을 수 있는데 이모랑 외삼촌이 빵구 나오면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고 했다. 장운동을 한다는 거니까~ 그래서 커튼 치고 간호사 선생님 몰래 먹고 싶은 거 다 먹었다. 들키면 진상 환자 된다고 커튼 꼭 치고 먹으라고 이모가 조언했다.
이때부터 그 다음 주 금요일까지 입원했는데 꿀 생활이었다. 원래 수술하고 하루 이틀 후에 퇴원하는데 나는 실밥 뽑고 가기로 했다. 엄마가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조금 가고 싶긴 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퇴원을 늦출 수 있을 만큼 늦추라고 했다.
수술 전에는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그것도 아니니까~ 밥도 맛있고~ 심하게 아프지도 않고, 노트북도 실컷 하고 살았다. 교수님 회진 오실 때마다 컴퓨터 하고 있어서 교수님이 그걸로 뭐 할 수 있냐고 물어보시기까지.. 수술 전에는 암 환자들끼리 대화하고 있으면(아팠던 치료들) 내가 저 고통을 격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예민했다. 그런데 수술 후에는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잠자는 것도 대박이었다. 내가 엄청 많이 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침에는 아침 먹고 의사선생님들이 오시니까 일어나서 인사하고 다시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점심 먹고 또 자고, 저녁에 자는 생활이었다. 12시간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자고 소독하러 선생님이 오실 때 항상 숙면 중이었다. 깨워서 미안해 하셔서 사실 12시간 넘게 잤다고 말씀드리고... 선생님은 나보고 수능 끝나고 와서 이렇게 많이 자냐고 물어보셨다. 수험생활을 갓 끝낸 사람으로서 잠이라는 위대한 로망에 푹 젖어 있었다.
게다가 친구들도 병문안을 오고 동네 이모들도 오셨다. 죽과 예쁜 아기와 함께 오셨는데, 기쁨 바이러스가 병실에 팡팡 터졌다. 애기는 말을 뒤집어지게 웃기게 하는 꼬마숙녀였고(5살이 이렇게 말을 잘할 수가 없다.) 이모가 사오 신 죽은 척박한 위장 공급품 중(병원죽 ㅠ) 한 줄기의 따스한 빛이었다.
이모랑 이모부는 내가 필요한 물건과 간식을 가지고 오셨다. 수술 후 생각보다 멀쩡한 나를 보고 이모부는 신기해하셨다. 나는 이모보다 이모부를 조금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모부가 나를 더 예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이모부랑 말하면 재미있다. 자주 대화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이모부가 오셔서 내심 기뻤다.
그리고 병문안 온 이모는 수술하기 전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모든 이모 친구들(의사선생님들)이 내가 암일 거리고 생각했단다. 왜냐하면 내 나이 때는 발견되면 거의 암이기 때문 시티상으로 양성으로 나와도 수술 방에서 조직검사하면 암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다. 그래서 내가 물혹으로 판명 났을 때, 이모가 조카 괜찮다고 전화하느라 바빴다고... 이모는 나보고 진짜 다행인 줄 알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걱정한 게 너~무 아깝다고 했다. 이모는 수술하기 전에 내가 암 일까봐 내 카톡에도 다 답장해주었다.(까칠하게 대하고 나중에 후회할까봐)
우리 외삼촌도 임신한 외숙모님과 함께 오셨다. 시조카 병문안이라니.. ㅠㅠ 숙모 와 주셔서 그만큼 감사했습니다. ㅠㅠ 안 그래도 숙모가 입덧이 심하셔서 살이 더 빠지셨는데, 힘들 것 같았다. 외삼촌은 와서 내가 달고 있는 링거와 침대에 걸려있는 종이이랑 배꼽을 열심히 보셨다. 또 그걸 꼼꼼하게 확인하는 만큼 내 수능 성적도 물어보고 갔다. 잘 친 것도 있고 못 친 것도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잘 친 것들을 먼저 말하라고 해서 신나게 자랑했다. 이건 관심 있게 안 듣더라. (그래도 조카가 잘 했는데 진하게 호응 좀 해주지.)
“근데 국어를 못 쳤어. 내가 생각해봤는데 수술대에서 180까지 맥박이 뛴 거랑 국어 직전이랑 상황이 비슷했어. 근데 긴장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대처했으면 좋았을 텐데, 무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 이게 원인인 것 같아.”
"니는 긴장 안했다고 치면 100점 나오나?!“ -여기서 나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음
“아니”
“그럼 긴장만이 원인이 아니잖아 좀 잘 생각해봐라. 아빠랑도 이야기하고.”
“응 알겠어. 외삼촌은 그렇게 했나?”
“(크게 미소를 지으며) 했지~~ 느그 아빠랑도 얼마나 대화를 나눴는데”
그리고 외삼촌이 아빠가 전화 와서 내가 암 일까봐 울었다는 것도 말해줬다. 아빠가 심각한 상황에서만 나에 대한 애정을 폭발시키지 말고 평소에 살갑게 대해주고, 나를 배려해주면 좋겠다. 우리아빠는 내가 암이 아니란 걸 알고 나서 병원에는 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하고 관심도 없었다. 쳇
그리고 숙모가 용돈을 한가득 주셨다. 이게너무너무좋았다. 그래서 다음에 누군가 병문안을 갈 때 먹을 거랑 돈을 가지고 가야겠다는 걸 배웠다. 왜냐하면 둘 중 하나라도 선물 받으면 기쁘기 때문. 그렇게 외삼촌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적당한 자유와 관심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생활이랄까~
평일에는 마취과 교수님이 병문안을 오셨는데, 정말 좋았다. 이 선생님이 남자였으면 나는 반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미모의 여자 선생님이다.) 원래 수술방에서 마취하고 다른 수술방에 마취하러 가는데 안 가고 계속 옆에 있어주셨다. 물론 나는 마취된 상태라서 몰랐다. 엄마가 말해주셨다. 그리고 병문안 오실 때도 수술 가운에 과자를 주섬주섬 담아서 선물로 주셨다. 수술대 위에서 너무 떨던 나를 보고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며 오신 것이다. 살면서는 부딪혀야만 알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는 너무 떨 필요가 없다.해 보면 된다는 심정으로 하면 된다. 는 게 요지였다. 떨지 말고 씩씩하게! 이런 말씀까지 해 주러 오시고, 앞으로 큰 일 있을 때 떨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감사해요!
그리고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마취하며 헛소리를 많이 했던 나는 살며시 여쭈어보았다. “선생님 저... 야한 이야기는 안하던가요?” 그게 수능 끝나고 친구랑 심심해서 야한 걸 찾아봤는데, 혹시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까봐 걱정스러웠다. 아아아아 근데 선생님이 “참 너~!” 하시며..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하셨다고 했다. 수능 끝나고 친구랑 그냥 야한 영화를 봤다. 근데 그 전에 “우리 야한 동영상 찾아볼래?” 하면서 구글에서 찾았는데 막상 사이트를 찾고 보니까 제목부터 너무 충격적이게 더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 화면이 나의 뇌리에 쏙 박혔고 그 제목을 마취하면서 읊었다. 아쪽팔려라.
“진짜 저 야동은 안 봤어요. 찾아만 보고 그만뒀어요. 대신 영화를 봤죠.” 라고 말했더니
“동인지 영인지는 안 중요하다.” 고 하셨다.
솔직히 19살에 처음으로 야한 영상물을 봤는데, 여지없이 다 들켜서 민망한 면도 있다. 다음에 마취하면 입을 앙 다물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마취과 교수님을 보면서 의사가 멋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사람들이 흔히 이렇게 이야기 할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수님이 와 계셨을 때 간호사 선생님이 링거를 새로 달로 오셨다. 평소처럼 링거 줄을 알콜솜으로 닦고 연결시키셨다. 그때 교수님이 간호사를 카리스마 있게 처다 보시면서 “에어가 많다.” 라고 말씀하셨다. 약에 기포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은 긴장한 얼굴로 링거를 다시 분리했다. 약을 따라내어 공기를 제거하고 다시 합체하셨다. 그 순간에 뭔가 잡아내는 것과 힘 있게 말하시는 데서 전문가 포스를 느꼈다. 그리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같이 공부하던 언니, 친구들이 놀러 와서 나의 심심한 시간을 채워주었다. 엄마랑 같이 병문안을 온 친구 뚜뚜는 엄마 가방에서 자기가 돈을 꺼내 나에게 용돈이라고 줘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중간에 방수 태잎을 붙이고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며칠 동안 못 씻으니까 냄새도 나고 그 찝찝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근데 따뜻한 물 밑에서 머리도 감고, 몸도 씻고 나니 상쾌함이 평소보다 대단히 훌륭했다. 샤워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는 고리타분한 말이 생생한 진리처럼 느껴졌다.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대망의 퇴원날. 수술하고 1주일이 지났다. 아침에 철밥을 뽑는다. 이것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다. 배꼽을 보았을 때, 징그럽게 철로 쾅쾅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떼어 낼 때 아픔을 동반할 것 같은 쎄한 느낌이 있었다. 걱정을 많이 해서 그런가 실제로 뺄 때는 참을 만하게 아팠다. 사실 주먹은 좀 꽉 지고 있었다. 철심이라 그런지 펜치로 한땀함땀 제거했다...
레지던트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 동안 친절하고 꼼꼼하게 소독과 질문을 받아주셔서 감사한 의미로 친절 직원 추천을 적고 싶었다. 그래서 성함을 여쭈어 보고 메모를 해 두었다. 엄마는 퇴원선물이 되어 버린, 7층 이모가 일본에서 사다주신 시계를 전해 주셨고, 규진이 이모가 선물로 주신 속옷 세트의 사이즈를 바꾸어 오셨다. 이모가 퇴원할 때 다시 병원에 오지 않으려면 새 속옷을 입고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며 선물을 주셨다. 그런데 수술하고 살이 무척이나 빠져 사이즈를 작은 걸로 교환했다. 11일간 입원했더니 불어난 짐들을 차곡차곡 챙겼다. 당분간은 아니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내고, 병원에는 정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새 속옷을 입고 퇴원했다.
나의 배는 가뭄에 메마른 호수처럼 홀쭉하게 들어갔고 살은 병원에서 나올 때 5kg가 빠졌다. 지금은 한 달 정도 넘었는데 10kg 정도 감량하게 되었다. 집에 있을 때 몸무게가 2~3kg 더 내려가더니 장염까지 걸려서 수술 전보다 10kg가 빠졌다. 한 방에 마른 체형으로 변했고, 몸무게가 쪘을까봐 무서운 게 아니고 더 작아질까봐 걱정하게 되었다.
퇴원을 하고 7일 후에 조직검사 결과를 정밀하게 들을 수 있었다. 교수님이 양성이라고 다행이라고 웃으셨는데 그때는 실감이 안 났다. 지금은 살면서 짜릿하게 즐거웠던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그 때를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 혹의 정확한 사이즈도 듣게 되었다.검사지에는 29cm이라 나왔지만 교수님말씀으로는 물을 다 제거하고 혹만 남겨둔 것이라 실제로는 35에서 40cm까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큰 혹을 이고지고 살았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혹에 대한 힌트가 많았다. 친구들은 살이 찌면 살이 접히던데, 나는 볼록하게 튀어 나왔었다. 그리고 소변이 이상할 정도로 자주 마려웠다. 똥도 잘 못 누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누워서 잘 수가 없었다. 그러면 배에서 압박받는 느낌에 피가 쾅쾅 하며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배에도 심장이 있는 건가? 하며 옆으로 누워서 잤다. 이 모든 현상은 수술을 하고 나니 사라졌다.
처음에는 많이 두렵고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지나서 곱씹어보니 인생에 재미있는 드라마 한 장면을 찍은 것이라 여겨진다. 해피엔딩이라 다시 한 번 감사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어 의미 있었고, 내가 살면서 인지하지 못하는 행복이 무척 많다는 걸 깨닫게 했다. 그래서 나는 혹이 20살의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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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은 팔팔합니다ㅎㅎ
와 필력...
좀 길어서 이런 덧글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글 정말 잘쓰시네요.
한편의 잘쓴 수필을 읽었네요 ㅎㅎ
이제 고비가 지났으니 행복한 나날만 가득하길 바라요 ㅎㅎ
ㅎㅎ 제가 글 쓰면 계속 읽어 주시길!!!
재수없음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 없이 행복한 한 해 되시길 바랄께요!!
감사합니다.
길다 물론 다읽음
감사합니다
저도 쓰는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ㅎㅎ
잘 읽었어요! 재밌어요( 아픈 이야기 였는데 재밌어도 되나?!) 글 잘 쓰시네요. 앞으로는 건강하세요!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하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각살님도 건강하시길!!!
정진사랑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처음엔 다이어트얘긴가 하고 들어왔는데ㅎㅎㅎㅎ
글이 긴데도 몰입하고 잘 읽었습니다!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저처럼 수술하는 일 없으시길!
다음에도 글 쓰면 읽어주세요~ ^^
저가 다 긴장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그 상황에서 심하게 긴장하고 있어서 글에도 많이 나타났네요 ㅎㅎ
다시 생각해도 심장이 오그라듭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으셨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필력이..책 하나 내셔도 될거 같아요 ㅎㅎ
완전 몰입해서 잘 읽엇습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이런 거 처음 들어봐요 ^^
잘 읽으셨다니 저도 기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하시길!
글 되게 재밌게쓰시네요 그리고 수술결과가 좋아서 참 다행
고맙습니다.
복강경으로 해서 흉터도 싹 사라지고 신기합니다.
헐 저도 수험기간동안 최소 10키로는 쪄서 지금 뱃살이 장난이 아닌데 검사라도 받아봐야 될까요? ㅠ
전 68kg에서 88kg 까지..찜.. 2년 동안..
글쓴분 댓글인줄알고
수술전이랑 10키로차이난다했는데..여전히 마릉몸은아니잖아?!했네요ㅋㅋㅋㅋ
ㅎㅎ 저는 지금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고 있어요. -글쓴이
제 주변 의사선생님들이 당연히 뱃살or변비로 인한 똥이라 생각했을만큼 저같은 경우는 드물거에요.
증상이 없었지만(아픔이 없었어요.) 지나고 보니
누웠을 때 압박감이 있다거나,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거나 똥을 싸도싸도 계속 마려운 느낌과 피로감? 이 힌트였네요 ㅎㅎ
근데 수험생에게는 너무 흔한 증상이라.. 그때는 무시했죠~
마지막에 양성아니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계속 일겅ㅆ는데 아 진짜 글읽는 내내 너무 귀엽다는 생각ㅠㅠㅠ 아픈데도 밝은 성격이 너무 귀여워요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귀여워ㅠㅠㅠㅠㅠㅠ 으으으ㅠㅠㅠㅠㅠ
아프지 마세요 앞으론 ㅠㅠㅠㅠ
네 건강하도록 노력할께요 ^_^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지금은 멀쩡! 합니다.
수술 전까지는 조금 까칠했지만 수술 끝나고는 ㅎㅎㅎ 팔자가 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밝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사건의 스케일에 비해 제가 느끼는 육체적 고통은 거의 없었기 떄문입니다. 초반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렇죠 ㅠㅠ
갇설현님도 오래오래 튼튼하게 사시길!
길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읽었네요 글잘쓰십니다..ㅎㅎ 그리고 다행이네요
고맙습니다.
저도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와 필력진짜좋으시네요~흡입력짱짱! 지금은 괜찮아지셔서 다행이에요~
저도 부산대 병원에 있었는데 암병동은 밥 맛있다고 옆자리 아주머니들이 그러시던데 글 읽으면서 그 생각났네요ㅋㅋ저는 수능 전에 입원했는데 교수님이랑 레지쌤이 공부얘기도 많이 하고 신경도 많이써주시고 그랬어요ㅎㅎMRI도 찍을때 무서운거 동감이요ㅠㅠ하다보니 너무 무서워서 울라할때 딱 마쳐서 민망;;ㅎㅎ
우리 건강관리 같이 잘해요ㅠㅠ병원가기싫어여....모레 또 가야되는디ㅠㅠ
공감가서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네요ㅎㅎㅎ
우리 함께 건강합시다!
저는 옆자리 아주머니들과 과자 나눠먹고 그랬었죠 ㅎㅎ
막 이것저것 팁도 알려 주시고~ ^^
저도 교수님이랑 레지던트 선생님이 참 좋으셨던 기억이 ^^
여러모로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신기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이야기 해도 그저 신기한 이야기로 생각하시더라고요)
모래 잘 갔다 오시고 앞으로 쭉쭉 팔팔하게 사시길 바랄께요!
우아재밌어요ㅋㅋㅋㅋㅋ 필력 부러워여!!10키로빼신거도 부럽...
쭉~~건강하세욥!!
^_^ 10키로이긴 한데 다시 엄청 먹기 시작했습니다.
네네몬 님도 건강하시길!!!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글 원래 자주 쓰셨나요? 책 읽은기분인데요? ㅋㅋㅋㅋ 고생하셨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 권유로 블로그를 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글을 많이 썼습니다. 1600편 정도 쓴 것 같아요.
책 읽은 기분이라고 하니, 제 기분도 좋아집니다~ *_*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글 쓸께요.
와 재밌게읽었어여ㅋㅋㅋㅋㅋ
저 맹장 수술했을 때 생각나서 더 재밌었던ㅋㅋㅋ아 나두 마취풀리고 이상한 말 했었으려낭...기억잌ㅋㅋㅋ
저처럼 수술하기 전에 이상한 행동만 안하셨으면 괜찮으실 듯ㅎㅎ
이 사건을 계기로 똑바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나쁜 짓(?) 하면 결국 다 들키더라고요 ㅠㅠㅠ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단편 소설로 출품해도 되겠는데요? ㅎㅎ 병원 이야기라 그런지 남궁인씨의 글도 생각나더군요.
과찬이십니다.. ㅎㅎ 그래도 감사합니다.
남궁인씨는 처음 들어봐서 방금 찾아봤는데, 글 쓰는 의사선생님이시네요.
이 분 글을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_<
와....필력이bb 긴글인데도 후루룩 읽혔어요. 사실 제목만 보고 다이어트글인줄 알고 요새 살찐게 고민이라 클릭한건데 뜻밖에 재미와 감동 잡아가네요. 아 그리고 저두 이번 아이유 콘서트 제일 앞에서 봤어요♥건강해져서 다행이예요 수험생활 수고하셨고 이번에 액땜했으니까 평생 건강하세요!
살면서는 부딪혀야만 알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는 너무 떨 필요가 없다
와닿네용
그렇죠? 저도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있습니다.
이 말씀 해 주신 교수님이 정말 좋아요 ♥
크... 필력...
저 뱃살많은데 설마... 아니겠죠?ㅎㅎ
고맙습니다. ㅎㅎ
설마 저처럼 혹이 있을까요... (저는 황당한 경우라고 하더라고요 ㅋㅋㅋ)
아무쪼록 건강하시길!
와....................너무.. 감명깊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와... 저도 너무 고맙습니다.
오르비에서 제 글이 좋은 평가를 받고
많은 분들이 기꺼이 읽어 주시네요.
이런 반응이 어색하면서 기분 좋습니다 >_<
저도 다이어트 글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아니었네요.. 글쓴님이 너무 필력이 좋고 밝게 쓰셔서 읽는내내 감동적이었어요.. 원래 아프면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되죠... 누구나.. 여튼 긴글 쓰시느라 수고하셨어요 ㅎㅎ 앞으로는 쭉 건강하세요ㅎㅎ
저때 정신은 거의 피폐해서글이 밝은 느낌일 줄은 몰랐어요.
저는 그냥 썼는데 그런 느낌이 났나봐요.
제가 뭐 먹기만 하면 행복해 지는 성격이라 ㅋ 글에서 기쁨이 묻어 났나봐요.
-이렇게 음식을 흡입하니까 다들 혹이 아니라 살이라고 확신했죠 ㅠㅠㅠ
이 사건으로 제 주변 뿐만 아니라 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어서
사실 감사하고 있습니다 ^^
살면 살수록 반성할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ㅎ
고맙습니다. 정시정시이님도 팔팔하게 장수 하시길!
엄마 닮았나봐요
글이 밝은 걸 보니...
헉 성격이 닮은 건 다행인데
엄마 닮아서 저도 늙어서 쇼핑을 엄청하면 어쩌죠? ㅠㅠ
엄마 맨날 색깔별로 다 사고
필요없는 게 분명한데도 계속 구입하고 그러시는데 ㅠㅠ
급 걱정이 되네요
뭐 그래도 엄마처럼 즐겁겠죠~ ㅎㅎ
ㅋㅋㅋ ㅋㅋㅋ저도 재수할때 6월쯤에 맹장수술때문에 4일정도 못간적 있었는데 갑자기 제 그 때 기억이...ㅋㅋㅋ저도 글쓴님이랑 똑같이 구멍3개뚫고 전신마취하고 수술했어여 ㅋㅋㅋㅍㅋㅋ 지금은 흉터 거의 안보임 여튼 수고하셨어요 글잘읽었습니닼ㅋㅋㅋ
하 수술하기 전에 안 무서우셨어요?
맹장염이면 많이 아프셨을텐데 ㅠㅠㅠ
흉터 안 남는 거 신기하죠?
저는 무척 다행으로 여기는 동시에 과학 기술의 발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와 글만 읽어도 글쓴이 분이 어떤 성격이시고 어떻게 살아오셨는지가 느껴지면서 빛이 확 비치는 것 같네요 너무 기분좋고 활기찬 필체에요 ㅠㅠ 잘 나으셔서 다행입니다
이런 칭찬 처음 받아봐요. 감사합니다 ㅎㅎㅎ
앞으로도 글 열심히 쓸께요!!!
와 직접 쓰신 글이군요. 수술 잘받으시고 건강해지셔서 다행입니다.
ㅎㅎ 건강한 게 다행이라는 말, 이 일을 격지 못했으면 못 느꼈을 거에요.
건강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건강한 게 다행이라는 말, 이 일을 격지 못했으면 몰랐을 거에요.
건강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저는 제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저 상황에서는 저러지 못할거같아요..
너무 비교도 안되게 밝고 긍정적이시네요 해피엔딩이라 너무너무 다행이고 수고많으셨어요ㅠㅠ 앞으로는 항상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긍정적이긴 하지만 공부할 때는 만사가 부정적인 듯 해요.
의대 꼭 가시고 다른 사람의 건강도 챙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긍정적이긴 하지만 공부할 때는 만사가 부정적인 듯 해요.
의대 꼭 가시고 다른 사람의 건강도 챙겨주시면 좋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