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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재익 - 칼럼 [1443779] · MS 2026 · 쪽지

2026-07-12 01: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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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고대사 알쓸신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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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려에서 가장 오래 산 왕은 장수왕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사 기록에만 의존한다면 장수왕은 98세, 태조왕은 119세까지 살았다.

2.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친형 비류가 자리잡고 나라를 세운 인천 미추홀은 그 당시에도 마계였고, 척박한 땅 때문에 결국 금방 망해버렸다.

3. 지증왕은 그 곳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서  왕비를 맞기 힘들 지경이었다.

4. 고구려 봉상왕은 동생인 돌고를 비롯한 가족 및 친척들을 제거했지만, 결국 폭정을 참다못한 고위 대신 창조리가 일으킨 반역에 의해 폐위당하고, 왕위는 돌고의 아들인 을불, 즉 미천왕에게 돌아간다.

5. 동천왕 이야기에 나오는 공손씨, 즉 공손연은 삼국지에도 기록이 있는데, 238년 위나라와 고구려의 협공에 의해 멸망한다.

6. 태왕사신기에서는 왕권이 매우 약해 광개토대왕(담덕)의 아버지 고국양왕이 일부러 자결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사실도 아니고 심지어 당시 고구려의 왕권은 강력했다.

7. 을지문덕은 살수에서 수공으로 수나라 군대를 전멸시킨 것 외의 출생, 출신, 직책, 이후 행적, 사망 등의 아무런 기록이 없다.

8. 당 태종은 고구려에게 연이어 패전하자 분노해 고구려를 하구려라 부르라고 명령했지만, 결국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화살에 입은 눈 부상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며 고구려를 함부로 공격하지 말라고 한다.

9. 신라에게 불교를 포교하고 순교한 이차돈은 당시 22살이었는데, 불교 신자였던 법흥왕과 짜고 친 스토리를 통해 불교를 공인하는데 큰 몫을 했다.

10. 김유신보다 9살 어렸던 친구 태종무열왕(김춘추)는 문무왕(김법민) 외에도 김인문, 지소부인 등을 낳는데, 그 지소부인은 김유신의 아내가 되어 원술 등을 낳는다.

11. 김유신은 꾀돌이였다. 김춘추와 축국을 하다 일부러 실수인 척 옷고름을 밟아 여동생인 보희 및 문희에게 옷을 꿰매기를 권하고, 이후 눈이 맞은 문희가 김춘추의 아이(문무왕)를 임신하자 일부러 비가 오고 선덕여왕이 행차하는 날을 골라 장작만 태우며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너를 죽인다"고 엄포를 놓아 선덕여왕이 말리게 만들고 결국 둘은 혼인한다. 또, 선덕여왕 말년 비담의 반란군이 총공세를 펼칠 때 선덕여왕이 죽기 직전 큰 별똥별이 떨어졌는데, 이를 김유신이 연에 불을 묶어 다시 별이 떠오르는 연출을 펼쳤다.

12. 선덕여왕은 여근곡이라는 계곡에서 알찬, 필탄 두 장수를 통해 백제군을 물리치는데, 여근곡은 실제로 그 곳을 닮았다고 한다.

13. 신라 진흥왕에게 배신당한 백제 성왕은 나름 아버지 무령왕을 닮은 성군이었지만, 매우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14. 백제의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은 서동요의 주인공이다.

15.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은 즉위 초 성군이었고, 실제로 신라와의 초기 전투에서는 김유신이 참여한 전투를 제외하면 대부분 승리하였다. 백제가 망하기 직전 수도인 사비성(부여) 근처에서는 키 5m가 넘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거나, 귀신이 나타나 백제는 망한다고 두번 외치고, 궁궐을 파보니 등에 "백제는 보름달이요, 신라는 초승달이로다"라는 글귀가 등딱지에 써있는 거북이 발견되기도 한다.

16. 신라의 4대왕 탈해 이사금은 가야 김수로왕의 자리를 뺏으려고 결투를 벌였다는 일화가 있다.

17. 신라의 여왕은 2명이 아닌 3명이다. 선덕여왕과 동생 진덕여왕을 제외하고도 통일신라 이후 진성여왕이 있었다.

18. 황룡사9층목탑은 규모가 매우 컸는데, 백제의 건축가인 아비지를 불러 지어놓고 각 층을 상징하는 9적 중 백제를 포함시켜 아비지가 공사를 중단한 적이 있었다.

19. 신라 후기는 왕권이 매우 불안정해 애자왕이 암살, 희강왕이 자살, 난을 일으켜 왕이 된 민애왕이 피살당하는 등 반란과 왕 교체가 끊임없이 일어났고, 재위기간이 1년도 안되는 왕들이 허다할 정도였다.

20. 궁예는 신라 헌안왕의 아들이었으나 단오에 태어났고 태어날 때부터 이가 있다는 이유로 버려졌는데, 이 때 절벽에서 던진 궁예를 유모가 몰래 받다가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고 한다. 또 견훤은 넷째 아들인 금강을 아껴서 후백제를 물려주려다 분노한 첫째 아들 신검에게 하극상을 당해 감금당했다가 탈출해 일생의 적인 고려 왕건에게 '내 아들을 쳐주시오'를 시전했다. 왕건은 견훤을 환대했고 얼마 후 후백제를 공격해 신검을 항복시키지만,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세운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죄책감에 고령에 건강도 쇠약해진 견훤은 곧 죽고 만다.

21. 밀본 법사가 귀신을 쫓은 이야기에는 스님으로 변장한 3천년 묵은 여우를 잡아내는 등 매우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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