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딱 축구감독에 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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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악플은 신중하게, 빙의는 갑작스럽게
[대한민국, 32강 진출 실패입니다!]
화면 너머 캐스터의 목이 터져라 외치는 절규가 원룸 안을 가득 채웠다.
"와... 진짜 실화냐? 전술이 씨바, 그냥 '해줘'였네?"
맥주 캔을 구기며 내지른 비명이었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자칭 축구 전문가인 나.
이번 월드컵은 달랐어야 했다. 스쿼드가 역대급이었으니까.
그런데 감독이라는 작자가 들고나온 전술은 90년대 동네 축구보다 못했다.
조별리그 3경기 동안 골 단 2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건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대한민국 축구의 재앙이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커뮤니티 개념글에 올라온
감독 비판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에 분노가 실렸다.
- 1차전 전술적 패착과 포지셔닝 문제 (1,500자)
- 2차전 선수 기용 및 교체 타이밍의 부조리함 (2,000자)
- 3차전 뻥축구의 한계와 감독의 자질 부족 (2,200자)
마치 대학 전공 리포트를 쓸 때도 안 나오던 집중력이 폭발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까지 완벽하게 검수하며 적어 내려간 글자 수는 자그마치 5,700자.
마지막 한 마디로 마침표를 찍었다.
[내가 감독을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그냥 사퇴해라.]
등록 버튼을 누르자마자, 머리가 핑 돌며 눈앞이 암전되었다.
"음……."
지독한 숙취 같은 두통과 함께 눈이 떠졌다.
그런데 몸이 무거웠다. 20대 대학생의 가벼운 몸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건 한국어가 아닌, 웅성거리는 외국어와 카메라 셔터 소리.
"……?"
내가 있는 곳은 원룸 침대가 아니었다. 최고급 가죽 시트가 깔린 비행기 일등석.
"감독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옆자리에서 웬 정장을 입은 남자가 침통한 표정으로 서류를 건넸다.
감독님? 누가? 내가?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거울 속에는 낯익은, 그러나 절대 내 얼굴일 리 없는 중년 남성의 얼굴이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대한민국 축구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외모.
"……홍명보?"
내가 왜 이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그때,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상태창이 떠올랐다.
[띵-!]
['5,700자 악플러'의 특전이 개방됩니다.]
[퀘스트: '조별딱' 감독의 운명을 뒤집어라!]
- 현재 상황: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후 귀국 길.
- 국민 여론: 역대 최악 (적대감 99%)
- 남은 시간: 인천국제공항 착륙까지 30분.
"미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니까, 내가 남긴 5,700자짜리 악플 때문에 진짜로 그 '조별딱' 축구 감독의 몸에 빙의해 버렸다는 뜻이다.
그것도 조별리그에서 처참하게 탈락하고, 전 국민의 분노를 한 몸에 받으며 귀국하는 바로 그 타이밍에.
창문 밖을 내려다보니 저 멀리 인천공항 활주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감독님, 공항 입국장에 기자들과 팬들이 수백 명 몰렸다고 합니다. 테러를 준비했다는 과격한 팬들도 있다는데…… 뒷문으로 빠져나가시겠습니까?"
코치가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다.
뒷문? 도망친다고 해결될 여론이 아니다.
어차피 피해 갈 수 없다면, 정면 돌파뿐이다.
방구석 축구 전문가였던 내가, 진짜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으며 거친 진동이 울렸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지옥의 귀국길이 시작됩니다.]
지금 계란 맞으러 나가기 딱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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