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4Answer [592707] · MS 2015 · 쪽지

2016-02-02 05: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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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감성, 장문)사수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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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제 소개를 간략하게 하자면 사수생입니다. 올해로 모든 입시가 끝났고 모 대학교 나름 원하던 과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의대는 아닙니다.

중학교때 저는 과학고 지망생이었습니다.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해본 때중 하나일 겁니다. 피터지게 했지만 중2부터 시작한 저는 꽤나 버거움을 느꼈고, 올림피아드 상을 슥슥 받아오는 애들 사이에서 제 머리는 별거 아니라는 교훈을 얻으며 결국 과고 입시에 실패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저에게 '병X같이 떨어지고 앉았냐.'라고 하셨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나름 전교권에서 놀았습니다. 선생님들한테는 '머리로는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최고로 좋다'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부모님, 선생님 모두 기대를 꽤나 보냈습니다. '저녀석은 당연히 서울대를 노려야해.'이 시기 저에게 늘 오던 압박이자 기대였습니다.
하지만 참 얄궃게도 제 내신은 완전히 좋다고 할 수는 없는 내신이었고 특히 2학년 2학기때 1.9를 맞은게 좀 컸습니다.
고3때 수학 2등급이 하나 뜨자, 아버지는 전교 2등도 아니고 고작 2등급이 뭐냐 병X이냐며 화를 내십니다. 목표가 어디냐는 말씀에 스카이 이상이라 답하자, '너는 꿈도 야망도 없는 병X이다. 서울, 포공, 카이면 몰라도 연고대가 어디 학교냐' 라고 하십니다. 결국 저는 그해 연고서성한 수시 하나도 못씁니다. 그리고 설카포 수시 떨어지고 수능은 말아먹고 시립대 또는 그 이하급 성적을 받습니다.

온갖 욕을 먹어가며 재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재수, 수학 백점이 안나올 때마다 온갖 욕을 먹습니다. 뭐 그래도 재수하라 돈을 대주시는 부모님이니 군말은 안합니다. 그냥 제 인과응보이려니 하고 듣죠.
수능...하필 수학을 망칩니다. 서울대가 목표였지만 결국 수시도 다 떨어지고 고대 방사선과 성대 전전컴을 붙습니다.

당시 저는 꽤나 지친 상태였어서 이대로 입시를 끝마치고 싶었습니다.
근데 아버지께서 반대를 하십니다. 서울대 아니면 학비를 대줄 생각이 없으시답니다.
뭐 저는 결국 아버지의 의지에 굴복, 쌩삼수를 시작합니다.

삼수때는 그래도 열심히 했다 생각합니다. 나름 순공시간도 상당히 된 편이었으며 재수때의 잠시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실수도 줄이고, 하여튼 뭐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마음으로 서울대를 향해 달렸습니다. 분명 실력도 전년도보다는 올랐고, 여러 모의고사에서도 전년도보다 실적이 확 올랐습니다.

그런데 운명 참 얄궃죠. 재수보다 성적이 떨어집니다. 설상가상으로 서성한급에서 넣은 학과 다 떨어지고 다군에 넣은 숭실대만 붙습니다.

멘탈 다 파괴됩니다. 그냥 살기 싫습니다 이건. 학교 간다 해놓고 피씨방이나 전전합니다. 오티고 새터고 안갑니다. 도저히 마음이 안갔거든요. 학과에서는 더더욱 저를 아는사람이 없습니다. 일단 뭐 누구하고도 소통을 안했거든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평생을 재수때 안간데 대한 후회와 학벌 컴플렉스에 시달릴 것 같아 다시 수능책을 잡습니다.

문제가 안풀릴때마다 내가 왜 이고생을 하지 하는 화가 납니다. 모든게 다 원망스럽습니다. 공부를 하긴 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가 힘듭니다. 문제가 안풀리면 시*. 푼 문제가 틀려도 시*. 수업이 지루해도 시*. 쉬고 싶은데 자습시간이 안끝나도 시*. 그냥 매일이 욕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수험적 한계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과탐 30분이 너무나 부담되고 짧습니다.

뭐 결국, 사수 수능은 재수때보다 약간 못하게 받습니다. 삼수보단 상황이 낫습니다.
그래도 결국 재수보다 잘 가기는 힘들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을듯 합니다.
뭐 그런데 참 웃기게도 그냥 마음 비우고 본 논술이 덜컥 붙어서 결국 원하던 과, 그리고 제 상황에서 가장 잘 갈수 있던 학교중 하나로 가게 되었습니다.


위 내용은 제 사년간의 여정을 가장 압축적으로 나타낸거고, 여기서 가장 크게 느낀게 하나 있다면,

'결국 부모님은 내편이구나'였습니다.

늘 인자하셨던 어머니는 물론이고, 서울대 아니면 학교도 아니다 하시던 아버지도 제가 네번째 수능을 끝내고 침울해 있을때
'레이븐아, 학벌이 다가 아니다. 나는 너가 사년간 많이 배웠을거라 생각하고 거기에 쓴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단다.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니가 내 아들이 아니게 되는건 아니다. 정 안되면 아버지하거 같이 일톤차나 끌고 다니자'라고 하셨습니다. 참 결국 아버지도 많이 생각을 바꾸셨구나 그 생각이 들더군요.

뭐 결과적으로 원하던 학과 들어갔으니 최악의 상황은 면했고 좀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ㅎ부모님도 기분좋게 생각하시고요.

음...핸드폰이라 말이 좀 횡설수설하는 감이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여러분의 부모님은 겉으론 틱틱거리시고 성적으로 갈구셔도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여러분의 편이 되어계실거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러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걸린면은 있지만...)
현재 성적이나 대학으로 인해 부모님과의 트러블을 겪고 있으신 분이나 스트레스 받고 계시는 수험생 분들은 그냥 가볍게 읽어보시고 '저런놈도 잘 살아있는데 나라고 못할거 없지' 정도의 자신감을 얻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취했는데 잠이 안와서 끄적여 봅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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