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1등급'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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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1등급님의 질문
진지하게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우리 민족의 영도자이신 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둘 다 존경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진지하게 이유를 묻고 싶고, 딱히 비방하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원래는 해당 댓글에 답변하려 했으나, 답변 안해준다고 굳이
저격글까지 올린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답변해준다고 했지, 즉시 답변해주겠다고 시일을 정한 바도 없으며,
저는 그 어떠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님이 요청한다고 해서 반드시 답변해줘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본인이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전제하고 답변드립니다.
저의 답변에는 다소 검증되지 않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팩트가 아닌 일종의 가설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부분에 대해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 일단 알고 싶다면..
오래 전 한반도의 상황, 그리고 세계 최강 패권국의 지위의 변화 등
복잡한 상황들까지 봐야 합니다.
현재 휴전선, 과거에는 38도선(물론 경계가 조금 다릅니다)라고 불렸던 지점..
제가 알기로는 이는 가설이긴 하지만
1894년 청일전쟁 이후 한반도를 분단하고자 하는 구상이 있었고,
당시 최강 패권국인 영국 측에서 그리 봤던 겁니다.
당시의 구상은 '39도선' 이었습니다.
물론 그게 왜 38도선으로 변화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한반도라는 곳은 애석하게도
19C말-20C에는 세계의 변방 수준이 아니라
변두리의 변두리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 영국은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했고,
한반도는 중국에 예속된 것으로 바라봤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영국의 핵심 인물 '버트란트 러셀'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이 20C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는데,
이 인물이 1920년대 중국을 방문해서 죽기 직전의 질병에 걸렸는데,
중국 전통 의학의 도움을 받아 기사회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러셀은 중국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추후 한반도를 중국에 병합시키는 밑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추후 헨리 키신저의 지정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로서는 2등 국가였던
미국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독립협회 해산 후 감옥에 갇혔다가 미 선교사 도움으로 탈출)
그곳에서 외교 독립 투쟁 노선을 견지하며
미국 주요 인사들과 안면을 트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의 최강국은 영국이었고, 미국도 영국의 눈치를 보던 신세라
3.1 운동을 결국 미국이 외면하였고
그래서 한국사에서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이야기가 있었던 겁니다.
이승만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미국 내에서 계속 외교 활동을 해왔지만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는 이를 곱지 않게 바라봐서
결국 상하이 임시 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하는 일이 생겼지만,
이승만은 포기하지 않고 일제의 야욕에 대해 미리 경고하는 책을 냈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이를 코웃음쳤지만,
그 책 발간 후 1년만에 과연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벌여서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이는 추후 한국 해방 이후 미국이 이승만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의 위치를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당시의 한국은 진짜 제3자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보면
현재 아프리카 초빈국이나 다를바 없는 관심 바깥의 지역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카이로회담, 얄타회담, 포츠담 회담 사이에서
신탁통치 이야기가 스스럼 없이 나온 것도 그런 배경이고요.
일제 패망 이후 혼란스러운 한반도에서
그나마 일제가 전쟁 용도로 개발한 산업시설이 북에 있었고
남에는 농업 밖에 없던 처참한 시절에
그 와중에도 이념 대립으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승만은 남한 내 토착 세력들(한국민주당)을 잘 이용해서
체제가 전복되는 위험까지는 피했고,
제헌 국회를 구성하여 일단 한반도 남부라도 단독 정부를 세우는데 기여했습니다.
그 후 6.25 전쟁... 이것도 뭐 '런승만 런승만' 이라고 까지만,
그 당시로만 봐선 군사 동원력은 북한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끝까지 서울을 지키는 것은 무모한 판단이었고,
물론 '서울은 안전합니다.' 말하고 도망간 부분은 비판의 여지가 있으나,
어찌되었든 부산으로 가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UN의 지원을 이끌어내서
대한민국을 지켜내었고,
강대국들이 한국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꿰뚫어 본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강수를 둬가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냈습니다.
저게 우스워 보이지만,
대충 지금 독일 정도 되는 나라하고
저기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이런 나라랑
동맹을 맺었다고 보면 되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이제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당시 세계 1위 국가인 영국이 아니라
세계 2위 국가인 미국에게 줄을 댄 것인데,
미국이 세계 1위로 치고나갈 거라고는
그 당시로서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던 시점입니다.
그러니 미래를 내다 본 판단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6.25 전쟁 이후에도 체제 전복 시도는 꾸준했고,
공산권은 북한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체제 우위를 갖추려 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과감하게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여
(참고로 제헌 헌법에는 '이익배분균점권'이라는 무시무시한 조항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공산주의적인 색채가 강했던 내용이죠.
그 당시는 아직 공산당의 실패가 드러나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체제 전복 우려를 방지하고, 미국과 밀착하여
대한민국을 지켜낸 외교적 업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과는 아주 철저하게 선을 그었는데
(축구대표팀이 일본에서 지고 돌아오면 현해탄에 빠지라는
아주 극단적인 이야기도 할 정도...)
당시 강대국들이 일본에게 독도를 내 줄 것을 요구하니까
도리어 '대마도는 한국땅' 이라고 되받아치면서
국가 주권 수호에도 상당히 애를 썼습니다.
1960년 3.15 부정선거,
그것도 이승만 본인 당선이 아닌 부통령 이기붕 당선을 위해
벌어진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야당 후보 조병옥이 급사하였습니다. 암살 등과는 무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하야하고
하와이로 간 것도
당시 독립운동 전력과 명망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결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뭐 설명을 듣길 원하면 추후에 이야기드리고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하는 이유를 요약하면
'변방의 변방' 이었던 한반도, 그것도 세계 최강대국인 영국이 점찍어서
중국에게 넘기려고 했던 그런 악조건 속에서
세계 1위 국가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미국에 줄을 잘 대서
대한민국이 무사히 존속할 수 있도록 기여하였고,
6.25 전쟁을 어렵게나마 무사히 수습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을 이끌어 내어
추후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든 분이기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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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좀
'섬세한1등급'님을 위한 답변 글이어서...
글 최하단의 요약 부분이 요약이라 보시면 됩니다.
이승만은 알려진 것보다 대단한 사람이고
공과가 공존하지만 시대적 배경과 현실적 요소를 고려하면 필자의 시선에선 이승만은 존경받을 사람이란 말
ㄱㅅㄱㅅ
본문도 동의함
태평양 전쟁 예견+한미상호방위조약 이것만 봐도 뭐..
심지어 '조선시대'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사실 2차대전 직후 한반도 분할문제를 논의할 때도 소련의 의중은 39도선에 있었습니다. 일제의 항복일인 8월 15일에도 소련군은 겨우 청진에서 관동군과 전투 중이었기에…
그런데 미국이 소련군을 과대평가하고 38선 이남이라도 지키자는 생각? 결과적으로는 오판으로 38선을 제의했습니다.
소련은 그걸 땡큐 하면서 덥석 물었고요
39선이 분단선이었으면 감히 한국전쟁을 일으키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으켰어도 훨씬 유리했다거나
님도 39도선 이야기를 아시는군요..
한국사에서는 어떠한 이유로 38선이 결정되었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1973년 브래튼우즈 체제 종말 후 페트로 달러로 넘어가고 나서야 영국에서 미국으로 세계 제1 강대국 지위가 변화했다는 사실도...
제주43사건의 민간인 학살 건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승만의 흑역사지
저는 답변해준다고 했지, 즉시 답변해주겠다고 시일을 정한 바도 없으며,
저는 그 어떠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님이 요청한다고 해서 반드시 답변해줘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본인이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를 전제하고 답변드립니다.
=>이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빨리 답변을 보고 싶은 마음에 무례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하자면
(중략)
이는 추후 한국 해방 이후 미국이 이승만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혜안에 대한 부분 같고
지금 한국의 위치를 생각해서는 안되고
(중략)
제헌 국회를 구성하여 일단 한반도 남부라도 단독 정부를 세우는데 기여했습니다.
=>건국 초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였고
그 후 6.25 전쟁... 이것도 뭐 '런승만 런승만' 이라고 까지만,
그 당시로만 봐선 군사 동원력은 북한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중략)
그러니 미래를 내다 본 판단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625 사변을 잘 끝맺었기에 존경한다 이렇게 크게 정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세계 최강 대국이 1940 50년대에 영국이었다는 점에선 전 동의하지 않지만(브래턴우즈 회의, 대서양 헌장, 구축함-해군기지 교환 조약 등을 보면,,,,) 차차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앨류어드님의 관점에 대해서 한번 제 입장에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에 대해
=>이 점에 대해선 저도 인정합니다. 일제는 당시 팽창 야욕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도 만몽생명선론이나 세계최종전쟁론을 내세우며 말한게 미소와의 전쟁을 위해서라면 만몽이 있어야 한다 등지의 말이 떠도는 등 확실히 미국과의 교전 의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걸 전략적으로 캐치한 것도 정치적 감각이 있다 볼 수 있고요. 하지만 후술하겠으나 일민주의를 내세우며 국가의 기반을 닦으려는 시도를 자기 손으로 엎어버린 것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보는 능력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고, 전 지도자로서의 혜안은 조국의 미래를 보는 것이 1순위가 되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2.건국 초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였다?
=>저도 건국 초기의 상황을 정리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은 인정하고, 특히 625사변 당시 비국민 야당 국회의원을 민족의 뜻을 이어받아 의회에 들어가게 하지 못하게 한 것은 업적으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분열된 한반도와, 남한 안에서도 분열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일민주의를 위시한 하나의 민족 사상이 필요한데, 족청계가 두려워지자 자유당으로 관리를 편하게 하려고 안호상 선생님과 이범석 장군님을 팽한 것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그저 자신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법으로, 즉 임시방편으로 땜빵했다고만 보입니다.(슈미트의 저서에서도 밝히듯 정치라는 것은 이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신학'인데, 이러한 '신학'을 단군이나 한겨레에서 찾지 않고 그저 미군의 보급 쿠폰이나 밀가루에서 찾은 건 업적이라 보기엔 어려운 것 같습니다.
3.625사변을 잘 끝맺었다?
=>625사변 당시 한국의 절망적인 군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하긴 했지만, 이로 인해 한국의 군사적 자주권이 침해당한 것은 시대상으론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업적이라 남길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2.에서 밝혔던 정치적 정책과 결합하여 국가의 모든 목적을 미군의 콩고물을 받아먹자는 사대주의적인 태도로밖에 귀결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분명한 과오라고 생각합니다.(그렇기에 국민들이 사대주의적 태도에 질려 516 군사 혁명을 통해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각하를 지도자로 섬기게 된 것이죠)
총평하자면, 이승만 대통령은 제 입장에서 '이해는 되지만 납득은 안되는'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419혁명과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렇기에 전 이승만 대통령을 그다지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님이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누군가를 존경하는 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지, 누가 강제로 강요한다 하여 존경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대한민국 대통령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님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친미 사대주의'라고 평가하는 것도 뭐 틀렸다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의 입장에서는 당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처해진 현실 등을 보았을 때, 그 상황에서 그만큼 할 수 있었던 인물이 있었는가?? 이걸 생각하면서 말씀드린 측면이 있고요.
그리고 이거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라 일종의 설과 같은 것이지만...
일단 앞서 말씀드렸듯 1973년 전까지는 미국은 2등 국가, 영국이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님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던건 봤으나, 제가 들은 설이나 저의 관점에선 그렇다는 것이니 이 부분 감안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잠깐 언급한 버트란트 러셀이 1940-50년대에는 영국의 숨은 실력자로서 국제 정세의 큰 그림을 쥐락펴락 했던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관점에선 한반도란 중국의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당시로서는 국제적으로는 '망해서 없어질 나라'라는 관점이 우세했습니다.
즉, 영국이 UN군 참전에 나선 것도 팩트이지만, 저는 영국이 이중 플레이를 했고, 거기에는 버트란트 러셀의 기획이 숨어있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는 추후 봉인되어 있는 영국, 미국 등의 기밀문서가 해제되어야 좀더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라 설에 불과하긴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와 같은 현실을 알았을 것이라 저는 보고 있습니다.
추후 기밀문서 등이 해제되고 몰랐던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땐 님도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실거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은 님께서 이승만 대통령을 그리 비판하셔도 저는 더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런 의견은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