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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tmacht [1390254] · MS 2025 · 쪽지

2026-02-27 0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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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오늘의 상식: 어느 청년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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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떠나가는 열네 살배기 여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1920년대 도호쿠, 열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인 이곳은 이번에도 한 해 농사를 망쳤다


지난 몇 년에 이어 연달아 냉해가 덮쳐 온 탓이다


도호쿠 지방은 메이지 유신 이전에도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굶어죽는 사람이 셀 수 없었던 지역


차마 죽음을 택할 수 없던 가난한 농부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손을 빌려야 했고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법이 없던 시절, 내놓을 가산이 없어진 집안에 그들이 요구할 것은 하나뿐이었다


여동생은 어디로 가게 되나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것이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 그저 떠나감이 있을 뿐


인신매매로 팔려간 여자아이들이 대개 임노동자가 되거나 유곽에 창부로 팔려간다는 걸 깨달은 소년은 이제 많은 것을 알고 깨우칠 나이가 되었다


그가 대일본제국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 생도가 된 것도 이무렵, 생도 시절의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시름에 젖은 어린 시절은 떨쳐내고 가족들에게 보상하기, 그리고 천황폐하께 충성을 바쳐 신민을 위한 삶을 살기...


그러나 꿈꾸는 것 외에 자유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황도에 올라와 지켜 본 정부는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고통에 처한 민생을 외면하고 있었고(특히, 자신들의 고향 도호쿠의 민생을)


육군의 수뇌부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며 뒷사람의 승진을 방해하였다


장교들의 분노를 자극한 일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몰아쳤다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에서 해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각이 조약안에 서명을 해 버린 사건이 그 하나다


당시 군부는 대일본제국 헌법 제11조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를 근거로 내각의 행동이 천황의 통수권을 침해하고 마음대로 군부의 일에 간섭한 것이라 주장했고


실제로 이 일에 피해를 본 해군은 소장파 장교들을 중심으로 5.15 사건을 일으켜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를 암살하기도 하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문민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 더 영역을 넓혀서는 이 나라의 수뇌부에 대한 불만


그런 것들이 이미 소년의 마음속에 쌓이고 쌓였지만 그는 이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몰랐다


이 상황에서 혁명 사상가 기타 잇키의 사상이 그를 포함한 청년 장교들에게 한 줄기 빛처럼 내려왔으니


대강의 내용은 군의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군사 혁명을 일으켜 간신배를 타도하고, 최고 권위인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 대개혁을 하는 것


이미 통상의 방법으로는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간신배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이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장교들에게 그의 혁명적인 주장은 그 자체로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순식간에 기타 잇키는 장교들의 사상적 스승이 되었고


소년과 주변의 청년 장교들은 함께 모여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


천황의 대권을 돌려주는 의거라는 뜻에서 '쇼와 유신'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당시는 이미 청년 장교들이 소속된 '황도파'가 육군의 주류 계파로서 육군대신을 배출하는 등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자신들에게 결정적 기회가 올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황도파의 권력 독점에 반발한 군인들이 통제파를 이끌어 육군대신을 실각시키고 상당수의 황도파 육군 장성들을 실각시키면서 본격적으로 황도파 숙청의 막이 올랐으니


이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4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사이에 모든 상황이 바뀌었음을 깨달은 청년 장교들은 마음이 급해졌고


마침내 1936년 2월 26일, 근위보병 제3연대 등을 필두로 하여 도쿄 주요 기관 점거를 시작한다


내대신 사이토 마코토(조선총독을 지낸 해군 제독), 궁내성 시종장 스즈키 간타로 등 다수의 정재계 인사를 살해하고 국회의사당을 점령한 쿠데타군은


이후 육군대신을 면담하여 원래 계획대로 자신들의 뜻을 천황에게 전달하고 '대권을 천황에게 봉환'하려 했으나...


"짐의 군대가 짐의 명령도 없이 움직였다. 그것들은 이미 짐의 군대가 아니다."


천만에 뜻밖에도 히로히토 천황이 쿠데타군의 행태에 극대노하면서 일이 전부 꼬여 버리게 된다


육군대신이나 (천황이 임명한) 계엄사령관, 천황의 동생 야스히토 친왕 등 다수의 고위 인사들이 쿠데타군에 동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황은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군이 나서지 못하겠다면 짐이 직접 근위대를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하겠다"는 취지의 말까지 남겼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반란군에 호의적이었던 계엄사령관도 천황의 강경한 태도와 직속부하들의 강력한 건의 등에 마침내 태도를 고쳐먹고 진압을 결심하였다


쿠데타 3일 뒤인 2월 29일 계엄사령관 가시이 중장은 진압 포고문을 발령하고 다수의 삐라를 살포하며 대대적으로 진압을 위협했다


이미 반란을 진압할 목적으로 계엄군이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고


심지어는 해군도 오사카 만에서 도쿄를 조준한 채로 함포사격을 대기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간신배를 죽이고 천황에게 권력을 돌려준 뒤 개혁이나 꿈꾸고 있던 청년 장교들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본 적도 없었고


그렇게 쿠데타군은 스스로 와해되어 계엄군에 투항하고 만다


쿠데타를 주도한 장교 중 한 사람, 어쩌면 '소년'이었을지도 모르는 그는 자결을 만류하는 병사에게 "끝내 자네가 걱정하던 농촌의 실상은 구원할 수 없게 되었군"이라 말했다고 한다


돈과 나라에 가족을 잃은 '소년'들이 모인 쿠데타군, 비록 그들의 방법은 매우 잘못되었으나


그 기저에는 도저히 견뎌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농촌의 생활고, 그리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만을 탐하는 정부 관료들의 탐욕스런 모습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민중의 고통과 정부의 무책임이 한데 어우러질 때 인민은 얼마나 극단적인 방법까지 떠올릴 수 있는지


그 예시 가운데 하나로서 2.26 사건, 내지 반란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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