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박카스사이다 [1429287] · MS 2025 · 쪽지

2026-01-02 0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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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잘 그리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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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서 머리로는 360도로 그려지는데 몸을 쓰려고 하는 순간 내가 바깥에 있는 느낌임. 그냥 손을 휘적거리는 나일 뿐임.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은 시작할때부터 또는 어느순간 우연히 옳은 방향,옳은 감각을 가지게 되어 후로 의식하지도 않고 그림그리는건 당연히 이거지라며 따로 그때의 사고회로를 자신과 분리하지 못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그걸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 이해되지 않겠지. 사실 내가 “그것”이라고 지칭한 태도 자체가 문제일까 감히 인간따위가 언어로,인위적 틀로 “그것”을 파악하려한게 역시 문제일까. 그도 그럴게 세계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그것”으로 구획되어 존재하는게 아니라고 생각이 듦. 인간은 세계를 아는게 아니라 세계로부터 나온 눈에보이는,우리의 언어로 환원할 수 있는,존재하던 체계로 통일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알고 또한 알 수 있을 뿐인 듯함. 신이 있다면 그것을 인간에게 기꺼이 세례를 내려주시지만 그것을 알려고 하는 인간에게는 매몰차게 거두어 버리는 것같음. 그러고는 내가 사유하는 것을 포기할때까지 신이 보낸 까마귀는 옥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 했을까,저건 무엇일까 라는 우연히 손에 떨어진 나뭇잎 하나를 바라봄으로부터 시작했는데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려 하자 그 나뭇잎은 더이상 제 형체를 띄지않고 내 손가락사이로 스며 빠져나갈 뿐이다. 우리가 알던 나뭇잎을 더이상 나뭇잎으로도 볼 수 없게되는 패러독스가 인간을 삼켜서 언어또한 알지 못하고 내면에 체계를 정립할 수 없는 원시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같다. 가장 간단한 모델에 따르면 항A가 본질이고 항B가 우리에게 와닿는 표상이라면 A는 어떤 함수를 지나서 B가 되는데 그것을 역추적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게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앎에 대한 열망이 있고 세계는 그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 두 대면에 의해서 그자체를 사유하는 사람은 원시인보다 못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본질이라고 표현한건 나의 잘못이다.아무튼 이 모델이 맞다면 항B로부터 역추적을 하여 나온 ”결과값“ 그 뿐이지 어떠한 의미도 나는 부여할 수 없겠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세계에 존재하는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의 체계가 묻어서 어떤 항C일 뿐이겠다. 더욱 무서운건 이 가장 쉬운 모델에서도 그자체를 파악할 수 없는데 이 모델은 무한한 가능성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공이 무한하게 있는데 공을 담은 바구니 또한 무한이고 이러한 순환마저 무한이다. 

그림을 그리는 감각 그자체로 돌아와서 함수를 거쳐 우리에게 나타나는 표상이나 관념도 철저하게 감각의 차원이니까 논리로 구획 하는 오류를 또 저지르지면(여기서 오류라고 표현하는 것은 세계의 입장에서이다. 뒤에서 이어지는 추론을 보고 오면 결국 우리는 논리를 써야한다는게 이해가 될 것이다.)손으로 그릴때의 정신상태와 멈춰서 머리로 그릴때의 상태를 조화를 시켜야 하는건가 아니면 생각 안 하고 알아서 손이 슥슥 가는건가 아니면 이런 강박적 성찰이 날 제한하고있는건가 명확하게 알고싶은 미칠듯한 열망때문에 그냥 진행하기가 힘들다. 

봐 나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그 생각은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여 본래의 것만도 못하게 되었어. 여기서 나는 두 방향이 직관적으로 떠오른다. 첫째는 사실 길은 존재하지만 나의 무지 인간의 무능력때문에 도달하지 못한것

둘째는 정말로 그자체를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설정이다. 전자라면 인간이 태어난 후 단 한명도 그 길을 못 갔다고 해도 우리는 어깨에 힘을 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류가 설령 멸망할때까지 위의 경우가 없다해도 세계의 비확실성에 맞설 수 있는 여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후자라면 그자체를 알려는 사유는 죄악이다. 무지가 모든것을 설명해주는 역설을 우리는 부둥켜 안아야한다. 이 경우 인정받는 통찰은 현상학적일 수 없고 얕은 시야일 뿐이다. 이 얕은시야가 최고이며 최강이며 신의축복인 것이다. 이점에서 전자이거나 후자이거나 어떻다고 하더라도 나는 전략적 무지를 취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사유한다면 이루면 티도 내지 않고 대충 알아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유가 장미속의 칼이라는 걸 스스로 알지 않는 한 감각을 그 스스로 생기를 띨 수 없기 때문이다 . 반면에 내가 증오하는 사람에게는 내 모든 경험과 지식과 나누어주고 싶다

그 사람은 절대 감각을 얻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탐구하여도 아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나는 내게 주어진 이성을 신이 짜놓은 프로그램에 맞춰 이용하기로 했다. 그 안에서의 사유는 가치가 있으나 그 너머의 것은 말했다 시피 원시인이 되는 걸음이다. 


추론의 핵심은 인간은 인간의 틀에서 놀아야하며 그자체를 알기위해 애쓰는 것은 그게 의미 없다는걸 알게되는것 제외하고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종교를 통해 비약을 저지르는게 그 사람에겐 이로울 것이다. 어찌됐든 절대자를 설정하여 설명하면 되니 그자체에 대한 사유가 멈추게 됐기 때문이다. 



역시 위에서 내가 단정하듯이 말했던 서술들 또한 결국 나만의 것이며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나는 계속 나아갈 뿐만 아니라 기존의 내면체계, 심적구조 또한 의심할 것이다. 내게 확실한 것은 단 하나 뿐이기때문이다. 그것은 세계는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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