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ule. [1432218] · MS 2025 · 쪽지

2026-01-01 22: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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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념의 주인으로 바로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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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은 우리를 지탱하는 기둥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조용히 제한한다. 인간은 의미 없이는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규칙을 세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렇게 살아야 옳다,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이런 문장들은 삶을 설명 가능한 이야기로 묶어주고, 고통이 찾아와도 견딜 이유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신념은 안정이다.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구조물이다.


하지만 같은 신념은 선택을 미리 결정해버리는 장치이기도 하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외면할지, 무엇을 나답지 않다며 밀어낼지를 신념이 대신 판단한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규칙을 실행하는 존재가 된다. 신념은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아니라, 사고를 멈추게 하는 자동장치로 바뀐다. 나는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이미 정해진 궤도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신념이 흔들릴 때 인간은 불안해진다. 신념이 무너지면 곧바로 “그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는 방패가 없다. 분노나 냉소, 허무로 덮어두지 않으면 그대로 자신을 찌른다. 이 상태는 자유가 아니라 무중력에 가깝다. 붙잡고 있던 의미가 사라진 자리에 공허가 생기고, 인간은 그 공허를 견디지 못해 다시 누군가의 기준, 누군가의 가치, 더 단단해 보이는 신념에 매달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어떤 신념은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 더 이상 나를 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나를 보호하는 척하는 신념, 사실은 나를 안전한 반복 속에 가둬두는 신념 말이다. 그런 신념을 잃으면 처음엔 공허가 온다. 방향을 잃은 느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침묵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 공허는 실패가 아니라 공간이다.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아직 선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유는 신념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자유는 신념을 가질지 말지를, 어떤 신념을 가질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다. 신념을 잃은 뒤 다시 누군가의 가치에 몸을 맡기면 공허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그 공백 위에 자신의 기준을 세우기 시작하면, 그때 비로소 자유가 시작된다. 그 기준은 처음엔 허술하고 불완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사유의 흔적이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신념이 없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선택은 무엇인가. 이 신념 때문에 끝까지 미뤄두고 있는 욕망은 무엇인가. 나는 이 신념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그 안에 숨어 있는가. 이 질문들은 삶을 편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삶을 내 것으로 되돌려준다. 신념을 의심할 수 있는 인간만이 신념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신념의 주인이 된 인간만이 자기 삶을 대신 살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깨어 있음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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