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전공 이수학생 성공(체험)수기 공모전 -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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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이번에 독일까지 갔다온 에피소드를 적어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래는 원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적 리더를 원한다
처음 신경과학, 뇌과학, 특히 그 중에서도 경제학과 뇌과학이 결합한 신경경제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존스홉킨스 이대열 교수님의 <지능의 탄생> 을 접하면서였습니다. 평소 교육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1학년 때 사범대 교육학과 4학년 교과목인 ‘기업교육론’을 수강하는 등 교육학에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었던 저에게 <지능의 탄생>이라는 책 제목 또한 저에게 교육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지능의 탄생>은 교육학이 아닌 뇌과학에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단지 생물학에서 끝나지 않고, 경제학, 게임이론, 컴퓨터과학, 심리학, 교육학 심지어 철학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학문들을 이용해서 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것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던 저에게 뇌과학만큼 끌리는 학문은 없었고, 에너지신소재공학과이던 저는 2023년 2학기에 동국대학교에서 열린 ‘학생 설계 전공 공모전’에 참가하고 수상을 하게 됩니다.
전공이름은 ‘데이터 기반 지능계산과학’인데, 향후 미국 대학원을 생각한 저는 영어로 번역했을 때도 어색하지 않은 전공명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학생설계전공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정말 어려운 점이 여럿 있었습니다. 학생설계전공은 크게 2가지 특징이 있는데 1. 학생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학과명으로 졸업장이 나오기에, 동국대에 존재하지 않는 학과 이름으로 졸업장이 나오게 된다는 점과 2. 모든 커리큘럼을 하나부터 끝까지 전부 혼자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무겁게 다가옵니다. 때문에 참고할 선배 사례가 거의 없어서 큰 고생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취업과 진학에서 불리함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여 1번에서 모두 겁을 먹고 대부분 포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뇌과학을 하고 싶었던 저에게, 뇌과학이나 신경과학 학과가 없는 동국대에서 효율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복수전공이 아닌 학생 설계 전공만이 유일한 해법이었고, 다른 대학의 사례나 공개된 자료까지 참고하여 겨우 커리큘럼을 작성하게 됩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학문을 거시적으로 메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길러졌습니다. 뇌과학으로 진학하기 위해서 어떤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각 학과가 지향하는 주안점이나 가르치는 철학을 잘 이해해야 했습니다. 예컨데 제가 입학한 전공인 ‘에너지신소재공학과’에서는 화학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물질, 모든 하드웨어에 대해서 공부를 합니다. 비슷한 이름의 전공인 ‘화학공학과’는 오히려 물리학을 중심으로 화공양론 등 산출물을 제한된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뽑아내는 것을 계산해야 하기에 수학 등의 교과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학문들의 특징들을 거시적으로 파악하고, 여러 학과에 진학한 친구와 교수님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특이하게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에너지신소재공학과는 하드웨어 중심 학과이기 떄문에 코딩 등 컴퓨터공학 교과목, 소프트웨어를 전혀 배우지 않습니다. 거꾸로 극단적으로 전자공학과나 컴퓨터공학과는 화학 등의 하드웨어에 대한 교과목을 전혀 배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료공학자는 소프트웨어 과목을, 컴퓨터공학자는 하드웨어 과목을 가장 어렵게 여긴다는 점은 참 신기하기도 하면서 얼마나 각 학문들의 주안점과 방향성, 논리 체계가 다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앞서 메타적인 시각, 정성적으로 학문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했지만 동시에 반대로 정량적인 역량, 구체적인 코딩이나 수학 등을 할 수 있는 하드스킬 또한 대단히 중요하였습니다. 저는 미국 대학원을 가고 싶었기에 논문을 쓰려면 학부생 인턴을 반드시 해야 했었고, 동국대 교수님들을 포함하여 여러 대학의 뇌과학 교수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컨택을 해보았습니다.
결과는 대실패. 약 20곳을 지원해보았으나 모두 거절을 당했습니다. 이때 저는 한가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학생 설계 전공이라는 제도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 학문을 거시적으로 보는 시각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특정 학문을 잘 하려면 미시적으로 수행하는 능력도 중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가설 제시, 패턴 인식 등의 정성적 역량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코딩을 하거나 무언가를 수행하는 정량적 역량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정성적 역량이 강했지만 정량적이고 미시적인, 구체적인 하드 스킬이 부족했기에 많은 학부생 인턴쉽에서 떨어진 것임을 뒤늦게 알 수 있었습니다. 예컨데 뇌과학을 하려면 소프트웨어에 관련한 하드 스킬, 컴퓨터 언어를 알고 코딩을 할 줄 아는 능력이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통계학과의 한 교수님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니까 거기에 맞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라는 위로도 해주셨는데, 단순히 위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 스스로의 한계와 약점,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상담을 해주시기도 했었습니다. 제가 새롭게 전공 과정을 스스로 창조하기에 여타 다른 뇌과학이나 컴퓨터공학 전공생처럼 커리큘럼을 단순히 따라가기만 하더라도 충분히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반면 저는 그러지 못하여 불리한 출발선에서 시작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주특기인 정성적인 역량 곧 가설 제안, 패턴 인식, 아이디어 추론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기로 합니다. 학생 설계 전공을 신청하면 다전공으로 취급되어 에너지신소재공학과와 복수 학위가 나오기에, 졸업 논문을 총 2편을 써야 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에너지신소재공학과 졸업 논문을 최대한 신경과학과 겹치는 분야로 찾아냈고, 그것이 바로 ‘바이오 미메틱스(bio mimetics, 생체 모사 공학)’ 였습니다.
바이오 미메틱스(bio mimetics)란 자연의 효율적이고 강건한 구조를 본따서 물건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TV에서 가끔 소개되는 신기한 공학기술!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한데요, 새의 부리 모양을 본따서 유체역학적으로 저항을 줄인 신칸센의 디자인, 상어의 리블렛(riblet) 피부 패턴을 모방해서 물 속에서 더 빠르게 헤엄치는 수영복 등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을 바로 프랙탈 구조였습니다. 덴드라이트(dendrite)라고도 불리는데, 나뭇가지나 뿌리, 해안가, 잎맥 줄기, 번개, 고사리 잎 등에서 등장하는 자기유사적 구조가 바로 이런 바이오 미메틱스 분야의 근본적인 원리일 것이라는 과감한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그 내용을 ResearchGate라는 연구자들의 SNS 플랫폼에 2025년 4월에 게시하였고, 바로 유럽의 바이오 미메틱스 분야의 대가 Julian Vincent 교수님께 이메일을 넣게 됩니다.
처음에는 프랙탈이 예쁜 구조이지 그래서 뭐가 의미가 있느냐는 다소 냉정한 답장이 왔지만 제 아이디어를 설명한 끝에 교수님이 관심을 가지셨고, 결국 저의 정중한 요청으로 학부생 인턴 자리를 한 군데 추천을 해주시게 되었습니다. Julian 교수님이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인 독일 클레베 지역의 라인 발 응용과학대학교에 추천서를 써주셔서, 2025년 8월부터 11월까지 약 3개월 동안 학부생 인턴으로 파견을 나가게 됩니다. 20번의 실패와 낙방 끝에 드디어 겨우 얻게 된 연구 경험의 기회였습니다.

3개월의 연구 기간 동안 온 몸으로 유럽 학계의 학풍을 경험한 저는 매우 중요한 깨달음에 하나 도달하게 됩니다. 한국은 저점이 높은 대신 고점이 낮지만, 반대로 유럽과 영미권은 저점이 낮은 대신 고점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빠른 성취를 위한 주입식 교육이 보편적이지만, 유럽은 학생이 스스로 사고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학풍이 특징입니다. 그 결과, 낙오자는 생기지만 독립적 사고력을 기른 학생은 훨씬 높은 고점에 도달합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을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르게 졸업을 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입식 교육이 가장 간편한 수단입니다. 교수님이 정답을 제시하고 그것을 빨리빨리 학생들이 공부를 해서 소화를 해야 하죠. 이러한 방식은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낙오되는 학생들이 적고, 모두가 최소한의 퀄리티를 바탕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 졸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점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점은 낮습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스스로가 생각하고 정답에 접근하는 사고력을 기를 기회가 부족했기에, 졸업을 하고 나서의 잠재력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유럽은 반대입니다. 유럽이라고 모든 교수님들이 주입식이 아닌 교육 방법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멘토링은 정답을 함부로 제시하거나 유도하지 않고 학생이 스스로 정답에 접근할 수 있게 보조를 해주는 멘토링을 합니다.
저를 라인 발 응용과학대학에 추천하시고 멘토링을 해주신 바이오 미메틱스의 대가 Julian Vincent 교수님은 과연 어느 한 분야의 대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려 깊은 멘토링 방식을 선호하셨습니다. 절대로 본인의 철학이나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주입하지 않았고, 제가 스스로 거기에 접근을 할 수 있게끔 자유롭게 시간을 제공하셨습니다.
이런 유럽과 영미식 교육의 단점은, 학생이 무한한 방황에 빠질 수 있고 교수자는 끝이 없는 인내심을 요구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점이 낮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정답에 접근조차 못하고 최악의 방향으로 고꾸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고점이 높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학생이 스스로 고민을 하고 사고력을 발휘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던 덕분에, 교수가 원했던 정답 이후에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자립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유럽을 갈 때, 어느 대학원생분이 ‘온 몸으로 유럽의 학풍을 느껴보아라’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정성적 역량과 정량적 역량에 대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크게 이름을 날린 유명한 학자들은 보통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뉴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깨부쉈고, 아인슈타인은 뉴턴 역학의 한계를 지목했죠. 그들은 공통적으로 정성적인 역량, 각 개별적인 사례를 깊이 생각하여 패턴은 인식하고 과감한 가설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정성적인 역량이 무척이나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모두 정량적인, 미시적인 하드 스킬 또한 뛰어났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뉴턴은 미적분을 개발하여 자신이 찾아낸 중력의 작동 원리를 수학적으로 객관적으로 설명하였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빛의 속도에 대한 구체적인 방정식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성적으로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례를 통해 과감한 가설을 제시하기도 하였지만, 공허하게 끝나지 않고 측정 가능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정량적인 역량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사히도 저를 항상 높이 평가해주시는 제 지도교수님은 저를 항상 한국의 일론 머스크(일론 머스크 또한 저와 같은 재료공학도 출신입니다)라고 하시면서, 미국 대학원을 추천해주십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이 과정들을 통해 깨달은 바, 제가 가지고 있는 타고난 강점인 정성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정량적인 역량도 열심히 개발해서 일론 머스크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적인 리더로 자라길 바라는 그 마음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제 글을 읽어보시고 첨삭을 도와주시는 다르마 칼리지의 글쓰기 상담 교수님은, 저더러 “너처럼 뇌과학 하는 애들은 원래 이렇게 다 거시적이냐”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뇌과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거시적이고 정성적인 역량이 뛰어나게 발전하는 것은 아닌거 같습니다. 다만 그저 여러 경험과 실패, 반복과 깊은 고민을 통해 발달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학생 설계 전공이라는 새로운 길을 작게나마 대학생 시절 도전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적 리더라는 꿈을 크게 꾸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도전은 단순한 전공 선택이 아니라 제 학문적 정체성을 세운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학문적 리더’라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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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멋지십니다. 특히, 객관적 분석과 경험을 기반삼아 활용해나가는 모습이 정말 멋지십니다.
잘 읽고 갑니다
역시 현장에서 직접 경험함을 통해 얻어가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