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날다 [257626] · MS 2008 · 쪽지

2011-02-02 23: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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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파리, 날다!』 요약편 (5)- 기회를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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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채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려운 마음뿐이었다.
3일이 지나고 나서 겨우 채점을 해 보았다.
메가 백분위 추정치가 '언어 99, 수리 97, 외국어 97, 법과사회 99, 국사 98, 윤리 90, 세계사96'였다.
결국 서울대는 절대 쓸 수 없는 성적인 셈이었다.



내가 생각한만큼 나쁘진 않았지만, 서글펐다.
서울대 하나 가고 싶어서 고교의 추억까지 다 포기했건만
이제 서울대는 영영 나의 로망으로만 남을 곳이 되어버렸다.


마음을 비우고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했다.
어차피 나는 논술 쓸 성적도 안 되니까
비싼 서성한 등록금에 보태 쓰기위해 알바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밤 11시부터 8시까지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이 너무나도 고되었다.
편의점 알바를 너무 쉽게 본 것 같았다.
야간 알바는 아침과 낮 타임에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물건을 진열하는 것이 임무인데,
이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음료, 유제품, 과자, 라면 등 온갖 박스들이 편의점 문 앞에 쌓여있는데
이걸 하나하나 다 나르고 까서 빈 자리에 채워넣고 나면
어느새 새벽 5시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 매장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며 바닥을 쓸고 닦아야 했다.
여기까지 마치고 나면 새벽 6시인데, 그 뒤로는 출근시간이라 폭풍출근하는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곤 했다






마침 9월 평가원 시즌때 고려대 영어교육과 수시를 쓴 것이 생각났다.
혹시 모르니 수시에 응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운 좋으면 내가 그렇게도 가고 싶어했던 고대 영교에 붙을 수도 있으니까.



비록 논술학원 한 번 다녀본 적 없고, 알바하느라 심신이 극도로 지쳐있긴 하였으나
문제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문제를 꽤 유쾌하게 풀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논술 답안을 밀려 쓴 것이었다.
당시 논제 2는 ''제시문 (3)의 논지를 밝히고, 제시문 (1)과 제시문 (3)을 비교하시오."라 되어 있었는데,
실수로 앞의 소주제인 '제시문 (3)의 논지'를 논제 3의 답안지에 쓴 것이었다.
이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30분밖에 안 남은상태였다.
당시 논제가 1,2,3,4로 4개가 나왔는데 1,4번 논제를 모두 미리 쓰고
2,3을 막판에 풀고 있었던 터라 이젠 답안을 수정할 여유도 없었다.
결국 병.신같은 답안지를 그냥 내야만 했다.



나는 수능을 봤을때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절망감에 빠지기 시작헀다.
내 21년 인생동안 내신, 수능에서 답안을 밀려써본 적 한 번 없건만
이젠 인생의 마지막 논술에서 처음으로, 그것도 SKY 갈 성적이 안 되어서
어떻게든 수시 붙어야 하는 상황에서 답안을 밀려쓰고 만 것이었다.



정말 죽고 싶었다.  지하철역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젠 서울대도, 연세 고려대도 갈 기회 다 잃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닥치고 만족하고서 중앙대 경영 정도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고된 일을 계속 하면서 그 생각이 차츰 바뀌었다
한 번은 음료 냉장고 뒤로 들어가 생수를 진열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생수 6개 묶음은 보기보다 무겁다. 그걸 들고 냉장고에 들어가다 팔을 찧었다.
너무나도 서글펐다. 아야..하면서 팔을 들다가 실수로 옆의 진열대에 쌓여있던
캔 음료들을 다 무너뜨리고 말았다.
OTL 자세로 음료를 하나하나 주워서 제자리에 놓았다. 너무나도 서글펐다.
나는 결심했다.
안 되겠다.
그냥 사반수 해야겠다.
사반수 해서 죽어도 서울대 가야겠다.
서울대 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편하게 살고 싶다.
너무 몸 상하고 마음 상하는 이런 일 도저히 못 하겠다.
내 다시는 이런 일 안 한다.





대망의 12월 8일.
나는 8시가 되도록 교대하는 여자애가 오질 않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창밖을 보았는데, 창밖에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비록 입자가 작지만, 그 눈은 정말로 하얗고 아름다웠다.
나는 순간 왠지 모르게 좋은 예감을 받았다.



여자애가 오고, 나는 교육청으로 갔다.
교육청에서 10시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마치 사형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와 같은 심정이었다.

10시가 되어 성적표 발부가 시작되었다.
나는 성적표를 받고서도 한창 그것을 접고 있었다
도저히 펼쳐 볼 자신이 없었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서야 겨우 성적표를 펼쳐 보았따.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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