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정의 [1425806] · MS 2025 (수정됨) · 쪽지

2025-11-30 20: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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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는 적폐임 (수시 폐지 국회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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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4K) [25]

수시 폐지.pdf

허점투성이의 내신과

허구투성이의 생기부를 바탕으로 하는 

수시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심각함.


정시도 문제가 있지만

수시는 정시보다 훨씬 더 불공정하고 불합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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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제도는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며 불합리합니다. 

수시폐지에 관한  국회 전자 청원을 올려보았어요.  동의하신다면 많은 찬성을 부탁드립니다. 


https://petitions.assembly.go.kr/proceed/registered/3FDE54A4A21469D2E064B49691C6967B


  네이버 검색창에 [수시 폐지]라고 검색하시면, 제일 상단에, [수만휘]사이트에 썼던 제 글의 원문[제목 : 수시 폐지 (정시100)]이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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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원문]


수시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수시의 근간을 구성하고 있는 [내신]과 [생기부]는 문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먼저 내신은 다음과 같은 5가지 문제점(5不)이 있습니다.


 1. 불공정
- 학교마다 수준 차이가 극심한데, 각 학교별로 얻은 내신 성적을 대입 전형에 공통적으로 활용한다는 발상은 그 옛날에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어떠한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나왔던 것입니까?
 수준이 다른 고등학교의 같은 내신 등급이 똑같이 평가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상점마다 제각기 다른 저울로 무게를 재고는 똑같이 3.0kg이라고 하는 셈입니다. 깃털 같은 가벼움도 3kg, 태산 같은 무거움도 3kg이라고 합니다. 소비자들(대학)은 똑같은 금액을 내며 실제로는 다른 무게의 역량(학생)을 구매합니다. 모두 다른 저울을 쓰고 있는 내신이라는 시스템의 불공정성, 허구성은 알면 알수록 놀라울 정도입니다. 교과 전형과 달리 학생부 종합 전형은 정성평가라지만, 생기부 퀄리티로 내신을 역전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어서, 평가 요소에 있어서 여전히 내신은 압도적 파워를 지닙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이 절반 이상에 달하는 고등학교에서 얻은 1등급 대 내신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학생은 물론이고 시험의 수준조차 천차만별인데 단순히 학교 시험을 잘 봐서 높은 내신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해당 학생의 학교생활에 대한 충실도, 학업 역량을 어떻게 우수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까? A 고교의 5등급보다 B 고교의 1등급이 당연히 우수하다는 논리는 대저 어느 논점에서 출발하는 것입니까?
 학교생활에 충실하게 하고 수업을 듣게 하려면 내신을 대입에 적용해야 한다, 정시를 늘리면 수업을 듣지 않아 공교육이 무너지므로 내신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공정이 생명인 대입 제도를 좀먹으며 이에 기생해 연명하려는 허술한 공교육의 자조적 메아리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시 중심으로 가면 수업 듣지 않고 자퇴한다고요? 오히려 수시 중심이니까 내신 망치면 너도나도 자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교육의 공공성과 어설픈 공평이라는 해묵은 기치 아래 대놓고 수십만을 차별하고 공정이라는, 우리가 평가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내야 할 소중한 기본적 가치를 묵살하는 것입니다. 내신은 당연히 인정할만한 대입전형 요소라는 인식은 십수 년에 걸쳐 무의식적으로 무기력하게 학습된 공정을 가장한 불공정에 불과합니다. 내신은 말 그대로 內信, 스스로에 대한 과신일 뿐입니다. 내신 등급이라고 하는 것은 정량화된 거짓 숫자놀음에 불과합니다. 심각한 차별에 기반한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불공정에 다름 아닙니다. 


2. 부적합
- 내신은 학생의 지능, 사고력, 분석력, 창의력 등 학업 역량을 측정하는 도구로 부적합합니다. 내신 공부는 암기위주이며, 폐쇄적이고도 지엽적인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내신 시험에서는 작은 범위 내에서의 변별을 위해 치졸하고도 지엽적인 문제가 출제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또한 단기 기억 승부 중심이어서 시험 끝나고 대부분의 지식이 흩어져 버리는 휘발성 공부입니다. 내신 성적에 지필평가뿐 아니라 수행평가도 포함되지만, 많은 교사들은 컴플레인을 우려하여, 수행평가보다는 지필평가에서 변별을 확보하려 합니다. 수행평가는 대체로 점수를 잘 주는 편으로, 내신 상위권 학생들은 수행평가에서 대부분 만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내신 성적은 사실상 지필평가 중심이며, 그 지필평가는 암기 위주의 지엽적인 공부입니다. 반면 수능은 고차원적 사고력과 뛰어난 지능 및 방대한 지식에 대한 장기적 암기 능력을 요구합니다. 수능이 더 개방적인 창의적 사고 중심의 시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능은 범위가 매우 넓은 데다 장기간의 승부여서 수능이 끝나고 나서도 베이스는 어느 정도 살아 있어 수능이야말로 오래가는 진짜 공부입니다. 인공지능이 도래한 시대에 암기식, 문제풀이식 수능에 얽매이는 과오를 범하지 말라고 혀를 차는 사람들치고 수능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수능이 어떠한 시험인지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암기 위주의 지엽적인 내신 시험이 오히려 더 인공지능 시대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수능이 이상적인 시험 제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최소한 내신보다는 나은 차악이라는 것입니다. 고쳐야 할 문제라고 늘 언급되어왔던 ‘주입식 교육’의 산실이 바로 내신이기 때문입니다. 최악인 내신보다는 차악인 수능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내신은 단위 학교에서만의 평가지만, 수능은 ‘전국 공통의 객관적 지표’입니다. 전국 공통의 객관적 지표이기에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습니다. 훨씬 더 보편적이고 신뢰도가 높기에 평가 기준으로서 적합합니다. 오히려 이따금씩 심심치 않게 나타났던 일부 고등학교의 시험지 유출 사례들은 내신 성적에 대한 신뢰도에 상당한 의문을 남깁니다. 드러난 고교만 그 정도라면 드러나지 않은 고교들까지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또한 교사들의 출제 오류로 번번이 재시험을 보는 고교들도 허다합니다. 어차피 대학 서열을 없앨 수 없고 줄 세우기를 해야 한다면 제대로, 공정하게, 적합한 평가 기준인 수능에 따라 변별해야 합니다. 


3. 불합리
- 정시는 재수, 삼수하려면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작년의 수능 점수는 올해 수능에 전혀 절대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다시 수능을 봐야 합니다. 정시는 ‘지금 현재의 실력’을 평가하여 대입에 반영합니다. 사실 이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반면 수시는 재수, 삼수하는데 별다른 노력이 들어가지 않으며, 고등학교 시절에 받은 내신 성적과 생기부 기재 내용이 다시 적용됩니다. 어째서 고등학교 재학 중에 받은 내신 성적, 생기부 기재 내용을 재수, 삼수, 심지어 육수할 때에도 다시 적용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때의 실력과 열정, 역량이 지금에도 유지되고 있다고 어떻게 장담합니까? 본래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의 실력, 역량’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까? 재탕, 삼탕이 사골 육수 수준입니다. 매우 불합리하며 부당한 시스템입니다. 시험의 기본적 가치, 개념조차 부재한 것이 지금의 수시입니다. 대학을 다니다 다시 깔짝대며 원서 접수를 하더니 몇 주 면접 연습하고 기존보다 상위의 대학에 붙는 것은 ‘재수’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도전’도 아닙니다. 함부로 도전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재수에 성공했다는 후기를 볼 때면 우리 사회에서 ‘노력’과 ‘도전’이 지니는 가치가 도대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 것일까 걱정이 됩니다. 그것은 단언컨대 도전을 빙자한 도적입니다. 온전히 지금의 역량과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평가받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정시 준비생들이 받아온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단 하루 안에 능력을 검증받아야 해 리스크가 크며, 수시의 6개 카드보다 쓸 수 있는 카드가 절반인 3개(사실상 2개)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시의 N수가 지금의 능력이 아니라 머나먼 과거의 역량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은 불합리의 극치, 평가 기본 개념의 완전한 부재라 볼 수 있습니다. 정시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 학점이 더 낮다, 자퇴율이 더 높다고 수시를 옹호하는 자들은 정시로 재도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지, 그러므로 학점 관리를 제대로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수시로 재도전 하려면 얼마나 적은 노력이 투입되는지, 그러므로 학점 관리를 하기가 얼마나 용이한지, 정시로는 엄두도 못 낼 대학에 감사하게 들어간 수시생들이 메타인지에 기반하여 눌러앉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잘 모르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자료를 해석하며 수시를 찬양하는 아전인수를 지속합니다. 


4. 불신감

  - 내신 경쟁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친구, 같은 학교 친구들과의 치열한 경쟁입니다. 우리가 지양해야 할 과도한 경쟁의 구도는 바로 내신 대비를 하는 시험 기간 교실 내에 실재합니다. 반면에 정시 중심의 학교에서는 옆에 있는 친구가 동반자입니다. 물론 40만 명 중 1명의 경쟁자이기는 하지만, 200명 중 1명의 경쟁자로 보는 것과 40만 명 중 1명의 경쟁자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함께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을 잘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정시가 수시보다 단위 학교 내의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릅니까? 오히려 수시 체제하에서 학급 친구들과 ‘경쟁’하는 내신과 부담 백배의 수행평가 ‘폭탄’, 각종 생기부용 활동들에 둘러싸여 더 팍팍한 학교생활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진 않습니까? 정시 중심이라면 옆에 있는 친구와 동반자적 관계에서 함께 열심히 하자고 서로 다독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완화해야 할 과도한 입시 경쟁 구도는 수시의 핵심인 내신에 있습니다. 


5. 불필요
- 지필평가와 함께 내신 성적을 구성하는 수행평가는 불필요하게 과도해진 상태입니다. 학생 주도의 창의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마련된 평가라고 하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단순한 주제에 관한 논술, 쪽지 시험이나 암기 시험과 같은 지필평가의 연장선에 불과한 평가가 많아 자신만의 깊이 있는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수행평가는 극소수에 한정되며, 제대로 된 수행평가마저도 학생들이 여러 검색 엔진이나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거의 그대로 긁어오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제대로 된 의미를 부여하기가 힘듭니다. 수행평가 준비가 미흡하면 일부러 질병 결석하는 비열한 행위는 현행 규정으로는 막을 수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교사들의 평가조차 기준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 수행평가라는 것의 보편타당성, 공정성은 예나 지금이나 큰 의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담이 엄청납니다. 학기당 20개가 넘는 수행평가는 시간적 한계에 부딪혀 해내기도 벅차며, 생기부 기록과도 맞물리면서, 학생 개인에게 크나큰 압박과 부담으로 다가오며 과중한 스트레스와 과로를 유발해 학생을 임계점으로 내몹니다. 수행평가는 이미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건전한 학교생활을 좀먹는 병폐가 된 지 오래입니다. 겉만 멀쩡해 보이는 썩은 사과입니다. 모두가 배탈 나기 전에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조건 수행평가를 과목당 1개로 줄이고 비율도 20%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신은 이와 같이 [불공정], [부적합], [불합리], [불신감], [불필요], 5不과 같은 폐단이 심하여 평가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내신과 함께 수시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하는 생기부 또한 평가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생기부 역시 [5不]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1. 비인간화
- 생기부가 대입전형에 중요한 평가 요소로 활용되는 순간부터 학교생활은 오로지 대입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기부’를 위해 탐구하고, ‘생기부’를 위해 협동하고, ‘생기부’를 위해 경험하고, ‘생기부’를 위해 봉사하고, ‘생 기부’를 위해 참여합니다. 수상이 반영되지 않자 교내 대회에 대한 참여가 급감해 대회가 없어졌고, 자율동아리가 반영되지 않자 그 많던 자율동아리가 없어졌으며, 개인 봉사가 들어가지 않자 개인적으로 봉사를 하지 않습니다. 독서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오로지 생기부 때문에 했던 것입니다. 아마 과세특이라는 게 없어지면, 각 교과목 생기부를 위해 보여주기식 탐구하던 기행도 없어질 것입니다. 반장 이력이 자율 특기에 적히지 않으면 반장을 하려고 지원하는 사람이 급감할 것입니다. 확신합니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 것입니까? 학교생활 자체가 생기부에 종속되어 간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생기부 때문에 무언가를 한다는 자체가 웃기지 않습니까? 내적으로 어떤 동기가 발현되어서, 진심으로 원해서 무언가를 향해 정진하는 것이 아니라, ‘생기부’를 위해 한다는 것. ‘내’가 아니라 ‘생기부에 그려지는 나’를 위해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 이게 얼마나 비교육적입니까? 이게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입니까? 인간을 틀에 맞춰 주조하는, ‘생기부형 인간화’는 비인간화에 다름 아닙니다. 혹 누군가는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이 이렇게 탐구하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겠지만, ‘본말이 전도된 탐구와 왜곡된 경험’은 본래의 의미뿐 아니라 결과의 적용까지도 그릇되게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움직여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에는 나서지 않는 극현실주의 인간을 만들고자 함입니까? 우리는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학습된 학생들은 반드시 이후에 ‘그렇게’ 학습할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결과’라는 블랙홀에 활동의 의미와 의도, 과정, 노력 모두가 침잠되어 버리는 놀라운 현장을 교육부에서는 ‘학생 주도의 창의적 사고력’을 육성하는 바람직한 모습이라 찬사를 바치며 수시를 옹호합니다. 가관입니다. 

 생기부 때문에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도 진정성을 가지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온갖 가식과 위선, 갈등과 반목이 만연합니다. 서로 웃지만 웃는 게 아닙니다. ‘생기부 웃음’입니다. 피상적인 관계의 껍데기가 더욱 두꺼워지며 인간성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말살됩니다. 생기부는 어느덧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기제가 되었습니다.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존재가 생기부입니다. 자 여러분 학교생활 바르게 열심히 하세요. 생기부에 잘 적어줄게요. (바르게, 열심히 = 생기부)


2. 부조리
- 생기부는 부조리, 즉 거짓말입니다. 30~50%의 사실을 바탕으로 50~70%의 거짓을 만들어냅니다. 실제 했던 부분은 30%, 많이 잡아야 50%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50~70%는 실제로 하지도 않았거나, 실제로 했던 것이라 하더라도 팩트가 빈약해 이를 과도하게 부풀리거나, 다르게 해석하고 표현한 거짓 서술에 불과합니다. 50~70%는 허구, 왜곡, 과장의 집합소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과 거짓이 혼동되어 있고, 거짓이 참으로 둔갑해 있으며, 거짓이 또 다른 거짓을 낳는 상황입니다. 발표하지도 않았는데 ‘발표함’, 토론하지도 않았는데 ‘토론함’,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소개함’, 제작하지도 않았는데 ‘제작함’, 호평을 받은 적도 없는데 호평, 박수 갈채를 받았다고 합니다. 책을 읽지 않았거나 극히 일부를 읽었을 뿐인데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제대로 읽지도 않았던 책이 면접에 나올까봐 면접 직전에 책의 요약본만 읽어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70% 이상의 팩트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게 준비하고 채워
간 생기부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이와 반대로 70%의 허구, 왜곡, 과장 등의 거짓말로 채워집니다. 놀랍게도 이런 소설들을, 속는 것인지 속아주는 것인지 대학교가 좋다고 평가하고 해당자를 선발합니다. 그렇게나 장황한 모집요강, 학종 안내서의 번드르르한 내용이 무색하게도, 입학사정관들은 참과 거짓을 구별해내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모두 거짓이라는 술독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생기부 기반 면접도 당연하게 생기부의 속성과 연결됩니다. 안 읽은 책을 뒤늦게 읽어놓고, 기억이 안 나는 수행평가의 기억을 거짓으로 꾸며내고, 학급에서 또는 동아리에서 실제로 하지도 않았던 경험, 약간의 활동을 크게 부풀려 기재했던 범죄에 대답하기 위해 어떻게든 허구를 그럴싸하게 지어내 ‘나는 그랬다’, ‘나는 이렇게 해왔다’ 하면서 그럴듯한 조작을 스스로 인식화, 세뇌시킨 후 답변하는 일련의 자작극이 자행됩니다. 거짓말 탐지기조차 울고 갈 정도의 거짓 세뇌화. 우리가 아이들을 이런 괴물로 만들어 온 것입니다. 기억을 강하게 세뇌시킨 채 가면을 쓰고 들어가 10분 동안 그럴듯하게 입을 잘 놀리면 수백 명을 상대하느라 지쳐있는, 또는 만면에 엄마 미소를 짓고 있는 입학사정관을 속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또한 면접 시간은 사람을 평가하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10분 내외의 시간 안에, 단지 질문 6~9개 정도로 학생의 우수성, 지난 3년 간의 시간을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듯한 포장, 그럴싸한 꾸밈을 단시간에 간파할 수 있다는 입학사정관의 오만을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생기부의 부조리는 게다가 인공지능 사용의 확대와 함께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보고서는 물론이고 교사의 기록까지도 상당수가 인공지능에 기반해 작성됩니다. 탐구 내용이 실제로 학생 주도로 실시된 것인지, 교사가 직접 생기부 기록을 작성한 것인지 명확히 알 방법은 없습니다. 생기부는 다시금 기존의 거짓말에서 새빨간 거짓말로 진화하는 중입니다. 우리나라가 대저 어떤 나라인데 자신을 꾸미고 내세우는 문서로 대학을 들어간단 말입니까? 온갖 거짓이 난무하고 과장이 횡행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단 말입니까?


3. 불평등
- 생기부에는 학생 본인의 역량 외의 부모, 학교 등 환경적 요인이 많이 작용합니다. 고액의 생기부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입학과 동시에 3년간의 학교생활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주조되며 인조인재로 거듭나 상위권 대학들에 손쉽게 입학하는 상류층 아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여러 정치인 자녀들의 입학 비리 사건들을 통해 수차례 확인해 왔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위층 자녀들이 그들이 가진 재력과, 이를 기반으로 한 고액의 생기부 컨설팅과, 학교 네임벨류를 바탕으로 유유히 상위권 대학들을 통과했을지, 그리고
논문과 행사를 포함한 다양한 부류의 부모찬스, 지인찬스, 인맥 등이 동원되어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횡행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수능을 준비하는 데 재력이 필요하며, 정시 중심으로 가면 학군지만 유리하게 된다고 정시의 불공평을 강조하지만, 일타 강사의 강의는 온라인 상으로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고액의 생기부 컨설팅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둘은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인강이 워낙 발달해 양질의 강의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들을 수 있어 정시에 많은 재력이 동원된다는 논리적 근거는 다소 희박합니다. 사실 어느 정도 머리가 되지 않으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붇고 과외를 붙여주어도 안됩니다. 정시 중심 시대에 대기업 후계자들도 재수를 했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실을 여실히 나타냅니다. 학군지가 정시에 유리한 이유는, 그만큼 실력이 되는 학생들이 많으며, 그만큼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 상승 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생기부는 또한 학교라는 백그라운드도 많이 작용합니다. 다채로운 양질의 활동을 마련하고 다양한 강의를 개설한 좋은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 간의 차이는 생기부 상향 평준화가 이뤄진다는 요즘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생기부가 학교 서열화를 부추기는 또다른 원인으로 자리매김한지 이미 십수년입니다. 고교학점제는 이를 더욱더 부채질할 것입니다. 정시와 수시, 과연 어떤 것이 더 불평등을 심화시킵니까? 사교육은 어떤 대입전형을 가져다 놓든 성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그렇다면 조금 더 공정하고, 조금더 공평한 전형을 중심으로 대입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4. 불가항력
- 생기부는 구조 자체부터 교사 중심적입니다. 생기부를 잘 써주지 않는 교사를 만나면 매우 억울합니다. 종합 전형의 축이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달린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학생의 실력과 역량이 교사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왜 교사의 필력과 관심 정도에 따라 학생 개개의 경험과 노력이 나타납니까? 왜 학생이 교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합니까? 대입에서 중요하게 반영한다고 하는 평가 서류가 학생의 의지, 노력, 경험과 상관없이 ‘교사라는 불가항력적 존재’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허무하고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탐구를 열심히 해서 보고서를 제출해도 교사가 까먹으면, 또는 이상하게 기재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생기부 앞에서 학생은 을이 되고, 교사는 갑이 됩니다. 교사는 왜 그렇게 고작 몇 줄 기록에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갑질’이라고 하는 게 ‘생기부 갑질’이라는 형태로 고등학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생기부는 불가항력 말고도 불가변의 속성을 지닙니다. 바꿀 수가 없습니다. 작년, 재작년 기록에 심각한 오타나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증빙 서류가 없거나 학교가 이를 허가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본인의 이름도 바꿀 수 있는 세상인데, 평생 가는 서류인 생기부는 못 바꾸는 것입니다. 


 5. 불명확성
- 생기부가 대학마다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가 불명확합니다. 생기부 중심의 학종 전형을 깜깜이 전형이라고 하는 게 실제로 예측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건국대에 불합격한 학생이 한양대에 합격하기도 하고 작년에 불합격한 생기부가 올해는 합격하기도 합니다. 물론 지원한 학생의 풀이 다르고 전형 방법이 달라질 수 있고 입학사정관이 다를 수 있고 대학별 인재상이 다르기 때문이라지만, 선호하는 대학의 서열이 엄연히 상존하는데 생기부에 대한 평가, 생기부에 의한 합격 여부가 대학별로 상당히 가변적이고 예측하기 어렵다면 이는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입에서 중요한 척도인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집니다. 그리고 생각해야 하는 변수가 많아져서 대입 전형이 더 복잡해지게 됩니다. ‘변수가 많다, 불명확하다’는 것은 대표적인 사교육 유발 요인입니다. 학부모의 불안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점수에 맞춰서 자식이 갈 대학이 어느 정도 보이고 명확하면 컨설팅이고 뭐고
사교육에 의존할 일이 별로 없어집니다.


  생기부는 이와 같이 [비인간화], [부조리], [불평등], [불가항력], [불명확성] 5不과 같은 폐단이 심하여 평가 기준으로 전혀 적합하지 않습니다.
 [불공정], [부적합], [불합리], [불신감], [불필요], 5不과 같은 폐단을 지니는 내신과 더불어 생기부 역시 이처럼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허점투성이]의 내신과 [허구투성이]의 생기부는 평가의 기본적 가치들을 훼손하고 침식합니다. 무엇보다 제일 많이 퇴색되는 것은 평가에 있어서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공정의 가치입니다. 대입이라고 하는 살벌한 장에서 모두가 동일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그 기준은 공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대학에 대한 모독이요, 실력 있고 노력하는 다른 학생들에 대한 모욕이며, 우리가 믿어 왔던 공정이라고 하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종언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여러 사실과 논리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춘 학생이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실력은 반드시 공정의 토대 위에서만 발현됩니다. 


 정시 100%를 주장합니다. 수시를 폐지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난이도를 확보한 수준의 수능 중심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이, 학생 부담 차원에서도, 대학의 변별력 확보 차원에서도, 입시의 복잡성을 완화하는 차원에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공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훨씬 더 발전적입니다.

  학생 중심의 창의적 사고력을 육성하며 다양한 경험 중심의 학교 생활을 진작시킨다는 취지로,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따라한다는 모양새로 시작된 수시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표방했던 본래의 의도가 무너져 버린지 오래입니다. 수능보다도 더 주입식 암기 중심인 지필평가, 창의력은 무슨 어디서 죄다 긁어오기 급급하고 해내기도 벅찬 부담 백배의 수행평가, 이들을 포함한 과도한 내신 경쟁, 보여주기식 탐구와 수박 겉핥기식 경험의 기행이 난무해 본말이 전도된지 오래인데다 각종 허구와 과장이 판을 치는 생기부. 그간 학생 주도의 창의적 사고력 육성은 요원하고, 오히려 대학 신입생들의 기초 학문 역량 부족이 두드러져왔습니다. 수시가 소수 기득권층의 입시 비리 온상으로 전락한 것은 물론, 다수 하위권 학생들이 실력 없이 거저 상위권 대학으로 올라가는 썩은 사다리로도 기능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오랜 기간 경천동지할 정도의 불공정이 만연해 왔으며, 셀 수도 없는 많은 실력자들이 피눈물을 흘려 왔습니다. 결국 애초의 취지는 무색해지고 병폐만 더욱 심화된 셈입니다. 공정은 평가에 있어 가장 중심이 되는 가치이거늘 다른 분야도 아닌 [대입, 평가]에 있어서 공정을 뒤로 한 채 공평, 공공성, 다양성을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답습해왔던 비정상적인 수시 중심의 관행을 타파해야 합니다. 아무리 강남 살아도 실력이 없으면, 아무리 대기업 후계자라도 실력이 없으면,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고,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농어촌에 살아도 실력이 없으면,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 그게 진짜 실력을 기준으로 한 공정한 평가입니다. 


 그러나 정시100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차선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정시 비율 70% 이상 확대, 정시 카드 6개로 확대
  - 나머지 30%는 수시
 2. 모든 수시 전형에 수능 최저 부여 + 수능 최저 강화
 3. 수시에서의 N수 금지 (정시와 똑같이)


 (수능의 전 전형에 대한 자격고사화, 수능 실시 횟수 연 3~4회로 증설 등도 좋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장치조차 마련되지 않고서는 우리 모두가 애써 어느 목표를 위해 노력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역차별을 당해 피눈물을 흘리며, 결전의 날 단 하루를 위해 재수학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지금도 누군가는 손쉽게 2지망 대학에 입학한 후 별다른 노력도 없이 1지망 대학에 다시 원서 접수를 해봅니다. 공정한 토대 위에서 정당한 실력에 따라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그놈의 공정과 정의, 상식의 지극한 기본인 것입니다. 절대로 ‘공평, 공공성, 다양성’을 위해 ‘공정’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평가에 있어서 ‘공정’이 사라지는 순간 평가 본연의 의미는 물론이고, 결과에 대한 신뢰 또한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공정한 경쟁에 기반한 사회 전체의 효율성과 수월성을 경시하고, 공평이나 공공성과 다양성만을 중시하며 나아간다면, 그 처참한 대가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후에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하향평준화가 넘실대는 속에서 진짜 실력을 폄하하고 노력을 경시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입니다. 지금의 선진국 대한민국은 공정한 경쟁의 토대 위에서 우수한 인적 자원을 배출하여 일구어온 나라가 아닙니까. 공평을 논하기 전에 공정을 바라봐야 합니다. 


 공정하지 않은 평가는 죽은 평가입니다. 

 공평하지 않은 평가는 있을 수 있지만 공정하지 않은 평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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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심원리 · 1310436 · 7시간 전 · MS 2024

    이거 어디에 올리실건가요?

  • 자다가 쿵해쪄 · 1029069 · 7시간 전 · MS 2020

    님이 교육부장관이 되서 추진ㄱㄱ

  • 공정과정의 · 1425806 · 6시간 전 · MS 2025

    동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파이논 · 1411069 · 7시간 전 · MS 2025

    동의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데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공정과정의 · 1425806 · 6시간 전 · MS 2025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 공정과정의 · 1425806 · 6시간 전 · MS 2025

    국회 전자 청원에 올렸으며 현재 1958명이 찬성해주셨습니다. 수만휘에도 글을 올렸습니다. 각 대학 입학처, 각 정치인 정책 수렴 게시판 등에도 글을 올리거나 메일을 보낼 생각입니다.

  • Super5typhoon · 1404720 · 5시간 전 · MS 2025

    정시 6개, 수시 N수 금지, 최저 기준 강화,수행평가 폐지, 생기부 폐지 등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전형 최저 도입, 수시비율 축소에는 반대합니다. 최저 없는 전형 도입하면 영과고, 상위권 특목고는 대학 못갑니다. 그리고 수시를 축소하면 문제가 심각한게 교육부가 개정 수능부터 통사, 통과에다 수학은 확통만 하고 암튼 개판으로 만들어놔서 미적분 안한 공대생이 수두룩 할텐데 이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공정과정의 · 1425806 · 5시간 전 · MS 2025 (수정됨)

    많은 부분에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과고, 상위권 특목고도 수능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출한 학생들인만큼 잘 하리라 봅니다. 과고생들은 수학, 과학에 탁월하고, 외고생이나 국제고생들은 국어나 영어에 강하니 3합 7 정도는 문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수능 최저를 맞추지 못하는 비율이 지금은 현저히 낮지요. 하지만 지금의 수시 중심 체제에 적응해서 그런 것이지, 준비한다면 충족율이 많이 오르리라 생각합니다. 예전처럼요. 예전의 정시 중심의 시대에 영과고, 특목고 정시 성적은 대단했습니다. 정시가 확대되면 이에 충분히 적응할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저는 3합 7의 최저도 너무 약해서 몇 년전처럼 3합 5나 3합 6, 4합 8 정도로는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국어3, 수학6, 영어2, 탐구2, 탐구6 이렇게 맞아도(평백 65~70 정도) 되는데, 학업역량을 검증하는 장치로는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시 확대는 당연히 [고교학점제 및 2028 대입 개편의 전면적 폐지, 수정]을 포함하여 말씀드린 것으로,
    저는 너무나 당연히 수능에 다시금 미적분, 기하, 탐구과목들을 당장 원래대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Super5typhoon · 1404720 · 3시간 전 · MS 2025

    정성스런 답변 감사합니다. 저도 수시생이지만 수시 제도의 문제점이 한둘이 아닌것에 공감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wldn/ · 1405547 · 4시간 전 · MS 2025

    글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잘하는 학교에 다니면서 내신이 모고에 비해 많이 낮은데, 2028부터 정시에 내신 반영이 되면서 정말 많이 절망스럽습니다. 진로가 연구직 쪽이라 높은 대학에 가야 대학원 진학에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벌써부터 진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봐 너무 두렵습니다. 현재 개편안을 보면 사실상 수능을 무효화시키려는 분위기인것 같은데, 알면서도 안정하고 싶지 않네요...

  • 공정과정의 · 1425806 · 4시간 전 · MS 2025

    그 마음 너무나 공감합니다. 120퍼센트 공감해요..정시에 내신을 반영하고 정시 과목을 개판 내고 점점 정시 비율을 줄이려는 현 세태를 보면서 개탄을 금치 못해 나서게 되었어요. 정시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수시는 적폐 그 자체에요. 내신과 생기부는 완전한 넌센스입니다.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유 경쟁, 공정 경쟁이 잠식당하고 있어요. 2028 모집요강은 대입전형시행계획과 다소 다르길, 대학들이 늦게라도 정신차리길 바랄 뿐이에요. 힘내세요. 건승을 빌게요. 언젠가 진정한 의미의 공정과 정의가 승리할 거예요.

  • wldn/ · 1405547 · 4시간 전 · MS 2025

    방금전에 동의 눌렀습니다. 정시 100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있는 정시마저 없애버리겠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현재 입시는 비상식적으로 느껴지네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공정과정의 · 1425806 · 3시간 전 · MS 2025

    맞아요. 비상식적이지요. 상식을 가장한 비상식, 정상을 가장한 비정상, 공정을 가장한 불공정이 얼마나 태연자약하게 만연하는지....
    동의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승리하세요.

  • 통통이가되 · 1427854 · 3시간 전 · MS 2025

    정시 50%만이라도 해라...

  • jh._.0327 · 1213792 · 9분 전 · MS 2023

    전 수시로 꿀빨고 대학갔고
    사실 난 이미 대학가서 수시 없어지나 마나 내 알빠 아니긴한데
    님 주장이 너무 주관적임

    대충 한 건만 들고와보면

    "내신은 학생의 지능, 사고력, 분석력, 창의력 등 학업 역량을 측정하는 도구로 부적합합니다. 내신 공부는 암기위주이며, 폐쇄적이고도 지엽적인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내신 시험에서는 작은 범위 내에서의 변별을 위해 치졸하고도 지엽적인 문제가 출제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가 이거에 반대한다는게 아님
    동의해요 내신 존나 치졸하죠 내가 이걸로 대학왔는데 젤루 잘알지ㅇㅇ
    근데 이게 개인적 수준에서 동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를 들고 와서 남들을 설득시키기엔 논리가 좀 모자른거같음
    그냥 글 읽고 씹고 넘기려다가
    꽤 길고 진중한 의도로 쓴거같아서 드리는 말씀임 취지는 좋으니까 글 좀 더 보강해서 올려주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