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17번 출제오류 한방정리(당신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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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론
국어 17번으로 인해 치열한 논박이 오고가는 가운데, 제 생각을 전해드리고자 글을 써봅니다. 최대한 수험생 여러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자 하니, 관심이 있지만 이해가 어려운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개체와 속성의 차이를 알고감이 좋을 것 같습니다.(물론 뒤에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이 개념들이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a라는 개체는 오직 하나만 존재할 수 있고, 어떠한 b라는 속성은 여러 개체에게서 복수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또한 b가 a의 속성이라 함은, a는 무조건 b라는 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B. 이의제기 이해하기 (잘 모르겠으면 핵심부터 보기)
칸트 이전의 철학에서는 (데카르트로 추정됩니다.)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고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답니다. 그러면 여기서 두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번째로, 영혼은 영혼인데, 그 영혼이 단일한 (인식의) 주체이면서 시간의 흐름속에 지속하는 특별한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혼들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지요. 이 해석에서는 '생각하는 나'를 개체로 취급하든, '생각하는 나'를 영혼의 속성으로 취급하는 두가지 방향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개체는 아까 말했듯이 '하나'밖에 없기에 영혼과 외연, 즉 지시대상이 같으므로 '생각하는 나'=영혼으로 도식화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생각하는 나'가 영혼의 속성이 되어, 영혼->'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가진다.)이지만 역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핵심
다만, 어느 경우를 택하든 인격의 동일성을 위해선 그냥 영혼이 아니고 영혼 and 단일한 인식의 주체 and 지속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영혼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위 해석들을 가지고 논란의 문제를 풀어봅시다.
<보기>
갑 :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 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만약에 첫번째 해석인 영혼='생각하는 나'의 도식을 통해 해당 문장을 풀이한다면, 글에서 계속 강조했듯이 그냥 영혼이 아닌 영혼 and 단일한 (인식)주체 and 지속이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때문에 영혼(생각하는 나) and 지속 이라는 조건만 만족시키는 선지에 대해서는 칸트 이전의 견해에서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번째 해석으로 '생각하는 나'를 영혼의 속성으로 취급하여, 영혼->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지님)이라는 도식을 통해 풀이해봅시다. 이때에는 더 확실하게, 생각하는 나는 영혼을 보장하지 못함과 동시에 '지속'이라는 조건만 충족하기에 칸트 이전의 견해의 조건인 영혼 and 단일한 (인식)주체 and '지속' 이라는 삼박자를 맞추지 못합니다.
참고: 포스텍 교수님께서는 모든 영혼은 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발현하고, 모든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은 영혼에서 발현된다라는 필요충분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만, 왜 그렇게 나온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풀더라도 결론은 같습니다. 단일한 인식 주체라는 조건이 빠진 해당 선지는 지금까지의 해석에서 타당하게 도출해낼 수 없습니다.
수정: 2문단을 보지 않고서는 생각하는 나와 영혼을 필요충분조건으로 놓을 수 없습니다. 포스텍 교수님께서는 2문단을 통해 칸트 이전의 견해가 생각하는 나는 영혼의 존재를 담보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필요충분관계로 두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당히 그럴 듯 해보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엥? 진짜 오륜가 싶었습니다만은..
C. 칸트의 반격

칸트는 마지막 문장에서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고,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라고 반박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갈 수 있는 점은, 칸트 이전의 견해에 대한 확실한 해석이지요. 즉, 칸트 이전의 경우에는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인식주체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면 앞에서의 논의가 모두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생각하는 나'가 속성이든 개체이든, 그것이 있다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함을 보장하는데, 이는 곧 영혼의 실재함과 같고, 결국 생각하는 나-> 영혼의 실재=단일한 주관의 존재 라는 도식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라는 문장은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는 영혼이 단일한 주관 이라는 조건을 추가로 만족시켜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면 단일한 주관이라는 동치관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만 실재함이 확인된다면 단일한 주관이라는 조건은 달성되는 것이기에, 인격의 동일성을 위해서 '지속'이라는 조건만 달성되면 됩니다.
(참고: 뒷 문장을 통해 '생각하는 나'가 영혼의 실재를 보장하지 않는다 함은, '생각하는 나'가 속성으로 다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생각하는 나'가 개체로 다루어진다면 '생각하는 나'는 당연히 영혼의 실재를 보장할텐데, 보장하지 않기때문에 속성으로 다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어느쪽으로 가든, 결국에는 결론은 같습니다.)
C.1 이제 다시 문제를 바라보니..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그래서 이제 다시 보면 명확합니다. '생각하는 나'는 칸트 이전의 견해에서는 단일한 주관의 존재, 즉 영혼의 실재를 보장하고, 선지에서 '지속'이라는 조건 또한 제시했기에 동일한 인격의 근거인 '영혼('생각하는 나'로부터 자동도출) AND 단일한 주관(영혼으로부터 자동 도출) AND 지속'이라는 삼박자를 달성하게 됩니다. 따라서 문항엔 오류가 없습니다.
(참고: 덧붙여 애초부터 칸트 이전의 유력했던 견해에서는, 프로그램으로 복제한 상황이 '불가능'합니다. 철학적 좀비 논증을 생각하면 쉬운데, 철학적 좀비논증은 물리주의가 옳다면 존재할 수 없는 철학적 좀비가 사고실험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를 토대로 물리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물리주의가 옳다면 철학적 좀비라는 개념이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모순된 개념이기에 철학적 좀비가 존재할 수 있다라는 전제를 함부로 추가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지문에서는 칸트 이전의 견해가 단일하게 지속되는 영혼 혹은 인식 주체를 인격 동일성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영혼이 앞서말했듯 단일성을 무조건 가지기에 <보기>의 상황처럼 단일성이 깨져버린 상황은 칸트 이전의 견해가 둥근 삼각형처럼 불가능하다고 볼 것입니다.)
D. 기타 반박에 대한 답변
Q1. 단일한은 유일한이 아니기에, 수적 동일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A. 처음에 제시한 해석을 반박하기 위해 1을 꺼내드는 것의 난점은, '지속'이라는 조건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단일한은 하나로 이루어 졌다는 것만을 의미하기에, 단일한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유일성을 보장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단일하면서 지속하려면 유일하지 않고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적절한 반론은 아닙니다.
Q2. (이의제기측의 재반박) 3번 선지에서 앞의 내용은 '갑'의 입장이기에, 실제 의미는
(1) <적어도 두 개의 시점 t1, t2에 대해, t1에서의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 발현이 t2의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발현과 칸트가 말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2) <적어도 두 개의 시점 t1, t2에 대해, t1에서의 ‘생각하는 나’라는 개체가 갖는 의식의내용(속성발현)이 t2의 ‘생각하는 나’가 갖는 의식의 내용(속성발현)과 칸트가 말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이다.
A. 지금까지의 수능 출제에서 '갑'의 일부 주장만 써놓은 경우에는, 갑의 전체 주장을 동의하는 바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선지에 적힌 갑의 일부 주장에만 일치하면 맞는 것이기에 선지에 갑의 전체 입장을 덧붙여서 해석함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갑은 앞집 엄마의 아들이 A다" 라고 주장했고, 을은 "옆집 엄마의 아들이 A다"라고 주장한 경우에, 엄마의 아들이 A다라는 갑의 주장에 을은 동의하겠군이라는 문장은 적절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류나 수정사항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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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2) 이 핵심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교수님이 수능 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신듯 인문에서 학자간 비교할때는 선지에서 물어본 바로만 판단해야하는데
위의 논증이 맞다면 다음 논증도 타당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 서울
대한민국의 수도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
그러므로 서울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 논증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가령 대한민국의 수도가 세종시로 옮겨지면서 대한민국이 세종시를 수도로 하면서 계속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울이 지질대변동이나 아니면 행정구역 재편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도 = 서울이고 대한민국의 수도가 지속한다고 해서 서울이 지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논증과 필자님 논증의 형태가 다르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여하튼 제 포인트는 <생각하는 나가 지속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면밀히 따지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고, 이렇게 따졌을 때, 손흥민의 의식이 프로그램으로 재현되는 상황에서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영혼은 지속하지 않으므로, 칸트 이전 견해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에 동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1. 좋은 의견, 그리고 높은 식견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서울 논증에서 대한민국의 수도와 서울의 관계는 우연적 속성이고, 영혼과 생각하는 나의 관계는 본질적 속성의 관계이기 때문에 말씀주신 대로 논증의 형태가 다르므로 반례가 된다 생각하진 않습니다.
2. 가장 핵심은, cornerguy님께서 생각하는 나가 지속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면밀히 따져야한다고 주장하신 바입니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본문의 Q2를 가져오겠습니다.
Q2. (이의제기측의 재반박) 3번 선지에서 앞의 내용은 '갑'의 입장이기에, 실제 의미는
(1) <적어도 두 개의 시점 t1, t2에 대해, t1에서의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 발현이 t2의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발현과 칸트가 말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2) <적어도 두 개의 시점 t1, t2에 대해, t1에서의 ‘생각하는 나’라는 개체가 갖는 의식의내용(속성발현)이 t2의 ‘생각하는 나’가 갖는 의식의 내용(속성발현)과 칸트가 말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만, 수능 국어 풀이에 있어서의 규칙은 A2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갑'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칸트 이전의 견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나의 지속'을 분석해야합니다. 칸트 이전의 견해에서는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 즉 영혼의 존재를 담보하기에 해당 단어는 단일한 주관이자 영혼의 지속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합니다.
일반적인 철학 논쟁에서는 cornerguy님 말씀과 이의제기 측 문제제기처럼 '갑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나의 지속'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칸트 이전의 견해가 받아들이는 바를 분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수능 국어에 있어서는 해당 형식의 문장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그냥 바로 '칸트 이전의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바를 분석해야합니다. 좋거나 나쁘거나를 떠나서 그것이 관례입니다. 그래서 갑이 제시한 프로그램 인격복제와는 아무 상관 없이, 러프하게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을 두고 바라보았을 때 지문에 근거한 칸트 이전의 견해가 어떻게 바라보는지만 분석하면 됩니다. 보기의 프로그램 복제 사례를 칸트 이전의 견해가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보기의 사례를 칸트이전의 견해가 바라보는 것을 묻는 문제라면, '프로그램 복제'에 대해 칸트 이전의 견해는~이런 식으로 선지가 구성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갈 수 있는 점은, 칸트 이전의 견해에 대한 확실한 해석이지요. 즉, 칸트 이전의 경우에는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인식주체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고 본 것입니다.
위 부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A는 밥과 물을 먹는다
그러나 B는 밥을 먹는다
위에서 그러나 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a는 밥을 먹지 않는다가 도출되지는 않습니다. 본문과 더 유사하게끔 문장구조를 만들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 "생각하는 나, 즉 영혼"이라고 기재되었다면 위 논리가 모두 타당하겠으나 본문에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고 했을뿐입니다.
홀수인 소수, 또는 소수인 홀수라는 말은 홀수와 소수의 교집합을 말하지 모든 소수가 홀수라거나 모든 홀수가 소수라는 뜻을 가지지 않습니다. (아주 많은 소수가 홀수인 건 맞지만 반례가 딱 하나 존재하는 한 소수임이 홀수임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앞뒤 맥락에서 '생각하는 나'와 영혼을 매우 밀접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두 개념을 필요충분조건으로 동치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훨씬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그렇게 모호한 방법을 취했다는 것도 불합리합니다.)
뒤에 그러나 라는 말이 붙더라도 이는 앞과 뒤가 불일치함을 뜻하지 전혀 상반된다거나 교집합이 부존재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A는 양적 공리주의를 따른다
그러나 B는 질적 공리주의를 따르는데, 오페라가 심슨보다 낫다는 것이다.
-> 여기에서 a는 심슨이 오페라보다 낫다고 보았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A는 b와 별개의 논거를 통해 같은 결론을 지지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A는 B에 비해 심슨에 좀더 친화적일 것이라는 추론까지는 허용가능하지만 그러나 라는 말이 나왔고 a는 b의 반대니까 a의 견해가 확실해졌군 이렇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합리적인 범위에서 맥락상 추론을 할 수 있으나 이는 개연적인 것이고 논리적으로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뇌 스캔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에 있어서는 더더욱 논리적인 엄격성을 지켜야 합니다
고견 감사합니다. 다만, 제 생각과는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조심스레 말씀드려 봅니다.
1. 당연히 그러나 라는 접속사만으로는, 전 문단의 내용이 그러나 이후의 내용의 부정임을 필연적으로 도출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앞 문단이 어떻게 서술되었느냐 일 것입니다. 그 전에 제 주장에 대해 잘못 이해하신 것 같아 그 점부터 짚고 가겠습니다.
2. 소수인 홀수, 홀수인 소수를 예로 들어 a인 b라는 용법은 항상 동치관계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주셨습니다만, 속성과 속성을 해당 용법에 적용시킬 때는 타당하나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나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있지 않으나, 영혼은 지문에서 확실하게 실체 혹은 개체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는 구에서 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취급할 때에는 영혼으로부터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이 도출되는 것이고, 생각하는 나를 개체로 취급할 때에는 동치로 취급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속성 대 속성의 관계로 보고 교집합을 들먹일 문제가 아닙니다. 영혼은 지문에서 확실하게 실체로 간주하기때문에, 속성 혹은 개체 : 개체의 관계이므로 들어주신 사례와 범주가 다릅니다. 따라서, 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취급할 것인지 개체로 취급할 것인지를 정한 다음 두 개념의 관계를 다루어야 합니다.
만약 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취급한다면, 영혼으로부터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이 튀어나온다는 맥락 아래, 뒷 문단에서 "그러나 생각하는 나는 영혼의 존재를 담보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이 영혼의 존재를 담보하지 아니한다라는 의미가 되고, 의미론적으로 앞 문단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이 영혼의 존재를 담보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체로 취급할 경우에는 생각하는 나=영혼이라는 필요충분관계가 성립하는데, 이 경우에는 해석이 부자연스러워 집니다. 즉, 영혼의 다른 말인 생각하는 나는 영혼의 존재를 담보하지 않는다고 해석이 되기때문에, 앞문단의 생각하는 나는 뒷문단의 맥락을 고려할 경우에 '속성'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 저는 '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취급하여 논지를 전개하고 있고, 이 경우에 영혼->생각하는 나 라는 도식과, 생각하는나->영혼이라는 도식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기에 동치관계로 놓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1문단만으로 동치관계를 놓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개체와 속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해석은 좀 의아한데 구체적인 문헌상 근거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홀수인 소수라고 할때 소수는 소수 집합이라는 개체로 쓰인 것이고 홀수임은 속성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소수인 홀수라고 하면 홀수 집합 중 소수임의 속성을 가진 집합을 뜻하겠죠. 속성 대 속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나인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은 개체이더라도 영혼임은 속성이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 필요충분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건 동의하는데 이 지문에서 그렇게 쓰였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습니다. 의미론적으로 그렇다고 하셨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자는 생각하는 나의 실재성(생략), 즉 영혼의 실재성이라는 표현을 근거로 들던데 일단 칸트 이전 논의에 해당 아이디어가 공유되는지도 불명확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a의 실재성과 b의 실재성이 같다고 해서 a와 b가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피터팬의 실재성은 팅커벨의 실재성과 같을 수 있습니다) 혹자는 "단일한 주관으로서"에 포인트를 맞추시던데 해당 문장구조 역시 주어가 해당 속성을 가진다는 의미에 불과합니다. 홀수인 소수는 자연수로서 이러이러한 특징을 가진다는 문장에는 어떠한 모순이 없습니다.
1. 개체/속성 분류에 따른 해석은 이충양 교수님의 17번 이의제기 글을 읽고 와주시길 바랍니다. 해당 글에서의 해석을 알기 쉽게 옮겨왔으나, 그때문에 일부분의 축약이 있을 수 있어 설명의 부족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것들을 설명하기엔 너무 깁니다.
한편, 소수나 홀수는 존재론적으로 명확하게 속성입니다. 홀수인 집합 혹은 소수인 집합이라고 명확하게 설정한다면 개체인 것이지, 소수 그 자체로는 속성입니다. 그런데 소수인 홀수 혹은 홀수인 소수만으로는 홀수나 소수가 개체인지 속성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과 별개로, 영혼은 지문에서 계속해서 '존재'라는 표현과 엮임을 본다면 귀속/성립/만족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는 속성과는 달리 개체로 인정됨을 알 수 있습니다. 외에도, 2문단에서 칸트가 자기 이전의 견해를 비판하며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인식주체)의 존재, 즉 영혼의 실재를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본다면 영혼은 확실하게 개체입니다. 이것을 '그러나'라는 표현이 정반대 명제를 단언하지 않는다고 말씀주셨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칸트와 칸트 이전의 견해는 논의범주가 동일하기에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는 명제입니다.
2. 논리적으로 개체와 속성은 공존할 수 있지 않습니다. 개체이면서 속성이거나, 속성이면서 개체인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영혼인 나 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면, 얼핏 보았을 때는 영혼이라는 것이 속성으로 귀속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자연언어에서 술어자리에 위치한다고 해서 존재론적으로도 속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술어는 분류, 역할 등의 여러가지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서울인 수도처럼 서울은 분명히 개체이나 수도를 지칭한다고 해서 서울이 존재론적으로 속성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문장에서는 속성으로 쓰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떤 개념은 반드시 속성이나 개체 중 둘 중 하나여야합니다. 개념은 존재론적으로 두 가지를 절대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자연언어에서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나 형식논리에서는 아님.)
3. 어쨌든 이후로, '생각하는 나'가 영혼의 속성임은 확정했고, '그러나 생각하는 나(속성)가 영혼의 존재 혹은 단일한 주관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을 통해 앞 문단의 칸트 이전 견해에서는 생각하는 나가 영혼의 존재를 보장한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말씀주신 오페라와 심슨의 사례로부터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정반대 명제를 항상 그대로 도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타당하나, 이는 오페라나 심슨이 양적공리주의와의 명확한 연관성이 없어서 그런 것일 뿐 이미 칸트와 칸트 이전의 견해는 '생각하는 나'와 '영혼'에 대해서 동일한 대상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정반대의 명제를 이끌어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단순히 그러나라는 접속사와 유사하다고 해서, 지문의 그러나 문단 또한 정반대 명제를 단언할 수 없다고 단정함은, 잘못된 유추입니다. 그러나는 얼마든지 정반대 명제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용법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령 빨간색은 보통 속성으로 쓰이지만 개체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빨간색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이다. 처럼요. [빨간 속성을 가진 색의 집합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위 문장에서도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주로 존재랑 쓰인다고 해서 반드시 개체로만 쓰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그럴 것으로 추측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요. 그런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속성이든 필요충분조건이든 명확하게 규정할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수능 국어에서 어느정도의 맥락으로 형식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판정할 것이냐의 문제가 될텐데 결국 엄밀한 방식으로는 정당화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빨간색은 개체로 쓰이지만 속성으로 쓰인다는 표현자체가 틀립니다. 빨간색은 존재론적으로 무조건 속성입니다.
다만 자연언어에서 밝은 빨간색이라는 구처럼 개체아닌가?싶은 사례가 있을 수 있는데, 저마저도 빨간색 자체로만 바라본다면 속성인 것이고, 만약 지문에 추가적인 맥락으로 빨간색의 집합을 의미한다면 그제서야 개체로 인정하는것이지 여전히 빨간색은 속성입니다. 속성과 개체는 양립불가능합니다.
다만 지문에서 영혼의 존재, 단일한 주관의 지속이라는 표현을 고려했을 때에 영혼은 개체로 해석함이 적절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 이충형 교수님의 반박문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의제기 측의 모든 논리를 다 수용하더라도(개인적으론 논리 자체가 맥락을 파괴하는 이상한 해석이라고 생각하지만), 3번 선지가 다소 중의적이라는 것 이상의 문제점은 없는 거 같아요. 3번 선지에서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할 수 없다’에서 ‘생각하는 나의 지속’을 칸트이전견해의 ‘생각하는 나의 지속’으로 본다면 3번 선지가 정답이라는 건 명확하죠. 그런데 <보기> 속 갑의 ‘생각하는 나의 지속’ 이 칸트 이전의 견해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고, 칸트 이전 견해는 갑이 그 용어를 사용한 의도와 의미를 이해했지만 디테일한 내용은 생략한 채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라는 용어만 동일하게 사용한 것이라면 갑의 견해에 동의할 수도 있겠죠. 애초에 무리한 해석까지 동원한 상태인데, 중의적으로 해석된다는 이유로 나머지 선지가 모두 명확히 답이 아닌 상황에서, 게다가 평가원이 기출문제나 출제 원리로써 중의적 상황에서의 해석방향성을 밝혀 놓은 걸 감안하면 오류로 볼 여지는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능한 합리적 해석 중 하나라도 정답을 가리키면 문제는 오류가 아니라고 보는 입장(대법원도 비슷한듯 함)에서는 타당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중의적 해석을 배제해야하고 불가피하다면 그 중 어느 해석에 따라도 같은 답이 나오게 해야하며 그렇지 않다면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위 논리에 따르면 오류의 기준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도 평가원이 답변은 해줬으면 합니다.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오류 판정의 기준이 어떤지와는 무관하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건 맞으니까요. 저는 지문에 서술된 내용과 맥락만 봐도 중의적으로 해석될 부분조차 없다고 생각해서 출제진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16 수능의 양공쌍 문제를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그정도 맥락이면 퉁쳐서 맞는 선지로 볼수 있다는 관점이라면(저는 반대하지만) 이 문제도 비슷한 의미에서만큼은 맞다고 쳐줄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맥락에 의존하고 예외를 성급하게 제외하는 추론이 오류로 밝혀지는 사례도 많고, 선지에 나오는 보장이라는 표현을 보더라도 불합리한 것은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양공쌍같은 경우는 p->q이다도 아니고 p이면 q일수도있다는 지문의 내용에서 q->p이다를 도출한 문제이기 때문에, 칸트 지문과는 결이 다릅니다. 칸트 지문은 영혼을 개체라고 볼 수 있게 합니다. 게다가 일상언어적으로도 영혼은 개체입니다.
[살짝 수정] 여러 가능한 합리적 해석 중 하나라도 정답을 가리키고 나머지 해석으로 답이 없다면 문제는 오류가 아니라고 보는 입장(대법원도 비슷한듯 함)에서는 타당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저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출제자는 가급적 중의적 해석을 배제해야하고 불가피하다면 그 중 어느 해석에 따라도 같은 답이 나오게 해야하며 그렇지 않다면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타당한 경우와 중의적으로만 타당한 경우를 구별하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위 논리에 따르면 오류의 기준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