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17번 출제오류 한방정리(당신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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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론
국어 17번으로 인해 치열한 논박이 오고가는 가운데, 제 생각을 전해드리고자 글을 써봅니다. 최대한 수험생 여러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자 하니, 관심이 있지만 이해가 어려운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개체와 속성의 차이를 알고감이 좋을 것 같습니다.(물론 뒤에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이 개념들이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어떠한 a라는 개체는 오직 하나만 존재할 수 있고, 어떠한 b라는 속성은 여러 개체에게서 복수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또한 b가 a의 속성이라 함은, a는 무조건 b라는 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B. 이의제기 이해하기 (잘 모르겠으면 핵심부터 보기)
칸트 이전의 철학에서는 (데카르트로 추정됩니다.)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고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근거가 된답니다. 그러면 여기서 두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번째로, 영혼은 영혼인데, 그 영혼이 단일한 (인식의) 주체이면서 시간의 흐름속에 지속하는 특별한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영혼들이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한다는 것이지요. 이 해석에서는 '생각하는 나'를 개체로 취급하든, '생각하는 나'를 영혼의 속성으로 취급하는 두가지 방향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개체는 아까 말했듯이 '하나'밖에 없기에 영혼과 외연, 즉 지시대상이 같으므로 '생각하는 나'=영혼으로 도식화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생각하는 나'가 영혼의 속성이 되어, 영혼->'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가진다.)이지만 역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핵심
다만, 어느 경우를 택하든 인격의 동일성을 위해선 그냥 영혼이 아니고 영혼 and 단일한 인식의 주체 and 지속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영혼이어야 한다는 전제는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위 해석들을 가지고 논란의 문제를 풀어봅시다.
<보기>
갑 :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을 스캔하여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 본래의 자신과 재현된 의식은 동일한 인격이 아니야. 두뇌에서 일어나는 의식은 신체 전체의 기여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지. 즉, 프로그램으로 재현된 의식은 인격일 수 없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이 보장될 수 없고, 살아 있는 신체도 인격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어야 하거든.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만약에 첫번째 해석인 영혼='생각하는 나'의 도식을 통해 해당 문장을 풀이한다면, 글에서 계속 강조했듯이 그냥 영혼이 아닌 영혼 and 단일한 (인식)주체 and 지속이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기때문에 영혼(생각하는 나) and 지속 이라는 조건만 만족시키는 선지에 대해서는 칸트 이전의 견해에서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번째 해석으로 '생각하는 나'를 영혼의 속성으로 취급하여, 영혼->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지님)이라는 도식을 통해 풀이해봅시다. 이때에는 더 확실하게, 생각하는 나는 영혼을 보장하지 못함과 동시에 '지속'이라는 조건만 충족하기에 칸트 이전의 견해의 조건인 영혼 and 단일한 (인식)주체 and '지속' 이라는 삼박자를 맞추지 못합니다.
참고: 포스텍 교수님께서는 모든 영혼은 생각하는 나를 속성으로 발현하고, 모든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은 영혼에서 발현된다라는 필요충분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만, 왜 그렇게 나온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풀더라도 결론은 같습니다. 단일한 인식 주체라는 조건이 빠진 해당 선지는 지금까지의 해석에서 타당하게 도출해낼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당히 그럴 듯 해보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엥? 진짜 오륜가 싶었습니다만은..
C. 칸트의 반격

칸트는 마지막 문장에서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하지 않고, '영혼이 실재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라고 반박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갈 수 있는 점은, 칸트 이전의 견해에 대한 확실한 해석이지요. 즉, 칸트 이전의 경우에는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인식주체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면 앞에서의 논의가 모두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생각하는 나'가 속성이든 개체이든, 그것이 있다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실제로 존재함을 보장하는데, 이는 곧 영혼의 실재함과 같고, 결국 생각하는 나-> 영혼의 실재=단일한 주관의 존재 라는 도식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라는 문장은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는 영혼이 단일한 주관 이라는 조건을 추가로 만족시켜야 함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면 단일한 주관이라는 동치관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만 실재함이 확인된다면 단일한 주관이라는 조건은 달성되는 것이기에, 인격의 동일성을 위해서 '지속'이라는 조건만 달성되면 됩니다.
(참고: 뒷 문장을 통해 '생각하는 나'가 영혼의 실재를 보장하지 않는다 함은, '생각하는 나'가 속성으로 다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생각하는 나'가 개체로 다루어진다면 '생각하는 나'는 당연히 영혼의 실재를 보장할텐데, 보장하지 않기때문에 속성으로 다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어느쪽으로 가든, 결국에는 결론은 같습니다.)
C.1 이제 다시 문제를 바라보니..
③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
그래서 이제 다시 보면 명확합니다. '생각하는 나'는 칸트 이전의 견해에서는 단일한 주관의 존재, 즉 영혼의 실재를 보장하고, 선지에서 '지속'이라는 조건 또한 제시했기에 동일한 인격의 근거인 '영혼('생각하는 나'로부터 자동도출) AND 단일한 주관(영혼으로부터 자동 도출) AND 지속'이라는 삼박자를 달성하게 됩니다. 따라서 문항엔 오류가 없습니다.
(참고: 덧붙여 애초부터 칸트 이전의 유력했던 견해에서는, 프로그램으로 복제한 상황이 '불가능'합니다. 철학적 좀비 논증을 생각하면 쉬운데, 철학적 좀비논증은 물리주의가 옳다면 존재할 수 없는 철학적 좀비가 사고실험을 통해 '존재할 수 있다.'를 토대로 물리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물리주의가 옳다면 철학적 좀비라는 개념이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는 모순된 개념이기에 철학적 좀비가 존재할 수 있다라는 전제를 함부로 추가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지문에서는 칸트 이전의 견해가 단일하게 지속되는 영혼 혹은 인식 주체를 인격 동일성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영혼이 앞서말했듯 단일성을 무조건 가지기에 <보기>의 상황처럼 단일성이 깨져버린 상황은 칸트 이전의 견해가 둥근 삼각형처럼 불가능하다고 볼 것입니다.)
D. 기타 반박에 대한 답변
Q1. 단일한은 유일한이 아니기에, 수적 동일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A. 처음에 제시한 해석을 반박하기 위해 1을 꺼내드는 것의 난점은, '지속'이라는 조건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단일한은 하나로 이루어 졌다는 것만을 의미하기에, 단일한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유일성을 보장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단일하면서 지속하려면 유일하지 않고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적절한 반론은 아닙니다.
Q2. (이의제기측의 재반박) 3번 선지에서 앞의 내용은 '갑'의 입장이기에, 실제 의미는
(1) <적어도 두 개의 시점 t1, t2에 대해, t1에서의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 발현이 t2의 ‘생각하는 나’라는 속성발현과 칸트가 말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2) <적어도 두 개의 시점 t1, t2에 대해, t1에서의 ‘생각하는 나’라는 개체가 갖는 의식의내용(속성발현)이 t2의 ‘생각하는 나’가 갖는 의식의 내용(속성발현)과 칸트가 말한 방식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이다.
A. 지금까지의 수능 출제에서 '갑'의 일부 주장만 써놓은 경우에는, 갑의 전체 주장을 동의하는 바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선지에 적힌 갑의 일부 주장에만 일치하면 맞는 것이기에 선지에 갑의 전체 입장을 덧붙여서 해석함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갑은 앞집 엄마의 아들이 A다" 라고 주장했고, 을은 "옆집 엄마의 아들이 A다"라고 주장한 경우에, 엄마의 아들이 A다라는 갑의 주장에 을은 동의하겠군이라는 문장은 적절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류나 수정사항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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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2) 이 핵심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교수님이 수능 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신듯 인문에서 학자간 비교할때는 선지에서 물어본 바로만 판단해야하는데
위의 논증이 맞다면 다음 논증도 타당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 서울
대한민국의 수도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
그러므로 서울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이 논증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가령 대한민국의 수도가 세종시로 옮겨지면서 대한민국이 세종시를 수도로 하면서 계속 존재하는 상황에서 서울이 지질대변동이나 아니면 행정구역 재편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도 = 서울이고 대한민국의 수도가 지속한다고 해서 서울이 지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논증과 필자님 논증의 형태가 다르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여하튼 제 포인트는 <생각하는 나가 지속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면밀히 따지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고, 이렇게 따졌을 때, 손흥민의 의식이 프로그램으로 재현되는 상황에서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영혼은 지속하지 않으므로, 칸트 이전 견해에 따르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이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에 동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갈 수 있는 점은, 칸트 이전의 견해에 대한 확실한 해석이지요. 즉, 칸트 이전의 경우에는 '생각하는 나'가, 단일한 인식주체로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즉 '영혼의 실재함'을 보장한다고 본 것입니다.
위 부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A는 밥과 물을 먹는다
그러나 B는 밥을 먹는다
위에서 그러나 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a는 밥을 먹지 않는다가 도출되지는 않습니다. 본문과 더 유사하게끔 문장구조를 만들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 "생각하는 나, 즉 영혼"이라고 기재되었다면 위 논리가 모두 타당하겠으나 본문에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라고 했을뿐입니다.
홀수인 소수, 또는 소수인 홀수라는 말은 홀수와 소수의 교집합을 말하지 모든 소수가 홀수라거나 모든 홀수가 소수라는 뜻을 가지지 않습니다. (아주 많은 소수가 홀수인 건 맞지만 반례가 딱 하나 존재하는 한 소수임이 홀수임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앞뒤 맥락에서 '생각하는 나'와 영혼을 매우 밀접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두 개념을 필요충분조건으로 동치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훨씬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그렇게 모호한 방법을 취했다는 것도 불합리합니다.)
뒤에 그러나 라는 말이 붙더라도 이는 앞과 뒤가 불일치함을 뜻하지 전혀 상반된다거나 교집합이 부존재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A는 양적 공리주의를 따른다
그러나 B는 질적 공리주의를 따르는데, 오페라가 심슨보다 낫다는 것이다.
-> 여기에서 a는 심슨이 오페라보다 낫다고 보았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A는 b와 별개의 논거를 통해 같은 결론을 지지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A는 B에 비해 심슨에 좀더 친화적일 것이라는 추론까지는 허용가능하지만 그러나 라는 말이 나왔고 a는 b의 반대니까 a의 견해가 확실해졌군 이렇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합리적인 범위에서 맥락상 추론을 할 수 있으나 이는 개연적인 것이고 논리적으로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뇌 스캔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에 있어서는 더더욱 논리적인 엄격성을 지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