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완 언매로 알아보는 기저형 이야기(ft 17 6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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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매러라면 모를 수가 없는 부분으로는 “활용”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활용은 용언이나 서술격조사가 보이는 현상으로 어간과 어미의 결합을 활용이라 합니다. 이때 형태가 변하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것이 규칙이 되기도 하고 불규칙이 되기도 하는데, 당연하게도 이러한 활용은 중세국어에도 있었습니다. 그 양상은 사뭇 달랐지만요
그런데 이번 수완 실전모의고사 5회에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있더군요. 기존 학교문법의 서술과 심지어 기출의 서술과도 다른 견해를 보여주는 지문이 있답니다. 바로 불규칙 활용의 통시적 변천 지문입니다. 일단 기존의 기출을 보시죠
답은 1번
보이시나요? 자음 어미 앞에서는 ‘ㅂ’과 ‘ㅅ’ 말음이 나타나고, 모음 어미 앞에서는 이 ㅂ과 ㅅ이 ㅸ과 ㅿ으로 교체된다고 설명하죠. 이건 본질적으로 불규칙 활용의 설명과 일치합니다. ㅂ이 /w/로 불규칙적으로 교체하는 대신 ㅸ으로 교체하는 셈이니까요.
이것은 다소 세게 말하자면 고영근 교수의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학교문법의 중세국어 내용에 크게 참고되는 것은 고영근 교수의 논저나 나찬연 교수의 논저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고영근 교수에 의해 강하게 주장되었고 또 다른 의견들을 모두 배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고영근(2020)의 서술을 보죠. 그 유명한 표중문(표준중세국어문법론)입니다.
“중세국어에도 현대국어와 같이 어간 불규칙 활용과 어간의 교체, 그리고 어미가 불규칙적으로 바뀌는 것이 있다. 먼저 어간의 불규칙 활용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ㅅ’ 받침을 가진 용언 가운데는 모음 어미어와 매개 모음을 취하는 어미 앞에서 그 ‘ㅅ’이 ‘ㅿ’으로 바뀌는 것이 있다.
(10)의 ‘짓다’의 ‘짓’이 (가)에서는 다른 ‘ㅅ’ 받침 용언과 같이 자음 어미에서 변화가 없으나, (나)에서는 ‘짓’이 ‘지ᇫ’으로 교체된다. 그러나 ‘ㅅ → ㅿ이’로의 교체는 모든 ‘ㅅ’ 받침 용언에 다 적용되지 않는다. ‘벗다’는 (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음 어미 앞에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구조언어학이나 생성음운론에 기울어진 사람들은 어간의 기본 형태를 ‘짓’으로 잡아, 그것이 자음 어미 앞에서 ‘짓’으로 바뀐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현대 문법의 처리에 따라 ‘ㅅ’ 불규칙 활용으로 처리하기로 한다.
…
‘ㅂ’ 받침을 가진 용언 가운데는 모음 어미와 매개 모음을 취하는 어미 앞에서 그 ‘ㅂ’가 ‘ㅸ’로 바뀌는 것이 있다.
(11)의 ‘덥다’의 ‘덥-’이 (가)에서는 다른 ‘ㅂ’ 받침 용언과 같이 자음 어미 앞에서 변화가 없으나, (나)에서는 ‘덥-’이 ‘더브-’로 교체된다. 그러나 ‘ㅂ → ㅸ’로의 교체는 모든 ‘ㅂ’ 받침 용언에 다 적용되지는 않는다. ‘잡다’는 (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음 어미 앞에서도 아무런 교체의 흔적이 없다. 구조언어학이나 생성음운론에 기울어진 사람들은 어간의 기본 형태를 ‘더ᇦ-’으로 잡고, 자음 어미 앞에서 ‘덥-’으로 바뀐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26) ‘ㅂ’가 ‘ㅸ’로 교체되는 것을 현대국어 문법의 처리에 맞추어 ‘ㅂ 불규칙 활용’으로 처리하기로 한다”
고영근(2020: 135-137)
이러한 고영근 교수의 의견은 1997년에 나온 것으로 이때, ‘덥-’이나 ‘짓-’ 등 기존에는 규칙적으로 파악하던 활용을 불규칙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간 규칙 활용으로 해석한 기존 연구를 모두 “허실”이라고 규정하며 불규칙적인 활용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합니다.(사실 기존 연구를 비판한 연구로 최명옥 교수의 복수 기저형 이론도 있긴 합니다)
이 견해는 꽤 받아들여졌고(물론 2000년대 초 국어학계에서 논쟁이 일기도 했습니다) 교과서의 서술에서도 반영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정도이죠.
“1984년에 학교 교육에 사용하기 위한 문법의 체계가 통일되었다. 여기에따라 기본형을 ‘-다’ 앞의 형태라고 못박아 놓은 후에 이것의 변화를 가지고 불규칙성을 논하는 한에서는 중세국어의 ‘더ᄫᅥ, 덥다’나 현대국어의 ‘더워, 덥다’를 모두 ‘ㅂ’ 불규칙 용언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
김성규(2000) 불규칙 활용에 대한 몇 가지 논의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번 수완에 이런 ㅸ과 ㅿ이 교체되는 예시를 무려 “규칙활용”으로 보았습니다.
어라라 이번에는 자음어미 앞에서 ㅸ과 ㅿ 말음 어간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ㅂ과 ㅅ으로 교체되고 모음 어미 앞에서는 그냥 연음이 되는 “규칙적인 활용”을 보인다고 하네요
사실 이것이 옳은 처리이냐, 아니면 더 합리적인 처리이냐 하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고영근 교수처럼 전통문법에 입각한 처리를 고수한다면 이러한 견해는 부정될 것이고, 김성규 교수나 김유범 교수처럼 생성음운론에 입각한 처리를 고수한다면 이러한 견해는 긍정될 테니까요.
뭐 대충 그렇게만 견해 차이를 보고, 왜 이런 처리가 나올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현대국어 ‘짚다’를 생각해 보죠. 현대국어에서 기저형은 모음 앞의 발음 형태입니다. 뭔 소리냐면 우리는 /지퍼(짚어)/, /지픈(짚은)/ 등을 고려하여 이걸 ‘짚-’으로 본다는 거죠. 그리고 ‘집고’를 ‘짚>집’의 음절의 끝소리 규칙(음절말 평폐쇄음화)으로 설명합니다. 이와 똑같이 보는 겁니다. 중세국어의 ‘덥고’와 ‘더ᄫᅥ’를 볼 때 모음 앞 발음 형태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기저형을 ‘더ᇦ-’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덥고’를 ‘더ᇦ->덥’이라는 ㅸ→ㅂ이라는 소위 음절의 끝소리 규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ㅸ→ㅂ’은 일반적인 규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이러한 처리 방식을 긍정한다면 ‘덥-’으로 보지 않고 ‘더ᇦ-’으로 보고 규칙 활용의 영역에서 다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ㅅ 불규칙도 마찬가지입니다. ㅿ이 ㅅ으로 바뀌는 것 역시 보편적인 음운 규칙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8종성법 말입니다. 실제로 ㅿ 말음을 지닌 체언은 ㅅ으로 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보편성”을 바탕으로 규칙 활용설이 탄생한 것입니다. 8종성법은 곧 음절의 끝소리 규칙과 동일한 것인바 규칙활용으로 볼 수 있다면 굳이 불규칙활용이라는 이론을 끌고 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죠. '지ᇫ-->짓', '더ᇦ-->덥' 등의 변화는 필수적으로 일어나는 음절의 끝소리 규칙인 반면 그 반대 변화인 '짓-->지ᇫ', '덥-->더ᇦ'은 필수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왜 규칙으로 볼 수 있는 걸 불규칙으로 보느냐인 것이죠
지문형은 이렇게 갑자기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서술할 가능성이 충분한 파트입니다. 당장 반모음으로 시끄러웠던 시절을 생각해 보세요. 원래 축약으로 보던 걸 교체로 봤잖아요. 다양한 견해를 낼 수 있는 형식입니다. 그러니 지문형이 있다면 뭔가 익숙해 보이는 소재라도 꼭 읽으려는 태도를 지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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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현상을 처리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규칙이냐 불규칙이냐를 넘어서기도 합니다. 복수 기저형이란 걸 설정해 버리면 더 이상 활용에 있어 규칙활용이나 불규칙활용이란 것이 사라져 버리거든요. 뭔 소리냐면 ‘덥-’이라는 용언의 어간의 기저형을 /덥-/과 /더우-/로 잡고 서로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고 설명하는 거죠. 기존의 ‘ㅂ’ 불규칙 용언은 어간의 기저형이 ‘ㅂ’인 것과 ‘우’로 끝난 것들로 나뉘는 용언이 돼 버리는 겁니다.
다만 이 견해는 생성음운론에 기대는 편의주의적 설명이라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어 현상을 다층적으로 본다는 면에서 오히려 합리적인 처리 방식일 수도 있어요. 물론 이것은 연구자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그렇지만 어떠한 활용을 “(불)규칙 활용이라고 기술할 것인가, 복수기본저형을 인정하고 기술할 것인가?”는 학교문법에서 논의해서는 안 되는 범위를 넘은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어학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 이 글에서 ‘기본형’과 ‘기저형’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기저형’이라는 용어로 통일함. 어느 정도 기준은 있으나 연구자마다 상이한 기준으로 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또 학교문법 수준에서는 굳이 논할 필요가 없는 수준의 문제이므로, 구체적인 분류는 필요없다고 판단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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