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이 말이 안 되는 이유는 말이 됐다가 말이 안 됐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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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가 쓴 동화 속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신기도 어렵고 걷기도 힘들다. 그리고 위험하다. 더러는 유리구두를 신고 다니는 신데렐라는 날 선 작두에 서는 무당처럼 신령한 존재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유리구두는 깨어지기 쉬운 신데렐라의 꿈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데렐라의 원작으로 알려진 이집트 설화에서는 로도피스 처녀가 착함의 대가로 할머니에게 얻는 것은 ‘모피구두’였다. 이 ‘모피구두’가 ‘유리구두’로 전해지게 된 것은 발음의 유사성에서 비롯한다. 원래 모피구두는 프랑스 어로 ‘soulier de vair’로 부른다. 여기서 프랑스 어 vair[vεːʀ]는 회색 다람쥐의 모피를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이 vair를 발음이 같은 단어 verre[vεːʀ](유리)로 착각하여 모피가 유리로 바뀌게 되었다. 구전에 따른 발음의 유사성으로 인해 아름다운 모피구두가 아프고 위험한 유리구두로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낯선 말에 대해 언중이 가지는 어원 의식에 따라 원래의 어형과는 다른 형태의 단어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어원 의식의 근저에는 언중이 간직하고 있는 유사한 음감의 단어가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즉, 낯선 말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형과 비교하여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원래의 어형을 자신이 기억하는 어형으로 대체하여 그 어형을 고정하는 경향이 바로 어원의식이다.
우리말에 ‘노느니 장독을 깬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의 의미는 노는 것보다 장독을 깨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을 풀어 놓고 보니, 장독을 깨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데 무언가 잘못된 속담이다. 힘들게 담은 장이 든 장독을 깬다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배신이며 저항의 표시이다. 장을 담아 놓은 어머니 입장에선 장독을 깨는 것보다 차라리 노는 것이 더 낫다. 속담의 원래의 의미는 빈둥대며 놀지 말고 무엇인가 하라는 뜻의 근면을 강조하는 말인데, 왜 이렇게 오해가 될까? 문제는 원래 낱말의 어원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원래의 뜻과 다른 단어로 바꾸어 놓은데 있다. 즉, 이 속담은 ‘노느니 장독을 부신다.’가 그 원래의 형태이다. 여기서 ‘부시다’는 ‘그릇 따위를 깨끗하게 씻다.’는 뜻으로 ‘장독을 부신다.’는 ‘장독을 깨끗하게 씻다.’는 뜻이다. 이 ‘부시다’는 ‘부수다’와 그 형태가 유사하고 활용형의 발음이 헛갈리는 단어이다. 예를 들어 ‘부시+었다’는 ‘부셨다’로 활용하고 ‘부수+었다’는 ‘부쉈다’로 활용하는 것인데, ‘부셨다’와 ‘부쉈다’는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으면 구별하기 힘든 활용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신다’를 ‘부순다’로 오해하고 ‘부순다’의 형태로 파악하여 ‘부순다’와 유사한 ‘깬다’의 형태로 고정한 것이다.
이처럼 원래의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이 단어와 유사한 발음의 단어로 그 어형을 오해하여 이와 의미가 동일한 다른 단어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나타난 어형은 언어 변화의 일반적인 규칙에서 벗어난 형태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자주 쓰이는 속담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속담은 여러 세대를 거쳐 구전되기 때문에 어원 의식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른 어형으로 바뀌어 전승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흔히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에서 ‘꼬리’는 동물에게 달린 것이다. 꼬리는 아무리 길어도 동물 스스로가 밟는 경우도 없으며, 사람도 동물의 꼬리를 뒤따라 가며 밟을 수 없다. 이러한 모순은 꼬리가 원래 ‘고삐’가 변한 말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고삐’는 ‘말이나 소를 몰거나 부리려고 재갈이나 코뚜레, 굴레에 잡아매는 줄’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이 편하게 하려고 고삐를 길게 만들면 말이나 소가 밟아서 제대로 걸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는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과 ‘고삐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이 존재한다. 같은 뜻의 속담이 두 개가 나타나 있다는 것은 두 개의 속담이 서로 관련성이 있음을 내포한다. 여기서 ‘꼬리’는 임의적으로 늘일 수 없는 것이고 ‘고삐’는 편이에 따라 늘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삐의 논리성에서 꼬리의 비논리성으로 분화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결국 하나의 속담에서 어원 의식의 부족으로 두 개의 속담으로 분화하며 이렇게 분화된 속담은 약간의 의미 차이를 가지면서 고정된다.
또한, ‘뜨물에도 아이 선다.’는 속담도 마찬가지이다. 이 속담의 ‘뜨물’은 ‘남자의 정액’을 뜻하며 ‘하찮아 보이긴 하지만 자꾸 여러모로 애쓰다 보면 우연찮게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남자의 정액을 뜨물로 비유한 것은 그 색깔로 타당한 것이라 해도 사소한 것이라는 의미는 타당하지 않다. 정액과 임신은 우연한 가치가 아니라 필연적 가치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뜨물’이 ‘남자의 정액’으로 비유되는 것은 언중의 언어유희일 가능성이 높다. 속담이 대중성을 띠게 되는 것은 보편적 인식에 부합하기 때문인데, 뜨물과 정액의 비유는 일반화된 가치가 아니라 수용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말이 세대를 흐르며 유사한 음감의 단어로 변용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여기서 ‘뜨물에도’와 유사한 음감의 표현은 ‘드물어도’라는 말이다. 이는 남편이 드물게 집에 오더라도 아이는 만들 수 있다는 말로서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가든지, 장돌뱅이로 나가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적든 아이가 생길 수 있음을 강변하여 아내의 부정행위를 변호하는 말로 쓰인 것이었다.
이근열(2013) 부산 방언의 어원 연구(1)
재밌습니다. 언어 변화란 항상 일률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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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지금메뚜기하면유재석을떠올리지만
천년뒤사람들은그뭔십하는거랑같은걸까요

비유랑은 다른 예시 같네요네 그렇습니다. 비유보다는 어원을 잘못 인식하거나 비슷한 말로 착각하여 새롭게 표현이 굳어지는 경우입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가 원래 고삐가 길면 잡힌다였구나 신기하네
오 재밌다 ㅋㅋㅋ 아무튼 이것으로 오늘 언매 공부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