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와 도투라지, 그리고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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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옛말은 '돝'입니다. 지소사 '-아지'가 붙어 '돼지'가 된 것으로 여겨지죠.
그런데 향약구급방에 "橡實 俗云猪矣栗"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橡實(도토리)를 속되게(俗) 이르면(云) '猪矣栗(돼지의 밤)'이라는 뜻입니다. 矣는 흔히 속격조사 '의'에 해당하는 표기로 쓰였습니다. '猪矣栗'는 '*도ᄐᆡ밤'으로 재구되는데 확실히 도토리는 돼지가 즐겨 먹는 열매라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명명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세국어에 '도토밤', '도톨왐(ㅇ은 ㅂ의 약화의 결과)'이 쓰였기 때문에 '도토리'의 'ㅣ'를 이차적인 요소로 본다면 '도톨'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돼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무리 없이 동의됩니다. '-올'은 모종의 접미사일 것입니다.
이휘일의 시조 <田家八曲>(1664)에는 "도ᄐᆞ랏ᄀᆡᆼ ᄒᆞ여"라는 부분이 있는데 '도ᄐᆞ랏ᄀᆡᆼ'은 도투라지로 끓인 국을 뜻합니다. '도투라지'는 명아주의 경상 방언인데 이휘일의 고향이 경상도 영해(寧海)인 걸 고려하면 굳이 이런 단어가 쓰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도ᄐᆞ랏'은 방금 언급한 향약구급방의 '猪矣栗(*도ᄐᆡ밤)'과 비슷한 구성으로 보이는데, '*도ᄐᆡᄀᆞ랏>도ᄐᆡᄋᆞ랏>도ᄐᆡ랏>도ᄐᆞ랏'의 어휘 변천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도ᄐᆡᄋᆞ랏'과 '도ᄐᆡ랏' 모두 삼강행실도에서 문증됩니다. ᄋᆞ의 ㅇ이 /j/ 뒤의 ㄱ 약화라고 본다면 '*도ᄐᆡᄀᆞ랏'을 가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ㅣ나 j(반모음 ㅣ) 뒤 ㄱ의 약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니까요(참고: 나랏말쌈 님 작성글). 'ᄀᆞ랏'은 '가라지'의 옛말로 기저형을 따진다면 아마 '*도ᄐᆡᄀᆞ랒' 정도였을 것입니다. 돼지가 도토리를 좋아해서 '돼지의 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을 생각하면 명아주 역시 돼지가 좋아해서 '돼지의 가라지'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pigweed라는 영어 명칭도 있고 조선말대사전에서 '능쟁이'를 '특히 돼지가 잘 먹는 중요한 먹이풀이다'라고 풀이한 것으로 보아 이 어원설은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홍윤표(2005) ‘도토리’의 어원
황선엽(2006) ‘명아주’(藜)의 어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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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
'도톨밤(도톨왐)'에서 '도톨'만 빼내고 '-이'라는 접미사를 붙인 것
도토리를 돼지가 즐겨먹는 열매였다는게 흥미롭네요
지소사가뭐여..
언어 구조에서 애칭의 뜻으로 짧게 줄여 부르거나, 물체의 작음, 사소한 정도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쓰이는 접사를 말합니다.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 등에 보이는 '-아지'가 대표적입니다. 새끼 즉 작은 형태를 의미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