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기억하며] 할머니의 어린 시절과 증조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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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할머니는 1945년생 목포 출신이심
다음은 우리 가족과 할머니랑 여행갔을 때의 담화
할머니
이렇게 배를 타고 건너가가지고, 무슨 꼬불꼬불한 길, 옛날에 신작로라 그랬거든? 자갈들이 막 있는 그런 길을, 구루마에 짐을 싣고 아버지가 막 끌으신 것 같애. 근데 큰언니가 나하고 열 살 차이거든. 그러니까 언니가 나를 업었다 내려놨다, 업었다 내려놨다 하면서 그 따라간 기억이 있어.
나
남매라고 하시면...?
할머니
8명이었어, 형제가. 근데 제일 막내 외삼촌 낳기 전이었거든. 그러니까 7명이었어. 그니까는 갓난애기는 엄마가 업었고 그 위가 나야.
언니가 나를 업었다 내렸다 하면서 가는데, 시체를 봤던 기억이 있어. 길에, 죽은 시체들이 가면서 이렇게 눈에 띄어 그게. 그 기억밖에, 누가 무슨 포탄 이런 건 기억이 하나도 없어. 그런 게 없었어. 근데, 그렇게 피난을 가서 굉장히 고생을 하고 다시 목포로 왔는데, 우리 집엔 아무도 (폭격을) 안하고 너무 목포는 조용했어. 근데 그 조용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동네를 두고 어려운 데로 피난을 간거야.
엄마
그런데 사람들이 가야된다 그러니까 (피난을 가신거에요)?
할머니
가야 된다라고 하니까.
고모
근데 안갔던 사람들은 오히려 피해가 없는...
아빠
어 (목포는) 큰, 큰 도시가 아니었나요?
할머니
큰 도시에 속했지. 큰 도시에 속했는데 내 생각에 그때가 딱 팔꽃이 이렇게 막 열매도 맺고 이런 시절에 다시 돌아봤나봐. 우리 집이 막 그 나무들, 그니까는 풀 같은 나무들도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었고). 그러니까 아무도 우리 집을 건드리지도 않았고...
■1954년 부산 용두산 판자촌
할머니
(목포로 돌아온 후)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갔거든? 근데, 막 정말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 피난민들도 많고. 판자집에서 살았던, 그니까는 용두산에가 그 산 주변에 판잣집이 촥, 그냥 무허가 판잣집이 많이 있었어. 그 판잣집에서 살았는데, 그 용두산에 어느 날 불이 났어. 불이 난 날이 ○○엄마 생일날이었어(할머니 친구분이심). 12월달이야. 상당히 큰 화재, 부산에서 화재가 났는데 그 판잣집이 다 탄거야.
■1954년 12월 용두산 대화재
할머니
그게 54년. 그래, 그러니까 내가 나이가 그때가 학교를 들어갈 동 말동 하던 때였는 것 같애. 54년이면 45년이니까 아홉 살. 그러니까 국민학교로 들어갔던 시점인가봐. 밤에 불이 났는데, 엄마가 너무너무 정신없이. 애들도 되게 많잖아. (엄마가 애들과 짐을) 챙겨 갖고 내려오는데 나중에 내가 아래 내려와서 보니까, 그때 ○○엄마 생일이라고 떡을 쪘는데 떡바구니만 들고 내려온 거야. 엄마가 아무것도 다른 걸 안챙겨온거야. 그, 다 탔지. 그러니까는 뭐 아니, 원래도 (짐이) 없었어. 판잣집에 살았으니까 없었지.
(그 시기는) 아버지가 이제 부산을 갔는데, 어려웠지. 일을 뭐를 해야 되나 이렇게 찾고 막 이러던 시점이었던 것 같애. 또 불이 나서 이제 막 그 부산역 앞으로 내려와가지고, 거기서 화재 당한 이재민들이 집을 얻으려고 하는데, 애들이 많으니 집을 빌려주는 집이 없는거야. 그러니까 몇 명은 안 데꼬 가고, 쪼끔만 데꼬 가서 방을 얻었어. 그러고나서 하나씩 하나씩 들여오는 거 있지ㅋㅋㅋㅋㅋ
근데 그때 불이 났을 때 일부러 그 판자촌, 판잣집을 다 헐어 버렸어. 이건 판잣집을 철거해야 되는 형편이었는데, 왜 그 손을 못 대고 있었던 (그런 상황에서)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사람들이 (있었어)...그러니까 그것도 있어, 그런 얘기가. 누가 불을 질렀을 것이다, 이런 그 막 풍문도 돌고. 그 참에 판잣집을 다 철거해버린거야.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겠어? 그 이제 그래갖고 그 아래쪽 봉광동(부산 근처에 봉광동은 없음. 봉래동 또는 다른 지역과 착각하신듯) 어디에 이제 내가 학교를 다녔는데. 피난민들이 되게 많았거든. 그니까는 콘센트 알지? 이렇게 동그란 군용 천막. 바닥이 일자로 되고, 이게 이렇게 동그란. 미군들이 많이 우리나라에 와서 전쟁 때 하던 천막이 콘센트야. 그거를 내놓고 학생들을 받아. 그게 학교야, 콘센트가.
■1950년대 미군 콘센트
나는 이제 목포에서 왔지만, 대부분이 서울서 피난 온 애들이야. 그러니까 서울말을 다 써. 나는 서울말을 못하잖아, 애들이 흉을 보는 거야. 그때 이제 내가, 이렇게 바지도 막 무릎을 기워 입고 그러던 시절이야. 양말 깁는 건 말도 못하고, 바지도 무릎을 기워. 근데 나는 엉덩이를 기웠거든, 그러니까 애들이, 서울서 온 애들이 엉덩이 기운 건 처음 봤다고 놀리는 거야. 그러던 시절이야, 그게. 거기서 내가 국민학교를 다닌 것 같애. 한...한 2,3학년까지. 근데 결국 아버지가 부산에서 자리를 못 잡았어. 굉장히 고생만 하구. 그래갖고 이제 안되겠으니깐 익산으로, 이리(裡里: 익산의 옛이름. 원래 익산군과 이리시는 전라북도 내의 별도 행정구역이었으나 77년에 통합)로 간거야. 이리로 갈 때 아버지가 내 지금 생각인데, 아버지는 거기는 쌀이 많이 나는 산지니까 밥은 애들을 맥이겠지, 그러고 전혀 낯선 이리를 선택을 한 거야.
엄마
목포로 다시 안가셨어요?
할머니
목포에 못 가. 못가는 이유가 있었어. 아버지가 목포에서 옷감 장사를 되게 크게 했거든? 그, 장사 수완이 좋은거야. 옛날에 싸게 주고 사람들을 많이(오게 만드는), 그러니까 옆에 가게들이 막, 이제 말하자면 아버지를 싫어해. 물건을 싸게 팔고 그게 손님을 다 끌어오니까. 근데 그렇게 장사를 막 하는데 그게 남지가 않아. 아부지가 바람을 핀 게 아니고, 그때는 놀음을 했던 것 같애. 화투 치는 일이 많았거든, 어른들이. 화투를 치고, 그러다가 세금을 못 낸 거야. 그래갖고 세금을 떼먹고 도망을 간거야, 부산으로. 식구들 다 데리고. 그냥 옮겨가 그러면 (나라에서) 이제 안 찾어, 더 이상. 옛날엔 찾으러 다닐 수도 없었어 세금을 어쩌고 하던지. 그래서 떠돌아다닌 거야, 아버지가.
그래갖고 이제 익산에서 사는데 익산에서도 자릴 못 잡아. 쌀도 좀 팔고 뭐, 오징어 같은 거 사다 팔고 그런 가게를 우리가 했거든? 그 가게에서 막내 외삼촌을 낳았어, 엄마가 마지막으로. 그래가지고 식구 하나 더 늘었지. 그렇게 해갖고 이제 어려운데, 큰아버지하고 작은아버지하고 두 분이 목포에서 아버지 덕에 가게를 시작했어. 그 사람들은 (아버지와 달리) 성실하게 해갖고 자리를 잡은거야. 그 큰아버지하고 작은아버지가 우리 사는 걸 와서 보고는, 둘이서 추렴을 해갖고 아버지께 다시 가게를 얻어갖고 (넘겨주고), 목포를 다시 와라. 그러고 우리를 데려간거야. 그래서 다시 목포로 간 게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
목포에 가서 아버지가 전에 하던 옷감 장사를 다시 시작했는데. 또 이제 수완은 잘하는 것처럼 보여 겉에는. 근데 그거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한 3학년쯤 됐을 때까지 하셨거든? 결국은 부도가 난거야. 그때는 수표를 썼어. 수표를 주고, 날짜가 되면은 이게 돈을 넣어야 돼. 그거를 이제 못 넣어서 또 부도가 난 거야. 그래갖고 그게 하여튼 뭐 요즘 말로 하면 신용불량, 그런 상태가 돼가지고 서울로 오셨어. 그럴 때가 내가 대학교 한 3, 4학년 때쯤인 것 같애.
그리고 이제 어디 그, 삼양동 싼 동네. 굉장히 싼 동네에 방을 얻어가지고, 식구들이 그리로(와서 함께 살고). 그 이제 미아리에 이렇게 큰 대로가 있었는데, 거기에 빈 땅이 옛날에는 많이 있었어. 요즘처럼 건물이 가득 찬 게 아니고 비어 있는 땅들. 땅 하나를 얻어가지고, 아버지가 뭘 시작하셨냐면 그러니까, 아버지의 막내 여동생, 친여동생이 제일제당 철강 회사를 하고 있었어. 철근 이런 거를 팔면 (돈을) 줄게, 그러고 물건을 얻어온거야. 그걸 이제 땅은 삭월세를 주면서. 그래갖고 거기서 아버지가 장사를 오래 하셔서 힘을 잡으셨지. 그 가게에서 아버지가 일을 할 때 내가 결혼을 한거야. (아버지가) 딸 둘, 아들 둘 결혼을 거기서 시킨거야. 굉장히 어렵게 사셨어. 그래두 아버지가 끝까지 자식들을 책임지고, 출가도 다 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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