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463916] · MS 2013 · 쪽지

2015-12-31 18: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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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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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락눈이라도 떨어질것 같이 추웠던 어느 겨울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밤늦게까지 깡소주를 까며(..) 불량한 대학생의 도리를 몸소 지키고 있었다.

거나하게 취하고 들어와 룸메형과 1시간동안 잡다한 이야기를 하다 새벽 2시쯤에 잠들었는데 새벽 4시쯤 갑자기 속이 찢어질듯이 아파서 잠에서 깼다. 술을 좀 많이 마신 날 흔히 겪는 일이라 물 한 두잔하면 괜찮아질거라 생각하고 물 마시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이게 30분이 지나도 전혀 나아지질 않는 것이다. 그 사이에 방을 대여섯번 정도 들락날락 거리며 별 짓을 다 했던 것 같다.

나중엔 속도 울렁거리고 토악질도 할 것 같아 화장실에서 대충 처리하고나니 제법 괜찮아져서 다시 잤다. 이때 상태가 심각한걸 알았어야 했는데 그러질 않았어

새벽 6시쯤 또 다시 속이 아파왔고, 토악질 끼도 다시 도져서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아까 게워내놓고 또 게워봤자 뭐가 나오겠는가.. 헛구역질만 하다가 위액이 쏟아지더니 급기야 토혈까지 했다.

한참 쏟아내다가 갑자기 뭔가 붉은 물이 흥건하게 보이니 정말 말 그대로 술이 확 깼다. 엄청 큰 소리로 'X발 뭐야'라고 소리 쳤는데 누가 들었을지도.. 여러 분비물이 섞였었는지 처음에는 선홍색에 가까웠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이내 붉게 변하고 물에 타서 옅어진 피 색깔 그 자체가 되었다. 몸에 힘이 쫙 풀렸고 머리가 띵해지며 순간 몸도 못 가눌 뻔했다.

부들부들 떨면서 방에 들어가 진짜 죽는거 아닐까, 죽으면 게임계정 누구 줘야하지 등등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겨우 정신차려서 아침을 먹고나니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졌다. 그런데 그날 내내 힘이 쭉 빠져버려서 오후 수업까지도 흐느적거린 채로 들어야 했다.

이후 병원을 다녀왔는데 토악질을 너무 많이 해서 식도에 상처가 생겨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술 좀 작작 쳐마시라는 이야기를 피할 순 없었다.

인터넷에 '술 먹고 피토'라고 검색하면 생각보다 이런 짓 저지르는 양아치들이 되게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대부분 술을 물마냥 리터째로 들이키다가 거덜낸 사람들인데 이런 버릇이 계속되면 위염, 위궤양, 심지어 위암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날 이후 술에 공포가 생겨서 지금도 술병만 보면 그 날 내가 풀어낸 빨간물감이 생각나 술을 입에 못 대고 있다. 설마 여기 똑똑한 사람들은 그러랴 싶지만 정말 나처럼 죽을 때까지 마시자 하는 마음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농담 아니고 진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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