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름은화자 [1311559]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5-06-09 00: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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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천지간》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3400282

발표: 2007년 <문학사상> (61세)




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

천지간에 어둠을 깔아놓는 일


그걸 거두려고 이튿날의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

밤은 밤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꽉 잠가둔다


여름밤은 너무 짧아 수평선 채 잠그지 못해

두 사내가 빠져나와 한밤의 모래톱에 마주 앉았다


이봐,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어

부려놓으면 바다가 다 메워질 거야


그럴 테지, 사방을 빼곡히 채운 이 어둠 좀 봐

망연해서 도무지 실마릴 몰라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겹쳐

밤새도록 철썩거리며 파도가 오고

그래서 여름밤 더욱 짧다


어느새 아침 해가 솟아

두 사람을 해안선 이쪽저쪽으로 갈라놓는다


그 경계인 듯 파도가

다시 하루를 구기며 허옇게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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