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할매턴우즈로 보는 인물 간 관계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73261164
"선생님, 문학 지문 읽다가 인물들이 너무 헷갈려요." "갑순이랑 갑득이가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3등급 학생들이 문학에서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인물 관계 파악입니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문학 문제를 풀다 보면, 지문을 읽으면서도 '이 사람이 누구지?'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 호칭어만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이름을 정리하고 메모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한 호칭어로 불리며, 때로는 같은 인물이 전혀 다른 이름으로 지칭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갑순이 할머니'와 '늙은 마누라'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놓치거나, 가족 관계를 잘못 파악하면 작품의 갈등 구조 자체를 오해하게 됩니다. 이는 곧 문제 해결 능력의 저하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복잡한 인물 관계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요? 체계적인 접근법 없이는 매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능에서 요구하는 것은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독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물 관계 파악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24년도 수능 '박태원, 「골목 안」'을 통해 알아봅시다.
장면 1
한참 정이와 별의별 말이 다 오고 가고 하였을 때, ‘불단집*’에서 마악 설거지를 하고 있던 갑순이 할머니가 뛰어나왔다. 갑득이 어미는,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 모녀를 상대하여서도, 할 말에 궁하지는 않다고 은근히 마음에 준비가 있었던 것이나, 뜻밖에도 갑순이 할머니는 자기 딸의 역성을 들려고는 하지 않고,
㉠“애최에 늬가 말 실수헌 게 잘못이지, 남을 탄해 뭘 허니? 이게 모두 모양만 숭업구……, 온, 글쎄, 그만 허구 들어가아. 늬가 잘못했어. 네 잘못이야.”
하고 도리어 딸을 나무라던 것을, 갑득이 어미는 그 당장에는, 귀에 솔깃하여,
“그렇지. 자계가 먼저 말을 냈지. 나야 그저 대꾸헌 죄밖엔 없으니까. 잘했든 잘못했든 자계가 시초를 낸 게니까 ―― ”
하고, 뽐내도 보았던 것이나,
갑득이 어미와 정이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던 상황입니다. 갑순이 할머니가 등장하자 갑득이 어미는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갑순이 할머니는 자기 딸을 편들지 않습니다. (‘그들 모녀’와 ‘자기 딸’이라는 호칭어를 통해 인물 간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갑순이 할머니가 딸을 나무라자 갑득이 어미는 ‘귀에 솔깃’하여 우쭐해합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장에는’과 ‘뽐내도 보았던 것이나’라는 표현에서 이러한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인물: 갑득이 어미, 갑순이 할머니, 정이(갑순이 할머니의 딸)
갈등: 갑득이 어미 vs 정이
상황: 말다툼 도중 갑순이 할머니의 등장
심리: 갑득이 어미(우쭐함, 승리감)
나중에 깨달으니, 그것은 얼토당토 않은 생각으로, 갑순이 할머니가 그렇게 자기 딸을 꾸짖으며 한사코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에는,
㉡“아, 그 배지 못헌 행랑것허구, 쌈이 무슨 쌈이냐?”
“똥이 무서워 피허니? 더러우니까 피허는 게지!”
하고, 그러한 사상이 들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나중에 깨달으니’라는 표현을 통해 갑득이 어미의 시선으로 초점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갑순이 할머니가 딸을 나무란 진짜 이유는 신분 차이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배지 못헌 행랑것’이라는 표현에서 계급 의식이 드러납니다.
상황: 갑순이 할머니의 진짜 의도 파악(신분 차별 의식)
사실 인지: 갑득이 어미는 갑순이 할머니가 정이를 편들지 않은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됨
사실, 을득이 녀석이 나중에 보고하는데 들으니까, 저녁때 돌아온 집주름 영감이 그 얘기를 듣고 나자,
“걔두 그만 분별은 있을 아이가, 그래 그런 상것허구 욕지거리를 허구 그러다니······.”
쩻, 쩻, 쩻 하고 혀를 차니까, 늙은 마누라는 또 마주 앉아서,
“그렇죠, 그렇구 말구요. 쌈을 허드래두 같은 양반끼리 해야지, 그런 것허구 허는 건, 꼭 하늘 보구 침 뱉기지. 그 욕이 다아 내게 돌아오지, 소용 있나요.”
㉢그리고 후유우 하고 한숨조차 내쉬는데, 방 안에서들 그러는 소리가 대문 밖까지 그대로 들리더라 한다.
을득이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집주름 영감도 똑같은 계급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상것’, ‘양반’ 등의 표현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때, ‘늙은 마누라’라는 호칭어를 통해, 갑순이 할머니가 집주름 영감의 아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단집의 집주름 영감과 갑순이 할머니는 부부이고 정이는 그 둘의 자식입니다. 또한 ‘방 안에서들 그러는 소리가 대문 밖까지 그대로 들리더라’는 표현은 전해 들은 이야기임을 강조합니다.
배경: 저녁(시간), 불단집(공간)
인물: 을득이(전달자), 집주름 영감, 늙은 마누라(갑순이 할머니)
교훈
인물간의 관계파악이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인물을 소개할 때, ‘xx어미’라고 하면 그 자식으로 ‘xx이’가 나오는데, 이 작품은 ‘갑순이 할머니’의 딸이 ‘갑순이’가 아닌 ‘정이’입니다. 심지어 ‘갑득’, ‘갑순’ 같은 유사한 이름을 통해 혼동을 줍니다. 또한 ‘집주름 영감’과 ‘늙은 마누라’ 같은 호칭어를 통해, 부부 관계를 제시하나, 발화의 내용을 통해 ‘늙은 마누라와 ‘갑순이 할머니’가 동일인물을 의미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하면, 불단집의 가족 구성을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인물 관계 파악을 위한 행동 강령
1. 호칭어 정리
· 처음 읽을 때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호칭어를 정리하기
· 같은 인물을 가리키는 다른 호칭어들을 연결하기
예) 갑순이 할머니 = 늙은 마누라 = 집주름집 마누라
2. 이름 구별
· 갑순, 갑득처럼 비슷한 이름 구분하기
·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 주의하기 (어미, 할머니, 영감 등)
· 세대 관계 파악하기 (할머니-딸-손자 등)
3. 발화 내용으로 인물 확인
· 대화의 내용과 맥락을 통해 화자가 누구인지 추론하기
예) ‘그렇죠, 그렇구 말구요’같은 동조하는 발화가 나오면 대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누구에게 동조하는 것인지 확인
4. 시공간 정보 활용
· 시공간에 대한 맥락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 파악하기
예) ‘불단집’에서 나온 사람 = 불단집 거주자일 가능성 존재
예) 저녁에 ‘방 안에서’ 대화하는 사람들 = 같은 집 사람들일 가능성 높음
5. 전달자 구분하기
· 직접 목격한 것과 전해 들은 것을 구분하기
예) ‘을득이 녀석이 나중에 보고하는데 들으니까’처럼 전달자가 명시된 경우
6. 독해 중 수정할 요소
· 앞에서 파악한 인물 관계도를 끌어와서 읽기
· 읽어 나가다 모순되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기
· 갈등 구조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편 가르기 확인하기
처음에는 복잡해 보였던 인물 관계도 일관된 접근법만 있으면 충분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호칭어 정리부터 발화 내용 확인까지, 6가지 행동 강령을 차근차근 적용해 보세요. 한 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물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면, 문학 문제 해결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갈등의 양상을 이해하기 쉬워지고, 화자의 정서나 상황의 의미도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이 누구지?'라는 막막함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지고 문학 지문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소설이 이해가 안된다고 손을 놓지 마시고 인물부터 집중해보세요.
인물 간의 관계 파악을 잘 해두면, 소설을 이해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결국 인물들이 모여서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최근 책 출판 준비, 학원 출강 미팅, 수업 준비등으로 인해 활동이 뜸했네요.
교재를 제작하다가 떠오르는 것과 많이 질문이 들어오는 사안들을 정리해서 하나씩 올려보겠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미친척하고 동서양의우주론 들고가?
-
실은 안정함
-
아니면 프메하고 원솔멀택하는건가요.정병호t들으려고하는데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콰인포퍼들고갈거임
-
ㅇㅇ 2
ㅇㅇㅇㅇ
-
“최소 징역 5년형”…방시혁, 투자자 속여 4000억 챙겼다? 1
[MBC]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금융감독원이 하이브 창업자인 방시혁 의장의...
-
너무 사설스러움
-
결국 세대나 성별마다 정치 성향이 굳어진 느낌이 드는데 이게 세대가 지나도 계속...
-
스토리 GOAT의 딸 ㄷㄷ
-
요즘 국어 사설 3
여전히 이감이 1황인가요?
-
ㅈㄱㄴ + 멘솔 추천 좀 (실ㅈ담배 제외)
-
ㅇㄱ ㅈㅉㅇㅇ? 5
ㄷㄷ
-
남은 시간동안 강기본 한 지문하고 영어사탐 ㅈ뺑이칠거임ㅋㅋㅋ
-
오늘 드릴6 끝남. 정답률은 85퍼?정도 드릴5 작년에 풀긴 했는데 혼자서 제대로...
-
기시감->검더텅->빨더텅 아님 검더텅이나 빨더텅 패스하고 실모 찾아볼끼ㅡ여 과목은 생윤임
-
제가 수학이 쌩 노베라 5정도 뜨고 아직 수1 수2 개념 다 하지도 않았어요...
-
날 혐오해줘 2
남성혐오일까 여성혐오일까 으흐흐
-
저런거 못가나요? 사문킬캠약대뉴런수학약사이재명서프수학기출젓가락생윤한의드릴김승리김문수외대
-
노베 조언 부탁드려요 10
3모 46245 5모 45335 쌩노벱니다 ㅜㅜ 영어는 미국살다와서 공부 안해도...
-
하위권 외고 출신인데 담임 쌤이 한양대 추천으로 관광을 추천해주셨어요 저희 외고...
-
7번:순간 흠칫함. 12번:번호대에 비해 난이도가 꽤 높음. 이라고 풀때 생각하긴...
-
앵간해선차단함
-
직접 5시간 동안 만든 경제 개념 정리본입니다 음.. 오류나... 빠진...
-
여기 버튼이 있습니다 10
누르면 저의 뽀뽀를 받을 수 있어요
-
이래도 부정선거가 없나요? 애초에 위법 아닌가요...? 밥먹느라 줄 길어졌다고...
-
어떻게 수학없이 공부할수가 있지
-
질문하나만 하겟습니다 확통 선택자구요 2025 년도 수능처럼 확통 선택과목 7문제...
-
전형이 생각보다 다양하던데
-
싶은건 안함
-
옯붕이들 웃자 4
백 번 천 번을 웃으며 행복하려고 해도 백 번 천 번 다 엉망인게 인생이잖아요 이제...
-
덥다더워 15
-
[속보] 사전투표 첫날 최종 투표율 ‘역대 최고치’…19.58% 2
21대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최종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19.58%로...
-
지방의대 다니면 얼마 정도 나오나오
-
24학년도 수능 20번 문젠데 문제 조건을 잘 읽어보면 물체B가 정지하고 있다가...
-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코끼리가 동물원에서 발에 족쇄가 걸린 채...
-
お待たせいたしました。間もなく5番線に函館から来ました特別急行北斗1号が到着いたします。危険で...
-
흐
-
왜 n제엔 잘 없지 모고에서나 가끔 보이고
-
상대보다 힘 있는 병신트롤 뽑는 딱 그런 느낌 애들한테 왜 쟤뽑냐 물어보면 몰라...
-
소신발언 7
삼각함수 22번이 나와야함 참고로 이유는 없음
-
[속보] '국정원 청사 촬영' 대만 남성 경찰에 현행범 체포 1
국가정보원 청사를 촬영하던 대만 국적의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29일 연합뉴스...
-
수험생이니까, 나쁘다곤 생각안함
-
빈지노 사과문 3
+ 빨간색옷 입었다고 욕먹음 정치병자들 너무 많다 진짜
-
건외대전이 맞지 이젠 명백히 건대가 우위인데 누가 메호대전을 호메대전 이럼?
-
진짜 문제 조건부터 어떻게 건드려야할지 감이 안오더라 순서쌍 59개가 어디서 나온건데
-
시즌1 0회차 88 1회차 92나왓는데 쉬운건가
-
가벼운 소신발언임
-
집에 코끼리 3
이왜진?
-
1시간 동안 3번감 당뇨가 재발했나? 전에 당뇨전단계였는데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또 당뇨전단계인가
와 글 진짜 잘쓰시네요 독학서 내실생각 없으심?
감사합니다.
올해 옯 북스에서 문학 책이 하나 나올 예정입니다.
할매턴우즈는 볼때마다 어지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