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할매턴우즈로 보는 인물 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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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문학 지문 읽다가 인물들이 너무 헷갈려요." "갑순이랑 갑득이가 누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3등급 학생들이 문학에서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인물 관계 파악입니다. 수능 국어 영역에서 문학 문제를 풀다 보면, 지문을 읽으면서도 '이 사람이 누구지?'라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 호칭어만으로는 누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이름을 정리하고 메모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한 호칭어로 불리며, 때로는 같은 인물이 전혀 다른 이름으로 지칭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갑순이 할머니'와 '늙은 마누라'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놓치거나, 가족 관계를 잘못 파악하면 작품의 갈등 구조 자체를 오해하게 됩니다. 이는 곧 문제 해결 능력의 저하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복잡한 인물 관계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요? 체계적인 접근법 없이는 매번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능에서 요구하는 것은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독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물 관계 파악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24년도 수능 '박태원, 「골목 안」'을 통해 알아봅시다.
장면 1
한참 정이와 별의별 말이 다 오고 가고 하였을 때, ‘불단집*’에서 마악 설거지를 하고 있던 갑순이 할머니가 뛰어나왔다. 갑득이 어미는,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 모녀를 상대하여서도, 할 말에 궁하지는 않다고 은근히 마음에 준비가 있었던 것이나, 뜻밖에도 갑순이 할머니는 자기 딸의 역성을 들려고는 하지 않고,
㉠“애최에 늬가 말 실수헌 게 잘못이지, 남을 탄해 뭘 허니? 이게 모두 모양만 숭업구……, 온, 글쎄, 그만 허구 들어가아. 늬가 잘못했어. 네 잘못이야.”
하고 도리어 딸을 나무라던 것을, 갑득이 어미는 그 당장에는, 귀에 솔깃하여,
“그렇지. 자계가 먼저 말을 냈지. 나야 그저 대꾸헌 죄밖엔 없으니까. 잘했든 잘못했든 자계가 시초를 낸 게니까 ―― ”
하고, 뽐내도 보았던 것이나,
갑득이 어미와 정이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던 상황입니다. 갑순이 할머니가 등장하자 갑득이 어미는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갑순이 할머니는 자기 딸을 편들지 않습니다. (‘그들 모녀’와 ‘자기 딸’이라는 호칭어를 통해 인물 간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갑순이 할머니가 딸을 나무라자 갑득이 어미는 ‘귀에 솔깃’하여 우쭐해합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장에는’과 ‘뽐내도 보았던 것이나’라는 표현에서 이러한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인물: 갑득이 어미, 갑순이 할머니, 정이(갑순이 할머니의 딸)
갈등: 갑득이 어미 vs 정이
상황: 말다툼 도중 갑순이 할머니의 등장
심리: 갑득이 어미(우쭐함, 승리감)
나중에 깨달으니, 그것은 얼토당토 않은 생각으로, 갑순이 할머니가 그렇게 자기 딸을 꾸짖으며 한사코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에는,
㉡“아, 그 배지 못헌 행랑것허구, 쌈이 무슨 쌈이냐?”
“똥이 무서워 피허니? 더러우니까 피허는 게지!”
하고, 그러한 사상이 들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나중에 깨달으니’라는 표현을 통해 갑득이 어미의 시선으로 초점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갑순이 할머니가 딸을 나무란 진짜 이유는 신분 차이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배지 못헌 행랑것’이라는 표현에서 계급 의식이 드러납니다.
상황: 갑순이 할머니의 진짜 의도 파악(신분 차별 의식)
사실 인지: 갑득이 어미는 갑순이 할머니가 정이를 편들지 않은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됨
사실, 을득이 녀석이 나중에 보고하는데 들으니까, 저녁때 돌아온 집주름 영감이 그 얘기를 듣고 나자,
“걔두 그만 분별은 있을 아이가, 그래 그런 상것허구 욕지거리를 허구 그러다니······.”
쩻, 쩻, 쩻 하고 혀를 차니까, 늙은 마누라는 또 마주 앉아서,
“그렇죠, 그렇구 말구요. 쌈을 허드래두 같은 양반끼리 해야지, 그런 것허구 허는 건, 꼭 하늘 보구 침 뱉기지. 그 욕이 다아 내게 돌아오지, 소용 있나요.”
㉢그리고 후유우 하고 한숨조차 내쉬는데, 방 안에서들 그러는 소리가 대문 밖까지 그대로 들리더라 한다.
을득이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집주름 영감도 똑같은 계급 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상것’, ‘양반’ 등의 표현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때, ‘늙은 마누라’라는 호칭어를 통해, 갑순이 할머니가 집주름 영감의 아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단집의 집주름 영감과 갑순이 할머니는 부부이고 정이는 그 둘의 자식입니다. 또한 ‘방 안에서들 그러는 소리가 대문 밖까지 그대로 들리더라’는 표현은 전해 들은 이야기임을 강조합니다.
배경: 저녁(시간), 불단집(공간)
인물: 을득이(전달자), 집주름 영감, 늙은 마누라(갑순이 할머니)
교훈
인물간의 관계파악이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인물을 소개할 때, ‘xx어미’라고 하면 그 자식으로 ‘xx이’가 나오는데, 이 작품은 ‘갑순이 할머니’의 딸이 ‘갑순이’가 아닌 ‘정이’입니다. 심지어 ‘갑득’, ‘갑순’ 같은 유사한 이름을 통해 혼동을 줍니다. 또한 ‘집주름 영감’과 ‘늙은 마누라’ 같은 호칭어를 통해, 부부 관계를 제시하나, 발화의 내용을 통해 ‘늙은 마누라와 ‘갑순이 할머니’가 동일인물을 의미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하면, 불단집의 가족 구성을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인물 관계 파악을 위한 행동 강령
1. 호칭어 정리
· 처음 읽을 때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호칭어를 정리하기
· 같은 인물을 가리키는 다른 호칭어들을 연결하기
예) 갑순이 할머니 = 늙은 마누라 = 집주름집 마누라
2. 이름 구별
· 갑순, 갑득처럼 비슷한 이름 구분하기
·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 주의하기 (어미, 할머니, 영감 등)
· 세대 관계 파악하기 (할머니-딸-손자 등)
3. 발화 내용으로 인물 확인
· 대화의 내용과 맥락을 통해 화자가 누구인지 추론하기
예) ‘그렇죠, 그렇구 말구요’같은 동조하는 발화가 나오면 대화 상대방이 누구인지 누구에게 동조하는 것인지 확인
4. 시공간 정보 활용
· 시공간에 대한 맥락을 통해 인물들의 관계 파악하기
예) ‘불단집’에서 나온 사람 = 불단집 거주자일 가능성 존재
예) 저녁에 ‘방 안에서’ 대화하는 사람들 = 같은 집 사람들일 가능성 높음
5. 전달자 구분하기
· 직접 목격한 것과 전해 들은 것을 구분하기
예) ‘을득이 녀석이 나중에 보고하는데 들으니까’처럼 전달자가 명시된 경우
6. 독해 중 수정할 요소
· 앞에서 파악한 인물 관계도를 끌어와서 읽기
· 읽어 나가다 모순되는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기
· 갈등 구조를 중심으로 인물들의 편 가르기 확인하기
처음에는 복잡해 보였던 인물 관계도 일관된 접근법만 있으면 충분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호칭어 정리부터 발화 내용 확인까지, 6가지 행동 강령을 차근차근 적용해 보세요. 한 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물 관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면, 문학 문제 해결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집니다. 갈등의 양상을 이해하기 쉬워지고, 화자의 정서나 상황의 의미도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 사람이 누구지?'라는 막막함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지고 문학 지문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소설이 이해가 안된다고 손을 놓지 마시고 인물부터 집중해보세요.
인물 간의 관계 파악을 잘 해두면, 소설을 이해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결국 인물들이 모여서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최근 책 출판 준비, 학원 출강 미팅, 수업 준비등으로 인해 활동이 뜸했네요.
교재를 제작하다가 떠오르는 것과 많이 질문이 들어오는 사안들을 정리해서 하나씩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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