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수시러 [1317341] · MS 2024 · 쪽지

2025-05-24 14: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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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외 지망 현역이 끄적여 본 글 (능력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고찰 및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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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공부하기도 싫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끄적여 봤는데 어딘가에 공유하고 싶어서 올려 봅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이라 논리나 문장 구조가 딱딱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저는 아직 생각이 짧고, 이건 제 동기부여 및 생각 정리 용도로 써 본 글이라 많은 분들이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어요. 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꿈이 있다. 돈을 버는 것, 유명해지는 것, 사랑받는 것 등. 내 꿈은 뭘까? 막연하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남들이 보기에 멋진 사람. 돈을 많이 벌고, 자기관리를 준수하게 하며, 따뜻하면서도 이성적인 태도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 그래, 여전히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다른 마음도 생겼다. 생각하는 사람, 또 그 생각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나는 최상위 부유층은 아니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상위 1퍼센트의 두뇌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 부유하거나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끝없는 욕심이다. 내 지금까지의 믿음은 정당했는가.


중학생 시절, 정의에 대해 야구 경기장 비유를 썼던 수업에서의 내가 기억난다. 키가 작은 소년, 중간 키 정도의 여자, 큰 키의 남자. 그들과 경기장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고, 그들이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상자가 세 개 있다. 이 상자를 '공평'하게 세 명에게 각각 하나씩 주는 게 옳은가, 키 큰 남자는 이미 높은 벽보다 키가 커서 야구 경기를 충분히 볼 수 있는데도?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나는 그때 모두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게 옳다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모두가 똑같은 인간인데 당연히 분배도 똑같이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뼛속까지 자본주의적 사고와 선민 의식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불과 작년까지도 능력주의적 사고에 찌들어 있었다.


그래, 능력주의. 그게 가장 공정한 제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력한 만큼, 능력만큼 보상을 받고 인정받는 것.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나는 그 법칙을 굳게 믿어 왔고, 노력한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거둬 오며 능력주의를 더욱 신봉하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나보다 훨씬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가 나보다 한참 낮은 성적을 받는다는 것. 나는 우연하게도 좋은 두뇌를 가지고, 우연하게도 공부를 잘하는 것을 최고로 인정해 주는 시대에 태어난 것임을 그때 느꼈다. 만약 체력적으로 뛰어난 것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에 태어났다면? 유달리 체력이 약하고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금세 도태되고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나는 정말 우연하게도 운이 좋은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우연하게도 운이 좋지 않게 태어난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해 왔던 거다. 머리가 띵했다. 불운하게도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


고2 하반기부터 나는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똑똑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인문학은 꽤 재밌었고, 철학도 멋져 보였다. 실존주의를 좋아하게 됐다. 내 선택으로 꾸려 나가는 내 삶에 대한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난민 관련 책들을 읽었다. 국제기구, 외교, 그리고 빈곤과 자본주의에 대한 책을 읽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훨씬 더 정의롭지 못했다.


70억이 넘는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식량 문제로 고통받는다. 우리 학교 급식실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아무런 노력 없이도 이곳에서 태어난 내 옆에는 언제나 양질의 음식물이 가득했는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1분에 어린애 한 명씩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단다. 왜? 정부가 부패하고 빚에 허덕이면서 악순환이 반복돼서.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그들의 이익만을 추구해서. 그러니까... 살릴 수 있었을 생명들이, 그 수많은 가능성들이, 오히려 원시 사회였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사람들이, 실존의 기회조차 없이 자본주의와 체제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작 인간이 만들어낸 이 체제 때문에!


무언가 잘못됐다. 바꾸고 싶은데, 내가 누리는 자본주의의 수혜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단지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변호사, 외교관, 국제공무원 등을 꿈꿨던 내게 던져진 질문들, 이 문제의식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여전히 나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고 싶다. 학벌주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 학벌주의 사회가 갑자기 전복된다면 나는 분명히, 분노할 것 같다. 이 끝없는 모순, 의지의 충돌, 익숙한 무기력. 그렇지만 생각을 멈출 순 없었다. 내 미래, 내가 살아갈 사회, 그리고 타인들이 살아갈 사회. 나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마르크스처럼 자본주의를 전복시키자고 주장할 만큼 담대하지 못하다. 정치인이 돼서 잔뜩 비판받으면서 체제를 바꾸는 것도, 아직은 상상하지 못하겠다. 그럼, 작은 것부터 바꿔 보는 게 맞다. 체제에 순응해서 돈을 벌어야만 하더라도 그걸 내 풍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돕기 위해 쓰는 것처럼. 체제를 전복시킬 필요는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


국제공무원이 되어야겠다. 유엔이든, 유엔난민기구든, 경제협력개발기구든... 빈곤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공적개발원조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야겠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쪽의 책도, 저쪽의 책도 읽어서 문제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사람이. 그럼, 하나쯤은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면, 강연을 다니고 싶다. 누군가의 타인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미노처럼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


그러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지? 우선 국제공무원이 되기 위해, 좋은 학력을 가져야 한다. 공부를 놓지 않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하여, 부끄럽지 않은 노력으로 결과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더 많이 읽을 것이다. 내 생각은 아직 편협하고 많이 부족하다. 그러니 내 생각과 일치하는 책이든, 반대되는 책이든 전부 읽어야겠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자만하지 말고, 안주하지 말고, 언제나 질문할 것. 그래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될 것! 새로운 꿈이 생겼다. 노력해야겠다. 세상을 바꿀 힘을 지금부터 차곡차곡 쌓아야겠다. 눈앞의 6월 모의고사, 기말고사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는 거다. 그럼, 펜을 들어야지. 내 앞에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고, 내 꿈에 다가가야겠다. 이 무궁무진한 가능성, 새로운 활력감! 나는, 내게 자랑스러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최종적인 결론은 공부하러 가야겠다입니다. 수능이 173일 남았으니 공부하러 가 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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