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여러 개 써보니 왜 중요한 문장을 처음이나 마지막에 쓰는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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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새 오르비에 소위 평소 생각을 메모한 것을 그대로 정제없이 써두는 것 말고, 정제된 글 논리정연하고 반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차근차근 나열하고 생각과 논리를 전개하는 논문을 여러 개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 R&E 대회에 나가던 때 쓴 논문이 하나 있었는데, 당시 교수님이 보시고선 특별한 지도 없이 스스로 대학원생도 쓰기 힘든 수준의 양식으로 잘 썼다고 크게 칭찬해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이후로는 오히려 대학생이 되니까 논문을 쓸 일이 없어서 많이 심심하기도 하고 아쉽더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대학원 진학 예정 분야도 정했겠다, 여태 공부한 것들을 본격적으로 꾀어서 구슬을 보배처럼 만들고 연결을 해야겠다 싶어서 이전에 간간이 이야기한 4~5개 주제의 논문을 동시에 진행을 하고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면서 왜 수능 국어에서 여태까지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에 주로 핵심 아이디어를 써두었는지 알겠더군요.
여러분도 이후 글을 자주 쓰는 일이 오게 된다면 저와 비슷하게 느끼겠지만, 자연스럽게 글을 잘 쓰고 설명을 탄탄하고 깔끔하게 하려다보면 어쩔 수 없이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에 가중치가 엄청나게 쏠리기 시작합니다.
우선 첫 문단이 중요하고 거기서 핵심 주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제가 이전 <수국비>를 통해서 처음 가르쳐드리는 기본기였습니다. 많은 상대적으로 쉬운 지문들은 주로 첫 문단에 핵심 주제가 있었기에, 초반에만 잘 집중해서 읽어가면 전체적인 맥락과 줄거리가 이해가 되고, 정말 첫 문단에서 제시된 문제제기나 의문이 이후 여러 문단을 통해서 조금씩 설명이 되는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괄식 그러니까 맨 마지막 문단에 오는 경우에는 이게 난이도가 좀 올라가니다. 초반에 대체 무엇에 집중을 하고 의존을 해야할 지 그 뿌리와 기둥인 안잡혔기에, 초반부터 온갖 전문 용어가 등장하는데 숙련된 사람도 핵심 주제를 찾지 못해서 당황하기 쉽습니다.
제가 가장 기억나면서 뒤늦게 핵심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대학교 물리학을 공부하고 나서 좀 곱씹다가 겨우 나중에 되서야 정확히 이해한 지문이 바로 '각운동량 보존, 13년 9평 B형 지문' 이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cognitasapiens/221865783748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지문이었는데,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로 직관과 경험적으로 팔을 멀리 뻗고 회전하는 것보다, 팔을 안쪽으로 당겨서 돌아가는 것이 더 빠르게 많이 돌아간다는 감각을 기준으로 풀었던 지문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감각에 의존하고 지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이고 문제는 이 핵심 주제가 가장 맨 마지막 문단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대로 앞서 초반에 기세를 잡고 읽어나가지 못했었다면, 맨 마지막을 보고서야 뒤늦게 깨닫고 다시 맨 마지막 문단의 핵심 문장을 중심으로 글을 구조화하면서 읽어야 하였습니다. 당시에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지문이고 짧지만 아리까리한 지문이었는데, 처음으로 첫 문단이 아닌 마지막 문단에서 핵심이 등장했기에 상당히 변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논문을 쓰다보니 이러한 전개 방식이 모두 이해가 가는 것이, 일단 논문의 서론과 초록이 맨 마지막에 올 때 이 부분에서 반드시 이후 전개될 논지와 문제제기를 설명을 해야 합니다. 특히 초록은 논문의 전체를 요약하고 핵심 주장과 핵심 근거 몇 개만 제기하여 전반적인 스토리, 줄거리를 잘 압축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서론은 문제를 푸는 이유, 어떤 구체적인 범위의 문제인지, 어떤 종류의 문제이며 왜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등 논문 전체를 전개하게 될 준비, 예열을 하는 단계이고 이때 글을 잘못 쓰면 글 전체가 이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 좀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앞에서 모든 빌드업을 다 하고 나서야 뒤늦게 최종 결론에서 하고싶은 말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어떤 결론으로 나올 지 모르거나, 다소 충격적이거나 우리의 직관과 다를 때 충분한 설득을 앞에서 했어야지 뒤에서 명확하게 임팩트 있게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과거 부산 대성학원에서 국어 선생님들께 배울 때, 왜 핵심 주제를 첫 문단에서 못 보면 결론에서도 다시 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더군요. 위 각운동량 보존 법칙 문제를 딱 저 핵심 문단, 마지막 문단이라는 것을 토대로 풀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핵심이 무엇인지, 상대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면 찍어서라도 맞출 수 있게 수능 국어는 많이 배려해줍니다.
이게 맨 마지막 문단에서도 등장하는 핵심적인 문장이었고, 이것이 현상을 정확히 설명하는 원리였습니다. 회전 관성이 줄어들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늘고, 어떤 경우에는 줄어든다~ 라는 대조적인 현상만 정확히 이해하였다면 아래의 어려운 문제를 꽤 쉽게 풀 수 있었습니다. 대조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가장 첫 부분, 회전 관성의 합과 같다 즉 각운동량이 보존된다(앞에서 각운동량과 운동량 보존에 대해서 길~게 설명한 이유가 여기서 나옵니다 막타를 치는 것과 마찬가지죠).
<보기>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 돌림힘이 추가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하면 각 운동량이 보존된다는 소리거든요. 처음 돌림힘을 주는 순간 각운동량이 생기고 그것이 보존될 때 내가 팔을 오므리느냐 펼치느냐에 따라서 회전 속도가 달라지는 식으로 각운동량이 보존된다고 설명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팔을 오므리면 회전 수가 늘어나며, 팔을 펼치면 회전 수가 줄어든다' 라는 핵심되는 대조 개념으로 아래 선지를 쭉 훑어보면 찾기는 좀 어렵지만 결국 하나가 밟혀야 합니다.
그럼 찬찬히 정답을 보면 뭐가 보이나요. 5번이 보입니다. 이 선지가 유일하게 상대적으로 더 많이 회전하는지, 적게 회전하는지를 언급하잖아요. 이 선지가 핵심 문장의 구조와 형태가 가장 유사하잖아요. 이런 방식이 궁금하면 <수국비>를 찾아 보시면 되는데, 일단 이 사례를 통해서 맨 마지막 문단이 핵심이고 그 핵심에서 문제가 나오는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소개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게임에서도 첫 타격, 처음 어그로를 끌면서 전쟁을 시작하는 행동이랑, 마지막 타격 경험치 먹기 직전 상대가 딸피일 때 낼름하는 막타를 중시하잖습니까? 딱 그거랑 논문이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습니다. 첫 타격을 매우 성공적으로 잘 했다, 구조적으로 정교하고 논리적이며 빈 틈이 없는 내용으로 독자들의 인상을 확 잡았다면 이후 조금 느슨하게 글을 전개해도 독자들이 알아서 잘 따라옵니다.
그리고 막타가 중요한 경우, 마지막에 소위 화룡점정, 모든 전개를 통해 이 마지막 한 수를 위한 빌드업이었다고 막타를 치는 경우를 보면 그러한 경우도 이해가 갑니다. 첫 타 다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번째 타격보다는 막타라고 생각해서, 아마 제가 기억하기로는 여러 문단이 있는 경우
1문단 > 마지막 문단 > 2문단... 이런 식으로 중요도를 메겼던 것을 기억합니다. 좀 극단적으로 국어 시험 시간에 시간이 부족하면, 그냥 찍지 말고 첫 문단이랑 마지막 문단만 읽고 이거랑 뭔가 느낌이라도 비슷한 것을 찍으면 그게 정답일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다고 <수국비>에서 지겹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식적으로 여러분 뭔가 일을 할 때 중간이 엄청 중요한 경우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두괄식 미괄식은 자주 들어보았어도 뭐 중괄식 이런 말을 잘 못들어보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런 경우는 못 들어보았습니다. 물론 중간이 허리가 없으면 결론까지 못 가겠지만, 평균적인 에너지를 안배하고 내용을 배치할 때 가장 상대적으로 첫 타와 막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게임을 할때도 그렇고 그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 이야기를 왜 새삼 길게 하냐면 저도 논문을 쓰니까 일단 굉장히 공을 들이는 것이 초록과 서론이고, 그 도입부가 재미가 있고 흥미가 있어야지 사람들을 끝까지 읽게 할 수 있는 촉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은 그간 했던 주장을 거두고 정리하여, 요약하면서 다시 강조하는 소위 심리적 막타를 치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가장 첫 부분과 가장 마지막 부분에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고, 글을 쓰다보니 구조적으로 중간에 중심 문장이나 핵심이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애매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좀 알겠습니다 수능 국어에서 왜 그렇게 요약을 강조하고, 핵심 문장을 중심으로 풀리게 만들었으며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에 왜 그렇게 높은 확률로 중심 문장을 배치했었는지... 첫 문단은 논제의 시발점이고, 마지막 문단의 논제의 마무리와 정리, 빌드업의 회수였기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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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 쪽으로 가자
오 네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제 경우에는 영어 풀다가 어렴풋이 느끼기만 했던 내용인데
국어에다 의식적으로 적용해 볼 생각은 못했네요 좋은 내용 항상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