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보기 해석과 문학 감상의 패러다임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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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어의길 정연입니다.
오르비 여러분들께는 처음 인사드리네요.
기존에는 학원과 과외 중심으로 활동해왔지만,
오르비에서 훌륭한 국어 칼럼들을 접하며
저도 글을 통해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칼럼에서는 5등급 국어 노베이스였던 제자가
24수능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특히 백지 상태인 노베이스 하위권 학생들과
어느정도 완성된 최상위권 학생들의
문학 감상 태도 정립에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일거예요.
1. 복수 작품 보기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먼저 2023학년도 수능 문학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렇게 (가)와 (나)를 설명하는 보기는 자주 만나보셨죠?
대체로 이렇게 2개 작품을 설명해주는 보기들은
현대시 구성, 고전시가 구성에서 나옵니다.
이런 복수의 작품을 설명하는 보기는
단독 작품을 설명하는 보기와 무엇이 다를까요?
단독 작품 보기의 경우에는
<보기> 자체의 모든 텍스트 정보가
전부 <윗글>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건 당연한 사실이죠.
노베이스 학생들이라도 그냥 평범하게 잘 읽었을거에요.
그럼 복수 작품 보기의 경우에는 뭐가 다를까요?
아래의 예시로 확인해보죠.
자, 첫 문장부터 볼까요?
"생명 현상을 제재로 삼은 시는 대체로, 생명체들의 풍요로움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거나, 생명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 문장 열심히 읽는 분 있나요?
제 첫 수업에서 항상 테스트해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열심히 안 읽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우리는 (가)랑 (나) 내용이 더욱 궁금하니까요.
그래야 보기에 시간을 투자한 값만큼 정보를 얻으니까요.
보기에서는 핵심 내용만 보고 가는 건 이미 자명한 루틴이죠.
그래사 많은 학생들이 이 문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바로 (가)와 (나)로 넘어갑니다.
근데 저는 이러한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습니다.
평가원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라도 허투로 쓰는 일이 없는
고도의 지능을 지닌 극 T집단이에요.
그럼 왜 저런 첫 문장을 넣었을까요?
운을 띄우려는 의도는 아닐텐테 말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첫 문장은 (가), (나) 작품의 공통점이면서
동시에 (가), (나) 작품을 요약하고 있는 문장이에요.
"생명 현상을 제재로 삼은 시"는
(가), (나) 작품의 제재가 '생명 현상'이라는 걸 알려줘요.
"생명체의 풍요로움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거나,
생명 파괴의 현실을 극복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 문장은 2개의 정보를 담고 있죠?
생명체의 풍요를 감각적 형상화 OR 생명 파괴의 현실 극복
이제 조금 느낌이 오시나요?
전자의 정보는 (가)의 주제이고
후자의 정보는 (나)의 주제입니다.
실제로 뒷 부분의 (가), (나) 설명이 이를 뒷받침하네요.
그럼 이 두 정보를 엮어서 읽어본다면 각 시의 주제는
"생명체의 성장과 풍요 예찬",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생명 파괴의 현실을 자연이 극복"
정도로 확장할 수 있겠어요.
그 뒷 문장도 이제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죠?
"두 양상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생명의 모습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 동일한 지향성을 보인다."
두 작품의 주제는 생명의 풍요와 생명의 파괴로 극단이지만,
두 작품의 제재는 생명의 예찬으로 같다는 거죠.
이 한 문장이 작품 전체의 관통 지점을
미리 알려주는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문학 보기를 독해한다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이 달라집니다.
언제인가부터
"문학은 보기 먼저"
라는 통념이 지배적으로 변하고
학생들은 타성에 젖어서
보기를 분석할 정보가 아닌
이미 분석되어 정리된 정보 정도로 여기더라고요.
보기를 열심히 읽지 않고
대충 매일 하는 루틴처럼 설렁설렁 읽죠.
저는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문학 보기가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깊습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습니다.
특히 24수능은
지금 설명한 복수 작품 보기가 2개나 출제되었어요.
만일 문학 보기 해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미리 적용해서 체화했다면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한번 볼까요?
2. 보기 분석이 작품 독해를 어떻게 이끄는가
(다) 작품은 유명하죠?
잊는 것이 병인가...
별 정보가 없어보이는 이 보기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하면 새롭게 보입니다.
(그냥 음음.. 글쿤.. 하고 넘어가면 안됩니다.ㅜㅜ)
(나)와 (다)에는 '주체'가 '대상'을 보고
'사유'하여 얻은 '인식'이 드러난다.
정리해보면 두 작품은
'주체' → '대상'의 관계가 나오고
주체가 대상을 '사유'하고
그 깨달음인 '인식'이 나오는
공통적 전개 구조를 가졌네요.
그 뒤 문장은
아까 23수능 복수보기에서 연습한 그 문장 형식과 동일하죠?
앞부분은 (나), 뒷부분은 (다)의 설명이겠네요.
앞과 뒤의 문장을 연결하여 확장해보면
(나)의 인식은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의미이고
(다)의 인식은 대상의 속성에 주목하여
얻은 깨달음을 제시하겠네요.
실제로 작품에서 이러한 내용은 100% 완벽하게 대응됩니다.
3. 보기 해석으로 고난도 문학 감상하기
실제로 보기의 정보를 토대로 독해해보면,
(나)의 주체는 담을 넘는 '가지'겠죠?
그럼 가지가 사유하는 대상을 찾는게
우리의 최우선 목표겠고요.
뿌리, 꽃, 잎
비, 폭설
담
가지가 사유하는 대상들이죠.
그럼 주체인 가지는
위의 대상들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의미'을 깨달았을까요?
얼굴 못본 뿌리, 적막히 손터는 꽃과 잎
고집 센 비, 도리 없는 폭설
금단의 담.
이 대상들은 모두 가지에게 부정적인 대상입니다.
원래라면 그렇죠?
그런데 작품에서는
뿌리, 꽃, 잎 덕에 혼자 떨지 않았고
비와 눈 덕에 즐거웠고,
담을 통해서 자유로움을 얻었죠.
부정적 대상의 긍정적 의미.
이것이 '주체'인 가지가 '대상'인 부정적 존재들을
'사유'하여 얻은 '새로운 의미'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보기와 완벽하게 일대일 대응이 됩니다.
보기는 작품을 분해해서 역설계해놓은 텍스트 정보입니다.
이제 어떤 식으로 보기를 활용해서
문학을 감상해야하는지 느낌이 오시나요?
이 기세를 몰아서
많은 학생들의 멘탈을 터뜨린 (다)도 볼까요?
일단 보기부터 상기해보자고요!
(다)의 인식은 대상의 속성에 주목하여
얻은 깨달음을 제시한다.
(다)의 주체는 '나'겠네요!
나가 이홍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깨달음을 제시하겠군요..
그럼 대상이 뭔지, 그 대상의 속성이 뭔지, 깨달음이 뭔지
우린 그것을 찾아 감상하는 것이 최우선 목적입니다.
잊는 것..? 병..?
주체인 '나'가 사유하는 대상은 '잊음'이네요.
그러고보니 제목도
'잊음을 논함'이죠?
딱딱 맞습니다.. 좋아요.
이대로 계속 보기와 작품을 대응시켜보면
잊음이라는 대상의 속성이 병인지 병이 아닌지를 논하겠네요.
그럼 잊음이 병인지, 병이 아닌지 구분짓는
그 깨달음만 찾으면 (다)의 독해는 끝나겠죠.
그 내용이 바로 뒷 문단에서 나오네요.
"잊어도 좋을 것은 잊지 못하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잊는 데서 나온다."
이러한 이유가 천하의 걱정이 생기는 까닭이라니..
잊음이 병이 되는 이유라고 해석하면 되겠죠.
병O) 잊어도 좋은 것 → 안 잊음
병O) 잊으면 안 될 것 → 잊음
그럼... 잊음이 병이 아닐 조건은?
병X) 잊어도 좋은 것 → 잊음
병X) 잊으면 안 될 것 → 안 잊음
이렇게 철저한 보기 독해와 단 두 문단의 감상만으로
학생들이 고난을 겪었던 현대시 구성을 손 쉽게 해결했어요.
오늘 칼럼에서 다룬 내용은 길진 않지만
요즘 수능이 묻는 문학 독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보기를 통해서 얼마나 정교하게 감상할 수 있는지
묻는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단독 작품 보기라도
평가원이 대충 주는 문장은 없다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보기 독해와 문학 감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었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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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도움이 되는 칼럼을 자주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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