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명서정시 [1315476] · MS 2024 · 쪽지

2025-04-16 15:46:18
조회수 267

똥글사랑꾼님께, 문창과 입시 후기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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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명지대 문예창작과 시험을 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기대를 하지 않았던 만큼 믿기지 않았다. 학원을 다니지도 혹 과외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묵묵히 적었을 뿐. 합격의 연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나에게 어느순간 일상이 문학이 되었다. 나에게 길을 걷는 시간은 독서시간이었고 자기 전의 모든 시간은 창작의 시간이었다.


 가방에는 항상 읽고 싶어 조마조마한 책들이 있었고 나에게는 무료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 대학 도서관의 열람실이 존재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합격의 단초이자 나의 도전의 발화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전문 수험생이 아니었다. 사실은 수험생 흉내도 내지 못했었다. 나에게는 과거청산이라는 너무나 컸던 숙제가 있었기에 그런 거대한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들은 대부분이 문학적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인생을 앗아간 어느 한 시점으로부터 과거를 되찾기 위해 투쟁했다. 약 6년간의 투쟁이었다. 18살때부터 시작된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기는 하나 23살이 될 무렵 격렬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되었다. 하지만 독서라는 가벼운 활동으로 시작된 나의 문학 활동은 22살 대학교에 가까스레 합격한 뒤 합평과 창작이라는 조금은 더 깊고 아름다워졌다.


 청주의 어느 대학교에서 나는 약 2년간의 시간을 흘러보냈다. 이 기간 나는 상처에 맞서 싸우는 법을 터득했다. 아픔에 굴복하지 않는 법도 배웠다. 나를 나로서 드러내 세상에 떳떳해지는 여러 방법들을 배웠다. 정말 감사한 장소 감사한 시간 그리고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틈이 나면 시를 썼고 책을 읽었다. 틈이 나면 영화를 보고 소중히 사귄 친구들과 감상을 나눴다. 나에게 청주에서의 2년은 문학적 삶의 지속이었다.


 그러던 와중. 하루가 하루를 살아가는 권태에 휩싸이게 된 어느날 생각했다. 나는 시가 쓰고 싶은게 맞을까. 무한한 고민이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시를 향한. 조금 더 넓게 말하자면 문학을 향한 이 들끓는 마음이 언젠가 꺼지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답은 너무나 쉬이 나에게 내려졌다. 적어도 죽기 전까진 들끓을 것이라는 혹 그 전에 꺼져버릴 지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이던지 가시적으로 그것을 증명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렇게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정시모집에 지원했다. 사실 말만 그렇다 할 뿐이지 나에게는 입시에 관한 그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과 특성상 독학생이 정보를 얻기란 아주 힘들었다. 그래서 정보를 얻기를 포기했다. 시험을 보기위한 최소한의 정보 외에는 알려고 하지 않은 채로 일상을 반복했다. 그저 평소와 같이 책을 옆구리에 끼며 창작을 행복으로 여기는 삶을 지속하기로 했다.


 어느새 시간은 실기에 가까워졌고 나는 적당히 원고지 사용법만을 익힌 채로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장에서 내게 주어진 시제는 빙하기와 화산중에 고르는 것이었다. 얼마 전 일본 지진이 일어났음을 알고 대다수가 화산을 고를거라 생각해 나는 역으로 빙하기를 선택했다. 이때부터는 그냥 시험을 즐겼다. 태초에 합격은 신이 점지해주는 것이라는 운명론적 사고를 총동원해 태연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난 그동안 내가 시를 써오며 얻은 사고들를 총동원해 시험을 보고 나왔다. 사실 독학으로 준비한 기간이 일주일이 채 되지 않기에 작품을 어떻게 썼는지 과정을 제외하고는 전혀 기억이 나지않는다. 그저 후련할 뿐이었다. 이날 명지대에서의 시험 응시 자체가 하나의 진보였고 또한 큰 울림이었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또 시간은 흘렀고 나는 시험을 봤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로 문학에 빠져 살았다. 나는 보통 대학의 경우 합격인 학생에게는 따로 정시모집 결과를 열람하라는 식의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 정통이라고 알았기에 합격날 캘린더 알람을 본 뒤 조기발표를 확인한 후 메세지가 오지 않았음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준비기간이 길었던 다른 수험생에게 합격의 영광이 찾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험번호를 치는 그 과정이 부끄러웠다.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화끈하게 했다. 


 시력이 좋지 못한터라 처음 붉은 색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합격을 보고 붉은 기운을 받은 불합격이라 생각하고 창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제대로 그 아래줄을 읽어보니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남긴 입학처였다. 후에 제대로 안경을 착용하고 다시 열람을 하니 나에게 축하를 건넨 입학처는 합격통보 또한 알려준 것이었다. 순간 나는 잠시 얼어붙은 몸이 되었다. 살짝의 쾌감과 함께 나는 증명의 기쁨을 맞이했다. 나에게 들려온 첫 가시적 문학의 성취였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대입시험에 불과할 지 몰라도 나의 인생을 치유했던 문학에게 받은 첫 증표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너무나 금방 그리고 금새 나의 도전은 성공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 증표를 받기 전까지 내 인생은 실패의 역사였다. 나에게 10대의 끝과 20대의 시작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급격히 악화되는 나날들이 나는 너무나 두려웠고 힘들었다. 그날의 나는 힘든 것을 드러내지도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는 법도 울음으로서 후련함을 얻는 것도,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다. 온전히 몸뚱아리로 그것을 받아낼 뿐이었다. 그저 조금씩 아프고 때론 너무나 찢어지게 아프며 배울 뿐이었다.


 상처로 생긴 흉터를 영광이라고 치부할 생각은 없다. 잘난 놈이라며 입시에 좌절을 겪은 이들을 희롱할 의도도 없다. 이건 그저 나에게 하는 나의 위로이다. 앞으로 글을 써가며 타인을 위로함을 글의 목표로 삼은 내게 타인을 위로하기 전 하는 최초의 글의 위로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무엇이 정답인지 혹 무엇이 오답인지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이 모든 것들이 정답인지 혹 오답인지는 나의 문학에 ,나의 글에, 내 인생에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나를 아름답게 하는지 그 아름의 가치가 나에게 어떤 행복이 될 수 있는지가 아직은 우선이다.


 이 짧은 푸념은 나를 향한 이야기이다. 혹은 이 이야기는 다른 표현으로 다른 경험들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목표로 한 '글로써 사람을 위로하고 글로써 내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그저 글을 쓰며 행복하고 싶을 뿐이다.


 *이 비루하고 망측한 글을 읽을 모든 이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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