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만에 국수영 575→213 학생 본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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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제주도 출신 23살 군필자(전의경 복무했다고 들음) 아저씨 가르쳤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하다가 어깨 다쳐서 접고 이것저것해보다가 군대 3월에 제대하고 4월에 서울 올라와서 재수종합반 등록했대. 처음 친 4모(사설)에서 국어5 수학(나)7 영어5(상펑) 받아왔더라, 누가 봐도 완벽한 노베지. 그래놓고 꿈은 교대 가서 초등학교 선생님 되는 거래. 당시(10여년 전)엔 교대가 상당히 높아서 나도 처음에 '575 받아와놓고 교대는 무슨... 꿈높 현시창이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
근데 시간 좀 지나고 나서야 이 놈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일단 4월부터 11월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븐일레븐(7시 등원~23시 퇴원)을 실천하고, 밥 먹을 때도 항상 영단어장 같은 책 보면서 혼자 먹었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자습하는데 채혈기(당뇨병 환자들이 혈당 재려고 갖고 다니는 바늘 튀어나오는 기계) 가져와서 손톱 밑 찔러서 잠을 깨더라고. 그리고 그 해 월드컵이 개최된 해여서 한국전 하는 날이면 남학생들 거의 다 빠지거나 자습 도망갔는데, 그 때도 이 놈 하나만큼은 교실에서 변함없이 공부하고 있더라. 나도 수험생 때 나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데, 얘만큼 '고승덕 모드'란 단어가 어울리는 놈을 본 적이 없어.
그렇게 7개월 지나 11월에 수능 치고 12월에 수능 성적표 받아가지고 와서 보여주는데, 나도 눈물이 찔끔 나더라. 재종반 담임 선생님이나 수학 선생님은 장하다고 포옹하시고. 수학(나)는 딱 1컷, 국어 백분위 93이고 영어도 높3(상평)이라, 서울교대나 경인교대는 몰라도 다른 교대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던 거 같은데, 고향 돌아간다고 점수 한참 남기고 제주대 초등교육과 갔다.
내가 가르쳐본 학생 중에 최고 아웃풋은 이과 울의, 문과 설경이지만, 누구보다 제일 기억에 남는 학생은 얘. 재수생 신분이었어도 너무 멋있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뭘 해도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얘 때문에 나는 지금도 '제주도 출신', '체육 접고 공부', '군필자'인 애들한테 이유 없이 호감을 느낄 정도야.
근데 이런 케이스, 내가 입시판에서 20년 가까이 구르면서(수험생 3년+과외·학원 햇수로 15년) 딱 1명 봤다. N수생 절대 다수는 "지금 X등급인데 남은 Y일 빡공하면 Z등급 가능?"만 외치다가 수능 ㅈ망하고 "이럴 거면 작년에 그냥 대학 갈 걸." 후회하면서 지방 사립대-백수 테크 타는 게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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