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에게서 소년에게 [1143343] · MS 2022 · 쪽지

2024-07-16 00:46:12
조회수 121

무등을 보며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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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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