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계중 수학 시험지를 보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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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수강 박사 (과천 "어수강 수학" 원장)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우연히(?) 범계중학교 3학년 수학 시험지를 보았는데, 수학과 농담이 생각나더군요.
[수학과 농담]
"이제 내가 수학을 좀 하는구나!"하면 학부 졸업 즈음 된 것이고, "내가 아는 게 없었구나!"하면 석사 졸업 즈음 된 것이고, "교수님도 아는 게 없었구나!"하면 박사 졸업할 때가 된 것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농담에는 "아는 것이 적을수록 자신의 지식을 높이 평가한다."는 웃지 못할 통찰이 담겨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더닝(코넬대학교 교수)과 크루거(뉴욕대학교 교수)는 이와 같은 현상을 "더닝 크루거 효과 (Dunning-Kruger Effect)"라 명명했습니다. (수학과뿐 아니라 자연대에는 과마다 비슷한 농담이 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라, 더닝 크루거 효과의 예시로 볼 수 있겠죠?)
범계중학교 수학 시험지는 매우 쉬웠습니다. 아마도 전교생의 50% 정도는 A를 받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찾아보니 2023년 3학년 1학기 A 비율은 45.3%, 3학년 2학기 A 비율은 59.2%였습니다.)


수학 100점이면 무척 잘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말 그럴까요? 다음 두 가지 질문에 함께 답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질문 1]. 이와 같은 시험에서 90점, 혹은 100점을 받으면 수학을 잘 하는 것인가요?
[질문 2]. 이와 같은 시험에서 100점 받은 학생이 95점 받은 학생보다 수학을 잘 한다고 볼볼 수 있을까요?
수학과 수학교육을 전공하고, 학교와 학원에서 약 20년간 학생들을 지도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답변 1]. 90점, 100점을 맞는 것은 상위 50% 안에 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물론 이중에는 정말 실력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단순히 중학교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고 실력있는 학생이라고 볼 순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중학교에선 수학 100점 받던 학생이 고등학교 진학 후 수학 시험에서 60점도 안 되는 점수를 받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며, 인서울은 커녕 수도권 4년제 대학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문원중이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상위 50% 학생이 중등수학이 A이기 때문에 고등 선행, 심화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기초가 없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진도만 나가다가 수학 1이나 수학 2에서 무너져서, 다시 고1 수학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게 되겠죠? 이 과정에서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고, 실제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수학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PS1. 물론 이 중에 진짜로 잘하는 학생들이 있고, 이 학생들은 메디컬이나 스카이를 포함한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PS2. 중학교때는 최상위권이었던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망치는 이유에 대해서는 https://orbi.kr/00068080893에서도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그냥 넘어갈게요!
[답변 2] 100점 맞은 학생이 95점 맞은 학생보다 잘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범계중 시험문제를 보면 중상위권 학생이 문제집 1-2권만 풀어보면 대충 느낌대로 풀어도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100점 맞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상위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만, 상위권 학생이 시험이라는 긴장된 상황 속에서 실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중학교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것과 95점을 맞는 것은 "실력 차이"보다는 "실수 차이"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시험이 무척 쉽기 때문에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수학 실력이 없어도 100점을 맞는 것이 가능하지만, 실력 있는 학생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100점을 맞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수학은 어떨까요? 양절/질적 측면에서 모두 중등수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도 많고 난도도 높습니다. 때문에 실력이 없는 학생은 실수하지 않더라도 고등학교에서 60점도 받기 어렵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거죠. 반면, 실력 있는 학생은 고등수학에서 1-2문제쯤 실수하더라도 80점, 90점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고등수학에서는 "실수 차이"보다 "실력 차이"가 중요하게 됩니다.
실력이 없는 상태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진짜 실력을 쌓는 공부가 아니라 100점을 맞기 위한 공부를 하고, 그 결과로 중학교에서는 수학 A였던 학생들의 100명중 80명이 고등학교에서는 3-6등급을 받게 됩니다.
PS3. 물론 안정적인 고득점을 위해서는 실수를 줄여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실력을 쌓는 것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실제 교육현장은 어떨까요? 수업 또는 상담에서 만난 학생들을 보면 다음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우 1]. 이미 실력이 뛰어난 데도 꾸준히 열심히 공부한다.
: 이미 최상위권임에도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낄뿐 아니라, 때론 불안해 하기까지 합니다. 때문에 더욱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더닝-크루거 효과로 설명할 수 있겠죠?
다음 학생도 모의고사에서 안정적인 1등급을 받는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제게 상담을 요청한 케이스입니다. (사실 대부분 상위권 학생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채워나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갈수록 실력이 쌓이겠죠? 아래 카톡은 위 학생이 어제 제게 보낸 카톡입니다.



이제 두 번째 경우를 살펴볼까요?
[경우 2]. 실력이 없음에도 스스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대충대충 한다.
: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답을 내는 공부를 합니다. 틀리면 "실수야!"하고 넘기거나 답지 풀이를 따라 푸는 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력이 쌓일리가 없겠죠?
이와 같이 공부하면 당장은 100점을 맞는다고 해도,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공부를 할 때,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지금 100점에 만족하며 여유롭게 공부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실력이 뛰어난데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과 비교해서
"저 녀석은 저렇게 열심히 해서 100점인데, 나는 이정도만 해도 100점이네!"
라며 스스로 더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 또한 더닝-크루거 효과로 설명할 수 있겠죠?
중학교 수학에서 100점이라고 우쭐할 것도 아니고, 95점이나 90점, 혹은 그 이하라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점수가 아니라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지 입니다.
당장은 100점이라도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도 모른채 기계적으로 문제만 푼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력이 쌓이지 않아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움을 느끼다 결국 수학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아주 뛰어나지 않다면요!)
반면, 당장은 점수가 좋지 않더라도 실력이 쌓이는 태도로 꾸준히 공부한다면 결국 최상위권 대학 진학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솜씨 없는 글이라 전달이 잘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단지 중학교 수학에서 100점이란 이유로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무리하게 선행 및 심화학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일게요. 다음에 또 만나요! :)
다음은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링크입니다.
1. 거의 모든 고난도 문항에 즉각 적용 가능한 치트키 1 : https://orbi.kr/00062136893
2. 거의 모든 고난도 문항에 즉각 적용 가능한 치트키 2 : https://orbi.kr/00062194726
3. 문자의 개수 vs 식의 개수 (feat. 연세대) : https://orbi.kr/00064497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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