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2병은 명문대에게도 온다, 공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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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혹시, 살아가는 이유가 있나요?
전 중3때 그 고민이 처음 제게 왔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그 전까지 공부를 하던 이유는 단순히 성적이 잘 나왔을 때의 칭찬을 위해서였습니다.
유치원때부터 학습된 주위의 인정과 칭찬을 위한 수단이였죠.
하지만 중3때의 저는 그 질문에 답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재고 준비중이기도 했고, 만약 영재고를 떨어지고 자사고, 자공고에 간다고 해도 고1부터 고3까지 일관된 학생부를 만들기 위해 미리 어떤 대학의 어떤 과를 갈지를 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때 소드아트온라인이 애니로 방영되던 시기였고, 전 그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달빛조각사를 필두로 게임판타지 소설들도 많이 나왔었죠.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전기전자공학부에 진학하기로 중3때 마음먹었습니다.
당시 제 꿈과 목표 학과를 정한 이유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고 인생을 왜 사는지, 공부는 왜 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우선시된 것이 아니라 대학 입시를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중1때부터 고3때까지의 인생 전체가 대학 입시를 위한 과정으로써 제게 인식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고등학생때 동아리 5개씩 하고 맨날 야자 째고 피시방 가고, 수능 지진으로 연기되었을 때 히오스 배치를 보는 등 성실한 학생은 아니였지만, 어쨋든 당시 제 인생의 목표는 연대 전기전자를 가는 것이였습니다.
연대 전기전자를 가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을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에 집중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그냥 멋있으니까. 연대를 가면 세상 만사가 모두 해결될 것 같아서.
중1~고3때의 저에게 연대를 합격한 이후의 저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대학가면 연애해~ 라고 하는 것 처럼, 그냥 블랙박스로 남겨두었습니다.
합격한 이후의 미래는 장미빛일거야. 어떻게 장미빛일거냐고? 그거 고민할 시간에 모의고사 하나라도 더 풀자.
웃기게도 고1때 내신 3~5등급을 받고 (진짜 최선을 다했음) 첫 중간 이후에 수시는 포기했었어요. 그때부터 정시에 올인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정시로 대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제 생기부는 엄청 빡빡했어요. 수시 쓸것도 아닌데 생기부 스토리에 이상하게 제가 신경을 썼죠. 왜냐? 중3때 목표했던 고등학교 생활과 제 꿈의 이유가 좋은 생기부를 위함이였으니.
원하던 대학, 그리고 원하는 학과에 합격한 이후 기분은 좋았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제 방황은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았어요.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축하해주고, 저는 그 축하에 취해 하루하루 보냈습니다.
이때부터 공부가 진짜 손에 안잡히기 시작했어요. 혹시, 올출F라고 들어보셨나요? 전 공학수학과 공학물리의 모든 수업과 모든 과제를 제출(문제를 다 풀지는 않음)하고 F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과제하느냐 밤도 샜는데 밤 새면서 딴짓하다가 마지막 1시간에 몰아하고 이랬어요 ㅋㅋ
공부하는 이유를 잃어버린거예요. 제가 전기전자에 오고자 했던 이유라고 떠들어대던건 사실, 그게 나중에 면접에서 유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일 뿐, 그저 가면이였던 것 같습니다.
고1~고3때 몰래 게임하던게 송도 와서 터졌습니다. 1주일 평균 40~50시간 게임했습니다.
대2때 학사경고 2번을 받고 3번 받으면 퇴학이니까 이때부터 휴학을 시작했습니다.
인생에 위기가 왔어요. 슬슬 전공 지식들이 필요한데 머리에 든게 없습니다.
당연히 학과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힘들어지구요. 놀땐 좋은데 서로 과제 공유할때 할 말이 없습니다.
자존감 엄청 떨어지고, 게임으로 더욱 회피했습니다.
이때 비로소 다시 공부하는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좀 깊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고3 이전까지의 저는 대입만 바라보던 경주마였고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던 제게 온 후폭풍이였죠.
구글맵 없이 모르는 버스를 타고 마음 가는대로 내려서 모르는 동네를 걷기도 하고
여러 상담들을 받고 여러 책들도 읽었습니다.
한 2년간 방황했습니다. 별 짓 다 해봤던 것 같아요.
제 방어기제는 주지화(intelectualization)였던 것 같아요. 괴로운 상황이 오면 그 사실과 논리에 집중함으로써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는 것인데, 내가 왜 이렇게 괴롭고 행복이란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지 공부했었어요.
결론으로 빠르게 넘어가겠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단순히 태어났기 때문이며, 이왕 태어난거 행복하게 살자. 가 첫번째였고
제가 어떤 것들을 할때 행복한지 행동들을 기록하고 그 행동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뜯어서 저에 대한 이해를 했습니다.
어짜피 태어난거, 행복하게 살다 가면 좋으니까~ 마인드로 지속 가능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이유는 1차원적으로 돈을 벌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 자신을 설득하기 좀 힘들었어요.
그런데 연구실 인턴 생활을 해보니까 행복하기 위한 요소들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제 실력이 있어야 하더라구요.
높은 자존감과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 위해, 그리고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특정 분야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한 이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공부는 수단이고, 어떤 공부는 그 자체로 목적이였어요. 즐거운 공부도 있고 하기 싫고 힘든 공부도 있지만 제 실력이 부족해 남에게 도움을 받거나 그때 공부 더 했더라면! 하는 경험들이 쌓여서 이제야 제가 하는 공부가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높은 학점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제 실력을 위한 공부를 하니 즐겁더라구요.
돌아보면, 제 대2병의 원인은 대학 합격 이후의 삶을 그리지 않음으로써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국의 교육과정상 저같은 학생이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말하는 루트를 따라가면 다들 인정해주고, 심지어 그 길이 좁아서 달리는데만 집중해도 정신과 시간이 부족하니까 그냥 생각 없이 그 루트를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가, 이 루트를 위해 달렸는데 실패해버리면 내가 불행한 이유는 저 루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야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같아요. 사실 대2병 쇼츠 보고 이 글을 씁니다. 쇼츠에서 대2병때 주로 하는 생각이 아 학생때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면 내가 지금보다 행복할텐데, 라고 말하는데 댓글들 대부분 공감하더라구요.
사실 그 루트 위에서 달리는 사람도 대2병이 옵니다. 루트의 끝까지 달려서 결혼하고 대기업 입사 후에 이 병이 와서 나 공부할래, 사실 내가 하고싶은건 이런거였어~ 하고 퇴사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상담선생님께 들었습니다.
책임질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이 대2병이 오면.. 진짜 끔찍할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결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의 선택권의 80% 이상을 반납하며 새로운 무한한 가치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미 이런 동의를 하지 않은 채로 결혼하고 가정이 있는데 그제서야 내가 원하는건 뭔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무섭습니다.
내가 성취하지 못한 것 때문에 불행한 것도 분명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말하는 요소들이 항상
자기 자신에게 진짜 성공일지는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같은 경우 제가 행복을 느끼는 요소들을 나열하고 사회에서 "성공"이라는 여러 가치와 요소들과 비교했을때 80% 이상은 일치하긴 했으나 그리 일치하지 않은 요소들도 좀 있었어요.
사회에서 "성공"이라고 부르는 루트를 쫒기 전에 그 루트를 내가 성공이라고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씩은 내가 이 루트를 걷는게 맞나. 내가 정말 원하는건 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맹목적으로 어떤 목표를 위해 이 고민들을 제쳐놓지 않았으면 해요. 대학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게 아니더라구요. 이게 늦게 왔다면 아마 삼성 입사를 위해 대학생활을 불태웠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삼성 간다고 또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삼성 면접을 그 마인드로 뚫기도 힘들 것 같구요ㅋㅋ
다들 원서 접수까지 수고하셨고 앞으로의 인생 행복하시길 바라요.
합격하신 분들이나, 재수하는 분들이나 본격적인 시작은 3월부터일텐데, 그 전까지 나는 어떤 가치를 위해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해보시는거 추천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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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올리고 3초 5초만에 좋아요가 찍힘 이건 사람이 아니야
저는 지방대생이긴 한데 (현재 1학년) 공시, 취업 등 여러 길을 두고 고민했지만
교사가 하고 싶어서 교대에 도전하기 위해서 수능 공부하고 있어요.
1년 내내 방황했는데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정하니까 덜 불안해지는 건 있는 거 같아요.
명문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정말 24 25 26살 먹어도 방황하는 학생들도 많고 그렇습니다.
다 불안해하는 느낌이 있어요.
대2병 정말 공감합니다 ... 다 그래요 정말로 극소수 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