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킴 [1220114] · MS 2023 · 쪽지

2023-12-17 17:10:08
조회수 2,832

나는 진짜 의사를 하고싶은데 그게 주변의 기대 때문이라고?

게시글 주소: https://orbi.kr/00065938275

두서없을 수도 있는데 그냥 써보았어요.

금요일에 최종적으로 수시 5광탈 2예비(하나 과기원) 받았다.. 엄마아빠는 다 괜찮다고 해주시지만 내 친한 중학교 동창들은 의치한약수 sky입성에 성공했는데 나는 1학년때부터 의대간다고 설치다가 결국 서울 상위대학 일반과 넣고 예비 기다리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분명 정말 친한 친구들인데 진심어린 축하를 건네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며 나는 정말 그릇이 좁은 사람이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잘 안 풀리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남을 축하해주기가 쉽지 않았다. 요새는 친척들한테 연락도 온다. 오랜만에 가족들 목소리 들으니까 반가워야하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니까 어떻게 됐냐물어보고 내가 답해주고 하는게 너무 기분이 안좋았다. 의사가 적성에 맞는지, 주변의 기대로 네가 의사를 지망하는 것이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말씀해주신 분도 계셨다. 맞는 말이고 의대열풍의 시대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로 의사를 하고싶다. 치과의사 한의사도 좋다. 나는 환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열과 성을 다해 상처를 치료해줄 자신도 있다. 환자뿐만 아니라 간호사들과도 서로 존중하며 협업하는.. 그렇게 매일 그려왔던 나의 미래이다. 의사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은 더 이상 듣기가 싫었다. 

올해 대학을 어디든 붙는다면 학고반수할 생각이다. 친척들한테는 그냥 붙은 대학 다닌다고 하고 조용히 반수할 것 같다. 요새는 현역때 수능으로 중경외시라인도 못가는 애가 재수해서 의대를 어떻게 가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다..

오늘 있었던 일화를 하나 들려주겠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하...인생.... ㅆㅂㅆㅂ’ 거리면서 스카를 가고 있었는데 경사진 내리막길에 어떤 할머니께서 천천히 지팡이를 짚으며 내려가고 있으셨다. 위험해보이길래 시선을 살짝 그쪽으로 두고 나란히 걸어갔는데 할머니께서 나에게손짓을 하셨다. 내리막길 끝날 때까지만 조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한쪽 팔을 잡고 내 쪽으로 힘을 실으실 수 있도록 해서 같이 걸음을 맞췄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와서 할머니는 정말 고맙다며 이제 청년 갈길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냥 끝까지 도와드려야겠다 생각했고 목적지를 물어본 다음 나도 시장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시장에서 순대를 사셨다. 나한테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갈길 가도 된다고 하셨는데 다시 오르막길을 지나서 사시는 곳까지 바래다드렸다. 잘 들어가시라고 인사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무시하고 가거나 그러는데 이렇게 도와준 사람 처음이었다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내가 도와드린 이유는 노인공경, 예절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다시 스카로 가는데 기분이 묘했다. 의사가 되어서 느끼는 보람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기분 썩어있었는데 잠시 refresh하는 느낌이었다랄까.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