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임상/상담 심리학 전공은 전망이 참 어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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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고모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 사촌동생이 어느 새 훌쩍 커서 대학에 갈 나이가 되었다고요.
그런데, 기억 속에서 항상 귀엽기만 하던 그 아이가 심리학과를 전공하고 싶어한다고 하시더군요.
그것도 임상/상담 쪽을!
저는 감히 피 섞인 사람에게 감히 심리학 전공으로 돈을 버는 길을 권하는 용기가 없어서, 심리학 전공을 하지 않고는 도무지 버틸 수가 없다면 심리학 전공을 지원하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언젠가 취직을 위한 도피성 복전은 회사에서도 별로 쳐주지 않는다는 말을 제 동기의 입을 통해서 전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같이 임상전공하겠다면서 I-O(산업 및 조직 전공)로 도망가서 지금은 인사과에서 일합니다.)
그러니 쉽사리 심리학을 전공하고 나중에 아니다 싶으면 상경계열로 복수전공 하라는 말도 못하겠더군요.
학부생 시절, 저는 항상 정보가 모자라서 아쉬웠습니다. 이공계열 전공은 인터넷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려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부럽다고 느낀 적도 많았지요.
마침 제 사촌의 경우도 있고, 수능도 끝났고 하니, 혹시나 전공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심리학─그 중에서 임상과 상담을 중심으로─전공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_______
95년에, '정신건강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의 내용 중에는 '정신건강전문요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여기서 '정신건강전문요원'이란, 정신건강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작업치료사로 나뉩니다.
나라에서 공증하는 인원에 속한다! 참 좋은 울림입니다. 역시나 심리학회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드디어 대한민국도 미국처럼 훌륭한 임상심리사들을 제도 하에 배출해내겠구나'하고 부푼 꿈에 젖어있었죠.
꿈은 언제나 이루어질 수는 없기 때문에 꿈인 걸까요?
'정신건강법'은 애초에 의협이 중심이 되어 넘어간 법안이었고, 당연히 의협의 입장에서 의사도 아닌 임상심리사를 제대로 된 전문 인력으로 키울 수 있는 제도를 꿈꿀 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결국, 임상심리사는 의사들을 위한 '자율형 종합심리검사 기계'로 양성되는 꼴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의사와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기대했던 심리학회와 그 구성원들은 당연히 실망했지요.
(이 때문에 의협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진 전공자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심리학회 내부에서도 밥그릇 싸움을 하는 판에, 저는 의협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며 악마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그런 반감으로 의사들의 경계를 사기도 하므로, 더욱이나 그렇습니다.)
결국, 임상심리 전공자들은 세기 말~초에 다 교수를 하러 도망가버립니다. 왜냐면,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임상심리사는 돈을 잘 벌 수는 없으니까요.
(이런 말을 들으면 '교수를 아무나 하나요?'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세기 말~초에는 비교적 쉬웠습니다. 자리가 꽤 많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정신보건법이 포문을 열자 사회에서는 점점 심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원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가는데, 이에 응답할 수 있는 공급들은 돈 못 번다고 교수하러 가버린 겁니다.
그리고 심리학에 꽤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도무지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 같은 자격증.
한국산업인력공단 주관 '임상심리사 1,2급'이 이 시기에 등장합니다.
이 문제의 자격증이 등장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렸거든요.
물론, 자격증이 등장했을 당시에는 다소 생소하고 난이도가 있는 시험이다 보니, 공급을 메꿔주지 못했지만, 곧 이 자격증으로 비전공자도 '꿀'을 빨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공급되는 인원들의 질이 낮다는 겁니다. 당장 필요한 수요를 받치기 위해서 질까지 신경 쓸 수 있는 판국이 아니었으니까요.
거기에, 상담심리 전공자들까지 있었죠. 상담심리 전공은 당연히 그 전문 분야에서 임상심리 전공만큼은 못하지만, 소위 '날치기 자격증'으로도 불리는 '임상심리사 1, 2급'도 기용하는 판국에 쓰임 받지 못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2003년을 기점으로 위 세 집단은 비참하고 처절한 밥그릇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싸우고 있죠.
거기다 임상심리학과 상담심리학을 전공한 석사생들은 매년 사회로 쏟아져 나옵니다.
공급은 넘쳐나는데, 그걸 수요가 못 받쳐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매년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임상/상담 전공하는 거 안 말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곧 결혼을 할 거 같은데, 미래 남편 또는 아내가 가계 재정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분.
그리고 오히려 적극 추천해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이를 가질 예정인데 맞벌이를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보고 싶은 분.
임상심리사는 주로 타자를 엄청나게 두드리는 직업이므로, 심리 검사 수주 파이프 라인만 잘 파져 있다면 집에서도 쏠쏠한 수익을 벌어갈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나머지는 적극 반대합니다.
특히나, 부모님이 노후자금이 충분하지 않으신 분들의 경우에는 아주, 절대,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반대 합니다.
+ 같은 심리학회에 속하는 임상과 상담은 왜 싸울까요.
정신건강법에서 말하는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자격에 상담심리학회에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임상심리학회에서 막았거든요.
밥그릇 싸움의 서막은, 임상심리에서 먼저 끊긴 했습니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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