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표현의 어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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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추워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온도 표현에 대한 간단한 어휘사 이야기입니다. “국어 온도 표현 어휘의 발달에 대하여(이영경, 2012)”을 참고하였습니다.
온도가 높은 경우에는 ‘따스하다, 덥다, 뜨겁다, 미지근하다’ 등이 쓰이고, 온도가 낮은 경우에는 ‘서늘하다, 시원하다, 차갑다, 차다, 춥다' 등이 쓰입니다. 이영경(2012)를 따라 전자를 온각 표현, 후자를 냉각 표현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중세국어 시기 온각 표현과 냉각 표현은 꽤 체계적으로 그 정도가 잘 나뉘어 쓰였습니다.
이영경(2011)의 체계를 따르면 ‘덥다'와 ‘ᄎᆞ다/칩다'가 최고 단계의 표현으로, ‘ᄃᆞᆺ/듯다'와 사ᄂᆞᆯ/서늘ᄒᆞ다’가 그 다음 단계, ‘ᄆᆡ곤/미근ᄒᆞ다'가 중간 단계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보이다시피 ‘뜨겁다'가 없는데 이는 근대국어에서야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덥다'는 ‘뜨겁다'의 자리에도 쓰였습니다. 달궈진 걸 만졌을 때 “아 뜨거워”가 아니라 “아 더워” 이렇게 말했겠지요.
온각 표현의 어휘사
1. “따스하다”계
15세기에는 공통 어근 ‘ᄃᆞᆺ’을 가지는 ‘ᄃᆞᆺ다', ‘ᄃᆞᄉᆞ다’, ‘ᄃᆞᆺᄒᆞ다’가 모두 쓰이다 15세기 말에 ‘ᄃᆞᄉᆞ다'로 통일됩니다. 참고로 모음만 대립되는 ‘듯다'와 ‘드스다'도 존재했습니다. 17세기에는 ‘ᄃᆞᄉᆞ다’에 접사 ‘-ᄒᆞ-’가 붙은 ‘ᄃᆞᄉᆞᄒᆞ다'가 등장하고 이 표현이 중앙어에서 기존의 ‘ᄃᆞᄉᆞ다'를 눌러 버립니다. 얘가 얌전히 아래아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형태가 현대 국어의 ‘다스하다'입니다. 의미 강화를 위해 어두 경음화를 겪은 어형은 ‘따스하다'입니다.
‘ᄃᆞᄉᆞ’에는 ‘-ᄒᆞ-’ 말고도 다른 접사가 붙었는데 ‘-ㅂ-’과 ‘-롭-’입니다. 형용 파생 접미사 ‘-ㅂ-’이 붙으면 ‘ᄃᆞᄉᆞᆸ다’가 되는데 19세기 말 문헌에 처음 등장합니다. 아래아의 음가가 사라지며 ‘다습다'가 되고 ‘다스하다/따스하다'과 마찬가지로 의미 강화를 위한 어두 경음화를 겪은 어형이 ‘따습다'입니다. 18세기 중엽엔 ‘-롭-’이 붙은 ‘ᄃᆞᄉᆞ롭다’가 등장합니다. 아래아의 음가가 사라짐에 따라 ‘다사롭다'가 되고 ‘따사롭다'도 등장합니다.
2. “따뜻하다"계
15세기에는 ‘*ᄃᆞᆺᄃᆞᆺᄒᆞ다’와 ‘듯듯하다'가 쓰였는데 후자만 문증되기 때문에 전자는 추정할 뿐입니다(*는 문증되지 않음을 뜻함). 그렇지만 후자가 쓰였다면 당연히 아래아를 쓴 전자 역시 존재했을 겁니다. 후자는 ‘뜨듯하다'와 ‘뜨뜻하다'의 직접적인 옛 형태이고, 전자는 ‘따듯하다'와 ‘따뜻하다'의 직접적인 옛 형태입니다. 이들의 경음화는 17세기 문헌에 ‘ᄯᆞᆺᄯᆞᆺ/ᄯᅳᆺᄯᅳᆺ-’이란 형태로 처음 등장하는데 이미 이 상태에선 자음군은 된소리를 나타내기 위한 표지로만 쓰였으므로 ㅅ 발음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형태가 반복된 말을 첩어라고 하며 ‘꼭꼭', ‘드문드문' 등의 예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형태인 ‘ᄯᆞᆺᄯᆞᆺ-’이 ‘ᄯᅡᆺᄯᅡᆺ-’이 아니라 ‘ᄯᅡᄯᅳᆺ-’이 된 것은 첩어라는 어원 의식이 옅어졌기 때문일 것이며 1음절의 종성 ㅅ이 탈락한 것은 [딷뜯]과 [따뜯], [뜯뜯]과 [뜨뜯]이 음운론적으로 변별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3. “뜨겁다"계
‘뜨겁다'를 보면 ‘따갑다'가 떠오를 겁니다. 물론 ‘따갑다'는 통각을 나타내는 말이라 좀 의미가 다르지만 동원입니다.
앞서 말했듯 ‘뜨겁다'는 중세 국어에 존재하지 않아서 ‘덥다'가 ‘뜨겁다'의 의미까지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18, 19세기쯤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뜨겁다' 때문에 ‘덥다'의 의미가 축소돼 ‘뜨겁다'가 ‘덥다'의 자리 일부를 담당하게 됩니다. ‘뜨겁다'의 옛 형태는 ‘ᄯᅳ겁다’로 ‘-겁-’은 형용 파생 접미사입니다. 아까 말했듯 [뜨]라는 발음을 기저형으로 여기게 되며 어근을 ‘ᄯᅳᆺ’이 아니라 ‘ᄯᅳ’로 보고 이 뒤에 접미사 ‘-겁-’이 붙어 ‘ᄯᅳ겁다'가 되고 현대 국어의 ‘뜨겁다'가 됩니다. 그리고 ‘ᄯᅡᄯᅳᆺ'의 ‘ᄯᅡ’를 어근으로 인식하고 모음조화를 위해 접사 ‘-갑-’을 붙이면 ‘ᄯᅡ갑다'가 되는데, 은세계(1908) 같은 20세기 기록에서 통증이 아니라 온도 표현을 위한 형용사로 쓰인 바가 있습니다. 그러다 의미가 변해서 ‘따갑다'는 통증을 뜻하게 됩니다.
‘뜨끈뜨끈'과 ‘따끈따끈’ 역시 이와 같은 파생 과정을 거칩니다. 19세기 말 사전인 한영자전과 한불자전에 ‘ᄯᅡ근ᄯᅡ근ᄒᆞ다’와 ‘ᄯᅳ근ᄯᅳ근ᄒᆞ다'가 등재되었는데 접미사 ‘-근-’이 붙었다 볼 수 있습니다.
4. “미지근하다"계
‘미지근하다'를 나타내는 말은 중세 국어에서 ‘ᄆᆡ곤ᄒᆞ다’로 처음 등장하는데 모음교체형인 ‘믜근ᄒᆞ다'도 존재했습니다. 18세기에는 1음절에 ㅇ이 첨가된 ‘믱근하다'가 등장하는데 얘는 현대국어의 ‘밍근하다'로 남고 ‘*ᄆᆡᆼ곤ᄒᆞ다’도 문증되진 않지만 ‘맹근하다'가 현대 국어에 있는 걸 보아 근대 국어 시기에 있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ᄆᆡ지근ᄒᆞ다’와 ‘믜지근ᄒᆞ다'가 등장하는데 ‘달짝지근'이나 ‘게적지근'에서 보이는 그 ‘지근'으로 파악됩니다. 이를 통해 ‘ᄆᆡ-/믜-’에 어근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고 실제로 이용경(2011)에선 ㄱ 약화 표기와 ‘미지근하다'의 어형을 통해 ‘ᄆᆡ곤ᄒᆞ다/믜근ᄒᆞ다'의 ‘곤/근' 역시 접사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ᄆᆡ지근’은 현대 국어의 ‘매지근'으로 ‘믜지근'은 현대 국어의 ‘미지근’으로 남아 있습니다.
냉각 표현의 어휘사
1. “선선하다"계
중세 국어에선 ‘서늘ᄒᆞ다’와 ‘사ᄂᆞᆯᄒᆞ다', 그리고 어근을 중첩한 즉 첩어인 ‘서느서늘ᄒᆞ다(ㄹ 탈락)'가 쓰였습니다. ‘서늘'이 축약되어 ‘선'이 되고 이게 반복돼 ‘선선'이라는 비자립적 어근을 형성, 그리고 뒤에 접미사 ‘-ᄒᆞ-’가 붙어 ‘선선ᄒᆞ다'가 되는데 17세기 문헌에 처음 등장합니다. 특이하게 19세기 기록에는 ‘션션ᄒᆞ다'도 함께 쓰였는데 아무래도 단모음화를 과하게 의식하여 과도 교정을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 접사 ‘-득-’이 붙어 ‘션득션득ᄒᆞ다'란 말이 등장하였고 이는 현대 국어 ‘선득/선뜩하다'와 ‘선득선득/선뜩선뜩하다'의 옛 형태입니다. 그리고 ‘사ᄂᆞᆯᄒᆞ다’는 ‘사늘하다'와 ‘싸늘하다'로 남았고, 위의 ‘-득-’이 결합하여 ‘산득/산뜩하다'와 ‘산득산득/산뜩산뜩하다'를 형성합니다.
2. “차갑다"계
20세기에 처음 등장하는 ‘ᄎᆞ갑다'는 ‘차다'의 옛말 ‘ᄎᆞ다'에 접미사 ‘-갑-’이 붙은 형태입니다. 한불자전이나 한영자전 등의 19세기 사전에서 ‘ᄯᅳ겁다'는 등재됐는데 ‘ᄎᆞ갑다'는 등재되지 않은 점, 그리고 ‘ᄯᅳ겁다'의 반의 표현으로 ‘ᄎᆞ다'만이 쓰였단 점을 보면 ‘ᄯᅳ겁다'보다 나중에 나온 형태라고 추정이 가능합니다. 물체와 기온에서 둘 다 쓰이던 ‘덥다'가 ‘뜨겁다(<ᄯᅳ겁다)’의 등장으로 기온에서만 쓰이게 되자 낮은 온도를 나타낼 때에도 이러한 대응 관계가 필요했을 겁니다. 중세 때부터 냉각 표현에선 ‘칩다'와 ‘ᄎᆞ다'가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 ‘칩다'는 ‘덥다'와 형태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대응이 되지만 ‘ᄎᆞ다'와 ‘ᄯᅳ겁다'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덥다'가 의미가 축소되면서 이를 의식한 언중이 ‘칩다' 역시 의미를 한정되게 써 ‘바람이 춥다' 같은 표현을 쓰지 않게 됐습니다. 그리고 ‘ᄯᅳ겁다’와 형태적으로 대응을 시키고자 ‘-갑-’을 이용해 이미 존재하던 ‘ᄎᆞ다'에서 ‘ᄎᆞ갑다'를 파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뜨끈하다'에 유추됐는지 ‘-근-’이란 접사가 개입하여 ‘차끈하다' 역시 파생됩니다. 아래아의 음가가 소실되자 ‘차갑다'가 되고 표준어로 정착합니다. 그리고 '칩다'는 ㅂ 불규칙의 영향으로 ㅣ가 ㅜ가 됩니다.
결국 20세기가 되면서 ‘덥다 - 춥다', ‘뜨겁다 - 차갑다' 이렇게 형태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대응이 되게 됩니다.
현재 '-겁/갑-', '-지근-', '-근-' 따위는 접사로 인정되지 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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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걍 묶으면 되네 뭐지.
아잉 난 화직이라 몰라잉
이분 글 보다보면 언매에 도움되는 지식들 많이 배워감
공부 느낌으로 보는게 아니라 부담 없어서 그런지
무의식에 많이 남기도 하고
덕분에 저번 내신 몇 개 맞췄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